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여성운동 청사진 꺼낸 바른인권여성연합 전혜성·연취현

“신지예 소식, 충격 받았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 사회에서 갈등이 가장 많이 분출되는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선거 때다. 당선을 위한 경쟁은 갈등조차 선거전략으로 만든다.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젠더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일요시사>가 바른인권여성연합 전혜성 사무총장·연취현 변호사를 만나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는 젠더 갈등에 대해 물었다. 

최근 한 달 대선판을 뜨겁게 달군 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인재 영입이다. 지난달 20일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윤 후보 직속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서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페미니스트를 영입했다는 사실은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젠더 갈등

지난 6일 경기도 수원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바른인권여성연합 전혜성 사무총장과 연취현 변호사는 당시 국민의힘의 신 전 부위원장 영입을 두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민물에 바닷물고기’ ‘물과 기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보수 정당과 페미니스트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적응 기간도 없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연 변호사는 “(신 전 부위원장의 영입을 보고)젠더 갈등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스트를 영입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여성 표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려면 신 전 부위원장 영입 전이나 혹은 영입 후에라도 젠더 갈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합의점,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의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른인권여성연합은 지난달 22일 신 전 부위원장의 영입 철회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국민의힘은 2030 남성이 왜 문재인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해 반발해왔는지 모른다는 말인가”라며 “급진적 페미니즘 선두에 있는 신지예 대표 영입은 국민의 걱정을 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신 전 부위원장 영입 논란과 함께 윤 후보의 지지율이 요동쳤다. 2030 남성 사이에서는 신 전 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지지 철회, 후보 교체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이 논란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 후보의 갈등, 선거대책위원회 개편 등 거센 후폭풍을 낳았다.

연 변호사는 “이준석 대표가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야기된 문제를 본질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사인을 보냈다. 2030 남성은 그에 대한 기대로 국민의힘을 지지한 셈이다. 하지만 신 전 부위원장 영입을 보고 ‘아, 그 기대는 허상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 부분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9년 인헌고 사건 계기로
급진적 페미니즘 반대 단체

결국 신 전 부위원장은 지난 3일 영입 2주 만에 전격 사퇴했다. 그는 “윤 후보 지지도 하락이 모두 저 때문이라고 한다. 신지예 한 사람이 들어와 윤 후보를 향한 2030의 지지가 폭락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전혜성 사무총장은 신 전 부위원장의 사퇴를 두고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 사무총장은 “국민의힘에서 신 전 부위원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을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보수적인 가치 안에 어떻게 녹여낼 건지, 2030 남성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젠더 갈등의 핵심이고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의 자리만 충분히 마련됐어도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 11월 설립된 바른인권여성연합은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지양하는 단체다. 2019년 10월 인헌고에서 일어난 동아리 사건이 설립 계기가 됐다. 인헌고 사건은 서울 인헌고에서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수호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교사들이 페미니즘, 반일운동 등의 사상을 주입하며 편향된 교육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전 사무총장은 당시 사건을 보면서 “학생들이 왜 이 문제를 가지고 밤샘 농성을 하면서까지 강력하게 저항하는 걸까 궁금증을 가졌다”며 “학부모와 함께 자료 조사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보니 생각한 것보다 페미니즘을 강요하는 방식의 교육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젠더 갈등이 이미 초·중·고등학교에까지 뿌리내려있던 것”이라고 했다.

실제 젠더 갈등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해당 성별의 문제로 싸잡아 비난하고 이 과정에서 생긴 불신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상대를 오롯이 마주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성별을 기준으로 사회가 갈라지는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는 것이다. 

전 사무총장과 연 변호사는 1990년대부터 이어진 여성운동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가부장제에 억눌려 온 여성의 인권이 30여년 동안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여성정책으로 상당 수준 높아진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너무나 잘해온 덕분에’ 급속도로 발전한 페미니즘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30년간 이어진 여성우대정책
방향 수정·속도 조절 필요해

연 변호사는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쪽 다리가 약한 사람이 있으면 목발을 주지 않나. 그러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의사는 완전한 회복이 이뤄지지 않아도 목발을 놓고 걷기를 권한다”며 “그래야 다리에 균형이 맞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목발을 놓고 걸어야 할 시기다. 두 발로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성우대정책을 목발에 비유했다. 

전 사무총장은 “보조 장치(목발)가 전면적인 보조 장치여야 되는가 아니면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조 장치여야 되는가 이런 것들을 얘기해야 되는 시기다. 하지만 그런 고민 없이 30년을 유지해왔던 잠정적 여성 우대 정책을 계속 끌고 간다면 2030 남성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젠더 갈등은 저출산 현상과도 연결돼있는 이른바 사회문제다. 젊은 남성과 여성이 대립·갈등하는 관계로 지내다보니 연애·결혼·육아를 거부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결국 본질은 젠더 갈등이다. 가정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해 가족주의, 가족중심주의의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급진적인 페미니즘이 낳은 최대의 그림자는 여성의 가치 하락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들이 가진 장점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와 가정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며 “예전에는 교육의 기회·재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부족했다. 현재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면서 기회의 불균형은 많이 해소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페미니즘적 사고, 즉 여성을 약자·피해자로 여기면서 뭔가를 달라고 떼쓰는 형태로 가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부족한 것을 혜택으로 채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문제로


아울러 “우리나라 여성이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벗어나 이 사회와 더 나아가 인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페미니즘 밖에서 생각하길 수 있길 바란다”며 “여성의 시각에서 보이는 문제를 말하면 많은 상식 있는 사람이 함께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길을 만들어 이끈다기보다 길을 함께 걷다보면 길이 생기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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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