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자산어보’와 ‘목민심서’, 그 두 갈림길 ‘자산어보’

백성을 사랑한 두 영웅의 가치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총망라하는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역사를 비스듬히 보는 관점으로 새 인물을 조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가 이번에 선택한 인물은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다. 이 감독의 포커스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당시 ‘자산어보’를 기록하는 과정으로 향한다. 제목도 <자산어보>다. 정약전의 삶을 실화와 허구를 섞어 재구성해 현대인들에게 어떤 태도로 사는 것이 올바른지 소통하고자 한다. 
 

▲ 영화 자산어보 스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보인다. 자신의 신념만 내세워 타인에게 혐오적 발언을 일삼는 데 전혀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온·오프라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신념을 이루는 방법을 차치하고라도, 어떤 신념이 아무리 옳다 한들,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상처받지 않으며 행복해야 한다는 가치보다 더 우월할 수 없다. 

철학적 가치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는 권력이 재분배돼 인권의 서열이 사라져 누구나 평등하며, 아무리 가난해도 삼시 세끼를 배불리 먹고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랐던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재조명한다.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룬 <사도>, 시인 윤동주와 그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를 그린 <동주>, 열사 박열의 아내이자, 일본 출신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를 조명한 <박열> 등 이준익 감독은 역사의 듀오를 그려내는 데 특별한 기지를 보여왔다. 

신작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의 파트너는 정약전이 지은 저서 <자산어보>에 짧게 소개된 흑산도의 젊은 청년 창대(장덕순)다. 이 감독은 섬세하고 내밀한 성격으로 어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청년이라고만 소개된 창대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역사에 분명히 기록된 두 인물의 삶을 철저한 고증으로 접근했다면, 이번에는 허구가 대거 포함됐다. 

영화는 순조 1년, 신유박해부터 출발한다. 서학(천주교)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100명이 죽고 400명이 유배된 이들 중에는 당시 집권 세력이 눈엣가시로 여긴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포함된다. 

학문과 현실 생활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의견을 공유하며, 배움의 희열을 느낀 두 형제는 유배되면서 생이별을 맞게 된다. 나주 율정점에서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갈라진다. 이 헤어짐이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이 될 줄은 아마도 몰랐을 테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서민들과 생활하면서 당시 정부 관리들의 횡포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전환점을 맞는다. 백성을 위하는 올바른 정치는 무엇이며,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다. 

율정점에서 두 갈래로 엇갈리듯 두 사람의 백성을 위하는 방법도 갈린다. 정약용은 그간 살아온 경험과 내공을 바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와 행정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집대성한 <목민심서>를 기록했고, 정약전은 인간 곧은 마음이나, 권력자의 정치보다 백성이 배불리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흑산도에서 발견되는 모든 어종의 특성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 알게 된 창대와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종에서는 독보적인 전문성을 가진 창대를 발견한 정약전은 창대에게 성리학을 가르쳐주는 대신, 어종을 배우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 혹은 벗이 된 두 사람은 철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이후 창대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고 더 깊게 받아들이게 된다. 출세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던 창대는 육지로 나가 과거를 보고 정부의 관리가 된다. 매관매직이 횡행했던 조선시대 말기 부패한 조선 정부의 실상을 본 창대는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이 감독에게 따르면, 영화 속 창대는 어종의 전문성을 지닌 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내용이 허구다. 부패한 관리인 아버지의 서자와 아내에 대한 설정, 그가 출세욕에 과거를 보러 나가는 과정이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사극 대가‘ 이준익 감독 여덟 번째 시대극 
정약전을 통해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감독이 창대를 만든 이유는 <목민심서>와 <자산어보>가 가진 가치의 차이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성리학과 실학을 근간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태도와 당시 제도를 면밀하게 분석해 문제점을 써낸 <목민심서>와 어종이 언제 어디서 많이 잡히고, 어떤 맛을 내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총망라한 <자산어보>의 의미를 충돌시킨다. 

이 감독은 <자산어보>를 통해 두 저서 모두 한국 역사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인정하나, 작금의 시대에 어떤 정신이 더 의미있는가에 나눠보고자 하는 듯 보인다. 

<목민심서>를 깊게 받아들인 창대의 앞날은 밝지 않게 표현했다. 이는 <목민심서>의 핵심에 가까운 제도적 완벽함도, 결국 시스템을 무시하고 있는 누군가로 인해 그 빛을 보기 힘들다는 걸 말한다. 

곧, 제도를 개선하고 올바른 관리자를 양성하고 그들의 도덕적인 행정을 통해 백성을 더 낫게 살게 하고자는 <목민심서>의 가치도 중요하나, 백성이 타인의 부패와 상관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마음으로 집필한 <자산어보>의 가치가 어쩌면 현 시대에 더 유의미한 것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인생을 통달한 듯 보이는 정약전과 그 주위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흑백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인물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감정이 정확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흑산도 인근 섬에서 촬영하면서 공간의 절경을 카메라에 가득 채운다. 그 절경을 보는 것만으로 속이 뚫리는 느낌이다. 저예산으로 고퀄리티 장면을 뽑아내는 것은 이 감독 최고의 장기가 아닌가 싶다.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와 창대 역의 변요한, 정약전을 지원하는 가거댁 역의 이정은은 감독이 원하는 수준 이상의 세밀한 감정표현을 훌륭히 해낸다. 세 사람의 연기력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 자산어보 스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특히 설경구는 연기에 도가 튼 듯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성리학을 오랫동안 몸에 익힌 삶의 태도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배움에 대한 열망, 인생에 대한 깊은 해학이 그의 대사와 얼굴에 모두 묻어있다. 요즘 말로 ‘꼰대’의 모습까지도 밉지 않게 표현해낸다.

흑백영화인 데다가 저예산으로 알려진 이 영화에는 주요 출연진 외에도 류승룡, 조우진, 최원영, 동방우(과거 명계남), 김의성과 같은 걸출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노개런티 우정 출연이다. 성품 좋은 감독으로 알려진 이 감독의 평소 배우와의 관계가 우정 출연의 힘으로 나타난 듯하다. 연기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쟁쟁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배우는 조우진이다. 흑산도 지역의 관리 역을 맡은 조우진은 영화 초반부 갈등의 문을 여는 것은 물론 영화가 지루할 때마다 등장해 숨통을 틔운다. 이미 숱한 작품에서 각계각층의 인물을 완벽히 연기한 그는, 탐관오리마저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분량도 우정 출연이라고 하기엔 네 번째에 가깝다. 


전반적으로 좋은 영화임에는 분명하나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동주>나 <사도> 때처럼 영화의 절정 부분이 비교적 심심한 편이다. <동주>나 <사도> <박열>은 상상보다 더 강력한 실화의 힘이 영화에서 전달됐던 반면, <자산어보>의 하이라이트는 허구가 바탕이어서인지 앞선 영화에 비교해 힘이 떨어진다. 창대를 선택하면서 어쩔 수없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아닌가 짐작된다. 

존중과 배려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나 <자산어보>는 갑작스럽게 발발한 코로나19로 인해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정신적 가치로 전환되는 시점에 굽이치는 파도와 같은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에 되돌아보게 한다. 그 안에 누구나 배불리 먹고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창작자의 소망이 그득히 담겨 있어, 2시간여 사이에 존중과 배려도 경험한다. 우울감이 그득한 이 때에 위로와 힐링이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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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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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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