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 몰린 이재명 라스트 퍼즐

김·노·문에 답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지만, 민주당 대선후보가 대권으로 가는 길에는 왕도가 있는 모양이다. 역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들은 모두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왕도’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행된 이래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여러 명의 대통령을 각각 배출해냈다. 양 진영에서 배출한 대통령들은 저마다의 매력과 선거 전략으로 대권을 쟁취했다. 그중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은 모두 지금의 이재명 후보와 비슷한 문제와 마주했고, 이것을 해결해내며 당선됐다.

역대 민주당 
대통령 보니…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많은 대선 출마 끝에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에 열세 속에서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써내며 대통령이 됐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은 것처럼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출마가 이미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 또한 당시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게이트’가 없었으면 당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도 민주당 대통령들의 본선 과정과 마찬가지로,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새로운 가족 리스크는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한 달 전에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요즘은 배우자가 일으킨 논란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는 중이다.

가족 리스크뿐이 아니다. 그의 대권행 열차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산재해있다. 우선 이 후보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호남에서의 낮은 지지율이다.

이 후보는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과거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통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90% 이상의 지지를 보내주곤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종 호남 지역 대선 지지율은 약 95%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약 94% 였다. 

그에 반해,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50%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를 두고 “나의 업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그리고 경기도지사 시절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 평가받는 문 대통령과 날선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2018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되돌아보니 정말 싸가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만 될 행동을 했다. 그 후과를 지금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 후보가 말한 ‘싸가지 없는 행동’은 5년 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대권으로 가기 위해 경선에 참여한 이 후보는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문재인 후보에게 “기득권자들을 선거캠프에 대대적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실질적으로 뿌리를 보면 혹시 기득권과 대연정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며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지금과 똑같은 기득권 정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합세해 문 후보를 향해 다양한 소재로 네거티브전을 펼쳤고, 이때 호남에 포진돼있는 상당수의 민주당 골수 지지층은 그에게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지지율 격차 벌어져…특단의 카드 절실
대권으로 가는 왕도? 과거 대선서 배운다

반감이 짙었던 지지층의 분노를 제대로 폭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혜경궁 김씨 트위터 사건이다.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는 트위터 아이디 ‘08_hkkim’의 계정주는 원색적으로 문 대통령을 비난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한 문어벙” “문재인이나 와이프나 생각이 없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제인. 문제 많은 문죄인” 등 노골적인 표현을 담아 문대통령을 비난했다.

해당 계정주가 김씨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가 김씨라고 믿고 있다. 이 후보가 자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0% 이상이 계정주가 김씨라 대답한 것이다.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공식을 세워낸 것은 김 전 대통령이다.

사실 1971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지역에 따른 정치색은 지금보다 많이 옅은 수준이었다. 전라도에서 박정희를 뽑아도, 경상도에서 김대중을 뽑아도 이상하게 치부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호남 민심을 민주당 쪽으로 끌어온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다.

1993년 당시 써낸 책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는 “박정희씨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호남 차별부터 시작했습니다. 영남민에게 우월감을 부추기고 호남인에게는 열등감을 조장했습니다”라며 “군부는 물론 관청, 군영기업, 그리고 일반 대기업까지 호남 사람은 채용과 승진과 직책에서 철저한 차별을 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남을 의도적으로 차별해 호남 지역이 크질 못했고, 이에 대항해 호남인들이 힘을 하나로 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보수정권을 이기기 위해 야당에 힘을 모아주자는 취지로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차별론’을 펼쳤다. 지금의 ‘호남 소외론’의 근본적 기틀이 되는 논리를 이때 그가 만든 것이다.  


가족 리스크
문제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의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는 전무하지만, 이를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던 호남인들은 그의 말에 동요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그동안 차별받았던 자신의 지역을 다시 살려보자는 의견에 많은 지지를 보내줬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진영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에 호응해 호남 출신의 인사들을 민주당 진영에 대거 영입했고, 대권을 거치며 호남 차별론을 호남 소외론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난 30년간 김 전 대통령이 가꿔 놓은 호남 텃밭에서 열매를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정치평론가들로부터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지만, 호남 차별론에서 파생된 이익은 민주 진영의 크나큰 자산이 돼왔다.

그의 논리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면, 민주당의 대통령은 대권을 쥘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스스로 민주당의 텃밭을 버린 이 후보는 이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을 답습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갈라치기 해놨다는 비난은 아직 이어지고 있으나,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확실한 이득은 모두 챙겨왔다.

현재 친문(친 문재인)과 반문(반 문재인) 사이에서 제대로 된 입장을 취하고 있지 못하는 이 후보가 가야할 길은 중도가 아닌 친문과 반문 어느 하나의 길이다.

영남을 버리고 호남을 선택했던 김 전 대통령의 결단처럼 이 후보는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해 확실히 가야만 한다. 그다음 이 후보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비호감 이미지다.

이 후보가 가지고 있는 비호감 이미지는 ‘무서운 권력자’ ‘조폭 연루 시장’ 등등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것들뿐이다. 이 후보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그 목적이 선할지라도 정책을 강하게 수행하는 모습은 일부 유권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경기도지사 시절 시행한 ‘계곡 불법 설치물 철거 사업’이 한 예다.

당시 이 후보는 경기도 불법 설치물 철거 사업이 경기도민의 숙원 사업이라 규정짓고 철거를 강행했다. 많은 경기도민들이 그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당사자였던 해당 업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권리금을 몇 억씩 주고 들어온 업장에서 이제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는데, 너무 급진적인 사업 강행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의견을 모아 “사업 강행을 조금만 유예해달라”는 건의를 이 후보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대답은 “절대 불가”였다. 이미 유예될 대로 유예된 철거 사업을 또다시 유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옳은 일을 위해 내린 강단 있는 결정이었지만, 이때 몇몇 사람은 그의 강직함에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악재로 작용했던 사건은 그의 형 이재선씨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다.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 처음 불거졌던 것은 2014년이다. 그의 형수 박인복씨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극심한 형제 갈등 끝에 형 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고 주장했다.

후에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와 한 전화 통화가 폭로되고, 관련 문건들이 보도되며 의혹은 한층 짙어져갔다.

국민은 처음에 반신반의하다 관련 내용을 접한 후 그럴 수도 있겠다며 강제 입원 의혹이 진짜라는 것에 힘을 실었다. 좋고 나쁜 사건들이 맞물리며 이 후보는 ‘무서운 권력자’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을 떠안게 됐다. 

이미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례는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는 경선 과정 내내 사상에 대한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이인제 후보 측에서 제기한 ‘장인어른의 좌익 활동’ 의혹은 사상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인제 후보는 인천 경선 때 연단에 올라 “급진 좌파가 우리 당을 점령하고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노 후보에 대한 사상을 의심했고, 이로부터 얼마 후 민주당 기자실에서 이인제 캠프의 한 특보가 기자들에게 “노 후보의 장인이 6·25 때 부역 혐의로 복역 중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노 후보의 해결책은 정면돌파였다. 본인에 대한 의혹 제기에 쉬쉬하며 대응하지 않고,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것도 경선 연설 현장에서였다.

그는 연단에 올라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에도 참 힘이 듭니다”라며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많은 유권자를 자신의 편으로 결집시켰다.

이인제 후보 측의 악의적인 사상 검증을 ‘그럼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 하느냐’는 구도로 바꿔 본인의 페이스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후에 경선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의혹 제기를 정면으로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며 영리하게 본인의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김은 호남 소외론…노는 정면돌파
문은 김종인 위원장으로 문제 해결

이 후보 또한 그간 문제를 해결해왔던 방식이 노 전 대통령과 많이 닮아있다. 아들 도박 논란이 있었을 때, 그리고 배우자 김씨의 갑질 의전 논란이 있었을 때마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면돌파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새로운 구도 전환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본인에게 유리한 판을 짠 노 전 대통령의 전략이 지금 이 후보에게는 필요하다.

그가 안고 있는 부담스러운 이미지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라는 오명이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 시절까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온 기관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성남시장 시절에 청년 배당·공공 산후조리지원·무상 교복으로 구성된 성남시 3대 보편복지를 시행해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을 주요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우며 기본소득 도입으로 경제적 풍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 시절의 복지 성과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불러일으켰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배급과 뭐가 다르냐’는 우려를 보냈다.

시 단위의 예산 운용에서 보편 복지는 장점만이 부각됐지만 국가 단위에선 과연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까란 의심이 지속됐고, 결국 국민 의견을 받아들여 기본소득 정책을 철회할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도 지금의 이 후보처럼 대권 도전 당시 ‘실패한 정부의 비서실장’이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 번 실패해본 사람에게 정권을 다시 줘도 되겠냐는 일각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유권자들은 경제 정책을 잘 펼칠지 많은 우려를 보냈다.

참여정부 시절 민생 안정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의 관료가 어떻게 경제를 되살릴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민주당에 영입했다. 김 전 위원장은 평생 경제 공부만 해온 경제 전문가다. 그는 국익이 된 일에 모두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보수도 진보도 아닌 실용 경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중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중도층의 표를 끌어오는 힘을 가진 김 전 위원장은 불리한 조건의 당에 합류해 수차례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바 있다. 2016년 민주당과의 총선 때도 그렇고, 지난해 국민의힘과의 보궐선거 때도 그랬다.

김 전 위원장은 2017년 대선 직전 당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끝내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를 영입함으로써 이미지와 선거 분위기 쇄신에 큰 도움을 받아 대선에서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

시대 변해도…
세 갈래의 길

시대가 급변하고 민심이 요동치는 요즘, 과거의 왕도가 지금 먹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제시한 방법이 4대 민주당 대통령 배출에 힘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 후보가 나름의 왕도를 스스로 찾아 제시할지 민주당 지지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종인에 목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김 후보와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80분가량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김 전 위원장은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람 한 번 만난 것 갖고 뭘 그렇게 관심이 많냐”며 “특별한 얘기 한 것도 아닌데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의 선 긋기와는 달리 정치권은 이날 만남을 민주당 영입을 위한 이 후보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음양으로 김 전 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후보에게 비호감도가 높은 김 전 위원장이지만 계속되는 삼고초려에 앞으로도 그의 태도가 같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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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중독?’ 김건희 조언 그룹 대해부

‘무속 중독?’ 김건희 조언 그룹 대해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여사의 ‘무속 중독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김 여사에게 공적 사안마다 조언해 주는 무속 인물 7~8명이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건진법사, 천공 등이 아닌 명리학자 류모씨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분위기다. 윤석열 캠프 출신 여권 인사들도 김 여사의 무속 중독 논란과 관련해 여러 차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언했으나 컨트롤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이 사주를 보거나 점을 보는 건 욕먹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부인이 공적 사안에 대해 무속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실과 윤석열 캠프 출신 복수의 여권 인사들은 과거 김건희 여사의 무속 중독 논란에 대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다르다. 터질 게 터졌다며 한숨부터 나오고 있다. 위기 상황 의지 지속 서울 강남구 광평로 한 빌딩서 H 학술원을 운영하는 류모 원장은 대구·경북 지역서 활동해 왔다. 대중 강연과 지역 일간지 기고, 언론사와 보수 유튜버 등에도 출연해 정치인들의 사주풀이 등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안철수 대선후보 사퇴’ 등을 예측해 정치권에서는 나름 알려진 인물이다. 류 원장에게 먼저 연락을 취한 건 김 여사다. 류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사주를 예측하면서 본인의 자택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로 초대하게 된 것이다. 류 원장은 김 여사와 5번 이상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은 김 여사가 류 원장에게 자동으로 삭제되는 타이머가 설정된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질문하면 이에 답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류 원장은 지난 2020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빚던 갈등에 대해 김 여사에게 “천운이 좋으니까 살아난다”고 답했고,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직후에 대선에 출마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 여사가 이준석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하길래 ‘하극상을 벌일 사람’이지만 슬슬 달래서 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고 주장했다. 류 원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는 “지난해 12월에는 김 여사가 ‘저 감옥 가나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은둔하면 된다. 당신도 많이 깨달아야 한다. 제발 좀 나서지 마라. 위기인 것은 분명하나 아직 기운이 좋아 (감옥에)가지는 않는다고 충고했다”고 했다. 윤 당선 예측하자 아크로비스타로 류 초대 정치적 위기마다 5번 텔레그램 상담 진행 당시 김 여사에게는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지난해 11월27일 <서울의소리> 보도를 통해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 명품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됐고, 보름 뒤인 12월14일에는 <뉴스타파>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 김 여사가 직접 증권사 직원과 통화해 주문하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류 원장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김 여사는 이후 153일 동안 공식 활동을 자제했다. 류 원장은 “나 말고도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분야별로 7~8명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캠프 출신 한 여권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일반 사람들이 강남이나 종로서 사주나 전생운을 보듯이 김 여사도 가볍게 보는 거라고 여겨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며 “터질 게 터지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일을 김 여사가 개입해 ‘누구한테 들었는데 그건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라고 말하는 과정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대통령실 직원 이력서를 김 여사가 본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력서를 봤다면 조처해야 하는 문제고 무당을 통해 그 이력서의 인물이 어떤지 평가한다는 풍문까지 있다”며 “영부인이 설마 인사에 개입했겠느냐며 넘겼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합리적 의심이 가시질 않는다”고 말했다. 류 원장 이전 무속 논란의 진앙지는 건진법사 전모씨라고 할 수 있다. 전씨는 윤석열 캠프 네트워크본부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인물이다. 전씨의 딸은 지난 2013년부터 코바나컨텐츠 행사를 담당했고 2년 뒤 한 화장품회사의 대표를 역임했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뒀던 이 회사는 한한령과 코로나19 등 상황 악화로 2017년을 전후로 사업을 철수했다. 미국유학생 출신인 전씨의 처남 김모씨는 네트워크본부 활동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본인과 가족이 함께 대선 캠프서 일한다는 것은 캠프 내 실세의 지시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무속의 진앙지 전씨의 무속 활동에는 산 채로 소가죽을 찢는 행사로 물의를 빚은 지난 2018년 수륙대제 및 국태민안 대동굿 등불교 축제가 있다. 이 행사에 대한 항의 게시물을 보면 대한불교종정협의회, 한국불교일광조계종과 함께 연민복지재단과 전씨의 딸이 대표로 있는 화장품 회사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했다. 전씨 외에도 김모 교수와 대통령실에 들어간 지인 자녀·친인척들이 차례차례 논란이 됐다. 황 회장 아들 황모씨(시민사회수석실 5급 행정관)에 이어 같은 지역 전기공사업자 우모씨의 아들(시민사회수석실 9급 행정요원, 현재 퇴사) 문제가 불거졌다. 여기에 윤 대통령 외가 쪽 6촌의 대통령실 근무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윤 대통령 외가 6촌으로 삼성 출신인 최모씨는 선대위 회계팀장을 지냈고 대통령 부속실 선임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씨의 제자로 지난 대선 당시 코바나컨텐츠에 상주하다 ‘김건희 목덜미 영상’으로 알려진 역술인 심모 박사는 이명수 <서울의 소리> 기자가 폭로한 ‘김건희 녹취록’서 등장한다. 그는 이 기자와의 연락서 자신이 황씨라고 주장했다. 전씨는 대선 전 불거진 네트워크본부 논란으로 인해 축출됐다. 전씨는 서울 용산구의 한 모처서 지난 2022년 6월까지 윤석열 캠프 출신 인사들과 자주 소통해 왔으나 이후 강남서 늦은 저녁에만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윤석열 캠프 출신 인사 중 이른바 ‘MB 라인’으로 분류되는 정치권 관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낙원동 쪽에 MB 청와대 인사들이 사무실을 차렸다. 인수위 네트워크 본부 출신 40여명이 들어가 있을 때부터 알려진 얘기”라며 “김 여사와 연락이 끊기면서 ‘MB 라인’ 인사들과만 소통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류 원장 외에도… 김 여사와 전씨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의 읍소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YS계로 알려진 N씨가 전씨와 같이 활동하면서 이권과 인사청탁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소위 ‘지라시’로 돈 데 이어 정치권에서는 전씨와 N씨의 불화설까지 들렸다. 윤석열 캠프 출신 한 인사는 “서울 한 건설사에서 마련한 땅 임대료를 두고 둘이 싸웠다. 특히 지방선거 시즌 강남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인사가 두 사람을 믿고 경쟁하다가 제3자가 공천을 받았다는 뒷말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전씨의 영향력이 가라앉자 ‘MB계’ 국민의힘 중진들이 N씨에게 줄을 섰다는 얘기는 2년 전에 언급됐다. 특히 그가 특정 지역 인맥을 활용해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른바 ‘왕따’가 된 전씨는 지난해까지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이용해 세무조사나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전씨로부터 청탁을 받았단 고위 공직자의 이름까지 떠돌았다. 전씨가 고위 공무원을 상대로 한 중견기업 세무조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구체적인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윤석열 캠프 출신 여권 인사들은 전씨 외에도 김 여사에게 조언하는 무속인이 더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굿당의 당주이자 70대 할머니인 A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 여사는 A씨로부터 자신과 어머니이자 윤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구속 위기에 있을 때 여러 차례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A씨는 약 10년 전부터 김 여사와 알고 지냈다. 소위 ‘무정 스님’으로 알려진 심모씨와도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 인물이다. 심씨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결혼을 주선한 장본인이며 윤 대통령에게 ‘검사’ 직업까지 지정해준 멘토였다. 원주 굿당 당주 ‘영빨’로 김 측근 관리? 측근 주장 대부분 이권 개입·청탁 의혹 연루 심씨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의 개인 일정표가 공개되면서다. 지난 2011년 8월 등이 포함된 일정표에 심씨는 ‘무정 스님’이란 호칭으로 여러 차례 등장했다. 윤석열 캠프 출신 인사는 “2년 전 캠프서 전씨 말고도 김 여사와의 친분을 이용해 이권을 차지하려던 인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 A씨가 김 여사에게 ‘걔는 영빨이 부족해서 안 된다’며 여러 차례 물갈이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인사도 “어머니인 최씨가 2021년 7월에 구속되기 전 김 여사가 명태균씨를 비롯한 A씨로부터 조언을 여러 번 구했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등 상당히 많이 의지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명씨가 최근까지 김 여사와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위 ‘영빨’로 김 여사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명씨의 지인은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녹취서 “지금 당선인(윤 대통령)이 아예, 진짜, 완전히 광화문 그쪽으로 (이전)할 모양인가 보네”라고 물었고 명씨는 “경호고 나발이고 내가 (김건희 여사에게)거기 가면 뒈진다 했는데, 본인 같으면 뒈진다 하면 가나”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청와대 이전을 위한 대통령 집무실 후보로 광화문 정부청사를 거론한 바 있는데, 명씨 본인이 김 여사에게 대통령 집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조언했다는 주장이다. 명씨는 지인과의 대화서 김 여사에게 ‘무속적인 조언’을 했다고 밝히기도 한다. 명씨는 “내가(김 여사에게) 뭐라 했는지 알아요”라며 “본인이 영부인 사주가 들어앉았고, 그 밑에 대통령 사주가 안 들어왔는데”라고 했다. 명씨는 “내가 3월9일이라서 당선된다고 그랬다. 꽃 피기 전에는 윤석열이가 당선이(되고), 피면 이재명이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감으로 승부수? 명씨는 또 “내가 이랬잖아. 그 청와대 뒷산에, 백악산(북악산)은 좌로 대가리가 꺾여있고, 북한산은 오른쪽으로 꺾여있다니까”라며 청와대 기운이 좋지 않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해당 대화서 명씨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광화문 사무실 15층서 청와대를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