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가 청구할 대선 손익계산서

이제부터 정면승부…본선 판 깔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4·7 재보궐선거는 ‘미니 대선’이다. 거대 양당 중심의 범여권과 범야권이 맞붙어서다. 재보선 이후는 대선 정국이다. 본선 이전 예행연습인 셈. 20대 대선은 내년 3월9일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차기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질 전망이다.

▲ ▲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마련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소를 찾아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국무총리 시절 유력한 대권 주자였다. 당시 그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1위를 기록했다. 이 위원장은 문재인정부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낸 뒤, 당으로 돌아왔다.

유력 주자
이후에는?

이 위원장은 당 대표직에 도전했다. 대선 1년 전 물러나야 하는 ‘시한부 대표’였지만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이 위원장은 전당대회에서 경쟁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당 대표가 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공룡 여당’을 탄생시켰다. 동시에 청와대 참모진 출신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 위원장은 당 대표로서 혁혁한 실적과 NY계라는 당내 지지 기반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지지율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정부여당 악재가 결정적이었다. 과거 이 위원장이 국무총리로 재직하던 당시는 정치적 악재가 이 위원장에게 닿지 않았다. 대통령과 당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다. 하지만 당 대표를 맡기 시작하면서 그의 지지율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기세는 한풀 꺾였다. 상한가를 기록했던 이 위원장의 지지율은 10%대로 내려앉았다.

4·7 재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이 위원장의 입지는 흔들릴 전망이다. 이 위원장은 재보선에 모든 것을 걸었다. 민주당 소속 전직 시장들의 성추행 사건에 비롯된 선거였지만, 당헌까지 수정하며 후보를 배출했다. 이후 당 대표직에서 내려오면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선거 전후 발생한 LH 사태와 청와대 참모 및 여당 의원들의 부적절한 부동산 의혹들이 잇달아 제기됐다. 선거 과정에서 이 위원장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4·7 재보선 이후 대선 정국 개막
차기 주자들 몸값 어떻게 바뀌나

재보선에서 서울과 부산 지역 어느 한 곳의 승리는 이 위원장의 입지를 높일 공산이 크다. 반대로 두 지역에서 모두 패한다면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반등의 여지는 남아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 위원장은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 가운데 친문(친 문재인) 구심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지원유세 중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유력한 여권 대선 주자다. 이 지사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적할 만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간 이 지사는 정부여당의 악재를 빗겨갔다. 경기도지사인 만큼 비교적 자유로운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권에서 청년 민심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다”며 “이따금 청년들을 두고 ‘선택적 분노’를 보인다며 나무라시는 분들도 있는데 부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타겟층을 포용하면서도 소속 정당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의 걸림돌 중 하나는 비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사는 재보선에서 후보들을 우회 지원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 지사는 지난달 24일 박영선 후보와 만나 정책 등을 치켜세워줬다.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박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원에 나섰다.

이 지사는 지난달 31일에는 휴가를 내고 부산에 내려갔다. 그는 부인과 함께 민주당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를 만났다. 당시 이 지사는 친문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송철호 울산시장과 함께 나란히 앉아 힘을 실어줬다.

배수진
결단

이 지사가 일주일 간격으로 민주당 재보선 후보들을 찾으면서 여러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지사가 재보선 이후 치러질 대선 정국에서 친문과 여권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있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이 지사는 지역적 기반도 탄탄한 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적은 없지만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바닥 기반’을 다졌다는 해석이다. 지난 2018년 대선에 출마한 경력 간과하기 어렵다. 이 지사의 지지율은 재보선 결과에 크게 좌우되지는 않을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이 도지사까지 번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선 주자는 정세균 국무총리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 총리의 대선 레이스 안착 시점을 재보선 이후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정 총리는 외곽에서 선거 조직을 이미 꾸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대선 출마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일맨’으로 불리는 정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지난 대정부질문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소 이례적인 행보였다.
 

▲ 정세균 국무총리 ⓒ박성원 기자

또 정 총리는 코로나19 피해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 총리가 대선 행보를 앞두고 지지층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정 총리의 복귀는 재보선 이후보다 미뤄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지속되고 있고, LH 사태에 대한 후속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정 총리가 두 사안을 저버리고 대선 출마를 위해 직을 내려놓기에는 막중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부담 없는
대권 행보


일각에서는 정 총리가 문재인정부의 순장조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정 총리는 이미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후임 물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지난 1일 재보선 이후 사의 표명과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이 자리가 거기에 대해 답변하기 적절한 자리는 아닌 것 같다”며 “국무총리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께서 가지고 계신다. 거취 문제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당연히 대통령께 먼저 말씀을 드리고,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 총리는 민주당의 재보선 승패 여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 위원장이 총리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정 총리는 정부·여당의 악재에 지지율이 출렁이지 않았다. 물론 지지율 자체가 낮은 까닭에 큰 영향을 받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내년 대선 최대 변수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복귀를 재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대권 변수가 이제는 상수로 자리 잡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재보선 이후를 그의 복귀 시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윤 전 총장은 총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정치 활동을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대선을 목표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의 사퇴 전후 행보를 보면 그렇다. 윤 전 총장은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의 전신) 공동대표와 접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윤 전 총장은 재보선 과정에서도 중간 중간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드러낸 바 있다. 대부분 정치 이슈가 재보선에 묻히는 분위기 속에서 존재감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엎치락뒤치락 여권 변화 주목
뜨거운 감자 윤석열 움직임은?

윤 전 총장의 높은 지지율도 한 몫 했다. 윤 전 총장은 독자 세력을 구축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차기 대권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재보선 이후에도 ‘윤석열의 시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 재보선 이후 윤 전 총장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정계 참여 공식화만으로도 지지율은 지금보다 더 상승할 것으로 점쳐진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대선 출마도 관심이다. 안 대표는 야권단일화 성사 이후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비록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지 못했지만 챙긴 것은 많다는 해석이다.

안 대표는 그간 대권 여론조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오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패배한 만큼 저력을 보여줬다. 단일화 과정에서 연출한 팽팽한 줄다리기는 그의 존재감을 한층 부각시켰다.

안 대표의 행보는 재보선 이후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재보선 이후 비대위 체제에 마침표를 찍고 전당대회를 치러 새로운 당 지도부를 결성할 계획이다. 안 대표는 오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합당할 의사를 직접 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야권 정계개편과 동시에 안 대표와 국민의힘이 얼마나 매끄럽게 합당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안 대표는 오 후보와 단일화 이후 국회를 찾아 빨간 넥타이를 메고 오 후보와 손을 맞잡았다. 일각에서는 안 대표가 재보선 이후 국민의힘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흡수?
따로?

하지만 잡음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꽃가마’를 태울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데다가,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치르게 될 지분 경쟁 등도 우려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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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