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55·56) 땅콩, 메추리알

작지만 영양 만점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pixabay

땅콩

이덕무의 작품이다. 
 
柳彈素 琴 饋李雨村所贈落花生(유탄소 금 궤이우촌소증낙화생)
유탄소, 금이 이우촌에게 받은 낙화생을 보내오다 

樹有嵇含狀外名(수유혜함장외명)
혜함의 책에 이름 없는 이것을 심으니
辭枝結子落花生(사지결자낙화생)
가지 떨어져 열매 맺으니 낙화생이네
從君手裏傳吾口(종군수리전오구)
그대의 손 거쳐 내 입에 전해지니
別樣香津心肺淸(별양향진심폐청)
향기로운 진액으로 심장과 폐 맑아지네

제목에 등장하는 유탄소는 유금으로 이덕무의 지인이고, 이우촌의 이름은 이조원(李調元)으로 청나라 학자다.

또 낙화생은 ‘떨어진 꽃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인데, 땅콩을 지칭한다.


땅콩 즉 낙화생의 이름이 혜함의 책에도 없다고 했다.

혜함은 중국 진나라 지한(嵇含, 263~306)으로 혜함의 책은 남방초목장(南方草木状)을 지칭하는데 그곳에도 이름이 없다는 의미다. 

여하튼 땅콩과 관련된 이덕무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그의 작품 ‘입연기(入燕記, 북경 기행문)’에 실려 있다. 

면주(綿州, 중국 사천성) 사람 이정원(李鼎元)을 만나 낙화생을 선물로 받았다.

낙화생은 서촉(西蜀, 사천성 일대)과 민중(閩中, 복건성과 절강성 동남부) 지방에서 생산된다. 

4월에 꽃이 피었다가 진 뒤에 그 꽃줄기가 흙속에 묻혀 자연 결실이 되는 것인데, 모양은 콩 같으면서도 콩보다 크고, 겉에는 마르고 흰 포락(包絡)의 껍질이 있다. 


그 껍질을 부수면 혹 한두 개의 열매가 있는데, 자황색의 연한 껍질이 입혀 있는 것이 마치 비자(榧子)와 같다.

바탕은 희고 맛은 참깨와 같은데, 이것을 가루로 만들어 모든 국에 조미하면 맛이 제법 좋으니, 과일 중에 특이한 품종이라 하겠다.

내친김에 이덕무 보다 한 세대 후 인물인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를 덧붙여보자.

그의 작품인 ‘서독’(書牘)에 실려 있다. 

「낙화생은 남중(南中) 사람으로 종자를 전해온 자가 있는데, 이것은 촉중(蜀中)의 진기한 과실로서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기이한 과실로서 충분히 수선화와 아름다움을 견줄 만합니다. 감히 식단의 한 가지에 대비하는 바이니, 이것은 반드시 껍질까지 통째로 볶아서 익힌 다음에야 먹을 수 있습니다.」

이덕무와 김정희의 글을 살피면 땅콩의 유래와 전래 과정을 살필 수 있다.

그렇다면 땅콩이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혹자는 중국 당나라 시절 당에서 도입되어 ‘당콩’이라 지칭하던 것이 땅콩으로 변화됐다고 하는데, 그저 웃고 말 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 땅에 땅콩 재배가 본격화하게 되자 낙화생은 땅 속에서 나는 콩이라 하여 지두(地豆)라 지칭되고 후일 즉 1930년도 초반에 우리말로 땅콩이라는 이름이 생겨난다. 

땅콩 재배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1921년에 일이다. 대한제국 순종의 장인이며 순정효황후의 아버지인 윤택영이 북경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뚝섬에서 낙화생 재배 실패로 인한 빚 독촉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중국으로 망명해 베이징에 체류하다 1935년 10월 객사하게 된다.

황후 아버지의 말로치고는 참으로 비참하다.

그런데 필자에게 문득 그런 생각이 일었다.

빚도 빚이지만 혹시 땅콩 재배를 위해 북경으로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낙화생은 ‘떨어진 꽃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
측천무후가 즐겨 마시던 메추리로 만든 ‘암순주’

메추리알


메추리알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메추리와 관련된 뜨거운 논쟁이 있어 소개한다.

발단은 장자(莊子)로부터 시작됐다. 

장자는 ‘소요유(逍遙遊,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며 노님)’에서 “붕새의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올라가 구름을 벗어나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 다음에야 남쪽으로 간다. 그가 남쪽 바다로 갈 적에 메추리가 쳐다보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저 새는 장차 어디를 가려는 걸까. 나는 뛰어올라 봤자 고작 두어 길도 못 오르고 도로 내려와 쑥대밭 사이에서 빙빙 돌 뿐이지만, 이것도 최고로 나는 것인데, 저 새는 장차 어디를 가려는 걸까’”라면서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가 없이 살고, 새 새끼같이 주는 대로 먹으며 새처럼 허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녀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천하에 도가 베풀어지고 있으면 만물과 함께 번성하고, 천하에 도가 베풀어지고 있지 않으면 자기 본래의 덕을 닦으며 고요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메추리를 성인에 비유했다.

이에 대해 <시경>에서는 “무릇 금조(禽鳥, 날짐승의 총칭)의 족속이 날아가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인데 유독 메추리만은 그렇지 않다”고 언급한다.

사냥하는 자가 쫓아가면 달아나서 더욱 멀리만 가기에 메추리는 일정한 거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서>(字書)에 이르기를 “‘밤이면 떼를 지어 날고 낮이면 풀 속에 잠복한다’했으니, 이는 정히 음탕한 계집의 행동과 같다”며 메추리를 문에 기대어 유객행위를 하는 창녀에 비유했다.

메추리에 대한 극과 극의 평가에 대해 어느 설이 옳다고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메추리 고기가 음탕함의 기본인 정력 증진에는 탁월한 듯 보인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애용했던 메추리 고기로 빚은 암순주(鵪鶉酒), 일명 무후주(武后酒)와 관련된 일화다. 

측천무후는 남편인 고종이 죽자 권력을 잡고 신하와 미소년은 물론 길거리의 고약장수까지 침실로 불러들여 여든살이 넘어서까지 왕성한 정력으로 쾌락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즐겨 마시던, 메추리 고기로 빚은 암순주 덕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때 메추리 고기는 물론 메추리알도 정력 증진에 좋다고 해 우후죽순 식으로 메추리 농장이 세워지고 메추리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195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

당시 메추리가 경제 동물로 급부상하자 정부 부처 간에 알력이 발생하게 된다.

메추리 수입과 관련해서다.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일을 두고 상공부와 농림부가 서로 경쟁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 상공부가 판정승을 거뒀다.

그런데 수입을 본격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공부는 메추리 수입은 자신들이 주관하고 메추리알 수입은 농림부가 관장하라고 주장했다.

상공부 관계자가 일본의 수출상으로부터 전해 듣게 된 한마디 ‘한국이 메추리도 비싼 값으로 잘 사주고 있으니 한국은 일본에게 고마운 나라’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접한 농림부 당국자는 ‘메추리알의 영양 가치는 달걀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반에 공표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여하튼 그 시절 이후 메추리알이 본격적으로 식용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농림부 당국자의 말과는 다르게 알려지고 있다.

즉 메추리알이 단백질, 지방, 무기질 함량 그리고 글루타민산을 비롯한 일부 아미노산의 함량은 달걀보다 높다고. 

메추리알과 달걀의 성분을 비교하면 비타민 A는 달걀이 3배가량 많으나, 비타민 B2는 메추리알이 3배가량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메추리알에는 어린이 성장발육에 필요하고 회복기 환자 치유에 필요한 성분인 라이신, 메티오닌, 트립토판 등이 함유돼있다고도 한다. 

그러니 메추리알을 굳이 달걀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저 그 조그마한 메추리알이 달걀에 비해 조금도 손색없다는 측면에서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떠올리며 메추리알 장조림을 ‘심심풀이 땅콩 먹듯’ 섭취할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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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