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추억> ‘위대한 복서’ 캐시어스 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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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1.04 10:30:48
  • 호수 1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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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그 전설이 시작되다

▲ 로마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중앙), 은메달 즈비그뉴 피에트르지코브스키(우측), 동메달 지울리오 사라우디와 안토니 매디건

[JSA뉴스] 1960년 로마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을 위해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갔던 18세의 캐시어스 클레이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대표팀에 합류한다. 그러나 클레이의 올림픽 참가 앞에는 비행 공포증이라는 한 가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을 싫어했던 클레이는 선발전에서 올림픽행을 확정한 뒤 켄터키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갈 정도였다. 이미 위대한 스포츠인으로의 길을 가고 있었던 클레이는 로마까지 가면서 비행기를 타기 싫다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를 포기할 생각이었고, 조직위에 배로 이동하면 안 되냐는 문의까지 했다. 그의 트레이너였던 조 마틴은 HBO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비행 공포증

“선발전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갈 때,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래서 로마까지 비행기로 가야 한다는 말에 비행기는 안 탈 것이므로 올림픽도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그러면 위대한 파이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거야’라고. 하지만 클레이는 ‘그래도 안 갈 거다’라고 답했다. 보트같은 걸 타고 가겠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여기 루이빌의 센트럴 파크로 그를 데려가서 2, 3시간 정도 긴 대화를 나눴다. 클레이를 진정시켰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 로마에 가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만 한다고 설득했다.”

결국 클레이는 로마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데 동의했지만, 낙하산을 사서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 내내 착용하는 등 대비책을 전제로 한 합의였다. 클레이의 비행 공포증에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복싱 전적은 비행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놀라울 정도였다. 

로마에 도착한 순간부터 클레이의 카리스마는 링 안팎을 모두 지배했다. 올림픽 선수촌에서 지내는 동안 클레이는 유려한 말솜씨와 개성을 가진 불가사의한 복서로 선수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은 선수들이 클레이를 ‘올림픽 선수촌장’이라 부를 정도로 대단했다.


상대에게 펀치 한 번 날리지 않은 시점에서도 클레이는 대담함과 독특함, 특별함이 묻어나는 존재감을 보였다. 라이트헤비급 경기가 진행되자 십대인 클레이는 경지에 다다른 자신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로마의 첫 경기에서 클레이는 벨기에의 이본 베카우스를 상대했고, 심판은 선수 보호를 위해 2라운드에서 경기를 종료시켰다. 8강전에서 러시아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젠나디 샤트코프를 만난 클레이는 관중들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5:0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클레이가 링 내에서 보여주는 변칙적이고 예술적인 움직임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클레이를 보기 위해 복싱 경기장을 찾았다.

60년 로마올림픽 금메달 “링 안팎 지배”
108전 100승…2연속 골든 글러브 타이틀 

준결승에서 만난 호주의 토니 매디건 역시 심판 만장일치로 꺾었다. 이로써 클레이는 폴란드의 즈비그뉴 피에트르지코브스키와의 결승전만을 남겨두게 됐다. 결승전에서 즈비그뉴는 유럽 챔피언 자리에 세 번 올랐던 선수답게 클레이에게 까다로운 상대가 됐고, 클레이는 즈비그뉴의 사우스포 스타일에 살짝 고전하는 듯했다.

그 결과 첫 두 라운드는 대등한 경기가 나왔다. 클레이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3라운드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줘야만 했다. 클레이는 피지컬에서의 우위와 스피드, 빠른 펀치와 놀라운 공격으로 최고 이상의 경기를 만들어 냈고, 결국 심판 만장일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훗날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꾼 클레이는 그때의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48시간 동안 그 메달을 한 번도 벗지 않았다. 잘 때도 메달을 건 채로 침대에 들어갔다. 메달에 베이지 않기 위해 똑바로 누워서 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잠도 잘 못 잤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올림픽 챔피언이었으니까.”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차지한 그 금메달은 클레이를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 줬다. 동시에 클레이가 프로 복싱에 진출하는 데 촉매가 됐다. 미국 전역의 에이전트와 프로모터들이 클레이가 프로로 전향하도록 설득하려 했고, 클레이도 곧 거기에 따랐다.

1960년 10월 프로 무대에 데뷔한 클레이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게 영광적이며, 어쩌면 역대 최고의 개인 스포츠 커리어라고도 평가될 수 있는 여정의 첫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후 몇 십 년 동안 다수의 세계 타이틀을 따낸 클레이는 그 과정에서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소니 리스턴, 플로이드 패터슨과의 라이벌 관계는 복싱 전설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개명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지 거의 50년이 되는 시점에서 복싱의 전설은 1996년 애틀랜타의 올림픽 무대로 돌아왔고, 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며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겼다. 1960년과 1996년 올림픽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 냈던 캐시어스 클레이. 그는 올림픽을 빛낸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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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