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단독인터뷰> '코로나 최전선' 시신 모시는 이상재 장례지도사협회 회장

하루 20명 방진복 입고 보내드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그는 매일 오후 5시 화장장으로 향한다. 방진복을 입고 기다리다 보면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다가온다. 운구차와 달리 유가족은 다가갈 수 없다. 묵념 후 관을 들고 화장장 안으로 들어간다. 화구까지 거리는 50m 남짓. 왕복 100m를 오갈 때마다 시신 한 구가 불길 속으로 사라진다. 그가 지난해부터 2년째 하고 있는 일이다.

지난해 2월20일 국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다. 전국의 화장시설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코로나19 사망자만을 위한 화장 시간대가 긴급 편성됐다. 이전 서울시립승화원(이하 승화원)의 경우 오후 4시45분이 마지막 시간대였다. 현재 승화원은 오후 5시 이후에 가장 북적인다. 

일반 화장
끝난 이후

한낮 최고 기온이 30.5도까지 오른 8월6일 경기도 고양시. 오후 4시30분쯤 되자 장례지도사들이 승화원 주차장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던 이들은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방진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그들은 손 소독제로 부지런히 손을 닦고 하얀 옷을 뒤집어썼다. 

머리에 맞춰 고글 끈을 정리하고 나니 그 사이에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 다음부터는 하염없는 대기 상태. 코로나19 사망자를 실은 운구차는 이미 승화원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지만 유가족이 늦어진다고 했다. 1시간가량 흘렀을까. 승화원 관계자가 서류를 들고 바삐 오가는 사이 유가족이 도착했다.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승화원 앞에 서자 유가족 사이에서 흐느낌이 새나왔다. 유가족은 시신이 담긴 관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 그 사이 장례지도사들은 관을 내리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인의 신원 확인 조치가 끝나고 추모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어 장례지도사들이 관을 들었다.

그들은 화장장으로 향했고 방역 담당자는 운구차 안을 소독했다. 

이후 화장장에서 나온 장례지도사들은 방진복을 벗어 종량제 쓰레기봉투 안에 밀어 넣었다. 비치된 손 소독제로 다시 손을 닦았다. 휴대폰, 담배, 안경 등 소지품을 챙긴 이들은 승화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눈 이후 이들은 모두 흩어졌다.

1~2명 처리하다 10배 늘어
장례지도사 10명 매일 출근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지도사들의 하루가 끝난 순간이다. 이날 코로나19 사망자는 3명이었다. 

138일 뒤인 지난 21일 다시 승화원을 찾았다. 불과 4개월 만에 상황은 심각하게 변했다. 오후 4시50분경 이미 20여대의 운구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승화원에서 하루 화장할 수 있는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은 20구. 20기의 화구를 꽉 채울 만큼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실제 이날 52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장례지도사들을 비롯한 그곳에 있는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각자의 역할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듯 마치 ‘시신 처리’라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100여명이 모였음에도 승화원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운구차 기사는 승화원 앞에 정확히 차를 댔고 장례지도사들은 카트째 관을 내렸다. 방역 담당자가 관을 소독하면 장례지도사들은 그대로 카트를 밀어 화장장 안으로 향했다. 직접 들고 운구하기엔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방역 담당자가 소독을 마치면 운구차는 그대로 승화원을 빠져나갔다. 

유가족은 화장장 안 화구로 향하는 길목인 복도에 모여 있었다. 신원 확인을 마친 후 유가족에게 추모의 시간이 주어졌다. 장례지도사들은 이 시간을 잠시 기다렸다가 이내 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장례지도사들은 운구차를 세운 승화원 앞마당부터 화구까지 50m 거리를 20여번 왕복했다. 이 과정에 약 1시간이 걸렸다.

1일 20구
포화 상태

일을 마친 장례지도사들은 방진복을 벗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겨울 날씨에도 이들의 몸에선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옷을 챙겨 입은 장례지도사들은 말 그대로 홀연히 사라졌다. 4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장례지도사들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건 처리해야 할 시신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뿐이었다. 

지난 21일 이상재 사단법인 장례지도사협회(이하 장례지도사협회) 회장을 만났다. 장례지도사협회는 코로나19 첫 사망자 발생 이후부터 현재까지 승화원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과 처리를 의뢰 받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장례지도사협회에서 의뢰 받아 처리한 코로나19 사망자는 전체(5015명, 21일 기준)의 20% 정도다.

이날 장례지도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피곤한 얼굴로 <일요시사> 취재진을 맞이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 및 처리 일을 한 이후부터 다시 피우기 시작한 담배 때문에 여러 차례 잔기침을 토했다. 20년 동안 금연했던 이 회장도 밀려드는 코로나19 사망자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했다.

사망자 수가 폭증한 이후부턴 담배도 더 늘었다.

“정말 비극적인 현장이죠”
20년 끊은 담배 다시 물다

장례지도사협회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당시 사망한 38명의 시신을 처리한 경험이 있다. 당시 경험을 계기로 이번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처리에도 투입된 것. 10명가량의 장례지도사가 승화원에서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50대로 장례지도사 경력 20~30년 차의 베테랑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밀봉해 입관 절차가 이뤄진다. 이후 승화원으로 운구되면 장례지도사들이 화장 절차를 밟는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할 경우, 즉 자택 사망자의 경우는 일이 조금 복잡하다. 장례지도사들이 직접 사망 장소로 가서 시신을 수습해 처리해야 한다.

이 회장은 지난 20일 자택 사망자가 11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장례지도사들은 늘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돼있다. 특히 자택 사망자의 경우 사망 장소의 방역 수준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한 편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유가족 또한 확진자인 사례가 많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아직까진 코로나19에 감염된 장례지도사가 없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셈이다.

“이 일은 장례업을 하는 전문인으로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없다면 현장에서는 안 하겠다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을 매일 접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큽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가족이 다 있잖아요. 그리고 현재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일의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정말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염 위험
두려움 커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의 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도 장례지도사들이다. 100세 노모의 시신을 담은 관을 보면서 80세 아들이 ‘엄마, 엄마’ 하면서 우는 모습, 산모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사산된 아기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낀 참담함, 슬픔에 못 이겨 장례지도사에게 날카롭고 예민하게 쏟아내는 유가족의 반응 등 장례지도사들은 너울대는 감정의 한복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화장이 모두 끝난 오후 5시부터 코로나19 사망자의 화장이 시작되다 보니 20구의 시신을 모두 처리하는 데 2~3시간 정도 걸린다. 유가족은 화장예약 순서에 따라 1~20번의 순번을 받게 된다. 마지막 순번의 유가족은 고인의 유골을 받기까지 6~7시간 동안 화장장 인근에서 기다려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 유가족의 추모 시간이 너무 짧다는 보도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명의 시신을 처리하는데 앞에서 적체가 일어나면 절차가 계속 뒤로 밀리게 됩니다. 또 고인 1명에 유가족이 3명만 와도 총 60여명이 해당 장소에 있는 셈입니다. 방역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는 뜻이죠.”


이 회장은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면서 화장장 역시 포화 상태에 달했다고 우려했다. 하루 화장 가능한 시신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일정이 밀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간대를 늘려 더 많은 시신을 처리하자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지나치게 길어지는 대기 시간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실행은 여의치 않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2년 동안 유지해온 ‘선화장 후장례’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코로나19 사망자의 경우 24시간 이내에 화장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가족이 이에 동의해야만 1000만원의 장례 지원비 등을 지급하는 구조라 정부가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들어 고인을 충분히 추모하지 못하는 유가족의 슬픔, 시신 감염 우려는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은 지난 17일 “사망자의 존엄을 유지하고 유족의 애도를 보장하면서 방역 측면에서도 안전한 방향으로 장례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 불만 장례지침 변경?
“안정 시스템 바꾸면 혼란”

코로나19 첫 사망자 발생부터 현재까지 현장에서 상황을 진두지휘한 이 회장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선화장 후장례’ 시스템이 간신히 안정화된 상태에서 ‘선장례 후화장’ 등의 방식으로 현 상황을 변화시킬 경우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일괄 화장 방식이 추가 감염을 막는 나름의 ‘방패’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이나 지침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2년 이상 처리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경험으로 정책 수립이나 지침 마련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의 소통 공간이 부족한 점 등 현장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달라는 일종의 호소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이 회장의 대답은 ‘결국 사망자 수를 줄여야 한다’로 귀결됐다. 위드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위중증 환자 수가 폭발하면서 사망자 수 역시 끝 모르고 증가 중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처리한 시신 가운데 3분의 1이 최근 3개월(10~12월)에 집중돼있을 정도다.

12월 들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0명의 사망자를 처리했다.

“위중증 환자가 1000명을 넘었고 그 수치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령층에서 사망자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지금 방역 수준으로는 현재 나오고 있는 사망자 숫자를 줄이기 어렵습니다. 방역에 있어서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승화원에서 일을 마치고 장례지도사들끼리 소주 한 잔씩 하면서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먹고사는 일이라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더 이상 사망자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처음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처리했을 땐 이런 상황이 2년이나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분이 이곳으로 오시게 될까요. 정말 비극적인 현장입니다.”

많은 죽음
특단 조치

지난 23일(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09명으로 처음 100명을 넘어섰다. 위중증 환자 수 역시 1083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는 5015명(22일 기준)에 이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