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일용근로자들은 고용 기간이 짧은 데다 근로 조건도 상대적으로 열악해 고용시장에서 늘 불안한 위치에 있다. 최근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단지에서 일용직 22명이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울산에서 근무했던 비계공(높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임시가설물을 설치하는 노동자) A씨는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파주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공장 건설현장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였다. A씨는 울산에서 지난해 10월 540만원, 11월 550만원, 12월 730만원을 벌었다.
돈만 보고…
올해 1월에도 1330만원, 2월 810만원의 소득이 있었다. A씨는 파주로 근무지를 옮기면 울산에서 벌었던 돈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지인으로부터 파주 공장은 실내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작업한다고 들었다. 잔업도 많고 셋째 주 토요일에는 쉰다는 말도 솔깃해 파주로 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부터 A씨를 비롯해 30여명의 인력이 현장에 투입됐다. 작업자들은 A씨뿐만 아니라 여수 등 각지에서 모여 들었다.
LG디스플레이 건물 시공사는 LG디스플레이였으며 시행사는 S&I였다. S&I는 하도급 업체로 월드탑이엔지(이하 월드탑)를 선정했다. 월드탑은 하도급 업체로 예은산업을 선정했다.
A씨는 이틀이 지나도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예은산업 직원에게 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작업 근로자들에 따르면 예은산업 관계자가 제시한 근로계약서에는 3월18일부터 계약이 시작한다는 것만 표시됐을 뿐 계약만료 기간과 임금이 제대로 적혀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계약서를 받지 못한 채 지난달까지 공사를 진행했다.
이번 달로 접어들면서 월드탑 직원은 현장 작업자들을 불러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작업자들은 예은산업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이번에는 월드탑에서 계약하자는 것이 의아했다.
또 다른 작업자 B씨는 “4월 계약도 아니고 지난달 계약을 소속 회사만 바꿔서 하자는 게 굉장히 이상했다. 월드탑 직원이 그냥 적으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월드탑이 제시한 계약서에는 근로 기간만 명시됐는데 지난달 16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였다. 작업자들은 이미 예은산업에서 3월 계약을 했는데 또 하게 되니 이중계약이 될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계약서의 안전장구 지급확인에는 안전모, 안전화, 안전벨트, 보호안경, 각반 등이 있었다.
하지만 작업자들은 안전장비를 실질적으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작업자는 “건설현장에서 장비는 필수적이다. 안전모, 안전고리, 안전화, 보안경, 각반 등이 꼭 필요하다. 건설현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작업자들은 기능성이 떨어지는 저렴한 장비로는 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15만원 정도 하는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 저렴한 안전화는 바닥이 미끄러워 높은 데서 일하다가 추락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가격이 나가야 하는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업자는 “전동임팩도 꼭 있어야 한다. 전동임팩은 군인으로 비유하면 총이다. 30만~40만원대 일본 브랜드 전동임팩이 힘이 좋아서 작업하는 데 효율적이다. 이런 전동임팩도 자기가 직접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약서 2번 작성 등 이상한 이중계약
안전장비 각자 구매…임금체불 주장도
사건은 같은 달 7일에 터졌다. A씨를 비롯한 8명은 병원, 은행 등 개인용무로 업무를 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작업자들을 관리하는 시공사 직원들은 단체행동이라고 판단해 다음 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A씨 등 8명은 회사에 다시 복귀해 업무를 이어나가려 했다. A씨는 “오후에 현장에 복귀하려 하니 관리자가 오전에 일이 다 끝났으니 오후에 일이 없다고 했다. 다음 날 바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출근한 A씨 등 22명은 새로운 작업자 무리를 발견했다. 22명을 해고하고 대체 인력이 준비된 것을 보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23조에 따라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할 수 없으며 해고는 절차적으로 ‘서면’으로 해야 효력이 있다. 구두상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것은 법 위반으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한 A씨 등 22명은 8일부터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사 단지에서 하루 2번에 걸쳐 시위를 강행했다.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대인 출근 시간대와 점심 시간대에 맞춰 임금착취 및 부당해고에 대한 억울함을 설명했다.
이들은 나흘 뒤인 12일, 경기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건으로 구제신청서를 접수하고 파주시청에 방문해 최경환 파주시청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A씨는 “계약서를 한 달 뒤에 작성하게 만들고 이번 달 월급도 주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우리를 해고하기 위해 미리 사람을 뽑고 교육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인원을 맞춰 출근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어 “하도급 업체가 또 다시 하도급을 주고 그 업체가 또 다시 하도급을 주는 것은 불법으로 알고 있다. 해고도 서명으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일 A씨 등 22명은 예은산업 직원을 만나 이견을 조율하려 했지만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다. 양측이 원하는 게 달랐기 때문이다.
월드탑 관계자는 “부당해고가 아닌 작업자들의 무단이탈이다. 잔업을 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장이 바쁘니까 대체 인력이 필요했다. 작업자 8명이 말도 없이 현장을 나가고 난 뒤 뒤늦게 카카오톡에 본인들의 개인 사정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이어 “3월 임금은 다 지급됐는데 왜 임금체불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지난 8일 작업자들에게 복직 제의를 했는데 작업자들이 거부했다. 안전장비 지급은 없는 사람에 한해서만 지급한다. 개인장비가 있는 사람한테 굳이 지원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는 계약서를 다 가져가라고 했는데 작업자들이 챙기지 않았다. 비계공 분야는 특수공정이라서 하도급의 하도급을 줘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했다. 우리는 작업자들을 직접 고용해서 쓰고 있다. 우리 소속이었다. 예은산업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고 덧붙였다.
예은산업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에스엔아이건설 관계자는 “작업자들이 시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건의 발단이 주 52시간 이슈도 있어서 연장근무가 안 되다 보니 노사 간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며 “업체 입장에서는 근로자들이 무단으로 조퇴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근로자들은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복직과 집회 기간 임금을 요구하는 것 같다. 업체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복직될까?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하청의 재청 노동자 간 갈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상태”라며 “하청업체 간 사이에서 갈등이 있어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 같다. (LG디스플레이가)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A씨는 “지난달 23일경 시위에 참여한 22명은 시위 기간있던 한 달간의 임금을 지급받아 분쟁이 해결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