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유학자인 장복추(張福樞, 1815∼1900)의 ‘사미헌집’에 실려 있는 불개명설(不改名說, 이름을 바꾸지 않는 설) 중 일부를 인용한다.
『어떤 객이 나를 찾아와 나의 이름을 물어보고 마치 근심하며 슬퍼하는 안색이 있는 것 같이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이름이 사람의 가난을 부유하게 만들고 사람의 천함을 귀하게 만들 수가 있다”고 하며 나에게 이름을 바꾸기를 청했다.
이에 “이 이름은 바로 나의 조부께서 지어주신 것이니, 내가 어찌 감히 고치겠는가. 아! 가난하고 천한 문제는 또한 스스로 자신에게 돌이켜 반성할 일이 아님이 없다. 내가 만약 마땅히 해야 할 선(善)을 알아 선을 행하기를 부지런히 하면 하늘이 반드시 복을 내리는데 날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불초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조부께서 이름을 내려주신 본뜻을 체득하지 않고 자포자기를 달게 여기어, 지금 나이가 40세가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한 가지 선도 일컬을 만한 것이 없다. 가난하고 천한 것은 이치로 보아 그렇게 된 것이니, 이름을 고치고 고치지 않는 것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화와 복은 자기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장복추는 객이 개명하라는 구체적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소설가의 상상력을 덧붙여보겠다. 복추(福樞)서 복(福)은 말 그대로 ‘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추(樞)는 돌쩌귀,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 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의미한다.
결국 복추(福樞)란 이름은 복을 받으며 살라는 의미인데 거기에 더해 ‘길다’라는 의미를 지닌 성씨 장(張)이 더해져 평생 복을 받고 살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과유불급이라고 장복추는 상기 글을 쓰는 순간까지 복은 고사하고 가난에 허덕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객이 개명을 청한 듯하다.
장복추는 객의 청을 옛사람의 말 ‘화와 복은 자기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를 인용하며 사양했는데, 이는 맹자가 한 말로 공연히 이름 탓하지 말고 자신을 성찰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하튼 장복추는 이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매진해 영남 유학에 일가를 이루며 무려 400여명의 제자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제 최근 당명을 바꾼 ‘국민의힘’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참으로 아리송한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 굳이 당명을 변경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느냐에 대한 부분과 과연 국민의힘이 당명으로 적합하느냐에 대해서다.
먼저 당명 변경에 대해서다.
쉽게 패거리 짓고 쉽게 와해되는, 즉 냄비 근성에 함몰된 이 나라 정치꾼들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통합당이란 당명을 굳이 변경한 이유는 전혀 납득하기 힘들다.
아마도 천지개벽 차원으로 당을 쇄신하겠다는 의도로 당명을 변경한 듯 보이는데, 조소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음은 국민의힘이 정당명으로 적합하느냐에 대해서다.
이 대목 역시 기상천외하다.
무릇 모든 이름은 나름 의미를 지니듯 정당명은 그 정당이 지향하는 정체와 맞물려야 한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극히 피상적인 국민의힘이라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하에서 당명 변경은 흡사 2012년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명을 새누리로 변경한 전철을 모방한 듯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당명을 변경하고 자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던 일처럼 국민의힘도 정체성이 모호한 김 위원장 본인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위한 사전 포석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어난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