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냐 딸이냐’ 미원상사그룹 계열분리 시나리오

장남 따라잡는 장녀…판 뒤집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미원상사그룹 승계구도에 눈길이 간다. 애초 후계 경쟁력을 선점했던 장남에 비해 장녀의 존재감이 비교적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장남 중심의 수직 계열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지만, 장녀의 등장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 미원상사 본사 ⓒ네이버 지도

미원상사그룹은 기초 화학 소재와 첨단정밀 화학 소재를 다루는 중견 화학사다. 지난 1959년 설립돼 업력만 60년이 넘었다. 창업주는 고 김진박 회장. 이북 출신의 자수성가형 오너로 ‘화학 외길’만 걸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미원상사그룹은 오너 2세 김정돈 회장 중심의 경영 체제다.

중견 화학사
60년 업력

미원상사그룹은 지난 2009년 미원상사를 인적 분할해 미원스페셜케미칼을 설립했다. 2017년에는 다시 미원스페셜케미칼을 신생 법인 미원홀딩스와 존속 법인 미원스페셜티케미칼로 인적 분할하면서 지주사 전환의 기틀을 닦았다. 업계 안팎에선 향후 3세 경영을 위한 포석으로 바라봤다.

김정돈 회장의 장남 김태준씨는 미원홀딩스 지분을 대거 확보하기 시작했다. 분할이 이뤄졌던 그해 12월 태준씨는 모두 8차례에 걸쳐 미원홀딩스 주식 24만9960주를 사들였다. 동시에 태준씨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그룹 계열사 미원화학과 미원상사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태준씨의 미원홀딩스 지분 매입 시기와 맞물리는 만큼, 재원 마련을 위한 매도로 해석됐다. 당시 태준씨가 처분한 주식 단가는 모두 100억원에 육박했다.


태준씨는 이듬해인 2018년에도 미원홀딩스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그해에만 모두 9차례에 걸쳐 4만6181주를 매수하면서 34만4000주(14.83%)에 안착했다. 현재 태준씨는 미원홀딩스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면서 공고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원홀딩스는 미원상사그룹의 여러 계열사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만큼 태준씨가 미원홀딩스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점은 향후 승계와 연결 지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원홀딩스는 8개 해외 법인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또 상장 계열사인 미원스페셜티케미칼과 동남합성 지분을 각각 31.89%, 40.26% 소유한 최대주주다. 두 계열사는 미원상사그룹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법인으로 평가받는다.

미원스페셜티케미칼은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 377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466억원, 순이익은 395억원을 나타냈다. 올해에도 큰 변수가 없다면 호실적은 계속될 전망이다.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직전년도에 비해 4.5% 하락한 1870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동기간 3.7% 상승한 267억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순이익은 2.4% 줄어든 236억원이었다.

3세 경영 쪽으로 급변하는 승계구도
지주사 전환 앞두고 장남 지분 매입

동남합성은 지난해 별도 기준 1260억원 매출액과 98억원 영업이익, 그리고 17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동남합성 성적표는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점쳐진다.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직전년도 대비 1.9% 하락한 620억원에 그쳤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43%, 78.1% 증가한 72억원, 63억원을 보였다.


다만 그룹 내에서 태준씨 홀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태준씨는 미원홀딩스의 최대주주지만, 미원홀딩스의 2대 주주인 미원상사와의 지분 차가 0.5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원상사에서는 태준씨와 같은 오너 2세 장녀가 우회적으로 존재감을 기르고 있다. 장녀 김소영씨는 미성종합물산이라는 회사를 통해 미원상사 지분을 보유하면서 간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성종합물산의 최초 미원상사 지분 보유 시기는 2002년이다. 당시 미성종합물산은 7700주(0.55%)를 보유하는 데 그쳤다. 2003년에는 이마저도 전량 매도했다. 얼마 동안 지분 변동은 없었지만 2006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미성종합물산은 2006년부터 미원상사 주식 1만1000주(0.52%)를 장내 매수했다. 이때부터 미성종합물산은 매년 추가 매수와 매도, 유상증자 등을 거쳐 2014년에 2만1547주(2.4%)를 확보했다. 이어 2015년과 2016년에도 추가 매입을 통해 모두 4만200주(4.6%)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대량 매입이 실시된 시기는 2017년부터다. 그해 미성종합물산은 2만4594주를, 이듬해인 2018년에는 2만527주를 매입했다. 매입 주식 수가 2만주를 넘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2018년까지 8만5321주(11.01%)를 확보한 미성종합물산은 무상증자와 매수 등을 통해 지난해 70만6698주(13.98%)까지 치솟을 수 있었다.

눈길이 가는 건 해당 시기에 미성종합물산 주주가 변경됐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주요 주주는 그룹 계열사 미성통상과 김정돈 회장의 모친 윤봉화씨로 각각 21.3%, 20%를 보유한 상태였다.

우회 지배
장녀 등장

하지만 2017년부터 소영씨와 특수관계인이 98.7%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어 소영씨의 남편인 강신우씨가 지난해 미성종합물산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미성종합물산은 올해에도 미원상사 주식을 계속해서 사들였다. 지난 1월 7차례에 걸쳐 4551주를 취득한 데 이어 2월과 3월, 5월과 6월, 8월과 9월, 그리고 지난달에 모두 4만2710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지난달까지 모두 4만7261주를 매입한 미성종합물산은 최종 75만3959주(15.17%) 보유에 등극하면서 김정돈 회장(18.51%) 다음으로 미원상사의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사실상 미성종합물산 최대주주인 소영씨가 간접적으로 미원상사에 대한 지배력을 기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소영씨의 지배력이 닿아 있는 미원상사와 미원홀딩스의 최대주주인 태준씨 사이의 미원홀딩스에 대한 지분 차가 0.55%로 좁혀지게 됐다. 다만 미원상사는 미원홀딩스 지분 취득 목적에 대해 ‘경영 참여’가 아닌 ‘투자’라고 공시했다.


태준씨의 미원홀딩스가 미원상사에서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다면 그의 존재감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원홀딩스는 미원상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태준씨 역시 1주의 미원상사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서 태준씨는 지난 2017년 미원상사 지분 전량을 처분한 바 있다.

소영씨가 미성종합물산을 통해 미원상사에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계열분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성종합물산이 미원상사 최대주주로 자리를 잡는다면 향후 지배 구조가 ‘소영씨→미원종합물산→미원상사→이하 계열사’와 ‘태준씨→미원홀딩스→이하 계열사’로 구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원상사는 지난해 별도 기준 2376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19억원, 325억원으로 직전년도 대비 63.6%, 59% 상승한 수치다.

올해 역시 기대할만하다는 평가다. 미원상사의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137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3.6%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역시 동기 대비 각각 45.3%, 46.7% 증가한 217억원, 215억원을 나타냈다.
 

▲ 미성종합물산 ⓒ네이버 지도

소영씨의 존재감이 선명해지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후계 경쟁력을 선점한 인물은 사실 태준씨라는 반대 해석도 있다. 1983년생인 태준씨는 최근 동남합성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현재 태준씨는 동남합성 상근직을 수행하면서 회사 전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태준씨는 미원에스씨 경영지원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LG화학 고무·특수수지 사업부를 거쳐 미원에스씨 충주공장 생산팀장 등을 거친 바 있다.


존재감
누가 더?

반면 1980년생인 소영씨는 미원상사그룹 내에서 따로 직을 맡고 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영씨의 남편이 지난해 2월 미성종합물산 사내이사로 취임한 것 외에는 그룹 내 업무와 특별한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두 오너 3세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회사의 존재감도 차이를 보인다. 미원상사가 투자 외에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취득한 관계사는 동남합성과 태광정밀화학, 아시아첨가제, 계동청운, 비드테크 등이다.

미원상사는 동남합성 지분 9.33%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태준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미원홀딩스에서는 40.26%의 지분을 쥐고 있다. 미원상사가 아시아첨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35%이지만 최대주주에 미치지 못한다.

태광정밀화학과 비드테크에서는 20%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계동청운에서만 100% 지분이 있다.

반면 미원홀딩스는 8개 해외법인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미원스페셜티케미칼과 동남합성에서도 최대주주 지위를 쥐고 있는 상태다.

미원상사그룹에 계열 분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 그룹을 주무르고 있는 김정돈 회장은 동생 김정만 대표와 형제 경영 중인 듯하지만 사실상 계열분리와 다름없는 절차를 밟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룹 모태인 미원상사는 지난 2011년 분사를 통해 미원화학을 설립한 바 있다. 당시 미원화학 최대주주는 지분율 18.7%를 차지한 김정돈 회장이었다. 김정만 대표는 0.16%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정돈 회장은 우회적으로 미원화학 최대주주에 이르게 된다.

김정돈 회장은 지난 2011년 주식 매도와 액면 분할을 통해 최초 39만2000주를 보유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매도와 증여를 번갈아 단행하면서 그해에만 19만주를 처분, 20만주로 내려왔다.

김정돈 회장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 증여와 두 차례 매도를 통해 오늘날 10만2200주를 보유하게 됐다. 당초 18.7%의 지분은 4.65%로 줄어들었다.

김정만 대표는 초기 750주로 시작했지만 2011년 액면분할을 통해 3750주로 올라섰다. 다만 2014년 보유 주식을 전량 증여하면서 소유하고 있는 주식 수는 0이 됐다. 하지만 김정만 대표는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배력을 확보했다.

장녀 법인, 새로운 축 형성 가능성
계열분리 발생해도 그룹 이탈 없다?

김정만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미성통상은 최초 미원화학 지분 1만6578주(3.62%)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최대주주였던 김정돈 회장(18.17%)에 비해 초라한 수치였지만 김정돈 회장이 주식 정리에 나설 때 반대로 지분 확보에 돌입했다.

미성통상은 2011년 주식분할을 통해 8만2890주를 확보하면서 본격적으로 장내 매수에 들어갔다. 미성통상이 보유한 미원화학 주식 수는 2012년 9만8550주(4.25%), 2013년 18만360주(7.73%)로 크게 늘었다.

미성통상은 2014년 미원화학 주식을 54만2939주(23.13%)로 크게 늘렸는데, 해당 시기는 미성통상이 김정돈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자리를 잡았을 때다. 미성통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지분 매입에 나섰다.
 

2015년부터 매년 61만5255주(26.26%), 63만404주(28.42%) 등으로 늘어났고, 64만2079주(29.32%)까지 지분을 확보했다.

미원화학은 미원상사그룹 내에서 미원상사, 미원홀딩스, 미원스페셜티케미칼, 동남합성과 같은 상장 계열사다.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은 154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직전년도에 비해 79.1%, 83.2% 증가한 154억원과 135억원으로 나타났다.

호실적은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직전년도 동기 대비 8.2% 상승한 806억원이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같은 기간에 비해 35.8%, 39.6% 상승한 98억원과 86억원이었다.

종합해보면 지배 구조가 ‘김정돈 회장→미원화학’에서 ‘김정만 대표→미성통상→미원화학’으로 변동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만 대표의 미성통상과 미원화학이 미원상사그룹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은 아니다.

미원화학은 최근까지도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가 김정돈 회장에서 미성통상으로 변경됐지만 김정돈 회장의 미원화학에 대한 영향력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돈 회장은 현재까지 미원화학에서 4.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돼도
여전히 한몸

겉보기에는 사실상 계열분리로 해석되지만 각자 지분을 유지하면서 그룹의 전체적인 틀은 유지되는 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때 태준씨의 미원홀딩스와 소영씨가 미성종합물산을 통해 지배력을 우회 확보하고 있는 미원상사를 중심으로 계열 분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룹 이탈과 같은 큰 변동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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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