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그렉 노먼의 파란만장 골프 인생

세계 최고의 선수였으면서 메이저대회에서는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호주의 그렉 노먼이 1986년에 있었던 마스터즈를 훗날 세인들은 ‘노먼의 토요 슬램’이라고 불렀다. 노먼은 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골프 선수였으며, 비즈니스 제국이라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쌓은 세계 최고의 사업가였다.

 

하지만 어거스타에서의 쓰라린 상처는 평생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청년 시절 서핑을 하다가 상어를 때려잡은, 금발의 냉철한 킬러 같다고 붙여진 별명 ‘백상어’. 프로 골퍼 이상의 실력가인 어머니에 의해 16세라는 늦은 나이로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불과 1년 만에 스크래치 골퍼가 되는 자질을 보이며 5년 뒤인 1976년 프로에 입문하면서 이듬해엔 유럽 상금랭킹 1위로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불운의 아이콘

비록 미국에서의 첫 우승이 다소 늦은 1984년에 있었지만 과감한 경기 스타일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1986년 마스터즈. 3일 내내 노먼은 선두를 달리면서 4일째를 맞았다.

세비 바예스테로스와 잭 니클라우스, 탐 카이트 등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지만 전반 9번 홀까지 노먼은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후반 첫 10번 홀. 어이없는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노먼에게 불행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부가 갈린 17번 홀. 극적으로 버디를 잡은 잭이 한 타차로 따라붙었다. 18번 홀에서 노먼은 적어도 파만하면 우승이었다. 하지만 세컨 어프로치 샷이 그만 홀을 지나면서 관중석에 떨어지고 만다.

‘수십 년간 해오던 어프로치 샷이 왜 하필’ 노먼은 입술을 깨물며 자책 해야 했다. 결국 보기를 범하면서 잭과 플레이오프에 돌입한 상황.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기싸움에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위대한 백상어’였지만 결국 잭에게 승리를 넘겨줌과 동시에 잭으로 하여금 46세라는 나이에 메이저를 차지함은 물론, 통산 메이저 18승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기게 만들어 준 조연이 돼야 했다.

두 달 뒤 뉴욕 쉬네콕 힐에서 열린 US오픈. 노먼은 역시 3일째 54홀까지 선두를 지키며 마지막 날을 맞았다. 하지만 골프의 여신은 또다시 그를 외면했다.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2인자
떼기 힘든 ‘토요 슬램’ 꼬리표

4일째 경기에서 노먼은 무려 75타를 쳐, 66타를 친 레이몬드 플로이드에게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실망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스코틀랜드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턴베리에서의 디오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기일전한 노먼은 역시 3일째 경기가 끝난 뒤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골프장에 나온 그는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 두 차례의 징크스가 또 재현되는 걸까?’

하지만 영국에서의 징크스는 다행히 없었다. 2위와 5타차를 유지하며 노먼은 비로소 여유 있는 우승을 한 것이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으로 노먼은 비로소 ‘톱’ 선수로 인정을 받게 됐다.

1986년의 마지막 메이저가 열린 미국 오하이오의 인버네스골프장. 디 오픈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된 듯 노먼은 이 대회에서도 3일 내내 70타를 밑도는 65-68-69타의 선두로 4일째를 맞았다.

미국에서의 징크스가 다시 살아난 것일까. 마지막 날의 재앙은 시작되고 있었다. 76타로 무명의 밥 트웨이에게 2타차로 허무하게 우승을 넘겨주면서 1986년 한 해의 메이저에서 54홀을 리드하고 지켜내지 못한 최초의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4라운드 작아진 백상어
남달랐던 사업 수완

사람들은 이를 가르켜 ‘노먼의 토요 슬램’이라고 불렀다. 다만 세계 상금랭킹 1위의 타이틀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메이저와의 악연은 다음 해에도 이어졌다. 1987년 마스터즈 연장전 2번째 홀에서 래리 마이즈가 칩샷으로 버디를 하자 그린에 올려놓고도 우승을 놓쳤는가 하면, 1989년 마스터즈에선 닉 팔도에게 한 타차로 패했다.

마스터즈가 외면한 그의 마지막 불운은 1996년이었다. 역시 3일째 선두로 이번에는 2위와 무려 6타차. 하지만 4일째 경기는 이전의 징크스보다 더 지독했다. 2위 닉 팔도가 67타를 친 반면 노먼은 최악의 78타를 쳤다. 두 사람 간에 무려 11타차가 난 것. 마스터즈의 신이 장난을 치지 않고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모두들 경악했다.

30년 골프 인생에서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노먼은 마스터즈의 신으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노먼의 또 다른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해본다.

 

2010년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쥬피터 섬. 타이거 우즈의 5백억 원짜리 대저택 등 세계적 갑부들만 살 수 있는 섬의 호화 골프장인 메달리스트 코스에서 그렉 노먼이 연습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12번 홀에 다다를 즈음 휴대폰이 울렸다. 리복 인터내셔널의 CEO 폴 파이어맨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노먼이 소유하고 있는 리복과 아디다스-살로몬사 간의 인수합병 작업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보고였다.

나무 그늘에 잠시 앉아 노먼은 20여분을 소비했다. 그의 휴대폰은 쉴 새가 없었다. 이번에는 노먼 어패럴의 인터내셔널 책임자인 바트 콜린스였다. 호주 본사에서 날아온 골프의류 ‘그레이트 샤크’ 책임자와 내일 오전 미팅이 있다는 통보였다.

전화통에 불이 나면서도 어찌어찌 18홀을 끝내고 이제 클럽하우스로 가서 대기 중인 와인생산 책임자를 만나야 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노먼 소유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새로운 5종의 시음을 위해서였다.

그를 통하지 않고 시판되는 와인은 없을 만큼 와인 전문가였던 그는 미국과 호주에 거대한 와인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1970년대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와인에 심취돼 있었던 그는 호주에서만도 한해 20만 상자가 넘는 와인을 팔 정도로 호주 와인을 세계에 펼쳐놓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시음한 5종의 와인이 노먼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자 와인 책임자는 가벼운 목례로 경의를 표했다. 저녁 식사 이후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를 통해 제작될 ‘프로골퍼와 기업운영’의 마지막 수정원고까지 읽어야 했다.

사업에는 남다른 기질이 있었던 노먼은 현존하는 프로골퍼 중 최고의 세계적 갑부로 제국에 버금갈 정도였다. 골프 관련 의류업만 해도 지난해 한화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부동산 투자만 해도 호주를 비롯해 1만 군데가 넘는 골프장 안에 체인 레스토랑과 주택을 짓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화 5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이 필요했던 골프클럽제조사 킹코브라를 비롯해 몇 개의 골프클럽 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은퇴 후 전성기

골프장 디자인 사업과 미국에 여러 곳의 골프장을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음은 물론이어서 사람들은 그의 사업적 기질에 혀를 내둘렀다. 사업은 앞을 내다보고 꼭 투자할 곳에 해야한다는 그는 “아놀드 파머가 내복 사업, 세차장 등등 너무 이름을 남발했으며, 잭 니클라우스는 대중들에게 어필되지 못했고, 무분별하게 부동산에 과잉 투자를 했다”면서 시행착오를 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노력했다.

미국인 스튜어디스와 첫 결혼 후 2년, 테니스 스타 크리스 에버트와 재혼 후 1년, 2010년 인테리어 디자이너 커스텐 커트너와 3번째 결혼을 한 그는 비록 마스터즈에서는 치욕을 맛보았지만 세계적인 재벌 중의 재벌로 보상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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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