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화려한 부활 전인지

메이저 여왕으로 돌아오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전인지가 지난달 27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 콩그레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18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로 3년8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다. 대회 직전까지 은퇴를 고민했다던 전인지. 그는 이번 대회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전부 털어내는 시원한 스윙을 선보였다. 

전인지는 1994년 8월10일 전북 군산 태생으로 유년 시절 IQ가 138에 달해 수학에 두각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학 영재’와 골프 사이에서 고민하던 전인지는 결국 골프를 선택했다. 이후로는 함평골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주목받는 신인
대기록 달성

2012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 입회한 뒤 2013년 KLPGA 투어에 데뷔했다. 데뷔 첫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당시 투어 최강자였던 장하나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접전을 벌인 끝에 석패하며 골프 팬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6월에 열린 KLPGA 메이저대회인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최종 라운드 마지막 4홀 연속 버디로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뒀다. 전인지는 이 우승으로 KLPGA 투어 데뷔 첫해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6번째 선수가 됐다.

이때부터 그는 김효주가 독식할 것으로 점쳐졌던 신인상 자리에 도전장을 냈다. 두 선수는 모두 일관성 있는 경기력으로 꾸준히 상위권에 들며 신인상 경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전인지가 어깨 부상으로 막판 경기를 접은 탓에, 신인상은 결국 김효주에게 돌아갔다.


2014년에는 부상 여파로 데뷔 후 첫 컷 탈락을 기록하는 등 고전하기도 했지만, 시즌 3승·상금 순위 4위를 기록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직행 좌절이었다. 전인지는 2014년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의 LPGA 대회인 ‘KEB 하나은행’에 참가했다. 최종일 1위로 나서며 LPGA 직행에 손을 뻗었지만, 후반 실수로 동률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도 실수가 이어졌다. 

결국 LPGA 직행 출전권은 침착하게 본인 경기를 치른 백규정이 거머쥐었다. 전인지는 백규정의 우승이 확정되자 가장 먼저 다가가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아쉬움에 눈물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2015년, 절치부심한 전인지에게 전성기가 찾아왔다. 시즌 초반 KLPGA 4승을 쓸어 담았던 것. 이 중에는 메이저대회 1승도 포함됐다. 이외에도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의 초청을 받아 출전한 메이저대회 2개에서도 연이어 우승했다.

가장 기념비적인 쾌거는 L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이력이다. 전인지는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컵을 들었다. 전인지가 만들어낸 ‘이변’은 세계랭킹 급등으로 이어졌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신인상을 놓고 경쟁했던 김효주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던 세간의 평가도 뒤집혔다.

3년8개월 만에 LPGA 투어 우승
세계랭킹 12위…단숨에 21계단↑

전인지는 이 우승을 발판으로 이듬해 LPGA 진출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시즌 중반부터 외국인 캐디와 호흡을 맞춰 보는 등 새로운 무대를 위한 준비에도 돌입했다.


또 같은 해 10월25일,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3타 차 열세를 뒤집고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전인지는 시즌 KLPGA 5승과 동시에 한·미·일 메이저 5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일찌감치 2015년 상금왕·다승왕을 확정한 것에 이어 대상과 평균타수상까지 추가로 확정지었다. 기록 ‘4관왕’ 전인지는 연말 시상식에서 기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플레이어 트로피와 해외 특별상까지 독식했다.

2016년에는 본격적으로 LPGA에 진출했다. 처음으로 참가한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선 3위를 기록했다. 좋지 않은 몸상태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도 선전한 결과였다.

LPGA 데뷔 2번째 경기인 혼다 타일랜드에서는 한 계단 오른 단독 2위를 기록하며 좋은 경기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허리 부상으로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성공적으로 LPGA 데뷔 시즌을 소화하고 있던 전인지에게는 큰 악재였다. 일각에서는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좋은 경기력을 보일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부상에서 돌아온 전인지는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피레이션’에 출전했다. 전인지는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첫날부터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연습부족으로 아이언 샷이 부진했음에도, 치료하면서 꾸준히 연습한 쇼트 게임 리커버리 능력으로 이를 메워낸 것이 주효했다.

그는 최종일 챔피언 조 바로 전 조에서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와 맞붙었다. 전인지는 부상 공백에도 훌륭한 경기를 보이며 리디아 고와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한 타를 잃었고, 결국 이 차이로 리디아 고의 우승을 지켜보게 됐다.

전성기
암흑기

이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골프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전인지는 1~2라운드에서 계속 선두권을 유지했다. 금메달 획득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공동 13위로 내려앉았다.

그는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인지는 첫날 박성현과 함께 8언더파 공동 선두에 오른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기록했다. 21언더파 신기록으로 24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LPGA 투어 메이저대회 최소타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메이저 퀸’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활약이었다. 이때까지 전인지가 기록했던 전 세계 통산 13승을 중 절반 이상인 7승이 메이저 우승이었다.

이 같은 대기록을 수립하자 ‘골프의 전설’로 불리는 아놀드 파머가 직접 우승 축하 이메일을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2015년 US 여자 오픈 우승 때에 이어 2번째였다. 아놀드 파머는 전인지의 ‘롤모델’이었기에 기쁨은 더했다. 전인지는 2016년 9월 아놀드 파머가 사망하자 SNS에 파머를 추모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전인지는 에비앙 대회 우승 후 세계랭킹 3위에 올랐다. 당시 본인 커리어 최고기록이었다. 결국 남은 시즌과 상관없이 LPGA 신인왕 수상을 확정했다. 압도적인 1위로 역대 10번째 한국인 신인왕에 올랐다. 당시 전인지는 “LPGA로 무대를 옮기며 가졌던 목표 중 하나였기에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어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는 리디아 고에 이어 시즌 내내 2위에 올라있던 평균타수상(베어트로피) 획득을 목표로 임했다. 2라운드에서 리디아 고가 10언더파를 쳐내며 앞서나갔지만, 전인지가 3라운드에서 선전하며 균형을 맞췄다.

둘은 마지막 날 같은 조로 경기에 나섰다. 전인지는 15홀까지 뒤처졌지만, 무서운 뒷심으로 역전을 이뤄냈다. 베어트로피까지 손에 넣은 전인지는 그렇게 화려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인지는 2017년부터 커리어의 정점 대신, 바닥으로 내리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나이부터 큰 주목을 받으며 느꼈던 부담감과 인터넷 악성 댓글 등으로 심해진 우울감이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2018년 시즌에는 ‘KIA Classic’ 대회를 건너뛰었다. 매년 참가해왔던 대회를 건너뛴 것은 분명한 이상징후였다. 결국 전인지는 KIA 대회 종료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11위로 내려앉았다.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랭킹 10위권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화려한 복귀
후련한 눈물


그해에도 한 차례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성적은 뚜렷한 하향세를 보였다.

전인지는 2019년 데뷔 후 가장 좋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2020년 초엔 진로 고민에 흔들렸다. 이맘때 코로나19로 투어가 중단된 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전인지는 투어가 재개될 때까지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초심으로 돌아가 서서히 기량을 회복한 그는 지난 시즌 10위권에 8차례 진입하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지난 3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공동 2위를 기록해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이번 우승으로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전인지는 지난달 27일 열린 KPMG 여자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4승. 전인지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2개 보기 5개로 총 3타를 잃었지만, 최종 합계 5언더파로 2위 렉시 톰프슨·이민지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인지는 시즌 3번째 메이저 대회인 이번 대회에서 일찌감치 단독 선두로 앞서나갔다. 1라운드 8언더파로 코스 최저타 타이기록을 세웠다. 그는 초반부터 잡은 승기를 마지막 라운드까지 놓치지 않으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일궈냈다.

우승 상금 150만달러의 주인공이 된 전인지는 이로써 2018년 10월 ‘LPGA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 3년8개월 만에 LPGA투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또 2015년 US여자오픈,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에 이은 통산 세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큰 대회에 강한 ‘메이저 퀸’ 면모를 오랜만에 과시했다.

전인지는 5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남은 AIG 여자오픈, 셰브론 챔피언십에서 1승을 추가하면 ‘커리어 그랜드 슬램’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전인지는 이날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에 대한 부담감 탓인지 초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3타 차 선두로 공동 2위 렉시 톰프슨·최혜진과 챔피언조에서 경기한 전인지는 전반 9홀에서만 버디 없이 보기 4개를 기록하며 잠시 선두자리를 내줬다. 경기 후반인 15번홀까지도 렉시 톰프슨에게 2타 차로 밀렸다. 2위 자리도 위태로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전성기 후 찾아온 긴 슬럼프에 은퇴 고려
‘코로나 휴식기’ 때 절치부심 끝 1위 쾌거

남은 홀은 단 3개. 다 잡은 우승 기회를 놓치는 듯했던 전인지의 뒷심이 발휘됐다. 전인지는 16번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한 타를 줄였다. 그 사이 톰프슨이 보기를 범하며 순식간에 둘은 공동 1위가 됐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전인지는 이어진 17번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반면 톰프슨은 재차 보기를 범하며 한 타 차로 다시 선두자리를 내줬다. 마지막 18홀에서 전인지는 파를 기록했다. 끝내 톰프슨에게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전인지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여자 골프 주간 세계랭킹에서 단숨에 12위로 올라섰다. 전주 33위에서 21계단이나 뛴 순위다. 전인지는 우승 직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감을 남겼다.

그는 “메이저 3승을 했으니 이제 또 다른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며 “계속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 내 앞에 놓인 새로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며 소감을 밝히면서도 울먹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그는 “‘해냈다’ ‘끝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전 대회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이번에도 울면 너무 울보 같다고 생각해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며 “자꾸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인지가 울었던 ‘전 대회’는 직전 우승 대회인 2018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다. 당시에도 2년1개월 만에 우승을 달성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힘든 시간이 어느 순간 ‘탁’ 온 게 아니다. 조금씩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자꾸 바닥으로 밀어 넣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부활의 발판이 되는 듯했던 하나은행 대회 이후에도 이어진 부진의 원인을 정신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찾았다.
결국 전인지는 다시 일어섰다.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결실까지 다시 일궈냈다.

전인지는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골프를 그만두려고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울함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을 때도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지난주엔 언니에게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있기가 힘들다’며 울기도 했다”고 마음고생이 여전했음을 고백했다.

이어 “‘골프처럼 너도 소중하니 그만두라’는 언니의 말에 여전히 골프를 치고 싶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번 주에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팬 덕분에
우승했다”

전인지는 팬들에게 각별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원래 팬분들하고 더 많은 소통도 할 수 있었는데, 심적으로 힘들다 보니까 응원조차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며 “내가 많이 부족한데도 끝까지 포기 안 하고 응원해 주시는 우리 ‘플라잉 덤보’ 팬 카페 여러분, 수많은 팬분 덕분에 이렇게 감사드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인지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이 대회 9승째를 수확했다. 우승한 선수는 총 다섯 명. 박세리, 박인비(각 3회), 박성현, 김세영 그리고 전인지(각 1회)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 여자골프 세계랭킹 현주소

오랫동안 한국 선수들이 장악해왔던 여자골프 세계랭킹 상위권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열린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을 마친 뒤, 세계랭킹 10위에 든 한국 선수는 고진영(1위)과 김효주(8위)로 총 2명이다.

그동안 4명 이상의 선수가 꾸준히 10위 안에 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김세영(11위)과 박인비(13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결과다.

다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세계랭킹을 21위나 끌어올린 전인지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이번 대회 같은 기량을 계속 유지한다면 머지않아 10위권 진입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아울러 16위까지 순위를 올려놓은 박민지도 함께 기대를 받고 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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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