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위드 코로나' 시대

지겨운 전염병 평생 달고 사나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코로나19(이하 코로나)의 ‘생존력’은 현재도 끈질기다. 이런 상황에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공존하자’는 말이 나온다. 현재로선 코로나 종식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탓이다. 

서울에서 술집을 운영 중인 A씨의 가게 매출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1/3 수준이다. 지난달에는 간신히 월세를 냈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앞으로가 걱정이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크게 늘어난 탓에 정부가 영업제한 시간을 저녁 9시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A씨는 “단순 운영시간 제한이 아니라 새로운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모두가
스트레스

또 다른 자영업자 B씨도 코로나 여파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코로나 이전 저녁 장사 때엔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현재는 영업제한 때문에 손님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처럼 코로나는 발생 초기부터 많은 생활에 피해를 양산했다.

2년이 다 돼 가지만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월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뒤 그 수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졌다.

코로나는 국내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등 대책을 강구해 돌파구 마련에 나섰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7월7일에는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의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현재 확진자 수 1000명과 2000명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결국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카드를 꺼내들었다. 4단계 적용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5일 확진자 수는 2155명으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확진자가 크게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꼽힌다. 국내 신규 확진자 10명 중 9명에게서 델타 변이가 확인된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지난해 인도에서 발생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중 하나로 전파력이 뛰어나고 극심한 증상을 유발한다고 전해진다. 바이러스 배출량도 기존 바이러스에 비해 최대 300배 이상 많이 발산한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졌다. 피로감이 커지면서 이제는 새로운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일각에선 영국과 싱가포르처럼 코로나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가 제시됐다. 위드 코로나란 코로나를 ‘독감’처럼 관리하는 방역 체계를 뜻한다. 

치명률을 낮추는 방역체계를 도입해 코로나와 공존하는 방식이다. 위드 코로나는 거리두기 등의 통제를 줄이고 중증환자를 집중관리 하는 게 골자다. 

거리두기 효과 더 이상 없어
새로운 대책 마련 필요 시점


일부 국가는 일찍이 위드 코로나를 도입했다. 위드 코로나를 도입한 국가는 영국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다만 영국은 현재도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누적 확진자 수는 650만명(8월25일 기준)이고 일일 확진자 수도 2만~3만명 정도로 상당히 많은 편이다.

많은 수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지난달 19일 ‘자유의 날(프리덤 데이)’을 선언했다. 봉쇄 조치 대부분이 해제되면서 밀집시설에도 인원이 100% 수용이 허용됐다. 

영국은 위드 코로나를 도입하기 위해 반년 동안 점진적 이행 기간을 두며 위드 코로나에 공을 들였다. 그 과정은 ▲학교 개방 ▲실외 모임 일부 허용 ▲실내 모임 일부 허용 ▲제한 해제로 총 4단계를 거쳤다. 

영국도 제한 해제 시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라는 변수 발생과 지속적으로 확진자가 늘어서다. 한때 제한 해제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확진자 수보다는 코로나의 치명률과 백신 예방 효과에 주목했다. 사실상 코로나 종식이 불가능해진 점을 인식했다고 해석된다. 사실상 코로나와 공존하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위드 코로나 도입이 한 달이 지난 현재 영국 경제는 코로나 초기 때보다 점차 나아지는 모양새다. 소비가 활발해졌고, 시민들도 다양한 활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IMF(국제통화기금)도 영국의 성장률을 7%대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3%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양상이다. 영국이 위드 코로나가 가능했던 이유는 백신 접종 시작과 동시에 종식이 불가하다는 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영국에 이어 싱가포르도 코로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뉴 노멀 정책’을 선언했다. 뉴 노멀 정책이란 코로나 이후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정상적 생활로 돌아가는 ‘뉴 노멀’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확진자 수를 집계하지 않고 있다.

하늘에 
달렸다?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영국보다는 다소 소극적인 위드 코로나 시행 모습을 보인다. 거리두기 시행도 연장했다. 다만 싱가포르는 현 정책 이행을 고수할 예정이다. 

여러 나라에서 위드 코로나를 도입하는 움직임이 보이자 우리 정부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위드 코로나 준비와 검토가 공개적으로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위드 코로나를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해당 방식을 도입하면 경제 회복과 거리두기에 따른 비용 절감 등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정치권에서도 위드 코로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코로나에 대한 방역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내년 예산이 위드 코로나 전환에 맞게 충분한 확장 편성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찬성하는 기조를 드러낸 이유는 현재 대책만으로는 사회·경제적 피해를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 도입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위드 코로나 도입 검토가 더 빨리 이뤄졌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치명률이 독감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중증환자와 입원 환자 중심으로 (치료하는 방향으로)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리 중증환자 대응 위주로 돌입했어야 한다”며 “거리두기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방역을 새로운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기존 방식이 단순히 확진자 수를 집계해 이와 연계한 방역을 할 수밖에 없는 만큼 위드 코로나 도입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거리두기 효과도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의대 연구팀의 조사 결과 지난해에는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면 이동량이 줄었지만 올해는 그에 따른 변화가 없었다.

공존 가능성
관건은 백신


또 이동량 변화가 생겨도 확진자 수 증가와 크게 관련이 있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코로나에 대한 위기감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한 셈이다. 여러 문제를 동시에 고려하고 일상생활로 복귀의 필요성이 대두된 대목이다. 

반면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엄중식 가천대 감염내과 교수는 “위·중증환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약육강식 동물의 왕국’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인 거리두기마저 포기하면서 생기는 리스크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짧은 기간 안에 방역체계를 바꾼다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이다. 

정부의 위드 코로나 채택으로 인해 방역이 완화된다는 메시지가 곡해돼 자칫 국민에게 ‘종식’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위드 코로나를 채택한 나라도 최근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었다. 위드 코로나 도입은 현재 상황을 반영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위드 코로나 도입 여부를 떠나 전문가들이 중요다고 여기는 점은 백신 접종률이다. 방역당국도 ‘1차 접종 완료율 70%’를 기점으로 위드 코로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도 바짝 긴장한 상태다. 추석을 앞두고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해서다. 1, 2차 접종을 합쳐 1500만명이 추석 전까지 백신을 맞도록 한다는 게 목표다.

18세부터 49세의 경우 접종일자를 다음 달 초·중순으로 앞당길 수 있도록 조정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고령층도 접종을 신청하면 즉각 백신을 맞도록 권고 중이다. 

그러나 전 국민의 70% 이상이 백신 1차 접종을 완료한다고 해도 집단면역 형성이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백신 접종이 델타 바이러스를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된 까닭이다. 

정부 국민 70% 완료되면 예정
전문가는 시기상조 의견 다수

델타 바이러스의 감염 재생산 지수는 1인당 5~9 사이로 추정된다. 이런 탓에 전문가들은 접종률 1차 접종률 70%로는 집단면역 형성이 불가하다고 전망했다.

미국 등의 국가는 이미 국민 다수가 2차 접종까지 완료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언제든지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 심지어 ‘부스터샷’ (3차 접종)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대비되는 상황으로 정부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속도가 더딘 편이다. 백신 계약 잔량이 많은데도 국내 도입 속도도 느리다. 현재 전체 국민 중 2차 접종 완료 비율은 30%(8월25일 기준)도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모더나 백신 공급 차질도 빚어진 바 있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백신 수급이 꼬일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 치료제 개발 역시 갈 길이 멀다. 중증화 진행률과 치명률을 낮춰주는 치료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재까지 국내 기업이 개발한 코로나 치료제는 조건부 허가를 획득한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가 유일하다.

결국 위드 코로나 도입은 대다수가 백신 접종을 완료함과 동시에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이 선행된 이후에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백신과 치료제가 충분히 보급된 다음에 위드 코로나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위드 코로나를 도입하면 경제 위기는 단기간에 극복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코로나 초기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섣부르게 위드 코로나를 공론화하면 다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 모델 
구축 필요

영국과 싱가포르의 서로 다른 ‘위드 코로나’ 모델이나 비슷한 각 나라의 상황에 맞는 모델을 추구하는 게 현재 추세다. 일각에서는 위드 코로나 도입을 위해서는 국내에 맞는 현실적인 모델을 구축한 뒤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 동의도 필요하다. 한 의료 전문가는 “대책 마련이 완료된 뒤 위드 코로나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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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