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모두가 사랑한 국민MC 송해

34년 잡은 마이크 놓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송해. 꾸준함과 일요일의 상징과도 같은 남자다. 그가 힘차게 외치는 “전국~”을 들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노래자랑!”으로 화답했다. 그의 능수능란한 진행과 격의 없는 소통을 곁들인 <전국 노래자랑>은 지난 34년간 온 국민의 성원을 받는 ‘축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겼다.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다. 고향은 이북인 황해도 재령군이다.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끼 많은 개구쟁이로 유명했다고 한다. 가족은 부모님과 형, 여동생이 있었다. 형이 아버지와 갈등을 빚다 집을 나간 후로는 넷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실향민 출신
코미디언으로

22세 때 1949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더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송해는 전쟁 초기에는 가족들과 고향에 머물렀다. 당시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4 후퇴 때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다가 영영 이별하게 됐다. 북한 인민군의 진격하면서 재령에서 해주, 해주에서 연평도로 피란을 이어갔다. 연평도에서는 미 군함 빅토리아호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 이때 바다 위에서 바다 해(海)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부산항에 도착한 뒤에는 군에 입대했던 그는 통신병으로 복무했고, 1953년 7월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했다. 그는 그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최근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 선임이 혼자였던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줬다. 송해가 첫눈에 반했다는 이가 바로 그의 부인 석옥이씨였다.


군 제대 이후에는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악단 공연을 진행하는 동시에 입담을 살려 분위기도 띄웠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이다. TV 방송을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했다. 

송해는 선배인 박시명과 콤비를 이뤄 만담을 선보이기도 했고, 콤비를 하지 않을 때는 똑똑한 고학력자를 풍자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그의 강점으로는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 능력이 꼽힌다. 발음도 정확했던 그는 라디오 진행자 자리까지 꿰찼다.

송해는 동양방송의 아침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면서 운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때 <가로수를 누비며>가 처음 시도했던,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해 이들의 제보를 적극 활용하는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서 활용되고 있다.

송해는 17년 동안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다가 1986년 갑작스레 하차했다. 당시 20세 아들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예순을 바라보던 때 생긴 비극이었다.

그는 생전에 기억이 사무쳐서, 아들이 사고를 당했던 한남대교(당시 제3한강교) 근처로는 절대 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88년 마음을 추스르고 맡은 복귀작이 KBS 1TV <전국 노래자랑>이다.

지난 8일 자택서 별세… 향년 95세
<전국…> 재개 앞두고… 애도 물결


전국 각 지방을 돌면서 주민이 참여하는 순회공연 형식인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최장수 TV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송해 역시 <전국노래자랑>을 34년 동안 진행하면서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최장수·최고령 진행자 기록을 새로 썼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이외에도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다.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다가 시청자 반발로 복귀했던 1994년 10월부터 계산하더라도 27년을 훌쩍 넘긴다. 

기나긴 세월 동안 프로그램을 맡아오면서 그는 <전국 노래자랑> 그 자체가 됐다. 시작을 알리는 “전국~”과 오프닝 반주 뒤의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양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더불어 오늘 이곳 (지명)을 가득 메워주신 시민 여러분, 이 고장을 방문하신 관광객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전국 노래자랑> 사회 담당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라는 고정 멘트는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전국 노래자랑>은 매번 다른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나오다 보니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때마다 송해는 능수능란한 진행 능력과 관록으로 위기를 무난하게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참가자들과 정겹게 만담을 나누고, 가수 출신인 만큼 가끔 노래도 부르는 등 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모습들 덕분에 송해는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참가자들에게 여전히 ‘오빠’로 불렸다. 훈장 수여도 이어졌다. 송해는 2001년 화관문화훈장,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별세 이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그는 생전에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생애 마지막 <전국 노래자랑>을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이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파란만장 인생
그리운 고향

송해는 2003년 <전국 노래자랑> 특집 방송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북측 담당 안내원과 친해져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뒤풀이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와중에, 안내원이 재령을 코앞에 두고 가지 못한 송해에게 “이젠 거기 가봤자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며 위로를 보냈다.

이를 오해한 송해는 “월남한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죽은 것이냐”고 물었다. 안내원은 “그 말이 아니라 52년의 세월 동안 모든 것이 다 달라졌다”며 “송해가 알던 재령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고 설명했다.

송해는 그제야 자신이 월남한 지 52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울러 생전에 다시는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고향 방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19년 MBN에서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 <송해야 고향 가자>에서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합류해 고향 방문을 타진했다. 하지만 방송 당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 경기가 연기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끝내 송해의 고향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1월20일,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아내를 지병으로 떠나보냈다. 부부가 같이 입원했는데, 아내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송해는 발인식에서 “붙잡으면 무슨 소용 있나. 조금 먼저 갈 따름”이라며 “열심히 애들 보살필 테니까 마음 놓고”라고 애통한 심경을 전했다.

이후 코로나 유행으로 <전국 노래자랑>의 현장 촬영이 무기한 중단됐다. 많은 이가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도중, 그는 지난해 9월 유튜브 <근황올림픽> 채널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그는 “예전보다 7kg 정도 살이 빠졌다”며 야윈 모습으로 등장해 우려를 자아냈다. 영상에서는 주로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했다.

지난 1월31일에는 KBS 2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가 방영됐다. 송해 작고 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였다. 트로트 가수 정동원이 어린 송해 역을, 국악인 박애리가 어머니 역을 맡았다.

이들이 함흥부두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연기할 때, 송해를 비롯한 여러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무대 말미에는 송해가 직접 무대에 올라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계신다”며 “꿈에서는 한 번도 오시지 않으시는 어머니께 불효의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께 한 곡 올리겠다”며 <비 내리는 고모령>을 목놓아 불렀다.

그는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지난 3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령 감염에 건강을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걱정이 무색하도록 4월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녹화에 참여하며 MC 활동을 재개했다.

안타까운 작고
수많은 일화들


그런데 지난달 14일 오후, 건강 이상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흘 뒤에는 그가 스스로 <전국 노래자랑> 제작진에게 “더이상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이번 달 초 <전국 노래자랑> 현장 촬영이 재개됐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불참 사유는 장거리 이동과 촬영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그보다 열흘쯤 전인 지난달 23일 <기네스북> 수상 당시에도 상당히 수척한 모습을 보여 우려를 샀다. 

결국 그는 지난 8일 오전 자택에서 노환으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가 식사하러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이지 않자,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으로 찾아갔다가 자택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해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19분쯤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 직함 아래 3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위원장은 엄영수 코미디언협회장이 맡았으며, 코미디언 석현·김학래·이용식·최양락·유재석·강호동·이수근·김구라·김성규 KBS 희극인실장·고명환 MBC 희극인실장·정삼식 SBS 희극인실장 등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이외에도 많은 연예계·정계 인사의 추모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훈장 추서와 함께 애도의 뜻을 전했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해외 일정 중에도 추모 화환을 보냈다. 

KBS는 송해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전국 노래자랑> 녹화 방송 복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대신 KBS는 송해 별세에 맞춰 지난 8일 밤 10시에 송해 추모 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영했다. 이어 12일에 방송되는 <전국 노래자랑>도 송해 선생 추모 특집으로 편성했다.

송해의 장지는 아내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모처다. 그는 생전에 “석 여사(아내)의 묘지 곁에 영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능수능란한 진행 격의 없는 소통
스타? 소탈한 생활에 국민들 감동

그는 오랜 시간 활동하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생전에 자동차·휴대전화·큐 카드 등 3가지를 갖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큐 카드를 들지 않았던 것은 교감과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는 앞서 “촬영이 있는 곳을 전날에 미리 내려간다”며 “그 동네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교감을 나눈다”고 밝힐 만큼 관객과의 교감을 중요시했다. 

연예계의 유명한 주당인 만큼, 술에 대한 일화도 다양하다. <퀴즈쇼 사총사>에 출연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주량이 소주 다섯잔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노래자랑>의 김인협 악단장이 옆에서 이를 소주 5‘병’이라고 정정해 웃음을 자아냈다.

애주가인 그는 생전 단골 국밥집에서 우거지국과 곁들여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송해는 생전 장수 비결로 우거지국을 꼽았다.

가수 출신인 점을 살려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생애 첫 콘서트 당시 그의 나이는 84세였다. 그는 2011년 추석을 목표로 단독 콘서트를 준비했다. 목표대로 성공리에 서울 공연을 마친 뒤, 10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그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광고에도 간간이 출연했다. 후배 코미디언인 강호동과 함께 이가탄 CF를 찍었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IBK기업은행 홍보대사에 위촉돼 광고에 특별 출연했다.

기업은행은 일명 ‘송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노년층에게 ‘IBK기업은행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예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것만으로도 막대한 규모의 예금이 유입됐다. 찾아온 고객 중에는 직접적으로 ‘송해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이 상당수였다는 후문이다.

이는 노년층 사이에서 그의 입지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혈혈단신의 실향민이 국내 최장수 MC가 되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꾸준함, 그리고 소탈한 생활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이제 떠났지만, 그의 꾸준한 열정이 담긴 “전국~”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 노래자랑’ 후임 MC 누구?

송해가 영면에 들면서 KBS는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송해가 34년간 진행해온 프로그램인 만큼, 누가 맡더라도 그 빈자리가 커 보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방송사의 고민은 계속 깊어질 전망이다.

송해 생전에도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 선정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송해는 평소 후임 MC 선정을 자신의 ‘숙제’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송해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언급한 후임자 후보군은 이상벽·이상용·임백천·이택림·고 허참 등이다.

여기에 이호섭 작곡가도 후보로 언급된다.

그는 송해가 건강 이상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대체 MC를 맡아 안정적인 진행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KBS는 우선 <전국 노래자랑>의 12일 방송분을 송해 추모 특집으로 꾸미고, 이후 방송 방향은 내부 논의를 거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송해의 후임자는 빠르면 오는 19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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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진짜 속내는 담화문서 깨알같이 발견되는 두 글자로 확인할 수 있다. 꼭꼭 숨기려고 했지만, 끝내 숨기지 못했던 두 글자 ‘특검’. 과연 그 두 글자가 군을 동원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밝힌 비상계엄 선포 사유는 ▲야권의 정부 관료 탄핵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제1심 선고 전 대규모 시위(판사 겁박) ▲야권의 검사 탄핵(사법 업무 마비) ▲야권의 특활비 삭감(국가의 본질적 기능 훼손) ▲야권의 민생 예산 삭감(대한민국 국가 재정 농락) 등이다. 모르고? 알면서? 이 사유들을 열거한 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명분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국을 ‘범죄자 집단 소굴의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 기도’라고 규정한 것이다. 범죄자 집단 소굴로 규정된 야권은 곧바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야권을 일컬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후인 지난 4일 오전 4시26분에 마무리됐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찰의 국회 통제에 담을 넘어 진입해 의원들의 긴급 소집을 발동했고, 야권 의원들 및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중립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0시29분 본회의를 개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후 약 19분이 지난 3일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약속했다. “야권과 국민의힘 내 친한계 의원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것”이라는 결말은 이때 이미 예측됐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이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는 가운데, 의원들은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1분 후 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계엄 선포 후 약 2시간35분이 지나 가결된 것이다. 행정부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을 권한이 없으므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때 사실상 마감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 약 10분이 지난 오전 1시11분부터 국회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대통령의 계엄 해제가 있을 때까지 계엄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오전 4시26분 제2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고, 오전 5시4분 국무회의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약 6시간37분 동안 진행된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마무리됐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충격과 공포 해제 의결에 적극 가담한 친한계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군사상 필요·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필요가 있을 때 한정해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사유들이 과연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적 요건을 떠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선포 당시 열거한 이유로부터 큰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는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 출범 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22년 12월11일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참여해서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023년 2월 이 장관을 탄핵심판으로 넘겼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같은 해 7월25일 만장일치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야권의 탄핵소추는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어졌고, 직무대행을 맡던 이상인 전 부위원장도 탄핵소추 대상이 됐다. 이 전 위원장·김 전 위원장·이 전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퇴로 인해 폐기됐다. 사퇴하지 않았던 이 위원장은 탄핵안이 가결돼 현재 헌재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이후 윤 대통령과 줄곧 가까웠다.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당시 상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냈다. 이 전 부위원장도 BBK 특검보를 지냈고, 윤 대통령은 당시 파견검사였다. 이후엔 윤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던 검사들이 집중적으로 탄핵 소추됐다. 손준성·이정섭·강백신·김영철·엄희준·이창수·최재훈·조상원 등 탄핵 소추된 검사 대부분은 윤 대통령과 근무연으로 묶여있다. 이 중 강백신·김영철·조상원 검사는 윤 대통령이 ‘스타’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최순실 특검’에 함께 파견됐다. 손 검사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임 당시 핵심 요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맡았고, 이정섭 검사는 윤 대통령의 대검 중수2과장 재직 당시 검찰연구관이었다. 엄 검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임 중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요직 배치를 요구했다. 이창수 검사는 윤 대통령의 총장 재직 당시 대변인이었고, 최 검사는 정보관리담당관이었다. 이들이 탄핵 소추되는 것을 보는 윤 대통령의 기분을 대변하는 옛 드라마 대사가 있다. 지난 2007년 방영된 KBS2 드라마 <한성별곡-정>의 임금은 수도 이전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독살당했다. 독살당하는 순간, 임금은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고,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 나간다”고 한탄했다. 윤 대통령에게 그들은 ‘소중한 인재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죽어 나가는’ 것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특활비 삭감 표면적 이유 자신의 국정운영은 ‘간절한 소망’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국민과 야권의 비판은 ‘나를 탓하기에 바쁜’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은 세자에게 양위한 후 자신은 수원 화성으로 옮겨 친위부대 장용영을 끼고 한양을 압박하는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임금은 “반대하는 신하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라는 자기반성도 잊지 않았다. 측근 탄핵 못지않게 큰 위기감을 느꼈을 사안은 예산안이었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8일 2025년도 검찰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80억9000만원과 특정업무경비(이하 특경비) 506억9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것은 전액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내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이렇게 성역과 예외와 특혜가 많은 부처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서 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경찰 특활비 약 31억 원 ▲감사원 특활비·특경비 6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서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다. 사실 그동안 특활비는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17년 4월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의 휘하에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1인당 100만원 상당 돈 봉투를 건넨 정황이 밝혀져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돈의 출처는 특활비였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특활비 사용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이어 큰 파문이 발생했다. 원래 밀봉해 보관해야 할 특활비 자료 중 사라진 명세들이 다수 확인됐고, 특활비가 기밀수사와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지급된 정황이 확인됐다. 큰 수사가 있을 때마다 지출이 있었다는 것을 토대로 “포상금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증빙 없이 특활비를 무단 사용한 정황과 별도 계좌·이중 장부가 사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업무 추진비 사용명세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특활비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특활비 전액 삭감 처리에 대해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서 국가 본질의 기능을 훼손했다”며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성토했던 것은 ▲재해 대책 예비비 1조원 삭감 ▲아이 돌봄 지원 수당 384억원 삭감 ▲청년 일자리·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원 삭감 ▲군 간부 처우 개선비 제동 등이었다. 표적은 민주당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서 “역대 정부서 예비비는 1조5000억원 이상 사용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예산안심사소위 위원들도 지난 2일, 아이 돌봄 지원 수당·청년 일자리 예산 삭감에 대해 “여야가 이미 감액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94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변호사로 활동한 1년을 제외하고 약 26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윤 대통령도 특활비가 친숙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담화 중 특활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즉위하기 전엔 많은 땅을 거느린 ‘땅 부자’였다. 그를 즉위시킨 이성계 세력은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정도전은 가족 수에 따라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계민수전을 주장했다. 조준은 경기도 내 토지에 한정해 관리들에게 수조권을 부여하고, 다른 지역 토지는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과전법을 주장했다. 두 안 모두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고려의 모든 사전(私田)을 빼앗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고려에선 많은 전란을 극복하는 과정서 공신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해져 같은 땅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나눠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땅 하나에 2명 이상의 주인이 각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백성으로부터 반복해서 세금과 소작료를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성계 세력에 반대했던 보수파 이색도 최소한 소유권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일전일주제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수파엔 정예 사병 가별초 2000여명을 거느린 이성계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이 없었다. 최영은 위화도회군 이후 축출됐다. 이성계를 견제하던 조민수와 변안열도 위화도회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됐다. 정도전과 조준은 이성계의 무력을 기반으로 토지 몰수를 시도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과전법이었다. 과전법이 발표돼 많은 백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공양왕은 슬퍼 눈물을 흘렸다. 개인 소유 토지가 모두 몰수됐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유로 특활비 삭감을 내걸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특활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윤 대통령은 반대로 “특활비가 삭감돼 민생 치안 공황 상태가 됐다”고 성토했다. 혹시 ‘윤석열 검사의 특활비’는 ‘공양왕의 개인 소유 토지’와 비슷한 의미였던 걸까? 고려 멸망 공민왕·공양왕 윤 대통령도 같은 길 걷나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선택을 하게 된 진짜 역린은 두 글자 안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두 글자는 ‘특검’이다. 특검은 딱 1번 언급됐다. 꾹 참고 숨기려다가 참다못해 터져 나왔던 1번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야권이 끈질기게 발의했던 특검의 대상자는 김건희 여사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다. 이 중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로 돌아와 오는 10일 재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7일, 본회의서 부결 처리됐다. 그렇다면 담화 중 언급된 특검은 김건희 특검법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지난 10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카오톡 갈무리 사진 1장을 올렸다. 김 여사와의 대화였다. 김 여사는 대화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용서해달라”며 “무식하면 원래 그런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사과드린다”며 “오빠가 이해 안 간다, 지가 뭘 안다고”라고 덧붙였다. 이 ‘오빠’를 두고 “김 여사의 친오빠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명씨는 “내가 김 여사의 친오빠와 토론했겠느냐”고 주장하다가 “친오빠가 맞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다수설은 여전히 윤 대통령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수설대로 해석하면,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향한 반복적인 특검법 발의에 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부부의 굳건한 잉꼬 금슬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여사가 취임 기념 만찬서 윤 대통령의 샴페인 음주를 눈짓으로 막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과 명씨가 공개한 카톡에 대한 다수설을 조합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인다. 아울러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통화했던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부의 금슬에 비견할 수 있는 부부로는 고려 공민왕·노국공주 부부가 확인된다. 공민왕은 즉위 후 아내의 지지를 기반으로 고려를 통치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공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반원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또 원나라 공주라는 신분을 반대파 압박에 사용했고,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민왕은 아내의 강력한 지지를 토대로 친원파를 숙청했고,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측근 김용의 반란 당시 공민왕을 지킨 사람도 노국공주였다. 그런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공민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공민왕은 무명의 승려 신돈에게 국정 일체를 맡기고, 자신은 아내의 영전 공사에 몰두하는 등 기이한 행각을 일삼다가 암살당했다. 윤 대통령의 아내 사랑에 대해선 2개의 반응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월14일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했다. 국민들 막았다 하지만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지난 2023년 12월14일 <폴리뉴스> 칼럼서 “자식을 사랑했기에 자식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 속죄의 기회를 마련해줬던 YS(고 김영삼 대통령)·DJ(고 김대중 대통령)·MB(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하는 것이 진정 아내를 위한 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의존했던 공민왕은 고려의 문을 닫았다. 반대로 가혹하게 처남들을 숙청했던 태종 이방원은 조선왕조 500년 기반을 닦았다. 따뜻한 남편의 길과 훌륭한 대통령의 길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아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분노가 군을 동원한 진짜 이유였을까? 공민왕과 고려의 몰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