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51·52) 오징어젓, 조개젓

제일 익숙한 젓갈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오징어 ⓒpixabay

오징어젓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일이다.

당시 중앙당 사무처 조직 파트에 근무하면서 강원도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강릉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이 내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 겨울에 아내와 나를 초청했다. 

주말을 맞아 강릉에 방문, 토요일 저녁에 각종 회를 안주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채 잠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 나를 찾아 그 사람이 숙소로 방문했다. 


그 사람은 전날 마신 술의 숙취를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구실로 나와 아내를 이끌고 해장국집이 아닌 자신의 단골집이라는 아담한 횟집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이 갓 잡은 오징어를 잘게 썰어 들고 왔다.

의아한 시선으로 그 사람을 주시하자 숙취 해소에 오징어 회만큼 좋은 게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역시 의아한 생각으로 잘게 썰어놓은 오징어 회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의 이야기, 즉 숙취 해소에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실감하게 됐다. 

쫄깃쫄깃한 식감에 입맛이 돌았던 것은 물론이고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머릿속이 그야말로 환하게 맑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 상태에 이르자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어 해장으로 소주 두병을 마셨던 기억이 새롭다.

오징어.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따르면 오징어는 물 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오징어를 죽은 고기인 줄 알고 물 위에 내려 앉아 쪼아대면 긴 다리로 까마귀를 감아 안고 물 속으로 들어가 잡아먹었다고 해서, ‘까마귀를 잡아먹는 도적’이라 해서 오적어(烏賊魚)라 했다 한다. 


이 오적어가 물고기를 뜻하는 ‘즉(鯽)’ 자를 사용해 오즉어(烏鯽魚)로 불리기도 하다가 결국 오징어로 정착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징어는 한자로 표기돼있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시절의 경험을 되새기며 오징어를 혼탁하다, 더럽다의 의미를 지닌 ‘汚’(오)자와 그를 징계한다는 의미를 지닌 ‘懲’(징)자를 사용해 오징어를 汚懲魚로 부르곤 한다.

이 새로운 한자어엔 몸에 남아 있는 노폐물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여하튼 숙취해소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오징어를 생각하면 곧바로 타우린이 떠오른다.

타우린(taurine)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쓸개즙 분비를 촉진해 간의 해독력을 강화하고 피로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에너지 강화 드링크에 타우린이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오징어는 노화 지연과 성인병 예방 등 여러 효능을 지니고 있다.

숙취해소에 탁월한 타우린 듬뿍
“조개는 죽어서 진주를 남긴다”

이제 정약전의 동생인 정약용의 오징어 노래(‘烏鰂魚行’, 오적어행)를 감상해보자. 

「오징어가 물가를 지나다 문득 백로의 자태를 마주했는데 하얗기로는 한 조각 눈이고 빛나기로는 잔잔한 물과 같네. 머리 들어 백로에 이르기를 네 뜻 나는 모르겠네. 기왕 고기 잡아 먹으려면 무슨 이유로 청결한 척 하나. 내 배에는 항상 먹물 한 주머니 있어 한번 토해내면 주변 모두 검기에 고기들 눈 흐려져 지척 분간 못하고 꼬리 흔들며 가려해도 남북 구분 못하지. 내가 입 벌리고 삼켜도 고기들은 알지 못해 내 배 항상 부르고 고기는 늘 속는다네. 네 깃 너무 깨끗하고 털도 너무 기이하여 위 아래 모두 흰옷인데 누가 의심 안 하나. 가는 곳마다 옥 같은 얼굴 물에 먼저 비추니, 고기 모두 먼 곳서 바라보고 피해가니, 자네 종일 서서 무엇을 기대하겠느냐. 네 다리만 시근거리고 속 항상 주리지. 까마귀 찾아가 그 깃 빌어 입고 본색 감추고 편리하게 살아가게. 그러면 산더미만큼 고기 잡아 암컷과 새끼들 먹일 수 있겠네. 백로가 오징어에게 이르기를 네 말 역시 일리 있지만 하늘이 이미 결백함 주었고 내 스스로 보아도 더러움 없는데 어찌 조그마한 밥통 하나 채우자고 얼굴과 모양 그렇게 바꾸겠나. 고기 오면 먹고 가면 쫓지 않지. 꼿꼿이 서서 천명에 따를 뿐이네. 오징어가 먹물을 뽑고 또 화를 내며 멍청하다 너 백로 마땅히 굶어 죽으리.」
 

▲ 조개젓 ⓒpixabya

조개젓

중국 전한 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편집한 책인 <전국책>의 ‘연책’(燕策, 연나라의 계책)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역수(易水) 가에 조개가 나와 있을 때 마침 황새가 조개의 속살을 쪼자, 조개가 껍질을 오무려서 황새의 부리를 꼭 끼워 버렸다.

황새가 말하기를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죽은 조개가 있게 될 것”이라고 하자, 조개가 말하기를 “오늘도 못 나가고 내일도 못 나가면 죽은 황새가 있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서로 놓아주지 않았다.

끝내는 어부가 와서 둘을 다 잡아갔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고사성어가 생겨난다.

조개와 황새의 어리석은 싸움을 빗댄 방휼지쟁(蚌鷸之爭)과 그 둘 간의 싸움으로 이득을 보는 어부라는 의미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고사성어다. 

한 건으로 인해 두 개의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조개의 한자명도 독특하다.


조개를 지칭해 蚌(방) 혹은 蛤(합)이라 하는데 이 두 자를 합해 방합(蚌蛤)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서 조개를 의미하는 貝(패)는 조갯살이 아닌 조개껍질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황새는 왜 죽음도 불사하고 조갯살을 쪼았을까하는 의문이 발생한다.

혹시 조갯살 속에 숨어 있던 진주가 탐나 그런 건 아니었나하는 의심 역시 일어난다.

이와 관련해 조개와 진주 이야기도 해야겠다. 

조갯살 속에 모래나 뼈 등 단단한 이물질이 들어가면 조개는 이를 빼려 노력하지만 이물질은 결국 살 속에 박히게 된다.

조개는 이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 생각해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차원에서 자기 몸에서 나오는 분비액으로 이물질을 지속해 감싸게 된다.

이에 따라 이물질이 점점 더 커지게 되고 후일 그 물체가 진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조개는 진주로 인해 생명을 빼앗기지만 진주를 남기게 된다.

필자는 그런 조개를 위해 인사유명 호사유피(人死留名 虎死留皮,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처럼 방사유주(蚌死留珠, 조개는 죽어서 진주를 남긴다)라는 말을 만들어주고 싶다.

여하튼 조개와 진주에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보자.

중국 남북조 시대 진(晉)나라 사람인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에 실려 있는 한 대목을 인용한다.

蚌蛤珠胎(방합주태)
조개가 진주를 잉태하는데
與月虧全(여월휴전)
달과 함께 찼다 줄었다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유의 작품을 보면 조개와 진주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英英珠一顆(영영주일과)
찬란하게 빛나는 진주 한 알
出自蚌胎中(출자방태중)
조개 뱃속에서 만들어지네

조개는 우리민족과 선사시대부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패(貝) 즉 패총(貝塚)과 관련해서다.

한반도 여기저기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패총을 살피면 조개와 우리 민족 간 관계는 그 뿌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조개로 젓갈을 담갔을까.

서긍의 <고려도경>에 실려 있는 ‘고려 사람들은 조개류를 가지고 젓갈을 담가 귀천 없이 먹는다’는 기록을 살피면 조개젓의 역사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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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