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급 830원' 군무원 주말 당직 잔혹사

민간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결국 군무원에게 군인 역할까지 시켜 인건비를 아끼려는 것이다.” 군대 내 공무원인 ‘군무원’들이 자신들의 처우를 높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군무원들은 ‘부대마다 처우가 다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당직’ 시스템은 정말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그 목소리는 힘이 없다.

군무원은 군대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복무하는 특정직 국가공무원으로 국군 조직에서 대한민국 행정 업무 및 기술 업무를 하며 군법을 적용받는다. 육군, 해군과 해병대, 공군 및 국직 부대에 배치돼있다. 국방 업무를 하는 데 기존의 장교, 부사관, 병의 체제에서 군인들만으로 효율적 수행을 할 수 없었다. 

명분 없는
국방 개혁

이에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군무원을 선발하게 됐고, 이들은 군대에서 전문성을 양성할 필요 없이 이미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로 발탁됐다.

이들의 임무는 병사들이 군 복무 중 그들의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비전투 임무를 소화하는 것이다. 군무원은 ▲행정직 ▲전산직 ▲환경직 ▲건축직 ▲수사직 ▲군수직 ▲토목직으로 나누며, 각 직렬에 따라 시험과목이 다르다.

문재인정부는 ‘국방개혁 2.0’을 정책을 통해 군무원의 채용을 역대 최대 규모로 늘렸다. 2020년 2월12일 국방부는 청·장년에게 지속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군무원 52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후 이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군무원 채용 확대를 위해 중증장애인이나 군 복무 중 신체 장애인이 된 군인, 전문자격 및 유경력자 등을 대상으로 경력 경쟁 채용 시 필기시험을 면제했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무원 경쟁률은 2020년까지 상승하다가 하락하는 실정이다. 2019년에는 34.8%, 2020년에는 43.5%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27.56%로 약 15% 가량 경쟁률이 하락했다.

공무원 중 면직률이 가장 높은 것도 군무원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임용 후 3년 이내 퇴직한 근무원 수는 339명으로, 전체 퇴직자의 28.4%를 차지했다. 지난 2018년 10.5%인 98명, 2019년 18.1%인 224명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체 군무원 정원 대비 현원 비율(운영률)도 매년 감소 추세다. 2018년 95.6%에서 2019년 92%, 2020년에는 91.8%로 매년 하락세를 보인다.

군별로는 국방부가 88.8%, 육군이 89.6%로 상대적으로 낮았고, 직급별로는 7급 이하가 84.7%, 전문경력관이 77.7%로 운영률이 저조했다.

24시간 풀 근무…식비·차비 빼면 땡
문정부 인원만 늘리고 처우는 나몰라

이런 상황에 신규 채용 미달 인원도 2018년 180명, 2019년 446명, 2020년 671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채용률은 하락세다. 


코로나19로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 특정직 국가공무원인 군무원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현직 군무원들은 군무원들의 처우 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인원만 늘린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중에서도 당직 시스템은 모든 군무원이 입을 모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무원 당직 근무가 의무화된 시점은 2020년 7월7일부터다.

기존 군무원 당직 근무는 ‘소속한 부대의 장이 정하는 바’에 따랐다면, 이날 이후 군무원은 “휴일 또는 근무시간 외의 화재·도난 또는 그 밖의 사고의 경계와 문서 처리 및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해” “군무원은 모든 사고를 방지해야 하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위해” 당직 근무 의무화가 시행됐다. 

군대마다 1~2시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무원들의 당직 근무 시스템은 아래와 같다. 평일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일반 근무를 소화한 뒤,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가 당직 근무 시간이다.

주말은 오전 8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로 총 24시간을 근무한다. 근무 시스템대로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근무시간이 길다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군무원 당직은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봐야 하며,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소파나 간이침대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군대가 격오지에 있는 경우에는 멧돼지를 피해가며 순찰을 돌아야 해서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근무 환경의 어려움보다 군무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낮은 당직비다. 군무원들의 당직 근무비는 평일 1만원, 주말 2만원이다.

휴식도 없고
보상도 없어

정확하게 ‘시급’이 아닌 주말에 24시간 근무 때 2만원을 받는다. 여기에서 식사비 3500원이 공제되기 때문에 평일에 당직을 했을 때는 3000원이 남고, 주말에 3끼를 빼면 9500원이 남는다.

주말에 당직 근무한다고 평일에 대체 휴무를 주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각 군대의 상황마다 실질적으론 ‘25시간’ 근무를 하는 곳도 있다.

당직 빈도는 군대의 규모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보통 소규모 군대는 당직을 월평균 5~6회 서게 된다. 규모가 있는 군대는 군무원의 수가 많아서 2달에 1회 정도로 당직이 찾아오지만, 일반적으로는 월평균 2~3회 정도다. 


여기서 다시 의아한 것은 군무원은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연봉을 정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상황마다 다르지만 공무원의 당직 근무비는 평균 평일 3만원이고, 휴일은 6만원이다.

경찰은 기본 당직 근무비에 초과근무수당과 별도로 추가 수당도 주어진다. 또 출동 시 건당 3000원의 출동 수당도 발생하고, 하루 최대 10건으로 한정해 야간수당 이외 최대 3만원까지 더 수령한다. 여기에 더해 주말에 당직 근무를 했을 시 평일에 대체 휴무를 준다. 

그렇다면 군무원의 당직 근무비는 왜 이렇게 낮게 측정된 것일까. 우선 군인의 당직 근무비는 군무원과 같다.

그러나 군인은 군무원과 비교해 받는 수당이 훨씬 많고, 군무원은 공무원 임금체계에 따라도 매우 낮은 임금인데 당직 근무까지 서야 하는 상황이다. 

임금을 떠나서도 당직 근무에 문제점이 많다는 의견이다. 우선 군무원이 당직을 설 때 군대 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사실상 병력 지휘권이 없는 군무원이 병사들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군무원은 민간인 신분인데,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는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된 것이다. 


5년씩 이사
관사 미지급

군무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군대와 국민청원 등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무원 A씨는 “민원을 넣을 때마다 군무원이 아닌 ‘군인’의 보수가 다른 공무원보다 높게 책정됐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과 같은 당직 근무비를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며 “공무원과 동일 임금을 받는 군무원인데 군인과 비교해서 공무원들과 같은 당직 근무비를 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군인과 하는 업무가 같으면 군인과 같은 동일보수를 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군무원 B씨는 “군대는 합당한 보상 하나 없이 군무원들의 인력을 착취하고 있다. 이는 결국 군무원 전체에 대한 사기를 깎아 먹고, 이로 인해 면직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게 과연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냐”며 “누가 봐도 군무원들의 인력을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무원들에게 관사 지급이 안 되는 것은 면직률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입사 시험에 합격하면, 합격생들을 모두 불러 불러놓고 1순위부터 10순위까지 원하는 근무지역을 작성하게 한 후 성적순으로 배치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근무지가 배정될 거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배정돼도 군무원은 기본적으로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최대 5년 동안 근무하면 무조건 다른 근무지로 이동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5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하지만 군인 관사는 ‘상시 대기, 도서벽지 근무 및 빈번한 이사 등 군 복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군인복지 기본법’에 따라 군인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목적이 정해져 있는 만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무원들이 관사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볼 수 있다. 

반면 2년마다 전국 순환근무하는 국가직 공무원들은 지방의 경우 관사가 제공되는 편이다. 물론 시설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관사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어 자취를 선택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국내 인력 착취 논란
면직 인원 계속 늘어

그러나 국가직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이 있어 주거에 대한 부담이 훨씬 적다.

공무원 임대주택은 전국 49개 단지에 1만6251세대를 임대주택으로 운영하고 있고, 입주자 선정은 분기별 퇴거 예상 세대에 맞춰 공개모집한다. 공무원 임대주택은 기본 2년 거주할 수 있고, 재계약할 시 2년을 더 살 수 있다.

결국, 순환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거주지를 구해야 하는 직업은 군무원이 유일하다. 여기에 초임 군무원 월급은 100만원 중 후반대인 군무원들이 월·전세를 구해서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군무원들이 모두 관사 지급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니다. 군무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군인’과 ‘군무원’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미 당직 근무가 실행되면서 근무원들은 군인과 업무가 겹친다.

군무원 B씨는 “우리는 군인이 아닌 군무원이다. 연금법에서도 군무원은 공무원연금법을 적용받고, 군인은 군인연금을 적용받고 있는데 현재 국방부에서는 군무원을 부족한 부사관 인력을 대체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며 “현재 국방부에서는 군무원에게 전투복, 총기, 장구류 등의 지급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 군무원은 “이렇게 되면 군인과 군무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군무원에게는 실질적인 혜택을 안 줘도 되니까, 인건비를 아끼면서 군인 역할까지 시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 문재인정부가 시행한 국방개혁의 현 실태”라고 비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무원 당직에 관련해서는 현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군무원들에게 전투복, 총기, 장구류 등을 지급하는 정책 역시 과정 중”이라고 답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방 분야 대표 공약으로 건 ‘병사 월급 200만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보고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가성비 좋은
꿀보직 취급

이런 상황에 군무원들은 “병장 월급이 7급 군무원 월급보다 많아지는 게 정상이냐” “군무원 7급 1호봉 실수령액이 190만원 조금 넘는데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라니” “사병 대우를 올려준다는 정치인들은 현직 군무원과 수혐생들이 보이콧 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군인·군무원 야간근무 제외 대상은?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군인·군무원은 앞으로 야간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국방부는 “모성 보호를 위한 야간근무 제한과 함께 보육여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이 시행에 들어갔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개정 훈령엔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군인·군무원에겐 지휘관이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야간근무를 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 임산부 본인이 신청한 경우엔 야간근무가 가능하다.

임신 기간이 14주 미만인 경우 유·사산한 날로부터 3개월, 14주 이상 28주 미만은 6개월, 28주 이상은 1년이다.

그러나 인공 임신중절 수술에 따른 유산은 야간근무 제한 대상이 아니다.

또 난임 치료 시술을 받을 때마다 최대 4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 훈령에 반영됐다.

구체적으로 여성 군인·군무원이 난자를 채취해 체외수정 시술을 받을 땐 4일, 동결 보존된 배아를 이식하는 체외수정 시술을 받는 경우엔 3일, 인공수정 시술을 받을 땐 2일의 휴가를 부여하도록 했다.

남성은 정자채취일 당일 휴가를 쓸 수 있다.

국방부는 또 비상근무, 상황 발생 등으로 부대 일과 시간에 출퇴근해 양육에 공백이 생길 경우엔 지휘관이 부부 군인·군무원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이번 개정 훈령에 담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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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