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영화 ‘내가 죽던 날’ 신예 박지완 감독의 뚝심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에는 상업영화 흥행공식처럼 따라다니는 것들이 있다. 먼저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빨라야 하며, 카체이싱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동반되면 더 좋다. 인물 간의 갈등은 자극적인 소재일 때 더욱 끌리고, 배우들이 연기할 때 감정선도 진폭이 클수록 관심을 받는다. 엔딩은 힐링이나 위로보다 복수로 마무리돼야 더 짜릿하다. 이런 부분에 충실했을 때 흥행 요소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신작 <내가 죽던 날>은 앞서 언급한 흥행 요소를 철저히 피해갔다. 느린 속도감에 화려한 장면은 거의 없다. 충분히 자극적인 요소를 앞세울만한 소재도 깔아놓았는데, 활용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감정선도 전반적으로 절제돼있다. 주인공의 눈을 따라 사건으로 들어가는데, 도착점은 인물들의 깊은 감정이다. 새로운 화법의 이 영화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위로다. 

흥행 요소를 비껴간 <내가 죽던 날>은 엄청난 여운을 남긴다. 사건 중심에서 인물 중심으로 변주하는 화법이나 인류애가 느껴지는 메시지, 배우들의 절제되고 차분한 연기, 존중과 배려가 담긴 연출자의 배려심이 영화에서 전달된다. 혹자는 지난해 국내 영화계를 강타한 <벌새>의 그것과 비슷하다고도 한다. 

박지완 감독의 뚝심이 없었더라면, <내가 죽던 날>은 색감이 분명한 좋은 영화로 탄생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걸출한 신인 감독의 출현이다. 다음은 박 감독과의 일문일답.

- <내가 죽던 날>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어떻게 출발하게 된 작품인가?

▲  2013년에 처음 시작해서, 컴퓨터에 넣어놓고 종종 꺼내서 붙이고 한 작품이다. 가끔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고나 개봉작이나 엔딩은 비슷하다. 처음에 보여드렸을 때는 보신 분들의 욕망이 투영됐다. 


어떤 분들은 세진(노정의 분) 아빠 사건을 중심으로 범죄 스릴러를 만들자고 했다. 또는 현수의 아픔을 더 강하게 드러내서 극복기를 그려보자고 한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렸다. 

그러다 권남진 PD님을 2018년 말에 만났다. 별 기대 없이 나갔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걸 잘 읽어주셨고, 그러면서 시나리오가 확장됐다. 이 작품은 임자를 만나지 않으면 오해가 많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배우들도 잘 이해해야 하는데, 김혜수 선배가 정확하게 읽어줬다. 당시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 혜수 선배가 캐스팅되고 나서는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힘이 컸던 것 같다. 

- 놀라운 점은 작품의 뚝심이다. 기존의 흥행 공식을 벗어난 화법이다. 말 그대로 뚝심이 보인다.  

▲ 대단한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얘기가 명확하게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사라진 소녀의 코드를 따라가는데, 기존 이런 미스터리 영화와 도착지가 다르다. 샛길로 셀 수 있는 길이 많아서 섬세하게 지도를 그려야 하는 게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었다. 

- 이 영화를 통해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 저는 사실 그 당시에 재밌는 것들을 넣은 것이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서로 영향을 준다. 방금 전까지도 몰랐던 사람인데, 그 사람들 때문에 다음날을 잘 살 수 있는 그런 경우들이 있다. 나쁜 경우도 있겠지만, 좋은 경우도 많다. 그 부분을 영화적으로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섬세한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했는데,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뭔가. 

▲ 현수(김혜수 분)는 직업이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감정이 들어갈 것도 없고, 냉정하게 사건 속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수사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었건 결과만을 보는 직업인데, 본인이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서 상황을 접해보니 다른 게 보인다는 걸 표현해야 했다.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만들고 싶은 욕심은 강했다.

관객들이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요즘 영화들은 신이 시작하면 가져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현수는 사람을 만나는데 얻어가는 게 없다. 관객들에게 견디라고 하는 거다. 그것을 모두 견디고 나면 어떤 깊은 여운을 얻을 것인데, 견뎌줄지 궁금하다. 그래도 관객들이 워낙 똑똑하고 현명해졌기 때문에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제목이 강렬하다. 이 제목은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 너무 어둡다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죽던 날은 세진의 기준에서 죽던 날이다. 다시 말하면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현수가 세진을 보니까 나도 죽었던 날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힘도 얻는다. 어떤 날을 기준으로 같이 겪은 것도 아니고, 시공간도 다른데, 만나는 지점이 있다. 이 아이러니를 읽어주길 바랬다. 

- 이 작품이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충분히 자극적인 요소를 깔아놨는데 하나도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세 수준으로 잘라낸다. 현수의 이혼 과정에서의 문제점, 세진과 남성의 하룻밤 등 여러 가지가 정황상 보이는데 장면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연출자의 배려심인가? 

▲ 현수의 사연 같은 경우는 이혼이 시작점이 됐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이혼으로 인해 질문이 시작된 것이다. ‘괜찮은 삶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내 인생은 맞는 건가?’ ‘내 잘못인가? 아닌가?’ 이런 류의 질문이다. 

어찌 됐든 그 질문들로 인해 잠도 잘 수 없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어떤 면에서 현수는 모욕을 겪은 사람이다. 일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심한 모욕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해명할 힘도 없고, 해명을 하면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장면으로 보여주기보다 현수의 태도로 드러나길 바랐는데, 혜수 선배가 정말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 현수는 동료와 바람을 핀 건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한 지점이다. 현수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해도 후배인 경찰 파트너와 좋은 관계였고 한 번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다정함과 배려가 있는 관계였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배의 아내와도 관계가 좋았을 테지만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그런 소문을 맞닥뜨리게 되면 보통은 그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수 입장에서는 굉장한 모욕을 겪은 데다 친한 동료와 관계가 끊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현수의 캐릭터에서는 그 모욕과 관계된 그 어떤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수근거림에 대해 대놓고 해명을 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변호사가 남편의 주장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해명이 아니라 ‘그 어떤 부탁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죠. 아마 남편은 그런 현수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세진의 경우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2차 가해를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 세진이 주위에는 오빠를 제외하고는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선과 악이 딱히 없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희생까지는 하지 않는다. 형준(이상엽 분)도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세진이 아빠에 대해 알고 있으니 세진에게 뭔가 더 듣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면 사건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싶었다. 만약 그게 형준의 잘못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이 모든 불행이 형준 탓이 되버리니까. 그걸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면 변질이 되니까.

- 이 영화는 김혜수의 역할이 크다. 우울감을 기저에 깔고 있는 인물을 정말 훌륭히 표현했다고 본다. 

▲ 현장에서는 찍는 데 바쁘다 보니까, 연기를 잘하시는구나 정도였는데 편집하면서 보니까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라서 스케줄이 정말 빡빡했다. 원룸은 뛰고 감정 잡고 등등 모든 장면을 하루에 해결했다. 그렇게 모든 걸 하루에 하는데 잘하는 분이 또 있을까 싶다. 척하면 척하고 알아 들으시고, 아이디어도 많이 주신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혜수라는 배우에서 슬픈 눈이 보였다. 섬세한 선이 마음에 들었다. 연약한 김혜수를 오래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2019년 김혜수의 현재를 잘 담아내고 싶었다. 현수를 얼마나 따라갔느냐에 따라 영화를 보고 느끼는 폭이 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이 느끼길 바람이 있고. 김혜수라는 배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따라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혜수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 


▲ 선배님의 첫 인상은 매우 배려심 깊은 스타로 보였다. 제가 만난 선배님은 굉장히 작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감상을 얘기해주셨고 정말 꼼꼼히 읽고 얘기해주시는 정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다만 인물들의 상황에 매우 공감하고 그걸 표현하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도 주시고 해서 처음 만난 자리고 하시겠다고 답을 주는 자리는 아니라서 마음 속으로 거절 하시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뵙고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 기대 이상으로 연기를 잘한 배우가 세진을 연기한 노정의다. 이번 작품으로 연기력이 완전히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 10대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처음 정의를 만났을 때 가만히 있을 때는 표정이 서늘하다가 웃을 때는 활짝 핀다. 호기심이 가는 웃음이었다. 만나서 얘기해보니 어린 나이같지 않게 영민하고 똘똘하다. 경력도 많다. 아역 치고 학교도 열심히 다녔다. 친구들하고 잘 지내기도 하고, 특이한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진이도 그럴 것 같았다. 주어진 조건에서 열심히 사는 친구. 

실제로 촬영할 때 정의는 좀 힘든 상태였다. 입시 때문에. 사실 연기만 하기도 벅찬 숙제인 정의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한테 ‘괜찮니?’라고 하면 눈으로는 ‘안 괜찮아요’라고 하는데, 다른 내색은 안 했다. 

정의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의 세계에 있다 보니 지나치게 똘똘하다. 스크립터가 말하길 정의는 연결을 맞출 게 없다. 자기가 알아서 왼손 오른손을 다 맞추고 있다. 솔직히 안쓰러웠다. 얼마나 이 현장에서 많은 요구를 받았으면, 그런 것까지 다 고민하고 익혔겠나. 아마 세세하게 아역을 배려하는 현장이 많지 않았을 텐데, 본인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스스로 기술을 익힌 거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태국 촬영 쯤에 학교에 합격했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 

- 이번에 입봉을 하게 됐는데, 이전의 이력은 어떻게 되나?

▲ 영화사 봄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을 담당했다. 영화 학교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스크립터 일을 2008년부터 했다. 언제 데뷔할지 모르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을 잘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많았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했다. 

- 영화에 대한 설명, 스스로에 대한 판단, 타인에 대한 생각 등 전반적으로 냉철하다. 객관화가 매우 잘된 느낌이다. 

▲ 냉철하게 봐야만 한다. 주위에 조급하게 데뷔해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스스로 감독이라 칭하기 부끄럽다. 몇 편을 찍어야 감독이라는 칭호가 어울릴지도 고민해 봤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야기를 계속 잘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럴려면 냉정해야만 한다. 나와 관객들과 이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를 좋은 타이밍에 해야 한다. 

- 이번 영화를 하면서 힘들었던 게 있다면 혹시 무엇이었나. 

▲ 영화감독의 위치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있지만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 혜수 선배님이 아무리 잘해도 내가 실수하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내가 유지할 수 있는 건 내 태도 밖에 없었다. 왜 만들려고 하고, 왜 이 영화를 선택했고, 어떤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더이상 영화를 찍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뿐 아니라 대다수 배우가 이 영화의 의미를 읽고 들어와 줬다.

신인 감독에게 있어서는 과분한 이름이다. 근데 그 의미가 영화에 나오지 않으면, 저에게는 정말 악몽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게 마음을 많이 졸이게 했다. 제가 분명히 어설펐을 것이고, 참견하고 싶었을 텐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날 믿고 기다려줬다. 정말 판이 잘 깔렸고, 나에게는 투정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좋아야만 했다.

- 힘든 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내가 잘 가고 있구나라고 느낀 장면이 있을까. 

▲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장면이기도 한데, 후반부에 현수와 순천댁(이정은 분)이 만나는 장면이다. 촬영을 준비 중인데, 정은 선배가 울려고 한다. 눈물이 나오면 안 된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는데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배우들의 이해도가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고민은 누구부터 찍을 것이었냐였다. 연출자로서는 복이었다. 

또 촬영과 편집 기간을 거치는 내내 어떤 게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현수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이해를 돕고자 편집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코로나19 때문에 편집할 시간이 넉넉했다. 그래서 고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똑똑해진 관객들이 이 감정선을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 이제 첫 걸음을 뗐다. 워낙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부가 있다면?

▲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이야기의 단점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생각한 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인 면이 없지 않은데 다행히 저와 생각이 같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완성할 수 있었다. 만들고 보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사실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그래서 더 기대 되고 두렵기도 하다. 이미 세상에는 너무 많은 영화와 이야기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많을 테지만 그래도 제가 만들 영화를 위한 자리가 있다면 그래도 조금 다른, 좀 더 새로운 지점을 도전하는 영화였으면 한다. 또 그런 이야기를 기다리는 관객과 잘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야 영화 만드는 일이 비로소 제 직업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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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