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과 폭력의 위협을 뜻하는 대표적인 ‘관계의 범죄(Relational crimes)’다.
여기서 데이트 관계란 연애를 목적으로 현재 만나고 있거나 과거 만난 적이 있는 관계, 소개나 채팅 등을 통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만나는 관계, 아직은 사귀지는 않지만 호감을 가진 관계 등을 일컫는다.
데이트 폭력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관계의 특성상 폭력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재범률도 높고, 폭력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반면 폭력의 빈도와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잘 신고되지 않고, 신고되더라도 연인 간의 사적인 문제, 남녀 간의 애정 문제 정도로 치부되기 쉽다. 이런 이유로 폭력이 반복되고 악화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성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여성의 61.6%가 최근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들 가운데 48.8%는 데이트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답한 피해자는 5.4%에 불과했다.
데이트 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특징이 강하다.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폭력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거나 청산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폭력적인 배우자를 떠나지 못하거나 떠나지 않는 이유로 자녀나 경제적 의존 때문이라고 하지만, 때리는 배우자가 원래는 폭력적이지 않은데 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과 유사하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60%는 헤어질 만큼 폭력이 심하지 않아서, 24%는 여성 자신도 잘못한 점이 있어서, 17%는 참고 견디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15%는 가해자를 사랑해서, 12%는 평소 좋을 때는 잘해줘서 관계를 지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폭력성이 더욱 심화되고 빈도도 높아짐에도 피해자는 가해자를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책하고, 폭력에 둔해지며, 급기야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노출되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사회 문제화였다. 그럼에도 문제가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트 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잘못된 통념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에는 여성을 표적으로, 대상으로 하는 폭력을 호감을 가진 남녀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랑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 사고가 숨겨져 있다.
강력범죄를 데이트라는 낭만으로 포장하고, 그래서 피해를 더 키운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인 이 관계의 범죄를 더 이상 ‘사랑싸움’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인 관계에서 폭력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 데이트 폭력은 데이트로 위장한 폭력일 뿐이다. 잘못된 만남이 낳은 폭력이라면 ‘데이트’가 아닌 ‘교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