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화려한 부활 전인지

메이저 여왕으로 돌아오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전인지가 지난달 27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 콩그레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18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로 3년8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다. 대회 직전까지 은퇴를 고민했다던 전인지. 그는 이번 대회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전부 털어내는 시원한 스윙을 선보였다. 

전인지는 1994년 8월10일 전북 군산 태생으로 유년 시절 IQ가 138에 달해 수학에 두각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학 영재’와 골프 사이에서 고민하던 전인지는 결국 골프를 선택했다. 이후로는 함평골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주목받는 신인
대기록 달성

2012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 입회한 뒤 2013년 KLPGA 투어에 데뷔했다. 데뷔 첫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당시 투어 최강자였던 장하나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접전을 벌인 끝에 석패하며 골프 팬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6월에 열린 KLPGA 메이저대회인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최종 라운드 마지막 4홀 연속 버디로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뒀다. 전인지는 이 우승으로 KLPGA 투어 데뷔 첫해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6번째 선수가 됐다.

이때부터 그는 김효주가 독식할 것으로 점쳐졌던 신인상 자리에 도전장을 냈다. 두 선수는 모두 일관성 있는 경기력으로 꾸준히 상위권에 들며 신인상 경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전인지가 어깨 부상으로 막판 경기를 접은 탓에, 신인상은 결국 김효주에게 돌아갔다.

2014년에는 부상 여파로 데뷔 후 첫 컷 탈락을 기록하는 등 고전하기도 했지만, 시즌 3승·상금 순위 4위를 기록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직행 좌절이었다. 전인지는 2014년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의 LPGA 대회인 ‘KEB 하나은행’에 참가했다. 최종일 1위로 나서며 LPGA 직행에 손을 뻗었지만, 후반 실수로 동률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도 실수가 이어졌다. 

결국 LPGA 직행 출전권은 침착하게 본인 경기를 치른 백규정이 거머쥐었다. 전인지는 백규정의 우승이 확정되자 가장 먼저 다가가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아쉬움에 눈물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2015년, 절치부심한 전인지에게 전성기가 찾아왔다. 시즌 초반 KLPGA 4승을 쓸어 담았던 것. 이 중에는 메이저대회 1승도 포함됐다. 이외에도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의 초청을 받아 출전한 메이저대회 2개에서도 연이어 우승했다.

가장 기념비적인 쾌거는 L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이력이다. 전인지는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컵을 들었다. 전인지가 만들어낸 ‘이변’은 세계랭킹 급등으로 이어졌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신인상을 놓고 경쟁했던 김효주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던 세간의 평가도 뒤집혔다.

3년8개월 만에 LPGA 투어 우승
세계랭킹 12위…단숨에 21계단↑

전인지는 이 우승을 발판으로 이듬해 LPGA 진출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시즌 중반부터 외국인 캐디와 호흡을 맞춰 보는 등 새로운 무대를 위한 준비에도 돌입했다.

또 같은 해 10월25일,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3타 차 열세를 뒤집고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전인지는 시즌 KLPGA 5승과 동시에 한·미·일 메이저 5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일찌감치 2015년 상금왕·다승왕을 확정한 것에 이어 대상과 평균타수상까지 추가로 확정지었다. 기록 ‘4관왕’ 전인지는 연말 시상식에서 기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플레이어 트로피와 해외 특별상까지 독식했다.

2016년에는 본격적으로 LPGA에 진출했다. 처음으로 참가한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선 3위를 기록했다. 좋지 않은 몸상태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도 선전한 결과였다.

LPGA 데뷔 2번째 경기인 혼다 타일랜드에서는 한 계단 오른 단독 2위를 기록하며 좋은 경기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허리 부상으로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성공적으로 LPGA 데뷔 시즌을 소화하고 있던 전인지에게는 큰 악재였다. 일각에서는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좋은 경기력을 보일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부상에서 돌아온 전인지는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피레이션’에 출전했다. 전인지는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첫날부터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연습부족으로 아이언 샷이 부진했음에도, 치료하면서 꾸준히 연습한 쇼트 게임 리커버리 능력으로 이를 메워낸 것이 주효했다.

그는 최종일 챔피언 조 바로 전 조에서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와 맞붙었다. 전인지는 부상 공백에도 훌륭한 경기를 보이며 리디아 고와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한 타를 잃었고, 결국 이 차이로 리디아 고의 우승을 지켜보게 됐다.

전성기
암흑기

이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골프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전인지는 1~2라운드에서 계속 선두권을 유지했다. 금메달 획득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공동 13위로 내려앉았다.

그는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인지는 첫날 박성현과 함께 8언더파 공동 선두에 오른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기록했다. 21언더파 신기록으로 24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LPGA 투어 메이저대회 최소타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메이저 퀸’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활약이었다. 이때까지 전인지가 기록했던 전 세계 통산 13승을 중 절반 이상인 7승이 메이저 우승이었다.

이 같은 대기록을 수립하자 ‘골프의 전설’로 불리는 아놀드 파머가 직접 우승 축하 이메일을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2015년 US 여자 오픈 우승 때에 이어 2번째였다. 아놀드 파머는 전인지의 ‘롤모델’이었기에 기쁨은 더했다. 전인지는 2016년 9월 아놀드 파머가 사망하자 SNS에 파머를 추모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전인지는 에비앙 대회 우승 후 세계랭킹 3위에 올랐다. 당시 본인 커리어 최고기록이었다. 결국 남은 시즌과 상관없이 LPGA 신인왕 수상을 확정했다. 압도적인 1위로 역대 10번째 한국인 신인왕에 올랐다. 당시 전인지는 “LPGA로 무대를 옮기며 가졌던 목표 중 하나였기에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어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는 리디아 고에 이어 시즌 내내 2위에 올라있던 평균타수상(베어트로피) 획득을 목표로 임했다. 2라운드에서 리디아 고가 10언더파를 쳐내며 앞서나갔지만, 전인지가 3라운드에서 선전하며 균형을 맞췄다.

둘은 마지막 날 같은 조로 경기에 나섰다. 전인지는 15홀까지 뒤처졌지만, 무서운 뒷심으로 역전을 이뤄냈다. 베어트로피까지 손에 넣은 전인지는 그렇게 화려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인지는 2017년부터 커리어의 정점 대신, 바닥으로 내리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나이부터 큰 주목을 받으며 느꼈던 부담감과 인터넷 악성 댓글 등으로 심해진 우울감이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2018년 시즌에는 ‘KIA Classic’ 대회를 건너뛰었다. 매년 참가해왔던 대회를 건너뛴 것은 분명한 이상징후였다. 결국 전인지는 KIA 대회 종료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11위로 내려앉았다.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랭킹 10위권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화려한 복귀
후련한 눈물

그해에도 한 차례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성적은 뚜렷한 하향세를 보였다.

전인지는 2019년 데뷔 후 가장 좋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2020년 초엔 진로 고민에 흔들렸다. 이맘때 코로나19로 투어가 중단된 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전인지는 투어가 재개될 때까지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초심으로 돌아가 서서히 기량을 회복한 그는 지난 시즌 10위권에 8차례 진입하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지난 3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공동 2위를 기록해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이번 우승으로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전인지는 지난달 27일 열린 KPMG 여자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4승. 전인지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2개 보기 5개로 총 3타를 잃었지만, 최종 합계 5언더파로 2위 렉시 톰프슨·이민지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인지는 시즌 3번째 메이저 대회인 이번 대회에서 일찌감치 단독 선두로 앞서나갔다. 1라운드 8언더파로 코스 최저타 타이기록을 세웠다. 그는 초반부터 잡은 승기를 마지막 라운드까지 놓치지 않으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일궈냈다.

우승 상금 150만달러의 주인공이 된 전인지는 이로써 2018년 10월 ‘LPGA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 3년8개월 만에 LPGA투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또 2015년 US여자오픈,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에 이은 통산 세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큰 대회에 강한 ‘메이저 퀸’ 면모를 오랜만에 과시했다.

전인지는 5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남은 AIG 여자오픈, 셰브론 챔피언십에서 1승을 추가하면 ‘커리어 그랜드 슬램’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전인지는 이날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에 대한 부담감 탓인지 초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3타 차 선두로 공동 2위 렉시 톰프슨·최혜진과 챔피언조에서 경기한 전인지는 전반 9홀에서만 버디 없이 보기 4개를 기록하며 잠시 선두자리를 내줬다. 경기 후반인 15번홀까지도 렉시 톰프슨에게 2타 차로 밀렸다. 2위 자리도 위태로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전성기 후 찾아온 긴 슬럼프에 은퇴 고려
‘코로나 휴식기’ 때 절치부심 끝 1위 쾌거

남은 홀은 단 3개. 다 잡은 우승 기회를 놓치는 듯했던 전인지의 뒷심이 발휘됐다. 전인지는 16번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한 타를 줄였다. 그 사이 톰프슨이 보기를 범하며 순식간에 둘은 공동 1위가 됐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전인지는 이어진 17번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반면 톰프슨은 재차 보기를 범하며 한 타 차로 다시 선두자리를 내줬다. 마지막 18홀에서 전인지는 파를 기록했다. 끝내 톰프슨에게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전인지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여자 골프 주간 세계랭킹에서 단숨에 12위로 올라섰다. 전주 33위에서 21계단이나 뛴 순위다. 전인지는 우승 직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감을 남겼다.

그는 “메이저 3승을 했으니 이제 또 다른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며 “계속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 내 앞에 놓인 새로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며 소감을 밝히면서도 울먹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그는 “‘해냈다’ ‘끝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전 대회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이번에도 울면 너무 울보 같다고 생각해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며 “자꾸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인지가 울었던 ‘전 대회’는 직전 우승 대회인 2018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다. 당시에도 2년1개월 만에 우승을 달성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힘든 시간이 어느 순간 ‘탁’ 온 게 아니다. 조금씩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자꾸 바닥으로 밀어 넣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부활의 발판이 되는 듯했던 하나은행 대회 이후에도 이어진 부진의 원인을 정신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찾았다.
결국 전인지는 다시 일어섰다.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결실까지 다시 일궈냈다.

전인지는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골프를 그만두려고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울함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을 때도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지난주엔 언니에게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있기가 힘들다’며 울기도 했다”고 마음고생이 여전했음을 고백했다.

이어 “‘골프처럼 너도 소중하니 그만두라’는 언니의 말에 여전히 골프를 치고 싶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번 주에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팬 덕분에
우승했다”

전인지는 팬들에게 각별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원래 팬분들하고 더 많은 소통도 할 수 있었는데, 심적으로 힘들다 보니까 응원조차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며 “내가 많이 부족한데도 끝까지 포기 안 하고 응원해 주시는 우리 ‘플라잉 덤보’ 팬 카페 여러분, 수많은 팬분 덕분에 이렇게 감사드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인지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이 대회 9승째를 수확했다. 우승한 선수는 총 다섯 명. 박세리, 박인비(각 3회), 박성현, 김세영 그리고 전인지(각 1회)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 여자골프 세계랭킹 현주소

오랫동안 한국 선수들이 장악해왔던 여자골프 세계랭킹 상위권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열린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을 마친 뒤, 세계랭킹 10위에 든 한국 선수는 고진영(1위)과 김효주(8위)로 총 2명이다.

그동안 4명 이상의 선수가 꾸준히 10위 안에 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김세영(11위)과 박인비(13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결과다.

다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세계랭킹을 21위나 끌어올린 전인지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이번 대회 같은 기량을 계속 유지한다면 머지않아 10위권 진입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아울러 16위까지 순위를 올려놓은 박민지도 함께 기대를 받고 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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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