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급 830원' 군무원 주말 당직 잔혹사

민간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결국 군무원에게 군인 역할까지 시켜 인건비를 아끼려는 것이다.” 군대 내 공무원인 ‘군무원’들이 자신들의 처우를 높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군무원들은 ‘부대마다 처우가 다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당직’ 시스템은 정말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그 목소리는 힘이 없다.

군무원은 군대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복무하는 특정직 국가공무원으로 국군 조직에서 대한민국 행정 업무 및 기술 업무를 하며 군법을 적용받는다. 육군, 해군과 해병대, 공군 및 국직 부대에 배치돼있다. 국방 업무를 하는 데 기존의 장교, 부사관, 병의 체제에서 군인들만으로 효율적 수행을 할 수 없었다. 

명분 없는
국방 개혁

이에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군무원을 선발하게 됐고, 이들은 군대에서 전문성을 양성할 필요 없이 이미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로 발탁됐다.

이들의 임무는 병사들이 군 복무 중 그들의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비전투 임무를 소화하는 것이다. 군무원은 ▲행정직 ▲전산직 ▲환경직 ▲건축직 ▲수사직 ▲군수직 ▲토목직으로 나누며, 각 직렬에 따라 시험과목이 다르다.

문재인정부는 ‘국방개혁 2.0’을 정책을 통해 군무원의 채용을 역대 최대 규모로 늘렸다. 2020년 2월12일 국방부는 청·장년에게 지속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군무원 52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후 이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군무원 채용 확대를 위해 중증장애인이나 군 복무 중 신체 장애인이 된 군인, 전문자격 및 유경력자 등을 대상으로 경력 경쟁 채용 시 필기시험을 면제했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무원 경쟁률은 2020년까지 상승하다가 하락하는 실정이다. 2019년에는 34.8%, 2020년에는 43.5%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27.56%로 약 15% 가량 경쟁률이 하락했다.

공무원 중 면직률이 가장 높은 것도 군무원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임용 후 3년 이내 퇴직한 근무원 수는 339명으로, 전체 퇴직자의 28.4%를 차지했다. 지난 2018년 10.5%인 98명, 2019년 18.1%인 224명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체 군무원 정원 대비 현원 비율(운영률)도 매년 감소 추세다. 2018년 95.6%에서 2019년 92%, 2020년에는 91.8%로 매년 하락세를 보인다.

군별로는 국방부가 88.8%, 육군이 89.6%로 상대적으로 낮았고, 직급별로는 7급 이하가 84.7%, 전문경력관이 77.7%로 운영률이 저조했다.

24시간 풀 근무…식비·차비 빼면 땡
문정부 인원만 늘리고 처우는 나몰라

이런 상황에 신규 채용 미달 인원도 2018년 180명, 2019년 446명, 2020년 671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채용률은 하락세다. 


코로나19로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 특정직 국가공무원인 군무원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현직 군무원들은 군무원들의 처우 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인원만 늘린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중에서도 당직 시스템은 모든 군무원이 입을 모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무원 당직 근무가 의무화된 시점은 2020년 7월7일부터다.

기존 군무원 당직 근무는 ‘소속한 부대의 장이 정하는 바’에 따랐다면, 이날 이후 군무원은 “휴일 또는 근무시간 외의 화재·도난 또는 그 밖의 사고의 경계와 문서 처리 및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해” “군무원은 모든 사고를 방지해야 하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위해” 당직 근무 의무화가 시행됐다. 

군대마다 1~2시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무원들의 당직 근무 시스템은 아래와 같다. 평일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일반 근무를 소화한 뒤,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가 당직 근무 시간이다.

주말은 오전 8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로 총 24시간을 근무한다. 근무 시스템대로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근무시간이 길다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군무원 당직은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봐야 하며,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소파나 간이침대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군대가 격오지에 있는 경우에는 멧돼지를 피해가며 순찰을 돌아야 해서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근무 환경의 어려움보다 군무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낮은 당직비다. 군무원들의 당직 근무비는 평일 1만원, 주말 2만원이다.

휴식도 없고
보상도 없어

정확하게 ‘시급’이 아닌 주말에 24시간 근무 때 2만원을 받는다. 여기에서 식사비 3500원이 공제되기 때문에 평일에 당직을 했을 때는 3000원이 남고, 주말에 3끼를 빼면 9500원이 남는다.

주말에 당직 근무한다고 평일에 대체 휴무를 주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각 군대의 상황마다 실질적으론 ‘25시간’ 근무를 하는 곳도 있다.

당직 빈도는 군대의 규모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보통 소규모 군대는 당직을 월평균 5~6회 서게 된다. 규모가 있는 군대는 군무원의 수가 많아서 2달에 1회 정도로 당직이 찾아오지만, 일반적으로는 월평균 2~3회 정도다. 


여기서 다시 의아한 것은 군무원은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연봉을 정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상황마다 다르지만 공무원의 당직 근무비는 평균 평일 3만원이고, 휴일은 6만원이다.

경찰은 기본 당직 근무비에 초과근무수당과 별도로 추가 수당도 주어진다. 또 출동 시 건당 3000원의 출동 수당도 발생하고, 하루 최대 10건으로 한정해 야간수당 이외 최대 3만원까지 더 수령한다. 여기에 더해 주말에 당직 근무를 했을 시 평일에 대체 휴무를 준다. 

그렇다면 군무원의 당직 근무비는 왜 이렇게 낮게 측정된 것일까. 우선 군인의 당직 근무비는 군무원과 같다.

그러나 군인은 군무원과 비교해 받는 수당이 훨씬 많고, 군무원은 공무원 임금체계에 따라도 매우 낮은 임금인데 당직 근무까지 서야 하는 상황이다. 

임금을 떠나서도 당직 근무에 문제점이 많다는 의견이다. 우선 군무원이 당직을 설 때 군대 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사실상 병력 지휘권이 없는 군무원이 병사들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군무원은 민간인 신분인데,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는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된 것이다. 


5년씩 이사
관사 미지급

군무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군대와 국민청원 등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무원 A씨는 “민원을 넣을 때마다 군무원이 아닌 ‘군인’의 보수가 다른 공무원보다 높게 책정됐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과 같은 당직 근무비를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며 “공무원과 동일 임금을 받는 군무원인데 군인과 비교해서 공무원들과 같은 당직 근무비를 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군인과 하는 업무가 같으면 군인과 같은 동일보수를 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군무원 B씨는 “군대는 합당한 보상 하나 없이 군무원들의 인력을 착취하고 있다. 이는 결국 군무원 전체에 대한 사기를 깎아 먹고, 이로 인해 면직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게 과연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냐”며 “누가 봐도 군무원들의 인력을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무원들에게 관사 지급이 안 되는 것은 면직률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입사 시험에 합격하면, 합격생들을 모두 불러 불러놓고 1순위부터 10순위까지 원하는 근무지역을 작성하게 한 후 성적순으로 배치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근무지가 배정될 거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배정돼도 군무원은 기본적으로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최대 5년 동안 근무하면 무조건 다른 근무지로 이동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5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하지만 군인 관사는 ‘상시 대기, 도서벽지 근무 및 빈번한 이사 등 군 복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군인복지 기본법’에 따라 군인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목적이 정해져 있는 만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무원들이 관사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볼 수 있다. 

반면 2년마다 전국 순환근무하는 국가직 공무원들은 지방의 경우 관사가 제공되는 편이다. 물론 시설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관사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어 자취를 선택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국내 인력 착취 논란
면직 인원 계속 늘어

그러나 국가직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이 있어 주거에 대한 부담이 훨씬 적다.

공무원 임대주택은 전국 49개 단지에 1만6251세대를 임대주택으로 운영하고 있고, 입주자 선정은 분기별 퇴거 예상 세대에 맞춰 공개모집한다. 공무원 임대주택은 기본 2년 거주할 수 있고, 재계약할 시 2년을 더 살 수 있다.

결국, 순환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거주지를 구해야 하는 직업은 군무원이 유일하다. 여기에 초임 군무원 월급은 100만원 중 후반대인 군무원들이 월·전세를 구해서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군무원들이 모두 관사 지급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니다. 군무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군인’과 ‘군무원’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미 당직 근무가 실행되면서 근무원들은 군인과 업무가 겹친다.

군무원 B씨는 “우리는 군인이 아닌 군무원이다. 연금법에서도 군무원은 공무원연금법을 적용받고, 군인은 군인연금을 적용받고 있는데 현재 국방부에서는 군무원을 부족한 부사관 인력을 대체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며 “현재 국방부에서는 군무원에게 전투복, 총기, 장구류 등의 지급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 군무원은 “이렇게 되면 군인과 군무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군무원에게는 실질적인 혜택을 안 줘도 되니까, 인건비를 아끼면서 군인 역할까지 시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 문재인정부가 시행한 국방개혁의 현 실태”라고 비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무원 당직에 관련해서는 현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군무원들에게 전투복, 총기, 장구류 등을 지급하는 정책 역시 과정 중”이라고 답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방 분야 대표 공약으로 건 ‘병사 월급 200만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보고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가성비 좋은
꿀보직 취급

이런 상황에 군무원들은 “병장 월급이 7급 군무원 월급보다 많아지는 게 정상이냐” “군무원 7급 1호봉 실수령액이 190만원 조금 넘는데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라니” “사병 대우를 올려준다는 정치인들은 현직 군무원과 수혐생들이 보이콧 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군인·군무원 야간근무 제외 대상은?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군인·군무원은 앞으로 야간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국방부는 “모성 보호를 위한 야간근무 제한과 함께 보육여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이 시행에 들어갔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개정 훈령엔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군인·군무원에겐 지휘관이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야간근무를 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 임산부 본인이 신청한 경우엔 야간근무가 가능하다.

임신 기간이 14주 미만인 경우 유·사산한 날로부터 3개월, 14주 이상 28주 미만은 6개월, 28주 이상은 1년이다.

그러나 인공 임신중절 수술에 따른 유산은 야간근무 제한 대상이 아니다.

또 난임 치료 시술을 받을 때마다 최대 4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 훈령에 반영됐다.

구체적으로 여성 군인·군무원이 난자를 채취해 체외수정 시술을 받을 땐 4일, 동결 보존된 배아를 이식하는 체외수정 시술을 받는 경우엔 3일, 인공수정 시술을 받을 땐 2일의 휴가를 부여하도록 했다.

남성은 정자채취일 당일 휴가를 쓸 수 있다.

국방부는 또 비상근무, 상황 발생 등으로 부대 일과 시간에 출퇴근해 양육에 공백이 생길 경우엔 지휘관이 부부 군인·군무원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이번 개정 훈령에 담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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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