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모두가 사랑한 국민MC 송해

34년 잡은 마이크 놓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송해. 꾸준함과 일요일의 상징과도 같은 남자다. 그가 힘차게 외치는 “전국~”을 들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노래자랑!”으로 화답했다. 그의 능수능란한 진행과 격의 없는 소통을 곁들인 <전국 노래자랑>은 지난 34년간 온 국민의 성원을 받는 ‘축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겼다.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다. 고향은 이북인 황해도 재령군이다.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끼 많은 개구쟁이로 유명했다고 한다. 가족은 부모님과 형, 여동생이 있었다. 형이 아버지와 갈등을 빚다 집을 나간 후로는 넷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실향민 출신
코미디언으로

22세 때 1949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더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송해는 전쟁 초기에는 가족들과 고향에 머물렀다. 당시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4 후퇴 때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다가 영영 이별하게 됐다. 북한 인민군의 진격하면서 재령에서 해주, 해주에서 연평도로 피란을 이어갔다. 연평도에서는 미 군함 빅토리아호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 이때 바다 위에서 바다 해(海)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부산항에 도착한 뒤에는 군에 입대했던 그는 통신병으로 복무했고, 1953년 7월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했다. 그는 그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최근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 선임이 혼자였던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줬다. 송해가 첫눈에 반했다는 이가 바로 그의 부인 석옥이씨였다.


군 제대 이후에는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악단 공연을 진행하는 동시에 입담을 살려 분위기도 띄웠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이다. TV 방송을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했다. 

송해는 선배인 박시명과 콤비를 이뤄 만담을 선보이기도 했고, 콤비를 하지 않을 때는 똑똑한 고학력자를 풍자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그의 강점으로는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 능력이 꼽힌다. 발음도 정확했던 그는 라디오 진행자 자리까지 꿰찼다.

송해는 동양방송의 아침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면서 운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때 <가로수를 누비며>가 처음 시도했던,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해 이들의 제보를 적극 활용하는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서 활용되고 있다.

송해는 17년 동안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다가 1986년 갑작스레 하차했다. 당시 20세 아들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예순을 바라보던 때 생긴 비극이었다.

그는 생전에 기억이 사무쳐서, 아들이 사고를 당했던 한남대교(당시 제3한강교) 근처로는 절대 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88년 마음을 추스르고 맡은 복귀작이 KBS 1TV <전국 노래자랑>이다.

지난 8일 자택서 별세… 향년 95세
<전국…> 재개 앞두고… 애도 물결


전국 각 지방을 돌면서 주민이 참여하는 순회공연 형식인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최장수 TV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송해 역시 <전국노래자랑>을 34년 동안 진행하면서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최장수·최고령 진행자 기록을 새로 썼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이외에도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다.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다가 시청자 반발로 복귀했던 1994년 10월부터 계산하더라도 27년을 훌쩍 넘긴다. 

기나긴 세월 동안 프로그램을 맡아오면서 그는 <전국 노래자랑> 그 자체가 됐다. 시작을 알리는 “전국~”과 오프닝 반주 뒤의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양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더불어 오늘 이곳 (지명)을 가득 메워주신 시민 여러분, 이 고장을 방문하신 관광객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전국 노래자랑> 사회 담당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라는 고정 멘트는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전국 노래자랑>은 매번 다른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나오다 보니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때마다 송해는 능수능란한 진행 능력과 관록으로 위기를 무난하게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참가자들과 정겹게 만담을 나누고, 가수 출신인 만큼 가끔 노래도 부르는 등 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모습들 덕분에 송해는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참가자들에게 여전히 ‘오빠’로 불렸다. 훈장 수여도 이어졌다. 송해는 2001년 화관문화훈장,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별세 이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그는 생전에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생애 마지막 <전국 노래자랑>을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이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파란만장 인생
그리운 고향

송해는 2003년 <전국 노래자랑> 특집 방송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북측 담당 안내원과 친해져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뒤풀이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와중에, 안내원이 재령을 코앞에 두고 가지 못한 송해에게 “이젠 거기 가봤자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며 위로를 보냈다.

이를 오해한 송해는 “월남한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죽은 것이냐”고 물었다. 안내원은 “그 말이 아니라 52년의 세월 동안 모든 것이 다 달라졌다”며 “송해가 알던 재령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고 설명했다.

송해는 그제야 자신이 월남한 지 52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울러 생전에 다시는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고향 방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19년 MBN에서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 <송해야 고향 가자>에서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합류해 고향 방문을 타진했다. 하지만 방송 당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 경기가 연기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끝내 송해의 고향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1월20일,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아내를 지병으로 떠나보냈다. 부부가 같이 입원했는데, 아내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송해는 발인식에서 “붙잡으면 무슨 소용 있나. 조금 먼저 갈 따름”이라며 “열심히 애들 보살필 테니까 마음 놓고”라고 애통한 심경을 전했다.

이후 코로나 유행으로 <전국 노래자랑>의 현장 촬영이 무기한 중단됐다. 많은 이가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도중, 그는 지난해 9월 유튜브 <근황올림픽> 채널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그는 “예전보다 7kg 정도 살이 빠졌다”며 야윈 모습으로 등장해 우려를 자아냈다. 영상에서는 주로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했다.

지난 1월31일에는 KBS 2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가 방영됐다. 송해 작고 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였다. 트로트 가수 정동원이 어린 송해 역을, 국악인 박애리가 어머니 역을 맡았다.

이들이 함흥부두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연기할 때, 송해를 비롯한 여러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무대 말미에는 송해가 직접 무대에 올라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계신다”며 “꿈에서는 한 번도 오시지 않으시는 어머니께 불효의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께 한 곡 올리겠다”며 <비 내리는 고모령>을 목놓아 불렀다.

그는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지난 3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령 감염에 건강을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걱정이 무색하도록 4월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녹화에 참여하며 MC 활동을 재개했다.

안타까운 작고
수많은 일화들


그런데 지난달 14일 오후, 건강 이상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흘 뒤에는 그가 스스로 <전국 노래자랑> 제작진에게 “더이상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이번 달 초 <전국 노래자랑> 현장 촬영이 재개됐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불참 사유는 장거리 이동과 촬영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그보다 열흘쯤 전인 지난달 23일 <기네스북> 수상 당시에도 상당히 수척한 모습을 보여 우려를 샀다. 

결국 그는 지난 8일 오전 자택에서 노환으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가 식사하러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이지 않자,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으로 찾아갔다가 자택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해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19분쯤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 직함 아래 3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위원장은 엄영수 코미디언협회장이 맡았으며, 코미디언 석현·김학래·이용식·최양락·유재석·강호동·이수근·김구라·김성규 KBS 희극인실장·고명환 MBC 희극인실장·정삼식 SBS 희극인실장 등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이외에도 많은 연예계·정계 인사의 추모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훈장 추서와 함께 애도의 뜻을 전했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해외 일정 중에도 추모 화환을 보냈다. 

KBS는 송해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전국 노래자랑> 녹화 방송 복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대신 KBS는 송해 별세에 맞춰 지난 8일 밤 10시에 송해 추모 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영했다. 이어 12일에 방송되는 <전국 노래자랑>도 송해 선생 추모 특집으로 편성했다.

송해의 장지는 아내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모처다. 그는 생전에 “석 여사(아내)의 묘지 곁에 영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능수능란한 진행 격의 없는 소통
스타? 소탈한 생활에 국민들 감동

그는 오랜 시간 활동하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생전에 자동차·휴대전화·큐 카드 등 3가지를 갖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큐 카드를 들지 않았던 것은 교감과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는 앞서 “촬영이 있는 곳을 전날에 미리 내려간다”며 “그 동네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교감을 나눈다”고 밝힐 만큼 관객과의 교감을 중요시했다. 

연예계의 유명한 주당인 만큼, 술에 대한 일화도 다양하다. <퀴즈쇼 사총사>에 출연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주량이 소주 다섯잔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노래자랑>의 김인협 악단장이 옆에서 이를 소주 5‘병’이라고 정정해 웃음을 자아냈다.

애주가인 그는 생전 단골 국밥집에서 우거지국과 곁들여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송해는 생전 장수 비결로 우거지국을 꼽았다.

가수 출신인 점을 살려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생애 첫 콘서트 당시 그의 나이는 84세였다. 그는 2011년 추석을 목표로 단독 콘서트를 준비했다. 목표대로 성공리에 서울 공연을 마친 뒤, 10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그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광고에도 간간이 출연했다. 후배 코미디언인 강호동과 함께 이가탄 CF를 찍었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IBK기업은행 홍보대사에 위촉돼 광고에 특별 출연했다.

기업은행은 일명 ‘송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노년층에게 ‘IBK기업은행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예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것만으로도 막대한 규모의 예금이 유입됐다. 찾아온 고객 중에는 직접적으로 ‘송해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이 상당수였다는 후문이다.

이는 노년층 사이에서 그의 입지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혈혈단신의 실향민이 국내 최장수 MC가 되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꾸준함, 그리고 소탈한 생활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이제 떠났지만, 그의 꾸준한 열정이 담긴 “전국~”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 노래자랑’ 후임 MC 누구?

송해가 영면에 들면서 KBS는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송해가 34년간 진행해온 프로그램인 만큼, 누가 맡더라도 그 빈자리가 커 보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방송사의 고민은 계속 깊어질 전망이다.

송해 생전에도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 선정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송해는 평소 후임 MC 선정을 자신의 ‘숙제’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송해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언급한 후임자 후보군은 이상벽·이상용·임백천·이택림·고 허참 등이다.

여기에 이호섭 작곡가도 후보로 언급된다.

그는 송해가 건강 이상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대체 MC를 맡아 안정적인 진행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KBS는 우선 <전국 노래자랑>의 12일 방송분을 송해 추모 특집으로 꾸미고, 이후 방송 방향은 내부 논의를 거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송해의 후임자는 빠르면 오는 19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