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투어 상반기 결산

각종 진기록 쏟아진 숨가빴던 여정

올 시즌 KLPGA 투어가 지난달 1일 ‘제주삼다수 마스터스’를 끝으로 반환점을 돌았다. 각종 이슈와 진기록으로 골프 팬들의 가슴을 벅차게 했던 KLPGA 투어 상반기 여정을 총정리한다.

박민지는 올 시즌 상반기에 6승을 달성하며 독보적인 행보를 펼쳐 ‘대세’라는 호칭을 얻었다. 2021시즌 두 번째 대회인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 2021’에서 시즌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박민지는 5월에 개최된 ‘2021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이어 ‘2021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까지 연달아 우승했다.

풍성했던
신기록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열린 7개 대회 중 3개 대회에서 우승을 기록한 박민지는 우승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6월의 첫 번째 대회인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시즌 4승을 이룬 박민지는 일주일 뒤 열린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당시 9개 대회에 참가한 박민지의 성적은 5승으로 우승 확률이 무려 50%를 넘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입회 후 4개 시즌을 보내는 동안 통산 4승을 쌓은 과거의 자신을 넘어 시즌 ‘5승’을 이룬 박민지는 이제 KLPGA 역대 기록을 넘보게 됐다.

박민지는 한 주 휴식기를 가진 후 참가한 7월의 첫 번째 대회인 ‘맥콜 모나파크 오픈 with SBS Golf’에서 컷 탈락하며 짧은 숨고르기를 가졌다. 체력을 보충하고 돌아온 박민지는 KLPGA 투어 신생 대회인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시즌 6승, 통산 10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세’ 박민지 천하통일 레이스
장하나 상금 50억 고지 첫 등반

2016년 10월 입회한 박민지의 과거 상금 변화를 살펴보면 현재 그녀의 우승 행보는 예측 가능했다. 2017년 루키 시즌을 맞이한 박민지는 그해 우승을 신고하며 일찌감치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듬해 박민지는 우승 1회를 포함한 톱10 11회를 기록했다. 톱10 6회를 기록했던 전년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상승세였다.

2019 시즌에는 우승 1회와 준우승 2회을 더해 톱10 13회에 드는 등 더 발전한 선수가 됐음을 증명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대회 수가 줄었음에도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컷 통과하면서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포함해 톱10 9회 성적을 남겼다.

박민지는 14개 대회가 예정된 하반기에 한 시즌 최다 우승횟수를 기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KLPGA 한 시즌 최다 우승 횟수는 2007년 신지애가 기록한 9승이다. 또한 2016년 박성현이 세운 한 시즌 최다 획득 상금 기록인 13억3300만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장하나는 올해 부지런하게 KL PGA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시즌 시작 전부터 ‘역대 라운드별 선두' 역대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 편성 기록 경신’과  ‘생애 통산 상금 최초 50억원 돌파’  기록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47회로 신지애와 ‘역대 라운드별 선두’ 타이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장하나는 상반기 중 6회를 추가로 쌓으며, 53회로 해당 기록의 선두가 됐다. 또한 상반기에 장하나는 챔피언조에 3회 편성되면서, 현재 35회로 역대 가장 많이 챔피언조에 들어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기존 기록 보유자는 33회를 기록한 고우순이었다.

장하나는 ‘생애 통산 상금 획득’ 기록도 바꿨다. 2010년 6월 KLPGA에 입회한 장하나는 이번 시즌을 포함해 KLPGA투어에서 11개 시즌을 보내면서 KLP GA 최초로 전체 투어 상금 50억원을 돌파했다.


장하나는 2개 시즌에는 LPGA 투어를 주 무대로 삼았기에 KLPGA 대회 참가 수는 비교적 적다. 그럼에도 KLPGA 선수 중 가장 많은 상금을 벌고 있어 기록(상반기 종료 기준 52억4017만원)이 더욱 빛이 난다. ‘롯데 오픈’ 우승 등 상반기 멋진 활약을 선보이고 휴식기를 일찍 맞이한 장하나는 재충전한 모습으로 하반기에 골프 팬 앞에 설 예정이다.

홍란 1000라운드 출전 기록 달성
신데렐라로 거듭 난 신예들 주목

지난해 KLPGA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제42회 KLPGA 챔피언십’에서 무관의 설움을 지운 박현경은 올해 ‘크리스 F&C 제43회 KLPGA 챔피언십’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KLPGA 역사를 새롭게 장식했다.

1978년 시작돼 43년이라는 긴 역사를 담고 있는 ‘KLPGA 챔피언십’은 그동안 최고의 선수들을 우승자로 배출했다. 1980~1982년 3연속 우승자인 고 구옥희 선수가 마지막 ‘KLPGA 챔피언십’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선수라는 점을 보면 그동안 타이틀 방어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애 첫 우승컵을 품은 대회에서 또 한 번 극적인 우승을 이루며 통산 3승과 함께 타이틀 방어라는 명예도 수확한 박현경은 이후 상반기에 준우승 세 차례를 더하며, 계속해서 매 대회 우승 후보로 언급됐다.

KLPGA 통산 4승을 기록한 홍란 역시 여자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홍란은 이번 시즌 전부터 ‘KLPGA 투어 최초 1000라운드 출전 기록’ 경신에 관해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4년 KLPGA에 입회한 홍란은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2라운드에 출전하면서 1000라운드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장식했다.

특별한 추억이 담긴 상반기를 마친 홍란은 KLPGA 투어 총 345개 대회에 출전하면서 ‘생애 참가 대회 수’ 1위를 달리고 있으며 1013라운드를 소화했다. 2004년부터 17년째 꾸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홍란은 ‘최다 연속 시드 획득’‘최다 예선 통과’ 기록도 계속해서 경신하고 있다.

새로 쓴
골프 역사

1000라운드 출전 기념 축하 행사에서 1000만원을 기부하면서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된 홍란은 하반기에도 성실하게 기록을 쌓을 예정이다. 그녀의 출전 소식은 곧 새로운 역사의 탄생과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소미는 올 시즌 개막전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의 우승자로 우뚝 섰다. 지난해 ‘휴엔케어 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이룬 이후 약 6개월 만에 통산 2승을 달성한 이소미는 그 누구보다 새로운 시즌을 기쁘게 맞이했다. 바람이 강했던 두 대회에서 우승하며 ‘바람의 딸’ 호칭을 얻은 이소미는 상반기에 우승 외에 ‘톱10’에 4회 이름을 올렸다.

지한솔은 ‘제9회 E1 채리티 오픈’에서 3년6개월 만에 우승하는 기쁨을 누렸다. ‘ADT캡스 챔피언십 2017’에서 생애 첫 우승을 이룬 이후 지한솔은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입스를 극복하고 2021시즌을 맞이한 지한솔은 ‘제7회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 준우승을 시작으로 ‘2021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3위, ‘제9회 E1 채리티 오픈’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공통 목표
중견의 반란


김해림도 새로운 트로피 추가를 위해 3년2개월이라는 세월을 묵묵히 기다렸다.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 3연패 기록을 달성한 이후 우승 흐름이 끊겼던 김해림은 연장전 끝에 ‘맥콜· 모나파크 오픈 with SBS Golf’에서 고대하던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KLPGA 통산 7승을 신고했다. 김해림은 우승한 대회 첫날 노캐디 플레이를 선언하며 전동카트를 직접 몰아 화제의 모았다.

오지현은 상반기 마지막 챔피언 자리에 등극했다. 2018년을 끝으로 약 3년간 우승을 신고하지 못했던 오지현은 가장 최근 우승 무대였던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결점 없는 ‘와이어 투 와이어’ 플레이를 선보이며 KLPGA 투어 통산 7승 고지에 올랐으며, 상금 순위도 31위에서 6위로 수직 상승했다.

우승이라는 공통 목표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선수들에게 ‘생애 첫 우승’이라는 기억은 단연 특별할 것이다. 2021시즌 상반기에는 생애 첫 우승컵을 품에 안은 세 명의 ‘신데렐라’가 있었다. 계속된 도전 끝에 결국 잊지 못할 순간을 맞이한 이들을 소개한다.

이번 시즌 위너스클럽에 처음 이름을 새긴 주인공은 투어 11년 차 베테랑 곽보미다. 2010년 입회한 곽보미는 정규 투어 86번째 대회인 ‘제7회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첫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올 시즌 개막전을 포함한 세 개 대회에서 연속 컷 탈락을 하며 어려움을 겪던 곽보미는 뜻밖에 우승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곽보미는 앞으로 2년간 시드권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울먹이며 기뻐했다.

올해 두 번째로 생애 첫 우승을 따낸 영광은 임진희에게 돌아갔다.‘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21’에 참가한 임진희는 3라운드까지도 자신이 우승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6타를 줄이며 역전 우승을 이룬 임진희는 ‘57전 58기’ 도전 끝에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우승을 통해 ‘무명 선수’라는 꼬리표를 떨친 것도 큰 수확이다.


전예성은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 2021’에서 깜짝 우승하며 ‘신데렐라’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전예성은 정규 투어 상금 순위 60위인 곽보미와 단 60만원의 상금 격차로 정규 투어 시드를 잃었다. 2021 정규 투어 시드 순위전을 통해 다시 정규 투어에 입성한 전예성은 우승이라는 짜릿한 반전까지 만들며 인생 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유해란 이후로 두 번째 2001년생 우승 선수가 된 전예성은 처음 경험하는 시상식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진 셉터와 왕관 그리고 망토를 착용하며 더욱 신데렐라와 같은 여왕 자태를 뽐내 눈길을 끌었다.

KLPGA 2021시즌 상반기에는 각양각색의 기록이 나오면서 골프 팬에게 경기 외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다. 상반기 최다 버디를 기록한 선수는 ‘메이저퀸’ 박현경이다. 박현경은 이번 시즌 열린 모든 대회에 출전하면서 총 178개의 버디를 기록해 상반기 ‘버디퀸’ 타이틀을 얻었다. ‘역대 한 시즌 최다 버디’는 2016년 김민선5가 기록한 총 359개.

4개의 이글을 만들면서 상반기 최다 이글을 기록한 선수는 조아연과 성유진이다. 조아연은 지난 시즌 이글 1개를 낚았고, 성유진은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바 있다. 2013년 장하나가 9개의 이글을 기록하며 ‘한 시즌 최다 이글’을 기록한 가운데, 조아연과 성유진이 올해 그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외적인
즐거움

2021시즌 상반기 홀인원은 총 11개가 나왔다.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한 김초연과 김새로미는 상반기에만 2회를 기록했다. 하반기 14개 대회에서 17개 이상의 홀인원이 탄생하면 2017년(28개) 세워진 ‘KLPGA 한 시즌 최다 홀인원’을 경신하게 된다.

올 시즌 ‘장타퀸’ 타이틀은 이승연이 보유하고 있다. 이승연은 255.3347야드를 날려 장타자의 진가를 보였다. KLPGA 역대 장타퀸은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이다. 2013년 김세영은 20개 대회에 참가하며, 평균 비거리 266.94 야드를 날린 바 있다.

2021시즌이 종료된 시점에는 과연 몇 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추가로 나오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주목의 대상이다. 상반기에 열린 15개 대회 중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총 세 차례 나왔다. 약 20% 확률로 탄생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자는 지한솔, 김해림, 오지현이 이뤘다. ‘최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탄생한 시즌은 8번 나왔던 200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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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