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민석 기자] 107년 전통을 자랑하는 몽고간장. 그런데 몽고간장을 만드는 기업이 하나가 아닌 둘이라고 한다. 하나는 형이, 다른 하나는 동생이 각각 다른 상호명으로 독립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사실도 형제 간 법적 분쟁이 벌어져 알려졌다. 상표를 함께 쓰면서 경쟁사 관계인 애매하고도 오묘한 관계. '몽고형제' 간에 벌어졌던 소송의 전말을 살펴봤다.
'몽고순간장' 상표 사용권을 놓고 벌어진 형제 간 분쟁에서 법원이 동생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 성낙송 재판장은 '몽고식품' 대표 김만식씨가 그의 동생 '몽고장유' 대표 김복식씨를 상대로 '몽고순간장' 상표의 독점권을 보장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비록 독립된 두 업체라 하더라도 '몽고간장'에 대해 공동상표권자로 등록돼 있는 만큼 동생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합의할 땐 언제고
실제로 두 형제는 동생이 따로 회사를 설립한 1973년 이례 39년간 '몽고간장' 상표를 공동으로 사용해왔다. 또 1986년 상호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김복식씨가 '몽고간장' 상표사용을 김만식씨로부터 보장받았고, 그 중 '몽고순간장'도 공유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올해 3월 김만식씨는 김복식씨를 상대로 '상표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법원에 부정경쟁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두 업체의 '몽고순간장' 상표는 초록색 상표 바탕에 흰색 글씨로 '몽고'와 '간장'이 적혀 있고, 중간에 붉은색으로 '순'자가 적혀 있어 소비자의 혼동을 불러온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1976년부터 상표를 공동으로 사용해왔고, 이후 '몽고순간장'이라는 상표 등을 공유로 등록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점 등을 볼 때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몽고간장이나 몽고순간장 자체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상표임이 인정되나, 몽고식품의 몽고순간장 상표가 일반 수요자들에게 차별되는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정에 김만식씨가 서울고법에 항소하지 않기로 해 분쟁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그렇다면 피를 나눈 형제가 어째서 간장 상표 하나로 법정 분쟁을 마다하지 않게 된 걸까? 이는 무려 107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인 산전신조(山田信助)는 마산시 자산동 119번지에 산전장유공장(山田醬油工場)을 세운다. 이것이 몽고간장 회사의 전신인 셈. 이어 1931년 당시 17세였던 김흥구(두 형제의 아버지)씨는 산전시조의 공장에 간장배달원으로 들어가 일하다 산전시조의 신임을 얻어 간장을 만드는 법과 공장을 경영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불과 4년 후 그는 어린 나이에 2인자 자리인 공장지배인에 오른다.
세월이 흘러 해방 해인 1945년 산전신조가 일본으로 도망가면서 당시 2인자이던 김흥구씨가 산전장유공장을 매입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공장명도 '몽고장유공업사'로 개명했다.
김흥구씨가 1971년 59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장남 김만식씨가 가업을 이어 받아 사장이 됐다. 차남 김복식씨는 같은 해 몽고유통을 설립하면서 몽고간장의 유통을 책임했다. 하지만 형제의 역할 분담은 오래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불과 2년 후 1973년 경기도 부천에 새로 설립된 제2공장에 동생 김복식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형제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복식씨는 부천에 자리를 잡자마자 독자적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김만식씨와 합의하에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울 몽고간장'를 설립한 후 수도권과 강원, 충청지역에 간장을 제조?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김만식씨는 '몽고장유공업사'를 '마산 몽고간장'으로 개명한 후 영?호남과 제주지역에서 간장을 판매했다.
'몽고식품' '몽고장유' 누가 진짜?
골육상잔 오해받지만 '동몽이상'
1987년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김복식씨가 '서울 몽고간장'에서 본래 상호였던 '몽고장유공업사'로 상호를 변경하자 이를 보던 김만식씨는 '마산 몽고간장'을 '몽고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한 것. 또 1996년엔 '몽고장유공업사'가 '몽고장유'로 변경되며 마침내 두 회사 모두 현재 상호명을 쓰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원조' 상호명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엔 본래의 상호명 '몽고식품' '몽고장유'는 뒤로하고 한쪽에선 '마산명산 몽고송표간장'으로 '마산'을 강조하고 다른쪽에선 '오랜 전통의 맛을 지켜온 몽고진간장'으로 '오랜 전통'을 강조한 상호명을 대문에 내걸고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물론 두 업체 모두 창업 1905년과 107년의 역사를 강조하며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몽고간장은 이처럼 상호명이 비슷해서 헷갈리지만 상표명은 한술 더 뜬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몽고순간장을 포함해 똑같은 제품명을 가진 경우가 많아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도저히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 제품의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몽고간장 제품을 애용하는 소비자들도 '몽고식품'의 몽고간장과 '몽고장유'의 몽고간장을 애써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다. 재판장도 이 같은 소비자의 경향을 근거로 들어 판시했다.
그런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쪽에서 자신이 원조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1985년 9월 '마산 몽고간장'이 <경향신문>에 '몽고간장 애용자 여러분에게'라는 알림을 낸 것이다.
내용을 옮겨보면 "보도된 저질 진간장은 경남 마산에서 제조한 몽고진간장이 아니고 경기도 부천에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상호와 상표는 동일하나 경영과 생산, 판매 및 기타 제반 사항이 전혀 다른 별개의 독립된 기업이므로 애용자 여러분께서는 선택에 착오 없으시길 간곡히 당부합니다"라며 "향토마산의 80년 전통의 명산물이자 국내장유업계의 원조몽고간장을 애용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부천의 몽고장유양조에서 생산된 간장에서 혼합간장을 순양조간장인 것처럼 표시한 것이 적발 돼 제조정지 처분을 받으며 언론에 언급됐다. 그래서 마산에서 생산된 몽고간장도 도매금으로 묶여 타격을 받던 시기였다.
피해라 '원조' 논란
이를 종합해보면 같은 상호와 상표를 쓰는 형제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골육상잔이라 부를 만큼의 적대적 관계는 아닌 듯하다. 상표를 함께 쓰기 시작한 지 40년이 다되어가지만 큰 탈 없이 지내왔고, 이번 소송건도 1심에서 항소를 단념해 깔끔하게 끝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번 소송건을 두고 "2011년 말 '몽고장유'측이 부산·호남·경남 지역 등에서 몽고순간장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갈등을 겪다 결국 가처분 신청에 이른 것"이라며 "상표권을 박탈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지나친 덤핑을 자제해달라는 경고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조논란 등 큰 분란을 피하고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채 각자의 길을 걸어 온 만식, 복식 몽고간장 형제. 과연 다음 세대에도 평화로운 공존이 유지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