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재판’ 의원님들의 혹독한 겨울나기

요즘 여의도 유독 추운 까닭은?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누가 먼저 금배지를 내려놓게 될까. 지난해 총선 이후 기소된 국회의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는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구형을 받고,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의원들을 살펴봤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이번 달에만 모두 6명이다.
 

▲ 사진 왼쪽부터 김한정·이소영·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대 총선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이들이 모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이전 국회만 살펴봐도 짐작하는 데 어렵지 않다. 20대 국회에서는 모두 14명이 옷을 벗었다(자진사퇴 1명 포함). 의혹이 제기되면서 줄줄이 재판에 넘겨져서다. 21대 4·15 총선 과정에서 기소된 국회의원은 모두 27명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있다.

100만원 이상
다시 집으로

이번 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국회의원은 모두 6명이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열린민주당 1명이다. 이 중 가장 먼저 1심 선고를 받은 의원은 민주당 김한정 의원(경기 남양주시을)이다.

김 의원은 지난 2019년 10월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 운영진 4명과 식사를 하면서 고가의 양주를 제공, 70만원 상당을 기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김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당선 무효형이었다.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당선 무효 처리된다.


이날 김 의원 측 변호인은 당시 식사 자리를 선거운동이 아닌 의정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선이나 총선 관련 내용은 없었고, 마석 가구공단 이전이나 지하철 9호선 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공소 사실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모두 동의했다. 김 의원은 최후진술에서 “법을 지켜야 할 맨 앞줄에 있는 사람인데, 법을 어겨 송구스럽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의정부지법 형사합의13부·정다주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김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그대로 선고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14년 남양주시장 선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김 의원은 고배를 마셨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남양주시을 선거구에 깃발을 꽂았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법 27명 기소, 재판 시작
구형량은 당선무효형, 1심은?

나머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이번 주에 있을 예정이다. 민주당 이원택 의원(전북 김제시부안군)의 선고공판은 오는 20일이다. 이 의원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 기소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이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19년 12월 지역구 소재 마을 경로당에서 구민들을 상대로 좌담회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곳에서 이 의원이 지역구 거주사실을 밝혔고,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봤다.


이 의원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했다. 경로당 방문은 선거운동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활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후보 예정자가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민원을 청취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인지도가 낮은 후보는 어떻게 자신을 알리고 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입장이었다. 또 지지해달라거나 투표해달라는 발언 내용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최후변론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제일 먼저 낭독한 것이 선거법과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책자”라며 본인의 행동이 사전선거운동이라면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고의적인 의도는 없었다는 점도 덧붙이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의원은 구의원으로 출발해 국회에 입성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전북 지역 무소속 구의원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재도전해 전주시 구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경기 의왕시과천시)의 1심 선고는 오는 22일 열린다. 이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2월16일 벌금 150만원을 구형받았다. 이 의원은 총선 예비후보자였던 지난해 3월 노인회 사무실과 노인복지관 등 여러 기관단체 사무실을 호별 방문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당선! 
기쁨도 잠시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위한 호별 방문을 엄격히 금지한다. 당시 의왕시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의원을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이뤄졌다.

이 의원은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호별 방문의 위법성을 면밀히 살피지 못해 이를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의원 역시 “잘못을 통감하고 반성한다”며 “지역주민 뜻에 따라 봉사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인재영입 8호 출신이다. 그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거친 환경 전문 변호사로 소개됐다. 이 의원의 지역구인 의왕시과천시의 전임자는 민주당 신창현 전 의원이었다. 신 전 의원은 주택개발후보지 유출 의혹으로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됐고, 이 의원이 전략공천 대상자가 됐다.

이 의원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신계용 후보를 43.38%대 37.95%로 꺾으면서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됐다.
 

▲ 국회의사당 전경 ⓒ고성준 기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이번 달에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비례대표)은 지난해 총선 당시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선고 공판은 오는 27일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23일 조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 의원이 누락된 채권 5억원에 대한 이자를 지속적으로 받아 채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고 봤다. 검찰은 “누락한 현금성 자산의 성격과 규모를 보면 누락할 유인이 충분해 보인다”며 “당선 목적으로 재산이 허위 공표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재산보유현황서 작성 요령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선 목적으로 재산 관련 허위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뒤늦게…
선처 호소

조 의원이 재산보유현황서에 기재한 재산은 22억3000만원이다. 실제 재산은 26억원으로 3억7000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조 의원 측은 “선거인 입장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재산이 22억3000만원이나 26억원일 때 재산에 관해 다른 인식이 형성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조 의원 측은 동생 부부에 대한 사인 간 채권 5억원 누락분이 신고대상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과소 신고와 배우자 금융자산 누락, 아들 예금 등도 모두 착각과 실수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조 의원은 검찰 구형 당시 최후진술에서 “돌이켜보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서 후보 1번에 이름을 올리며 당선됐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경북 포항시남구울릉로)의 선고공판은 오는 28일 열린다. 김 의원은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1일 김 의원의 선거법 관련 사안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김 의원이 지난해 3월21일 미래통합당 소속 박명재 전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 지지를 호소하며 사전운동을 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정치자금법의 경우 100만원이 구형됐다. 검찰은 선거 기간에 발생한 문자 메시지 발송비를 선거비로 회계처리하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인정·호소·대립…반응 제각각
20대 국회 14명 이탈 이번에는?

김 의원은 보좌관 출신 국회의원이다. 그는 강재섭 의원실 인턴 비서로 시작해 박보환·박상은 의원 비서관, 박상은·이학재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쳤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포항 지역에 출마, 상대 후보들을 제치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오는 28일 1심 선고를 받게 된다. 최 대표에게는 앞선 벌금형 사례와 달리 징역이 구형됐다.
 

▲ ▲ 사진 왼쪽부터 조수진 국민의힘·김병욱 무소속·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검찰은 지난해 12월23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의 인턴 경력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최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도 뉘우치지도 않고 수사 과정에서 출석조차 거부했다”며 “법정에서 말을 바꾸는 등 여러 차례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사건사무규칙을 명백하게 위반한 위법기소라며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최 대표 역시 “사실관계로 보나 증거로 보나 분명히 무죄”라며 “검찰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뿐”이라고 전했다.

최 대표는 청맥 변호사로 일하던 지난 2017년 10월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됐다. 하지만 최 대표는 조 전 장관의 아들이 실제 인턴 활동을 했기 때문에 확인서를 발급해줬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최 대표는 손혜원 전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등 민주당 탈당 인사들이 꾸린 열린민주당에서 비례 2번에 이름을 올리면서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27명의 국회의원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이후, 재판이 하나둘 진행되는 모양새다. 물론 1심 판결에서 당선무효형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당장 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벌금부터
징역까지

지난 20대 국회에서 의원직을 잃은 이들은 모두 13명이다. 자진사퇴 1명을 포함하면 모두 14명이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10명, 국민의당 2명, 민주평화당 1명, 민중당 1명이었다. 21대 국회에서는 몇 명이나 옷을 벗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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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