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전북 완주의 한 노래방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싸움을 말린 10대였다는 게 드러나면서 안타까움은 곱절이 됐다. 게다가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롱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옛말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엉뚱한 사람이 싸움에 휘말려 더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말한다. 선의의 시민이 누군가 폭행당하는 것을 말리려다 가해자로부터 먼저 폭행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34㎝ 흉기
전북 완주의 한 노래방에서 20대 남성이 10대를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남성 A씨는 일면식도 없던 B군를 흉기로 찔렀다. A씨에게 원한의 대상은 C씨였다. 도대체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지난 9월25일 A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여자친구의 전 남자친구 C씨의 이야기가 나오자 둘은 언성이 점점 높아졌고 말다툼을 벌였다. 격분한 A씨는 C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격분한 A씨는 전화를 끊고 34㎝에 이르는 흉기를 챙겼다. 흉기가 있는 손가방을 챙긴 A씨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C씨를 만나러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98%였던 A씨는 자신의 집에서 11㎞ 떨어진 노래주점까지 휘청거리며 곡예 운전을 했다.
사건 당일 오전 4시44분 노래방을 찾은 A씨는 곧장 C씨가 있던 방으로 들어갔고, 그의 머리채를 잡은 뒤 목에 흉기를 들이대면서 협박했다. 이를 말리던 B군이 A씨의 흉기에 찔렸다. A씨는 B군 옆구리와 엉덩이를 흉기로 찔러 소파에 쓰러뜨린 것도 모자라, 주먹과 발로 신음하고 있던 B군 얼굴을 때리고 걷어차기까지 했다.
결국 119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에 다급하게 옮겨진 B군은 오전 5시48분 ‘외상성 복부 손상’으로 결국 숨졌다.
일면식 없던 고교생
싸움 말린다고 참변
사법당국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A씨에 대해 살해 혐의, 특수 협박,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 등 3개의 죄명을 적용해 재판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7일 B군 부모라고 밝힌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완주 고등학생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청원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내 아들이 차디 찬 주검이 됐다”며 “가해자는 아들을 흉기로 찌르고도 ‘지혈하면 산다’면서 노래방을 빠져나갔다고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가해자는 유가족에게 이렇다 할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며 “법이 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0일 전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 심리로 살인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속행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은 이 사건 모두를 인정하고 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 측이 검찰을 통해서 의견 제출을 원하던데 의견 제시할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강동원 부장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피해자 유족에게 진술 기회를 줬다. B군 아버지는 법정 방청석에서 일어나 어렵게 입을 뗐다.
머리채 휘어잡고 협박
살해 혐의 등 3개 적용
B군 아버지는 “나는 지난 9월25일 완주군 이서면 소재 노래방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고교생의 부모”라며 “그날 이후 나와 아이 엄마의 시간은 멈췄다”고 운을 뗐다. 그는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가슴이 미어지고 분통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살해한 피고인은 집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노래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범행했다”며 “아들을 죽일 의도로 몸 여러 곳을 흉기로 잔인하게 찔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피고인은 항거불능 상태인 아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면서 ‘지혈하면 살 수 있다’고 조롱했다고 한다”며 “사건이 불거진 이후 피고인은 유족에게 용서도 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흉기에 찔려 죽어가던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부모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며 “피고인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대 형량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법정에 함께 앉아 있던 어머니는 한동안 흐느끼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심신미약?
최근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기준 또한 높아져 정신감정 등을 통한 전문가의 진단이 있어야 감경이 이뤄지는 추세다.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흉기로 주민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안인득 사건이 대표적이다. 1심은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하지 않아 사형을 선고했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안씨가 조현병 장애를 갖고 있었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