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단독인터뷰> '코로나 최전선' 시신 모시는 이상재 장례지도사협회 회장

하루 20명 방진복 입고 보내드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그는 매일 오후 5시 화장장으로 향한다. 방진복을 입고 기다리다 보면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다가온다. 운구차와 달리 유가족은 다가갈 수 없다. 묵념 후 관을 들고 화장장 안으로 들어간다. 화구까지 거리는 50m 남짓. 왕복 100m를 오갈 때마다 시신 한 구가 불길 속으로 사라진다. 그가 지난해부터 2년째 하고 있는 일이다.

지난해 2월20일 국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다. 전국의 화장시설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코로나19 사망자만을 위한 화장 시간대가 긴급 편성됐다. 이전 서울시립승화원(이하 승화원)의 경우 오후 4시45분이 마지막 시간대였다. 현재 승화원은 오후 5시 이후에 가장 북적인다. 

일반 화장
끝난 이후

한낮 최고 기온이 30.5도까지 오른 8월6일 경기도 고양시. 오후 4시30분쯤 되자 장례지도사들이 승화원 주차장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던 이들은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방진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그들은 손 소독제로 부지런히 손을 닦고 하얀 옷을 뒤집어썼다. 

머리에 맞춰 고글 끈을 정리하고 나니 그 사이에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 다음부터는 하염없는 대기 상태. 코로나19 사망자를 실은 운구차는 이미 승화원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지만 유가족이 늦어진다고 했다. 1시간가량 흘렀을까. 승화원 관계자가 서류를 들고 바삐 오가는 사이 유가족이 도착했다.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승화원 앞에 서자 유가족 사이에서 흐느낌이 새나왔다. 유가족은 시신이 담긴 관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 그 사이 장례지도사들은 관을 내리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인의 신원 확인 조치가 끝나고 추모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어 장례지도사들이 관을 들었다.

그들은 화장장으로 향했고 방역 담당자는 운구차 안을 소독했다. 

이후 화장장에서 나온 장례지도사들은 방진복을 벗어 종량제 쓰레기봉투 안에 밀어 넣었다. 비치된 손 소독제로 다시 손을 닦았다. 휴대폰, 담배, 안경 등 소지품을 챙긴 이들은 승화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눈 이후 이들은 모두 흩어졌다.

1~2명 처리하다 10배 늘어
장례지도사 10명 매일 출근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지도사들의 하루가 끝난 순간이다. 이날 코로나19 사망자는 3명이었다. 

138일 뒤인 지난 21일 다시 승화원을 찾았다. 불과 4개월 만에 상황은 심각하게 변했다. 오후 4시50분경 이미 20여대의 운구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승화원에서 하루 화장할 수 있는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은 20구. 20기의 화구를 꽉 채울 만큼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실제 이날 52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장례지도사들을 비롯한 그곳에 있는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각자의 역할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듯 마치 ‘시신 처리’라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100여명이 모였음에도 승화원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운구차 기사는 승화원 앞에 정확히 차를 댔고 장례지도사들은 카트째 관을 내렸다. 방역 담당자가 관을 소독하면 장례지도사들은 그대로 카트를 밀어 화장장 안으로 향했다. 직접 들고 운구하기엔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방역 담당자가 소독을 마치면 운구차는 그대로 승화원을 빠져나갔다. 

유가족은 화장장 안 화구로 향하는 길목인 복도에 모여 있었다. 신원 확인을 마친 후 유가족에게 추모의 시간이 주어졌다. 장례지도사들은 이 시간을 잠시 기다렸다가 이내 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장례지도사들은 운구차를 세운 승화원 앞마당부터 화구까지 50m 거리를 20여번 왕복했다. 이 과정에 약 1시간이 걸렸다.

1일 20구
포화 상태

일을 마친 장례지도사들은 방진복을 벗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겨울 날씨에도 이들의 몸에선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옷을 챙겨 입은 장례지도사들은 말 그대로 홀연히 사라졌다. 4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장례지도사들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건 처리해야 할 시신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뿐이었다. 

지난 21일 이상재 사단법인 장례지도사협회(이하 장례지도사협회) 회장을 만났다. 장례지도사협회는 코로나19 첫 사망자 발생 이후부터 현재까지 승화원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과 처리를 의뢰 받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장례지도사협회에서 의뢰 받아 처리한 코로나19 사망자는 전체(5015명, 21일 기준)의 20% 정도다.

이날 장례지도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피곤한 얼굴로 <일요시사> 취재진을 맞이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 및 처리 일을 한 이후부터 다시 피우기 시작한 담배 때문에 여러 차례 잔기침을 토했다. 20년 동안 금연했던 이 회장도 밀려드는 코로나19 사망자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했다.

사망자 수가 폭증한 이후부턴 담배도 더 늘었다.

“정말 비극적인 현장이죠”
20년 끊은 담배 다시 물다

장례지도사협회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당시 사망한 38명의 시신을 처리한 경험이 있다. 당시 경험을 계기로 이번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처리에도 투입된 것. 10명가량의 장례지도사가 승화원에서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50대로 장례지도사 경력 20~30년 차의 베테랑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밀봉해 입관 절차가 이뤄진다. 이후 승화원으로 운구되면 장례지도사들이 화장 절차를 밟는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할 경우, 즉 자택 사망자의 경우는 일이 조금 복잡하다. 장례지도사들이 직접 사망 장소로 가서 시신을 수습해 처리해야 한다.

이 회장은 지난 20일 자택 사망자가 11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장례지도사들은 늘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돼있다. 특히 자택 사망자의 경우 사망 장소의 방역 수준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한 편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유가족 또한 확진자인 사례가 많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아직까진 코로나19에 감염된 장례지도사가 없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셈이다.

“이 일은 장례업을 하는 전문인으로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없다면 현장에서는 안 하겠다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을 매일 접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큽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가족이 다 있잖아요. 그리고 현재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일의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정말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염 위험
두려움 커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의 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도 장례지도사들이다. 100세 노모의 시신을 담은 관을 보면서 80세 아들이 ‘엄마, 엄마’ 하면서 우는 모습, 산모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사산된 아기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낀 참담함, 슬픔에 못 이겨 장례지도사에게 날카롭고 예민하게 쏟아내는 유가족의 반응 등 장례지도사들은 너울대는 감정의 한복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화장이 모두 끝난 오후 5시부터 코로나19 사망자의 화장이 시작되다 보니 20구의 시신을 모두 처리하는 데 2~3시간 정도 걸린다. 유가족은 화장예약 순서에 따라 1~20번의 순번을 받게 된다. 마지막 순번의 유가족은 고인의 유골을 받기까지 6~7시간 동안 화장장 인근에서 기다려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 유가족의 추모 시간이 너무 짧다는 보도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명의 시신을 처리하는데 앞에서 적체가 일어나면 절차가 계속 뒤로 밀리게 됩니다. 또 고인 1명에 유가족이 3명만 와도 총 60여명이 해당 장소에 있는 셈입니다. 방역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는 뜻이죠.”


이 회장은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면서 화장장 역시 포화 상태에 달했다고 우려했다. 하루 화장 가능한 시신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일정이 밀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간대를 늘려 더 많은 시신을 처리하자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지나치게 길어지는 대기 시간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실행은 여의치 않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2년 동안 유지해온 ‘선화장 후장례’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코로나19 사망자의 경우 24시간 이내에 화장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가족이 이에 동의해야만 1000만원의 장례 지원비 등을 지급하는 구조라 정부가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들어 고인을 충분히 추모하지 못하는 유가족의 슬픔, 시신 감염 우려는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은 지난 17일 “사망자의 존엄을 유지하고 유족의 애도를 보장하면서 방역 측면에서도 안전한 방향으로 장례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 불만 장례지침 변경?
“안정 시스템 바꾸면 혼란”

코로나19 첫 사망자 발생부터 현재까지 현장에서 상황을 진두지휘한 이 회장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선화장 후장례’ 시스템이 간신히 안정화된 상태에서 ‘선장례 후화장’ 등의 방식으로 현 상황을 변화시킬 경우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일괄 화장 방식이 추가 감염을 막는 나름의 ‘방패’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이나 지침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2년 이상 처리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경험으로 정책 수립이나 지침 마련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의 소통 공간이 부족한 점 등 현장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달라는 일종의 호소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이 회장의 대답은 ‘결국 사망자 수를 줄여야 한다’로 귀결됐다. 위드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위중증 환자 수가 폭발하면서 사망자 수 역시 끝 모르고 증가 중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처리한 시신 가운데 3분의 1이 최근 3개월(10~12월)에 집중돼있을 정도다.

12월 들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0명의 사망자를 처리했다.

“위중증 환자가 1000명을 넘었고 그 수치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령층에서 사망자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지금 방역 수준으로는 현재 나오고 있는 사망자 숫자를 줄이기 어렵습니다. 방역에 있어서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승화원에서 일을 마치고 장례지도사들끼리 소주 한 잔씩 하면서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먹고사는 일이라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더 이상 사망자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처음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처리했을 땐 이런 상황이 2년이나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분이 이곳으로 오시게 될까요. 정말 비극적인 현장입니다.”

많은 죽음
특단 조치

지난 23일(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09명으로 처음 100명을 넘어섰다. 위중증 환자 수 역시 1083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는 5015명(22일 기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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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