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국가대표 큰 형님 윤홍근 동계올림픽 선수단장

대륙 텃세 뚫고 동분서주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지난 20일 폐막했다. 갖은 악재를 뚫고 최선을 다했던 대표 선수들에게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숨은 공신도 재조명됐다.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았던 윤홍근 제너시스비비큐 회장이 주인공이다. 

윤홍근 제너시스비비큐 회장은 지난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자행된 ‘개최국 텃세 판정’에 대응하는 방침을 밝히는 자리였다. 지난 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계속 이어졌다. 

도둑맞은 청춘
되찾으러 앞장

중계 화면상 별 탈 없이 중국 선수들을 추월해낸 것으로 보였던 황대헌‧이준서 선수가 연이어 실격 판정을 받았다.

이들이 실격되면서 탈락 위기에 몰렸던 중국 선수 3명이 결승에 진출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결국 결승전에서도 전례 없는 ‘텃세 판정’이 이어지면서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중국 런쯔웨이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윤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과 유승민 선수위원을 통해 토마스 바흐 위원장에게 즉석 면담을 요청했다”며 “이런 부당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강력하게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이후 얀 디크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과 한 화상회의에도 참여해 항의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선수단 철수 의견에 “선수단 철수 요청을 많이 받았지만 남아있는 경기가 더 많다”며 “할 수 있는 조치를 하면서 선수들이 남은 경기를 더 열심히 뛸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재로선 최고의 방법”이라고 에둘러 선을 그었다.

윤 회장 판단은 옳았다. 절치부심한 선수들이 남은 경기에서 선전했고 한국선수단은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손에 넣으며 쇼트트랙 종목 종합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국내에서는 쇼트트랙 종목 선전 비화가 널리 퍼졌다. 이 과정에서 윤 회장의 조력 일화도 함께 드러났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이야기는 ‘치킨 연금’이었다. 윤 회장은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황대헌 선수에게 ‘평생 치킨 지원’을 약속했다.

윤 회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쇼트트랙 황대헌 선수가 평소 BBQ치킨을 워낙 좋아했다”며 “금메달 따기 전에도 어떤 지원을 해주면 사기가 오를 것 같냐고 물었더니 ‘BBQ치킨을 평생 지원해주면 힘이 날 것 같다’고 했다”고 적었다.

이어 “농담으로 금메달을 따면 평생 지원 약속하겠다고 했더니 정말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발로 뛰는 단장님’ 직접 현안 챙겨
선수·지도자에 ‘통 큰 지원’ 약속 


황대헌 선수에 이어 최민정 선수(쇼트트랙)도 치킨 연금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이어 화제가 됐다. 최민정 선수가 여자 쇼트트랙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윤 회장에게 “나도 (평생)치킨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윤 회장은 “응원하는 국민들이 꿈과 희망을 갖도록, 남은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다면 고려해보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최민정 선수는 여자 3000m 계주 은메달, 여자 1500m 금메달 등 메달 2개를 더 수확하면서 치킨 연금을 받을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이외에도 윤 회장이 대회 도중 ‘1인다(多)역’을 수행하며 동분서주한 사실도 연일 보도됐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회장은 대회 중 선수단 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윤 회장은 지난달 31일 출국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동안 훈련해온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실제로 그는 대회 내내 선수단 안팎의 여러 현안을 직접 챙겼다.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강행군을 소화해냈다.

윤 회장은 대외적으로 주요 행사 참석, 경기 참관 및 선수 격려, 국내 주요 인사 응대, 판정 논란 대응 등을 도맡았다. 선수단 내부에서는 한식 식사 공급, 설 합동 차례, 선수 생일 선물 전달 등을 직접 챙기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판정 논란 직후에는 선수들의 심리치료 과정에도 참여했다. 세간에 잘 알려진 ‘치킨 연금’ 약속도 여기서 처음 나왔다.

MZ세대가 주축인 선수단 사기 진작·올림픽 열기 고조를 위해 SNS 활동도 이어갔다. 윤 회장은 직접 관리하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고 소통과 대회 홍보에 열을 올렸다. 출국 이후부터 폐막 직전까지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50개에 달한다.

또한 윤 회장은 ‘통 큰 지원’을 공언하며 선수단 사기를 드높였다. 윤 회장이 내건 이번 올림픽 포상금은 금메달 1억원·은메달 5000만원·동메달 3000만원이다. 지난 평창 대회 때 보다 2배가량 늘어난 액수다. 아울러 메달에 따라 지도자에게도 포상금을 지급하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격려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치킨 전도사
선수단 맏형

대중에게 윤 회장은 흔히 ‘치킨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 그가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의 설립자이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1955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원그룹(현 대상그룹)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마니커 영업부장으로 이직한 그는 닭고기 분야를 맡아 10년간 일했다.


윤 회장은 1995년 9월, 자본금 5억원을 가지고 BBQ를 세웠다. 이후 BBQ는 치킨 프랜차이즈 유행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매출·가맹점 수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지금은 매출 순위가 3위까지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가맹점 수는 1위다.

2020년 매출 3341억원·영업이익 531억원을 기록하면서 자체 최고 실적을 경신하기도 했다.

윤 회장이 ‘스포츠광’이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장교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부터 각종 스포츠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서울시 스쿼시연맹 회장에 당선된 2005년에는 국내기업 최초로 스쿼시 실업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2017년부터 2년 동안은 e스포츠 산업을 지원했다. 한 LoL(League of Legends, 리그오브레전드) 선수단과 네이밍 스폰서 계약도 체결했다.

윤 회장과 동계 스포츠의 인연은 2020년 11월부터다. 그때 윤 회장은 제33대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임기는 4년으로 2025년 1월까지다.

당선 직후 윤 회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빙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국제 경쟁력과 경기력도 회복해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당시 빙상연맹은 ‘선장’을 구하지 못해 표류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줄곧 후원해주던 삼성그룹이 2018 평창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지원을 끊었다. 빙상연맹은 파벌 싸움·폭행 사건 등을 비롯한 여러 추태로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문제아’였다. 선뜻 손을 내미는 차기 후원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후 빙상연맹은 대한체육회 관리단체 신분으로 전락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 빙상연맹은 여러 곳에 구조신호를 보냈다. 윤 회장도 그중 하나였다.

깜짝 이벤트
대박 터졌다

윤 회장은 처음 1년 동안 회장직을 고사했다. BBQ 해외 확장에 집중하느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던 단체라는 사실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윤 회장은 결국 마음을 돌렸다. 윤 회장은 지난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취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빙상이 이렇게 어려워지고 힘들다고 하니까 이 책임을 기업인으로서 너무 벗어던지는 것도, 미루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내가 그걸 정상화시키는 데 지원을 해 보겠다’ 해서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연맹 정상화에 힘써왔다. 취임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진천선수촌을 직접 방문해 선수들을 챙겼다. 대회를 앞둔 선수들에게는 보양식을 제공하고, 선수 훈련 여건을 직접 살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윤 회장의 노력으로 빙상연맹 운영은 다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윤 회장은 지난해 12월 2022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장으로 선임됐다. 빙상연맹 정상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이전까지 삼성‧SK‧현대 등 굵직한 대기업 경영자들이 맡아오던 선수단장 자리를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가 맡은 것은 윤 회장이 최초다.

단장직 수락 후에는 가장 먼저 전임 올림픽 선수단장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2012 런던 하계올림픽)·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2014 소치 동계올림픽) 등에게 조언을 구하며 올림픽을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윤 회장은 선수들에게 중국 현지 상황을 직접 설명해줄 정도로 여전한 의욕을 보였다.

대회 도중에는 선수들의 선전에 기뻐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종종 포착됐다. 지금까지 보여준 애착이 진심이었음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표류하는 빙상연맹 ‘선장’ 자처
매주 선수촌 찾아 정상화에 총력

윤 회장의 선수단장 행보가 BBQ에는 반사이익으로 돌아왔다. 윤 회장이 언론 보도 전면에 노출되고, BBQ가 선수 인터뷰에 자주 언급되면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것. 일각에서는 이로써 윤 회장이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대헌 선수는 지난 9일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치킨을 먹고 싶다. BBQ 치킨을 엄청 좋아한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야유하자 “진짜 거짓말 아니다”라며 “베이징 오기 전에 BBQ 먹고 왔다. 황금올리브 닭다리를 진짜 좋아한다”고 진심임을 강조했다.

다음 날인 10일에는 차준환 선수(피겨스케이팅)가 BBQ를 간접 언급했다. 이날 차준환 선수는 “치킨은 내 소울푸드”라며 “다 알겠지만 ‘그 치킨’이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최민정 선수도 가세했다. 최민정 선수는 지난 11일 인터뷰에서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치킨도 좋아한다”며 “BBQ 황금올리브를 좋아한다”고 발언했다.

선수들의 발언이 실제 주문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BBQ 측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자사 대표 메뉴 ‘황금올리브 치킨’ 주문량이 평소보다 3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황대헌 선수가 언급한 ‘황금올리브 닭다리’는 가맹점 원료 주문량이 평소 대비 50% 급증해 수급에 일시적으로 차질이 빚어졌을 정도였다.

윤 회장의 통 큰 이벤트도 주문량 증가에 기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BBQ는 윤 회장 지시를 받아 황금올리브 치킨 1만5000마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BBQ는 한국 선수 출전일마다 자사 앱 주문 고객 1000명을 추첨해 쿠폰을 지급했다.

윤 회장은 지난 21일 선수단과 함께 귀국했다. 금의환향했지만 곧바로 또 다른 과제에 직면했다. 바로 심석희(쇼트트랙)의 귀환이다. 심석희의 자격정지 징계가 이날부로 끝났다. 심석희는 동료선수 비하 논란에 휩싸여 지난해 12월 국가대표 자격정지 2개월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심석희는 우선 지난 25일부터 열린 동계체전에는 불참했다. 자격정지 징계 기간 동안에는 국내대회 참가 신청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끝나지 않았다
남은 과제는?

하지만 다음 달 18일부터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출전할 것으로 점쳐진다. 만약 심석희가 출전한다면 과거의 사건들로 다른 선수들과 소원해진 관계를 어떻게 봉합할지, 다시 진정한 ‘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선수들의 ‘맏형’으로 거듭난 윤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예정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의환향 윤홍근, 다음 대회 준비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이 대회를 마치고 지난 21일 오후 귀국했다.

우리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은메달 5개·동메달 2개로 종합 14위를 기록하는 등 목표를 달성하며 선전했다.

덩달아 다음 대회 선전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 대회 선수단장을 맡았던 윤홍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하 윤 회장)이 향후 대회 준비 전략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윤 회장은 지난 21일 열린 귀국 환영 행사에서 “이번 대회 장점과 보완점을 파악하고 선진 시스템과 과학적인 훈련방식 등을 도입하겠다”며 “세대교체와 함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규 종목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3일에는 SBS <나이트라인>에 출연해 “사실은 빙상 종목인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만 메달이 나와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했다”며 “설상 종목에서도 메달이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우선은 가장 잘할 수 있는 빙상 부분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피겨의 제2 전성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충분한 지원으로 차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올림픽에서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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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유튜버 데뷔 진짜 이유

문재인 유튜버 데뷔 진짜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잊히고 싶다던 사람의 행보는 절대 아니지 않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국민 행보를 시작했다. 전임 대통령과 달리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으로 입길에 오르더니 최근에는 그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둔 시점에 남긴 “잊히고 싶다”는 말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보수 정당은 문 전 대통령의 말을 ‘허언’이라고 치부하는 중이고 진보 세력에서도 “좀 너무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임 대통령의 행보라고 하기엔 과하다는 지적이다. 의도 없어도 정치 행보로 문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30일 불교계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퇴임을 40일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앞서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 이후에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와 계속 연관을 갖는다든지 그런 것은 일절 하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을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대통령이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대국민 소통을 이유로 SNS를 시작했다. 책을 추천하거나 시국과 관련해 발언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행사에 참석해 직접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적도 있다. 선거 때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문 전 대통령의 행보는 매번 입길에 올랐다. 전직 대통령인 만큼 행보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다. 백번 양보해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말했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의 언행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에게도 얘깃거리가 되곤 했다. 그런 문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유튜버로 깜짝 변신했다. 전직 대통령이 유튜버로 데뷔한 사례 역시 역대 최초다. 무엇보다 영상 제작을 방송인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겸손방송국’이 맡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해석이 줄을 잇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 친명 측서 민감하게 반응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유튜브 채널 ‘평산책방’에 게재된 ‘EP. 1 시인이 된 아이들과 첫 여름, 완주’ 영상에 출연했다. 채널명인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무는 경남 양산에서 운영 중인 서점이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평산책방’ 계정에 45초 남짓의 영상을 올려 유튜버로서의 출발을 알린 바 있다. 영상은 문 전 대통령과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됐다. 문 전 대통령은 평산책방의 ‘책방지기’로 소개됐다. 첫 번째 추천작은 시집 <이제는 집으로 간다>였다. 소년보호 사건 재판에서 보호위탁 처분을 받은 경남 청소년위탁센터의 청소년 76명이 작성한 시를 엮어 만든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느냐, 안 그러면 계속 빗나간 생활을 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며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애들은 들어주기만 해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집의 표제시인 ‘가만히’를 가장 기억에 남는 시로 꼽았다. 두 번째 책으로는 류기인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등이 엮은 <네 곁에 있어줄게>를 추천했다. 청소년회복센터 교사, 자원봉사자 등이 소년재판과 소년사건 현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은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책은 평산책방이 직접 출판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면서 “책이 많이 팔려서 아이들에게 인세(저작권 사용료)를 나눠주고 아이들이 ‘시집도 냈고 인세도 받았다’는 자긍심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유튜버 데뷔는 정치권을 흔들었다. SNS 글, 직접 발언 등으로 메시지를 던진 적은 있지만 고정 출연을 명목으로 한 주기적인 방송 활동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문 전 대통령의 행보에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친명(친 이재명)계’ 쪽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뜬금없이 갑자기 왜? 실제 유튜브 영상은 물론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커뮤니티 등에는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다. ‘잊혀지고 싶다고 했으면 조용히 있어달라’ ‘왜 대통령이 순방길에 나선 시점에 유튜브를 하나’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 제작을 맡은 김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와 연결 짓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전쟁이 본격화할 즈음에 ‘친문(친 문재인)’ 세력을 규합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국민의힘 등 야권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로 비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 시기가 다가오면 민주당 지지층이 친명과 친문(친 문재인)으로 갈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사이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정 대표는 임기 초부터 이 대통령이 주목받아야 할 시기마다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도 정 대표는 당원 주권 강화를 취지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값을 1인1표로 하겠다는 내용을 두고 의견 수렴을 하겠다며 전 당원 여론조사를 밀어붙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당 대표 선거에서 ‘당심’을 등에 업고 당선된 정 대표가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연임을 노리고,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쥐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힘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친문 스피커로 불리는 김어준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 대표가 되기 전부터 김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온라인 게시판에 자주 글을 남겼다. 당 대표 취임 후에는 “사법개혁안을 당론으로 추진해 본회의에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공천 전쟁 친문 결집? 지난 6일 제주도에서 열린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 워크숍 강연에선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봤을 때 <딴지일보>가 가장 바로미터”라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정 지지층에 휘둘린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타나면서 지방선거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훼손된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기 내내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점, 퇴임 후의 행보가 지지세를 깎아 먹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지난해 총선 때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4·10 총선 당시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 활동을 펼쳤다. 당시 그는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이라며 윤석열정부를 연일 공격했다. 국민의힘이 “최악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라고 정면 반박하면서 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폭망’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부·울·경 일대를 돌며 민주당 후보 11명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9명이 낙선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문재인 책임론’이 불거졌다. 문 전 대통령의 등장이 역풍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보수층에서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보수가 결집했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총선 유세 ‘폭망’ 조국 사면으로 민심 악화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사면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수감된 상태였다. 조 대표가 받은 형량은 2년으로 만기 출소는 내년 2월로 예정돼있었다. 그런 그를 ‘광복절 사면’ 대상에 포함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조 대표 사면 요구는 이정부의 임기 초반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처음 정치권에서 조 대표의 사면 이슈가 흘러나왔을 당시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역대 정부에서 임기 초에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점, 조 대표에 대한 민심이 부정적인 점 등이 근거로 떠올랐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대학 입시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 논란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크게 흔들린 시점도 조국 사태였고, 결정적으로 윤정부의 탄생에 단초가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사면 요구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류가 변했다. ‘조국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는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사면 요구로 나타나면서 조 대표의 사면을 지지하는 쪽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 지지층에서는 ‘(대통령) 임기 때에도 못 한 일을 왜 현 정부에 해달라고 하느냐’는 의견이 분출했다. 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조 대표의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사면 요구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은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에 부담 주지 말라는 의견도 빗발쳤다.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그러다 이 대통령이 조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이겼다’ ‘친문 살아 있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후폭풍은 거셌다. 60%대를 견고하게 유지하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로 주저앉았다. 공정 이슈가 훼손됐다고 생각한 2030세대가 지지율 하락을 이끌었다. 영향력은 두고 봐야 문 전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평산책방’ 계정에 올라오는 영상 중 ‘평산책방 TV’라는 코너에 고정 출연할 예정이다. 문 전 대통령이 내놓는 발언, 추천하는 책, 출연자 등이 하나하나 입방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트로이 목마’가 될까, ‘서포터’가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