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수> 쟁골마을 이웃전쟁 로얄패밀리 반격 소장 공개

냉기 감도는 강남 대모산 자락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서울 강남구 일대에 위치한 부촌 쟁골마을 주민들의 갑질 논란이 한창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전직 장관 댁과 중견기업 회장 댁이 앞장서 갖은 횡포를 부렸다는 것. <일요시사>는 이들에게 돌아간 공사방해금지 청구 소장을 단독 입수했다.

노무현정부의 정보통신부 J 전 장관과 수산그룹 C 회장 가족들이 공사방해금지 청구 소송에 휘말렸다. 건물 신축 공사를 막지 말라는 게 해당 소의 취지다. 최근 한 언론 보도로 인해 공사를 방해한 불특정 다수가 이들인 것으로 드러나자, 변호인 측은 신원미상이었던 소송 당사자를 이들로 정정했다.

한적한 마을
고위직 갑질?

해당 공사는 서울 강남 대모산 자락에 위치한 쟁골마을에서 진행 중이다. 도심과 자연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서울 내 보기 드문 지역으로 시세는 20억원대 후반에 형성돼있다. 총 50여채의 주택으로 이뤄진 작은 마을에 사회 각계각층의 고위직 인사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이렇다. 30년 전 쟁골마을 부지를 매입한 노씨 가족은 노후를 보낼 주택 마련을 위해 2019년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40평짜리 땅에 20평대 주택을 짓고자 했다.

그러자 쟁골마을 주민들은 “우리 마을엔 최소 100여평 대지에 60~90평 건물이 대부분인데 겨우 40평도 안 되는 땅에 건축하겠다니 어이없는 무임승차”라고 주장했다. 최고급 주택지의 재산적 가치의 하락을 우려하는 지역 이기주의적 입장도 함께 내세웠다.


공사방해는 실체 미상의 쟁골마을운영위원회(이하 마을운영위)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공사 현장 진입로를 수십대의 차량을 동원해 막았다. 공사 철근을 밟거나, 공사 차량을 몸으로 막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노씨의 남편이 마을위원장 H씨의 후진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도 발생했다.

인부들은 결국 100kg에 달하는 철근을 산길로 우회해 오르는 방법을 택했지만, 이 산길마저 막혀 버렸다. 노씨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이웃이 될 사이기에 참아야 했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전 장관·그룹 회장 가족 상대
공사방해금지 청구 소송 제기

노씨는 공사를 방해하는 주민들과 각종 소송전을 벌였다. 방해물 제거 및 통행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2019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하지만 공사를 막는 이들의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어 소송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방해 차량 조회에만 몇 달이 걸리는 지경이었다.

지난한 소송에 지친 노씨는 3개월이 지난 12월에 소송을 취하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경찰마저 무력했다. 노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현행범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들의 신원 파악도 하지 않았다.

결국 노씨는 지난해 8월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노씨의 변호인 측은 어쩔 수 없이 피고 당사자를 ‘성명불상자 다수’로 두고 소송을 진행했다. 피고인이 특정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수사당국 협조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주민들의 횡포가 계속되자, 지난해 9월 노씨는 진입로를 막고 있는 주민을 업무방해로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후 수서경찰서는 수사중지 처분을 내렸다. 공사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사진만으로 피의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는 게 수사당국의 주장이었다.

지난 4월 노씨는 공사를 막던 이들이 전직 장관 댁과 중견 기업 회장 댁이라는 사실을  MBC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다. 이들은 현장에 자주 나와 적극적으로 공사를 막았던 인물들이었다. 

특히 J 전 장관의 아내 K씨는 현장에 자주 나와 악질적인 행패를 부렸다. 공사를 진행하는 노씨를 향해 인신공격 등을 일삼고, 인부들을 몸으로 막는 행위에도 서슴없었다. 공사 진입로를 막는 데 이들의 회사차량까지 동원된 사실까지 확인됐다.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무능한 경찰
무기한 연기

노씨는 “장관 아내라는 사실을 듣고 믿지 못할 정도였다”며 그의 언행을 회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몰상식함’이라는 세간의 비판도 들끓었다.

충격적인 대목은 마을위원장 H씨와 K씨가 공사를 진행하는 노씨 가족의 신상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K씨는 공사 현장에서 노씨 가족들을 일일이 지목하며, 남편의 학력과 직업까지 모두 외우고 있었다. K씨의 남편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던 고위직 인사다. 노씨로서는 당연히 공포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MBC 보도 이후 노씨 변호인 측은 공사방해금지 소송의 당사자 표시 정정 신청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성명불상자’로만 남았던 이들의 신분이 특정됐기 때문이다. 전 장관 J씨와 아내 K씨, J씨의 자녀들, 수산그룹 회장 C씨와 그의 아내 A씨가 포함됐다.

제기된 소에 따르면 마을위원회는 노씨 가족과 공사 계약을 맺었던 구씨로부터 유치권을 일임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유치권 행사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건물 점유는 정당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노씨는 구씨에게 공사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을 7200만원을 모두 지급했다.

오히려 주민들의 공사방해 행위로 구씨가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건물이 완공되지 못한 상태다.

노씨는 이들에게 공사를 재개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구씨는 그대로 잠적해버렸다. 따라서 구씨는 물론이고 주민들에게도 공사와 관련된 유치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노씨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이는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신청인은 J 전 장관 아내 K씨와 수산 그룹 회장 아내 A씨다. 노씨가 지으려는 대지 바로 맞은 편에는 이들의 대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12억이나
기부채납?


<일요시사>가 입수한 신청서에 따르면 K씨와 A씨는 이들의 저택은 ‘정남쪽 방향이 대모산 산자락을 향할 수 있도록 대지가 조성돼, 풍수학적으로나 실질적인 채광으로 볼 때에도 쟁골마을 으뜸’이라며 ‘다른 대지보다 수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을 주고 이들이 이 대지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K씨와 A씨는 대모산 자락 아랫부분을 남향으로 바라보도록 집을 설계 및 신축했고, 통유리 베란다에 테라스까지 설치했다. 쟁골마을이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주변에 어떤 건축물도 들어설 수 없다는 기대감으로 집을 설계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노씨의 건물이 완공되면 이들이 대모산 자락을 바라볼 수 없어 ‘참을 수 없는 조망의 피해’와 ‘사생활 침해’로 인해 ‘압박감 및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고도 적었다.

반면 노씨는 보유한 땅에 정당하게 건축 허가된 땅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이다. 노씨 아버지는 30년 전 해당 일대를 매입했다. 2017년 노씨는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구청은 신축이 가능하지만 1986년 건축물이 멸실될 때 이축(건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움)이 이뤄졌다고 보고 허가를 반려했다.

개발제한구역법에 따라 건물을 철거하고 다른 곳에 이축하면 기존 토지에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행정심판에서도 허가가 기각되자 노씨는 행정소송을 냈고 결국 승소했다. 이를 토대로 2018년 건축허가를 재신청했고, 이듬해 강남구청이 건축을 허가했다. 법원의 판결을 구청이 따른 것이다.


신축 막는 불특정다수로 표기
신원 미상서 당사자로 정정

하지만 주민들은 노씨와 구청 사이의 커넥션을 의심했다. 불법 허가라는 이유로 용역 직원까지 동원해 공사를 중단시켰다. 강남구청 관계자들은 “주민들이 근거 없이 구청 공무원을 신고해 애꿎은 피해를 봤다”고 입장을 전했다.

지난해 마을위원회가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건축허가처분취소는 각하 판결이 났다. 노씨가 제기한 공사방해금지가처분은 인용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횡포가 계속되면서, 노씨의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들은 노씨 가족들에게 입주하려면 12억5000만원을 기부채납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주민들이 지구 형성 당시 법에 따라 기부채납을 했고, 도로와 상수도 등의 인프라를 갖췄으므로 신축 건축주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쟁골마을을 위해 과거 기부채납했던 이들은 일대를 다 떠났다. 원주민은 10여채 언저리인 상황. 심지어 J 전 장관 역시 2017년에 새로 들어와 건물을 신축하면서 기부채납은 하지 않았다.

노씨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일반 시민이 12억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노씨는 공사 불발로 하루에 2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 토지를 담보로 공사대금을 대출받아 이자까지 매달 꼬박꼬박 나가고 있다.

민사 승소로 배상을 받는다 해도 피해액의 일부일 뿐이다.

노씨 변호인 측은 “공사를 막는 이들에 대한 형사고소도 진행되고 있다. 건물을 못 짓게 하면서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은 업무방해, 기부채납을 강요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공동강요, 공동공갈 범죄에 저촉될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와 관련해 마을위원장 H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공사방해는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다.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씨로부터 유치권을 위임받았고, 구씨와 연락이 되고 있다. 노씨 개인정보는 뒤를 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J 전 장관의 소 제기와 관련해선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다 밝히겠다”고 전했다. C 회장 회사 측은 “회장님 개인적 사정이어서 답을 드릴 수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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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