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

장관도 없는데 다시 대유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2년여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아갔던 코로나19가 재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휴가철과 맞물려 확진자가 폭발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경고등이 울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주무부처의 수장이 공석이라는 점이다.

바짝 조였던 방역의 끈이 올해 들어 느슨해졌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패스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들이 국민을 꽁꽁 묶었다. 그럼에도 수차례의 대유행을 지나고 나서야 코로나  사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경제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안정된 줄
알았는데…

방역정책의 직접적 타격을 맞은 자영업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민이 ‘일상 회복’을 외쳤다. 코로나 종식은 불가능한 수준이니 아예 함께 살아가자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기 상조’ ‘확진자가 다시 크게 늘어날 것’ 등 부정적인 예측이 나왔지만 경제 상황, 국민 피로감 등을 고려해 방역정책을 완화했다. 

2020년 1월 코로나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2년여 동안 이어진 문재인정부의 방역정책은 지난 3·9 대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였다. 방역정책의 효용성을 두고 ‘정치 방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 대선 기간 동안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일종의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이 마무리되고 그 사이 실내 마스크 착용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정책이 완화되면서 코로나는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국민의 삶은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길 꺼리던 사람도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하나둘 맨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흥업소 이용 시간 제한이 풀렸고 지하철 막차 시간도 늦춰졌다.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든 하지 않았든 가게 출입도 자유로워졌다. 수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구장은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있고 콘서트와 뮤지컬 등 공연도 재개됐다.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던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변화였다. 

한동안 줄었다 다시 증가세로
전문가 “8월 하루 20만도 가능”

시간마다 경마 경주처럼 보도됐던 확진자 수 추이나 사망자 수 통계는 어느새 언론 지상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던 ‘코로나 라이브’는 지난 5월16일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코로나 라이브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지 21개월 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한 지 꼭 한 달째였다. 

당시 코로나 라이브 운영자는 “오미크론 대유행 이후(확진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며 거리두기와 외부 마스크 해제된 지 각각 한 달, 2주가 됐다”며 “확진자 수의 중요성이 이전에 비해 하락했고 각 지자체에서 매일 제공하는 확진자 자료가 이전보다 줄어들면서 실시간 집계에도 어려움이 생겨(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민의 경각심이 옅어진 동안에도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국민의 삶을 강하게 할퀴었던 코로나가 다시 이빨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춤했던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면서 휴가철 대유행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 역시 8월 대유행을 경고하는 중이다. 

지난 6일 기준 코로나 확진자 수가 2만여명에 육박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이하 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신규 확진자는 1만9371명으로 1주일 전인 지난달 29일(1만455명) 대비 8916명(84.8%) 증가했다. 1주일 새 확진자 수가 2배로 늘어나는 이른바 ‘더블링’에 근접한 수준이다.

5월25일 2만3945명 이후 6주 만에 가장 많은 수치기도 하다.


주간 단위로 보면 3월 3주(282만2000명) 이후 줄곧 감소하다 15주 만에 다시 증가했다. 감염재생산지수도 1.05로 3월 4주(1.01) 이후 14주 만에 다시 1 이상을 기록했다. 감염재생산지수는 환자 1명이 주변 사람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수치화한 지표로 1 이상이면 유행이 확산된다고 본다. 

정치 방역?
과학 방역?

전문가들은 재유행이 임박했거나 이미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빠르면 8월 중순, 늦으면 9월이나 10월쯤 하루 최대 20만명까지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지난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재유행이 시작됐다고 평가하시는 분이 많다. 하강 국면은 끝났고 계속해서 상승 국면으로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또 “여러 수학적 모델링 예측 자료를 보면 이번에 오르는 건 예전처럼 거리두기가 해제됐거나 새로운 변이가 유입돼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되는 양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확진자는 매우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향후 확진자 증가 규모에 대해 예측했다. 

변수는 7~8월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정책으로 2년 동안 발이 묶였던 만큼 이번 휴가철에 역대급 인파가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만큼 코로나 재감염, 확산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20~30대 자녀 세대의 확진이 50~60대 부모 세대로 이어지는 가족 간 감염이 폭증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실제 최근 8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일평균 발생률이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대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일평균 28.6명)이 나왔고, 전체 발생 중 연령대별 비중도 20대가 22.2%로 가장 많았다. 60세 이상 확진자 규모 역시 지난 6월 4주 7657명에서 5주 8206명으로 늘었다. 

이 교수도 “본격적으로 재감염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오미크론 시기에 우리나라 국민 절반 정도가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절반은 아직 감염도 안 되신 분들”이라며 “이번 유행이 커지면 그분들이 감염 표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감염이 됐던 분들 중에서도 면역이 빨리 떨어지는 분들, 고령층이나 면역 저하자, 만성질환자분들은 재감염 확률이 꽤 높다. 이 두 그룹이 합쳐지면 꽤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대 악재
첫 시험대

코로나 재유행이 현실화되면서 윤석열정부의 방역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방역정책을 ‘정치 방역’이라 비판하고 ‘과학 방역’을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한의사협회를 찾은 자리에서 “(문재인)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너무 성급하게 시행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이 윤정부 방역정책의 첫 시험대가 되는 셈이다.


윤정부는 ▲여름철 활동량 증가 ▲면역 회피 가능성이 높은 BA.5 변이 검출량 증가 ▲면역력 감소 등의 악재를 뛰어 넘어야 한다. BA.5 변이는 기존 우세종보다 전파력이 세고 감염이나 백신으로 생긴 면역을 회피하는 성질을 가졌다. 3차 백신과 확진으로 높아졌던 면역력이 이달 이후 본격적으로 낮아지는 점도 변수다. 

윤정부는 일단 재유행에 대비해 특수·응급 병상 확보, 방역 점검 강화 등을 통해 의료와 방역 대응 체계가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중대본 제2차장을 겸하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수 환자는 입원이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할 수 있도록 지침을 명확히 하고, 응급 시에는 자체 입원도 가능하게 하는 등 이송과 입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4차 접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60세 이상에 한정돼있던 4차 접종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문제는 백신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백신의 효용성이다. 지난 7일 기준 4차 접종률은 전 국민 기준 8.7%, 60세 이상 기준으로 31%에 불과하다.

백신 패스 제도도 없기 때문에 접종을 강제할 명분도 없다. 또 3차 접종자 가운데 돌파감염된 사례도 26.8%나 된다. 국민 3명 중 1명이 3차 접종 이후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뜻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아빠 찬스 논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무덤 되나


더 큰 문제는 방역정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두 달째 장관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방역정책은 경제 피해와 맞물리기 때문에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유행 규모와 기간에 따른 선제적인 판단도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등 정부 부처와의 협조도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리더십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보건복지부 장관에 지명됐던 후보자가 2번 연속 낙마했다. 윤정부 장관 낙마자 3명 가운데 2명이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나온 것이다. 한 정부부처에서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한 사례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4일 김승희 후보자가 자진사퇴했다. 지명 40일 만으로 ‘아빠 찬스’ 논란으로 자진 사퇴한 정호영 전 후보자에 이어 두 번째 낙마다. 김 후보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김 후보자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김 후보자가 의원 시절에 사용하던 업무용 렌터카를 정치자금으로 매입해 개인용으로 돌린 것이다. 

김 후보자는 사퇴 입장문에서 “(정치자금을)사적인 용도로 유용한 바가 전혀 없으며, 회계 처리 과정에서 실무적인 착오로 인한 문제”라며 “최종적으로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의 사퇴가 국민을 위한 국회의 정치가 복원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며 “국민 행복과 윤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다음 후보
현역 의원?

보건복지부가 장관 후보자의 무덤이 되고 있는 만큼 세 번째로 지명되는 후보자는 부담이 클 전망이다. 하지만 장관 공백이 길어지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마냥 후보자 지명을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 통과가 한결 수월한 현직 의원들이 거론된다. 세 번째 낙마까지 이어지지 않게 안전한 후보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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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