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머지? '감쪽같은' 머지 사태 수수께끼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8.23 16:46:03
  • 호수 13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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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도 손해 보는 이상한 돈놀이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머지포인트 환불 사태가 터졌다. 일각에서는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시선도 있다. 머지포인트의 경우 수익모델이 전무했다는 평가다.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머지포인트를 운영한 머지플러스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폰지사기란 고수익을 약속하며 돈을 끌어모은 뒤 처음 몇 달 동안은 약속한 대로 수익금을 주다가 잠적해버리는 사기 수법이다.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원금과 이자를 갚는 구조여서 더 많은 새로운 투자자가 생기지 않으면 망하게 된다. 또 투자자가 갑자기 대규모로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내줄 돈이 없어 불안정한 수익구조인 게 들통난다.

수익 약속
폰지 사건

이와 유사한 방식의 금융사건이 터졌다. 머지사태란 머지포인트 운영사인 머지플러스가 서비스를 축소하자 소비자들이 대거 환불을 요구한 사건이다. 환불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자 폰지사기란 의혹도 나오고 있다. 

머지플러스는 지난 11일 공지를 통해 “서비스가 선불 전자지급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관련 당국 가이드를 수용해 적법한 서비스 형태인 음식점업 분류만 일원화해 당분간 축소 운영된다”며 “음식점업을 제외한 편의점, 마트 등 타 업종 브랜드를 함께 제공한 콘사(머지플러스와 제휴 브랜드·가맹점 사이를 중개하는 업체)는 법률 검토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서비스가 중단된다”고 밝혔다.

포인트를 지불할 수 있는 업체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불안하게 느낀 소비자들이 대거 환불을 요구했고 다음날인 12일부터 환불 절차가 진행됐다. 일부 고객은 결제액의 최대 90%에 이르는 금액을 환불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입금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소비자들도 나타났다. 


네이버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 규모와 환불 방법 등을 공유하는 내용이 수십건 올라왔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게시판에 글을 올려 “환불받았다는 사실을 제3자에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 뒤 일부 금액을 환불해줬다고 하는데, 서약서 내용을 보니 진짜 환불해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차후 법정에서 유리한 증거로 사용하기 위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머지포인트 피해자 단톡방에는 피해 인증 글도 올라오고 있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돈을 충전했다가 2300만원이 묶인 경우도 있었다. 머지플러스는 순차적으로 환불을 진행하고 있지만 처리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같은 시각에 접수해도 입금 여부가 엇갈리는가 하면 오프라인 환불과 온라인 환불 여부가 뒤섞이며 소비자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머지플러스는 초창기부터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사업 초기 업체별 적립 포인트와 쿠폰 등을 하나로 통합해주면서 젊은 소비층에 간편함으로 인기를 끌었다. 상품권 개념의 포인트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 말이다. 당시 1만원 포인트를 8500원으로 판매한다며 홍보했고 가맹점도 드롭탑, 설빙, 이디야 등 3개 업체에서만 결제가 가능했다. 

사업 초 다단계 형식으로 SNS 홍보
50만명 회원·1000억원 포인트 발행

머지플러스는 사업 초기 SNS 공유 이벤트를 활용해 머지포인트를 홍보했다. 일종의 다단계 방식의 홍보가 꽤 효과적이었다. 댓글로 상품 구매 인증을 하고 SNS에 공유할 시 1000포인트, 3장 이상 구매하고 SNS로 인증할 시 1만원 포인트를 증정하는 방식이었다.

2019년 1월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티몬을 중심으로 이커머스 업체들을 통한 ‘핫딜’이 자주 노출됐다. 포인트 판매금액은 1만원에서 5만원(3만9900원)으로 올라갔고 제휴업체도 기존 3곳에서 셀렉토커피 한 곳이 추가됐다. 

본격적으로 제휴 매장이 늘어난 시점은 2019년 8월경이다. 당시 편의점 GS25를 비롯해 유가네닭갈비, 탐앤탐스, 카페베네, 매드포갈릭 등 인지도가 있는 프랜차이츠로까지 제휴 매장이 늘어났다. 2019년 하반기부터 10만원 딜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주 판매처인 이커머스 업체에서는 딜이 올라오면 매진될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제휴 가맹점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2020년 3월 기준 제휴 매장은 2만개를 넘어섰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도 가맹점에 포함되면서 신뢰를 쌓았고 ‘딜’이 뜨면 포인트를 쌓아두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그 무렵이다. 이용자가 늘면서 머지플러스는 할인율을 13%로 줄였다.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선 “10% 할인으로 바뀔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때문에 딜이 뜨면 몇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포인트를 쌓아두는 소비자들도 생겼다. 

할인 폭은 다시 18%로 커졌고 2020년 10월부턴 20만원권 판매가 시작됐다. 한 달 뒤 50만원짜리 딜이 나왔다. 최근까지 머지플러스는 소액 딜보단 20만원, 30만원대의 높은 금액 위주의 딜을 판매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말기술
속았다

머지플러스라는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 것도 최근이다. 월 1만5000원을 내면 머지포인트를 20% 할인된 가격으로 자동 구매해서 대신 결제해주는 시스템이다. 1년에 약 18만원인 해당 서비스를 2~3년 장기 계약한 사람도 있었다. 연간 회원권 판매에는 하나멤버스, 페이코, 토스 등과 같은 금융사들과 제휴돼 소비자를 끌어들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머지포인트 사용자 통계 결과, 월간 결제 이용객이 50만명이 넘었으며 1000억원대 규모의 포인트를 발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폰지사기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제휴 가맹점 수를 보면서 신뢰할만한 플랫폼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업계에서 제휴사 할인을 하는 곳은 많았지만 머지포인트처럼 높은 활인율을 제공하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머지의 수익구조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일반적인 10만원 상품권이 유통된다고 가정하면 상품권업체가 가맹점으로 약 5% 할인된 가격(9만5000원)에 판다. 이후 소비자는 가맹점으로부터 9만8000원에 상품권을 구입한다. 소비자가 상품권으로 소비하면, 상품권 업체는 2~3개월간 현금을 보유한 뒤 여기에 약 2% 수수료를 제외하고 가맹점에게 상품권과 맞바꾼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머지포인트는 어떨까. 20%의 높은 할인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회사가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수익구조다. 10만원 이상의 고액 전자상품권 판매로 인지세도 발생한다. 여기에 결제 수수료도 생긴다.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결제대행업체를 통해 대금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머지포인트는 결제대행업체에도 대금 지급 수수료를 납부하고 있는 셈이다.  

머지포인트는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회사가 손해 보는 구조다. 가맹점을 유치하는 상품권 사업자를 중간에 낀 유통 구조로, 할인분 상당액을 머지플러스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는 ‘계획된 적자’라고 밝힌 바 있다. 아마존, 쿠팡 등의 성장방식을 벤치마킹 해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생태계를 키운 다음 돈을 벌 계획이었다. 

포인트 장난
서비스 축소

업계 관계자는 “해피머니 등 대부분 상품권업체는 인지세 문제로 10만원 이상 고액 상품권 발행은 하지 않는다”며 “머지포인트 자체로는 돈을 벌 길이 없고 투자자 발굴을 통해 새 수익처 확보를 노린 것으로 보이지만 구멍이 너무 많아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머지포인트 역시 회원 수와 거래 규모만 가지고는 뚜렷한 이익창출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인 쿠팡, 아마존과 같은 행보를 꿈꿨다는 분석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금 30억원 뿐인 회사가 1000억원대 규모의 거래액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사업자 발행액은 지난 6월 기준 월 400억원, 현재 시중에 유통된 머지포인트 발행액은 최소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누적순손실 예상액 200억원에 직원 70여명의 인건비 등 사업 운영비만 연간 수십억원이 발생하고 있지만 수익을 창출한 비즈니스모델(BM)이나 신규 투자 유치는 드러난 게 없다.

업계에서는 회사 운영 자금이 대부분 고객 예치금에서 나온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간편결제 전문가들은 막대한 포인트 혜택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손실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났지만 이를 해결할 수익모델이나 대안이 없어 자칫 불법 폰지 행위로 법적 문제가 커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자금융사업자가 아닌 상황에서 회사 도산 등 자금 경색이 발생할 경우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또 머지플러스가 그동안 전자금융업자의 라이선스를 획득하지 않고 포인트를 발행하며 영업해온 것이 드러났다. 무려 3년간 전금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채 사업을 이어왔다. 이에 대해 머지플러스는 ‘상품권 발행업’으로 영업활동을 해왔다고 해명했으며 자사가 제공하고 있는 포인트와 서비스를 ‘모바일상품권’이라고 설명했다.


아마존·쿠팡 등 벤치마킹 
신규 투자 알려진 게 없어

상품권법은 1999년 폐지돼 소비자를 위한 법적 안전장치가 없다. 게다가 기업들이 인지세만 낼 경우 무제한으로 발행할 수 있어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현재 머지플러스 사용자와 가맹점주들이 환불울 요구하고 있으나 규정대로 환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머지플러스 사업은 전자 금융업자에 해당된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르면, 전자 금융업자의 업무에는 선불전자 지급수단의 발행 및 관리가 포함된다. 선불전자지급수단은 이전 가능한 금전적 가치가 전자적 방법으로 저장돼 발행된 증표 또는 그 증표에 관한 정보로, 금감위 등록 대상이다. 

또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용역의 범위가 두 개 업종 이상이다. 머지플러스의 경우 ‘머지머니’라는 포인트가 선불전자지급수단에 해당되며, 포인트로 약 2만개 가맹점에서 물건이나 서비스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도 머지플러스는 왜 전자 금융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것일까. 전자 금융업자는 사용자들의 예치금을 보유하는 만큼 금융당국의 엄격한 관리 감독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전자 금융업자는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본금, 재무 건전성, 사업계획 등의 등록 요건을 갖춰야 한다. 부채비율을 자기자본의 200%로 유지해야 하며, 선불전자지급수단 충전 한도는 200만원으로 제한된다. 충전하고 사용하지 않은 미상환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2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상품권업으로 규제를 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 17일 검찰과 경찰에 머지포인트 사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머지플러스가 금융당국의 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거짓 자료를 내더라도 금감원이 이행을 강제할 수 없기에 수사기관에 통보했다”며 “수사기관 통보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어 기다렸으나 이용자의 환불 요구가 쇄도해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머지플러스 대상으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내사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맡았다. 

계획된 적자?
환불 어떻게?

전자상거래 전문가인 권혁중 경제평론가는 “머지플러스는 수많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게 최종 목표였던 것 같은데, 그 전에 판매중단 이슈가 터져버린 것”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진 수익구조로는 환불 등 뒷감당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일부 테크핀(IT기술을 금융에 접목) 업체들은 기술개발은 굉장히 빠른 반면, 금융법 제도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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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