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최근 ‘서울대병원 성추행 인턴’이 화제였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마취된 환자에게 성추행을 저지른 인턴이 서울대병원에 재취업한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산 것입니다.
해당 인턴은 서울아산병원에서 해임되기 직전에 자진 퇴사했고, 만약 서울대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수료했다면 전문의 면허를 취득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결국 직위 해제 후 징역 3년을 구형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의사면허는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국내 의료인은 타 전문직 종사자들보다 매우 관대한 법적, 윤리적 기준을 적용받는다’는 비판에서 나온 말입니다.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시 ‘면허, 임용 결격사유’에 해당하지만 의료인의 면허 취소 사유는 ‘의료 관련 법령 위반’에 한정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현행법상 의사면허는 살인이나 성폭행과 같은 중범죄에서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의 이정민 변호사는 “원래 2000년 이전에는 의료법 규정이 타 전문직과 동일하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것으로 규정돼있었는데, 2000년에 개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모든 법률이 개정될 때는 개정 이유가 있는데 자료를 조사해봐도 특별한 개정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2000년에 의약분업이 되면서 의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는데, 그에 대한 당근책으로 의료법을 개정했다는 비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의사면허가 취소되어도 해당 의료인은 손쉽게 복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의사면허 재교부율은 90% 이상에 달하며, 면허를 재교부받은 의료인이 또다시 위법행위를 저질러도 아무런 가중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변호사는 “(재교부)심사를 하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위원회가 있는데, 그 위원회의 구성이 의사들 중심으로 돼있다. 따라서 국민적 관심사가 매우 높은 범죄가 아닌 이상 대부분 깜깜이로 처리되고 있고, 위원회 구성 자체가 의사들과 친한 멤버로 구성되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재교부 심사에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범죄 의료인에 대한 국민적 공포가 만연합니다.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근무 지역이나 이름만 바꿔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괴담처럼 떠돌고 있으며,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범죄 의료인의 이름과 근황을 공유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현행법령에 의하면 의료사고를 일으켜도 업무상 과실치사나 치상은 의사면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집행유예형을 받을 경우 그대로 의료활동을 할 수 있고, 심지어 징역형을 받더라도 대진의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환자가 사전에 의사의 범죄 이력을 알아보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범죄 이력은 현행법상 중요한 개인정보로 취급되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열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중범죄자 의료인’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변호사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의료 행위와 무관하더라도 형사처벌 전력이 있으면 의사면허를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일본도 의료사고를 내면 의사면허에 영향이 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독일은 기소가 되기만 하면 확정판결 전이라도 판결 시점까지는 의사면허가 정지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의사면허 취소 사유의 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안의 주요 골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사협회는 이를 ‘면허 강탈 법안’이라고 주장했고, 총파업과 ‘코로나19 백신 접종 협조 거부’까지 고려하며 강경한 반대 의사를 표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아직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의료인에게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판단하고 치료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어있으며, 국가적인 측면에서 보면 의료인에게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데 그에 따라서 직업적 책임감과 윤리의식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높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적어도 다른 전문직들,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그 정도의 수준은 유지해야 된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총괄: 배승환
기획: 강운지
촬영/구성/편집: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