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 몰린 이재명 라스트 퍼즐

김·노·문에 답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지만, 민주당 대선후보가 대권으로 가는 길에는 왕도가 있는 모양이다. 역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들은 모두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왕도’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행된 이래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여러 명의 대통령을 각각 배출해냈다. 양 진영에서 배출한 대통령들은 저마다의 매력과 선거 전략으로 대권을 쟁취했다. 그중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은 모두 지금의 이재명 후보와 비슷한 문제와 마주했고, 이것을 해결해내며 당선됐다.

역대 민주당 
대통령 보니…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많은 대선 출마 끝에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에 열세 속에서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써내며 대통령이 됐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은 것처럼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출마가 이미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 또한 당시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게이트’가 없었으면 당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도 민주당 대통령들의 본선 과정과 마찬가지로,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새로운 가족 리스크는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한 달 전에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요즘은 배우자가 일으킨 논란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는 중이다.

가족 리스크뿐이 아니다. 그의 대권행 열차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산재해있다. 우선 이 후보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호남에서의 낮은 지지율이다.

이 후보는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과거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통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90% 이상의 지지를 보내주곤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종 호남 지역 대선 지지율은 약 95%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약 94% 였다. 

그에 반해,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50%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를 두고 “나의 업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그리고 경기도지사 시절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 평가받는 문 대통령과 날선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2018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되돌아보니 정말 싸가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만 될 행동을 했다. 그 후과를 지금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 후보가 말한 ‘싸가지 없는 행동’은 5년 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대권으로 가기 위해 경선에 참여한 이 후보는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문재인 후보에게 “기득권자들을 선거캠프에 대대적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실질적으로 뿌리를 보면 혹시 기득권과 대연정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며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지금과 똑같은 기득권 정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합세해 문 후보를 향해 다양한 소재로 네거티브전을 펼쳤고, 이때 호남에 포진돼있는 상당수의 민주당 골수 지지층은 그에게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지지율 격차 벌어져…특단의 카드 절실
대권으로 가는 왕도? 과거 대선서 배운다

반감이 짙었던 지지층의 분노를 제대로 폭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혜경궁 김씨 트위터 사건이다.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는 트위터 아이디 ‘08_hkkim’의 계정주는 원색적으로 문 대통령을 비난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한 문어벙” “문재인이나 와이프나 생각이 없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제인. 문제 많은 문죄인” 등 노골적인 표현을 담아 문대통령을 비난했다.

해당 계정주가 김씨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가 김씨라고 믿고 있다. 이 후보가 자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0% 이상이 계정주가 김씨라 대답한 것이다.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공식을 세워낸 것은 김 전 대통령이다.

사실 1971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지역에 따른 정치색은 지금보다 많이 옅은 수준이었다. 전라도에서 박정희를 뽑아도, 경상도에서 김대중을 뽑아도 이상하게 치부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호남 민심을 민주당 쪽으로 끌어온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다.

1993년 당시 써낸 책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는 “박정희씨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호남 차별부터 시작했습니다. 영남민에게 우월감을 부추기고 호남인에게는 열등감을 조장했습니다”라며 “군부는 물론 관청, 군영기업, 그리고 일반 대기업까지 호남 사람은 채용과 승진과 직책에서 철저한 차별을 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남을 의도적으로 차별해 호남 지역이 크질 못했고, 이에 대항해 호남인들이 힘을 하나로 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보수정권을 이기기 위해 야당에 힘을 모아주자는 취지로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차별론’을 펼쳤다. 지금의 ‘호남 소외론’의 근본적 기틀이 되는 논리를 이때 그가 만든 것이다.  


가족 리스크
문제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의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는 전무하지만, 이를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던 호남인들은 그의 말에 동요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그동안 차별받았던 자신의 지역을 다시 살려보자는 의견에 많은 지지를 보내줬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진영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에 호응해 호남 출신의 인사들을 민주당 진영에 대거 영입했고, 대권을 거치며 호남 차별론을 호남 소외론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난 30년간 김 전 대통령이 가꿔 놓은 호남 텃밭에서 열매를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정치평론가들로부터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지만, 호남 차별론에서 파생된 이익은 민주 진영의 크나큰 자산이 돼왔다.

그의 논리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면, 민주당의 대통령은 대권을 쥘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스스로 민주당의 텃밭을 버린 이 후보는 이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을 답습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갈라치기 해놨다는 비난은 아직 이어지고 있으나,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확실한 이득은 모두 챙겨왔다.

현재 친문(친 문재인)과 반문(반 문재인) 사이에서 제대로 된 입장을 취하고 있지 못하는 이 후보가 가야할 길은 중도가 아닌 친문과 반문 어느 하나의 길이다.

영남을 버리고 호남을 선택했던 김 전 대통령의 결단처럼 이 후보는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해 확실히 가야만 한다. 그다음 이 후보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비호감 이미지다.

이 후보가 가지고 있는 비호감 이미지는 ‘무서운 권력자’ ‘조폭 연루 시장’ 등등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것들뿐이다. 이 후보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그 목적이 선할지라도 정책을 강하게 수행하는 모습은 일부 유권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경기도지사 시절 시행한 ‘계곡 불법 설치물 철거 사업’이 한 예다.

당시 이 후보는 경기도 불법 설치물 철거 사업이 경기도민의 숙원 사업이라 규정짓고 철거를 강행했다. 많은 경기도민들이 그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당사자였던 해당 업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권리금을 몇 억씩 주고 들어온 업장에서 이제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는데, 너무 급진적인 사업 강행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의견을 모아 “사업 강행을 조금만 유예해달라”는 건의를 이 후보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대답은 “절대 불가”였다. 이미 유예될 대로 유예된 철거 사업을 또다시 유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옳은 일을 위해 내린 강단 있는 결정이었지만, 이때 몇몇 사람은 그의 강직함에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악재로 작용했던 사건은 그의 형 이재선씨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다.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 처음 불거졌던 것은 2014년이다. 그의 형수 박인복씨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극심한 형제 갈등 끝에 형 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고 주장했다.

후에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와 한 전화 통화가 폭로되고, 관련 문건들이 보도되며 의혹은 한층 짙어져갔다.

국민은 처음에 반신반의하다 관련 내용을 접한 후 그럴 수도 있겠다며 강제 입원 의혹이 진짜라는 것에 힘을 실었다. 좋고 나쁜 사건들이 맞물리며 이 후보는 ‘무서운 권력자’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을 떠안게 됐다. 

이미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례는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는 경선 과정 내내 사상에 대한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이인제 후보 측에서 제기한 ‘장인어른의 좌익 활동’ 의혹은 사상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인제 후보는 인천 경선 때 연단에 올라 “급진 좌파가 우리 당을 점령하고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노 후보에 대한 사상을 의심했고, 이로부터 얼마 후 민주당 기자실에서 이인제 캠프의 한 특보가 기자들에게 “노 후보의 장인이 6·25 때 부역 혐의로 복역 중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노 후보의 해결책은 정면돌파였다. 본인에 대한 의혹 제기에 쉬쉬하며 대응하지 않고,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것도 경선 연설 현장에서였다.

그는 연단에 올라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에도 참 힘이 듭니다”라며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많은 유권자를 자신의 편으로 결집시켰다.

이인제 후보 측의 악의적인 사상 검증을 ‘그럼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 하느냐’는 구도로 바꿔 본인의 페이스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후에 경선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의혹 제기를 정면으로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며 영리하게 본인의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김은 호남 소외론…노는 정면돌파
문은 김종인 위원장으로 문제 해결

이 후보 또한 그간 문제를 해결해왔던 방식이 노 전 대통령과 많이 닮아있다. 아들 도박 논란이 있었을 때, 그리고 배우자 김씨의 갑질 의전 논란이 있었을 때마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면돌파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새로운 구도 전환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본인에게 유리한 판을 짠 노 전 대통령의 전략이 지금 이 후보에게는 필요하다.

그가 안고 있는 부담스러운 이미지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라는 오명이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 시절까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온 기관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성남시장 시절에 청년 배당·공공 산후조리지원·무상 교복으로 구성된 성남시 3대 보편복지를 시행해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을 주요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우며 기본소득 도입으로 경제적 풍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 시절의 복지 성과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불러일으켰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배급과 뭐가 다르냐’는 우려를 보냈다.

시 단위의 예산 운용에서 보편 복지는 장점만이 부각됐지만 국가 단위에선 과연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까란 의심이 지속됐고, 결국 국민 의견을 받아들여 기본소득 정책을 철회할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도 지금의 이 후보처럼 대권 도전 당시 ‘실패한 정부의 비서실장’이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 번 실패해본 사람에게 정권을 다시 줘도 되겠냐는 일각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유권자들은 경제 정책을 잘 펼칠지 많은 우려를 보냈다.

참여정부 시절 민생 안정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의 관료가 어떻게 경제를 되살릴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민주당에 영입했다. 김 전 위원장은 평생 경제 공부만 해온 경제 전문가다. 그는 국익이 된 일에 모두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보수도 진보도 아닌 실용 경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중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중도층의 표를 끌어오는 힘을 가진 김 전 위원장은 불리한 조건의 당에 합류해 수차례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바 있다. 2016년 민주당과의 총선 때도 그렇고, 지난해 국민의힘과의 보궐선거 때도 그랬다.

김 전 위원장은 2017년 대선 직전 당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끝내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를 영입함으로써 이미지와 선거 분위기 쇄신에 큰 도움을 받아 대선에서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

시대 변해도…
세 갈래의 길

시대가 급변하고 민심이 요동치는 요즘, 과거의 왕도가 지금 먹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제시한 방법이 4대 민주당 대통령 배출에 힘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 후보가 나름의 왕도를 스스로 찾아 제시할지 민주당 지지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종인에 목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김 후보와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80분가량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김 전 위원장은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람 한 번 만난 것 갖고 뭘 그렇게 관심이 많냐”며 “특별한 얘기 한 것도 아닌데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의 선 긋기와는 달리 정치권은 이날 만남을 민주당 영입을 위한 이 후보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음양으로 김 전 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후보에게 비호감도가 높은 김 전 위원장이지만 계속되는 삼고초려에 앞으로도 그의 태도가 같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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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