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부는 세방그룹 사정권

‘기업 저승사자’ 검은돈 냄새 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세방그룹에 세풍이 몰아쳤다. 국세청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움직인 만큼 눈길이 간다. 공교롭게도 세무조사는 이전부터 말이 많던 계열사를 상대로 이뤄졌다. 조사 배경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 세방건설 본사 ⓒ카카오맵

세방그룹은 지난 1960년 한국해운으로부터 출발했다. 창업주는 이의순 세방그룹 명예회장. 당시 회사는 소규모 해운 대리점에 불과했다. 이 명예회장은 세방기업을 설립하고, 세방전지를 인수하면서 사세 확장에 나섰다.

물류·전지
자산 2조원

두 회사는 세방그룹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세방(세방기업의 후신)은 물류업을, 세방전지는 ‘로케트 배터리’로 이름을 날리며 전지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 자산 2조원을 자랑하는 그룹이 됐다.

세방그룹은 2세 경영 체제다. 이 명예회장은 2013년 장남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지난 1984년 세방에 입사한 그는 30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5월 기준, 세방 최대주주는 계열사 이앤에스글로벌(18.52%)이다. 이 회장(17.94%)은 그 다음이다. 세방이의순재단(3.48%), 세방전지(2.07%)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외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모두 더하면 44%를 상회한다.


그룹은 2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지배 구조는 ‘이앤에스글로벌→세방→이하 계열사’로 이어진다. 상장 계열사는 그룹 핵심사 세방전지 한 곳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비상장사다.

최근 3년간(2017∼2019) 그룹은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했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6661억원서 6516억원으로 소폭 하락했지만, 지난해 7232억원으로 반등했다. 영업이익은 114억원, 114억원, 161억원이었다. 순이익 역시 314억원, 435억원, 549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역시 기대할만하다.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21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올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0.96% 상승한 64억원이었다. 반면 순이익은 1.49% 줄어든 152억원을 기록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국세청 조사4국 세무조사 착수

상승 분위기는 계속됐다.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직전년도에 비해 29.36% 상승한 2223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4.98% 감소한 50억원이었지만 순이익은 25.8% 증가한 128억원으로 마쳤다.

순항하는 듯했던 세방그룹은 최근 ‘세풍’을 맞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이 지난 6월 초 세방그룹 본사와 계열사 이앤에스글로벌을 상대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이번 세무조사를 조사4국서 담당했다는 점이다. 국세청 조사4국은 탈세 또는 비자금 조성 혐의가 명백한 경우에만 움직인다. ‘기업 저승사자’ ‘국세청 중수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조사4국 요원들은 세방그룹 본사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세방산업 ⓒ카카오맵

눈길이 가는 건 조사 대상이 된 계열사 이앤에스글로벌이다. 이곳은 세방그룹을 비롯해 오너 일가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 형성과 승계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앤에스글로벌은 SI(시스템통합) 업체다. 전산관리 등을 수행하는 IT기업이다. 세방그룹과 이앤에스글로벌의 관계는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앤에스글로벌은 그해 세방 지분 2.19%를 매수했다. 주식 매입 사유는 경영권 방어였다. 당시 오너 일가의 지분율 총합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미약한 지배력을 계열사로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앤에스글로벌은 굵직굵직하게 세방 주식을 확보했다. 기존 지분 2.19%는 3.04%(1999년), 14.06%(2000년), 19.24%(2001년)로 크게 늘었다.

2세 경영
전초기지

2005년에는 유·무상증자로 주식 총수가 늘어나면서 지분율이 18.15%로 조정됐다. 2006년에는 창업주 배우자로부터의 주식을 증여받았고, 일부를 처분했다. 2008년 들어서는 세방 주식을 재매입했다. 지분율은 20.42%로 크게 늘었다.

마침표는 2015년에 찍혔다. 우선주 존속기간 만료로 변동이 발생하면서 이앤에스글로벌은 18.52%를 보유하게 됐다. 주식 수의 변동은 오늘날까지 없다.

이앤에스글로벌은 이 회장 개인회사로 통한다. 주주 명부를 살펴보면 그렇다. 이 회장(80%)이 최대주주로 있다. 나머지는 이상희씨(10%)와 세방(10%)서 보유 중이다. 상희씨는 이 회장의 여동생이다.
 

종합해보면, 이 회장은 이앤에스글로벌을 통해 세방 주식을 간접적으로 보유하는 셈이다. 동시에 지배력 행사도 가능하다. 지배구조는 ‘이 회장→이앤에스글로벌→세방→이하 계열사’로 분석할 수 있다.

이앤에스글로벌의 전신은 세방하이테크다. 회사는 산업용 전지를 판매하면서 괜찮은 수익을 올렸다. 설립 이듬해 매출이 100억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다만 온전히 자력으로 이뤄낸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룹 계열사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룹 계열사 세방전지는 내부거래를 맺었다. 파악할 수 있는 내부거래 비중은 최소 10.70%서 최대 27.29%사이를 오갔다. 평균 20%의 비중이었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간에 회사는 세방 주식을 매입했다.

탈세? 
비자금?


세방서 1998년 2.19%에 불과했던 세방 지분율은 2001년 19.24%까지 상승한 바 있다.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된 데다 그룹 계열사의 도움까지 받고 있어, 자금 여력이 동반된 것으로 보인다. 성장을 통해 취득한 세방 주식은 이앤에스글로벌을 세방그룹 최대주주로 올려놨다.

동시에 회사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장도 행동에 나섰다. 그 역시 해당 시기에 세방 지분을 취득했다.

이 회장은 이앤에스글로벌 설립 이듬해부터 세방 지분을 매입했다. 기존 8307주(0.6%)서 8만주(1998년), 22만4000주(2000년)를 사들였다. 이 회장 지분은 110만7070주(11.07%)까지 올라섰다.

2005년에는 유·무상증자로 주식 수가 195만7587주(11.65%)로 조정됐다. 2006년에 들어서는 8만6970주를 매수, 204만4377주(12.17%)로 확대됐다. 2007년에는 15만주를 매도하면서 189만4377주(11.28%)로 줄어들었다. 이후 주식 수는 10년 넘게 유지됐다.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았다. 올해 3월 부친의 증여로 346만3022주(17.94%)를 확보한 게 이후 첫 변화다.
 

이 회장이 세방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인회사 이앤에스글로벌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로 배당금을 통해서다.

이앤에스글로벌은 분할 전까지 배당을 실시했다.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배당금 대부분은 이 회장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공시자료서 확인할 수 있는 배당액의 총합은 60억원가량이다. 이 회장은 48억원 정도를 쥘 수 있었다.


지배구조 핵심 이앤에스글로벌 타깃?
내부거래…오너 일가 곳간으로 지목

회사 분할은 2010년 이뤄졌다. 이앤에스글로벌과 세방하이테크로 나뉜 것.

보유하고 있던 세방 지분은 이앤에스글로벌에 넘어갔다. 세방하이테크는 대양전기공업에 팔렸다. 당시 매각대금은 80억원이었다. 이 회장은 두둑한 현금도 챙길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은 개인회사를 십분 활용해 오늘날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됐다.

일각서 제기하는 이 회장의 지분 매입용 자금 출처가 이앤에스글로벌로부터 비롯됐다는 시각의 배경이다. 이앤에스글로벌 내부거래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회사는 세방그룹 계열사와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앤에스글로벌은 성장세를 보였다. 별도 기준 매출액은 690억원, 747억원, 969억원, 724억원, 682억원이었다. 계열사 등으로부터 지급 받은 용역수익은 같은 기간 603억원, 634억원, 860억원, 474억원, 629억원 순이었다.
 

▲ 차량용 전지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매출액서 87.31%, 84.97%, 88.75%, 65.48%, 92.22%로 상당히 높은 수치다.

또 이앤에스글로벌은 2015년부터 손자회사들을 두면서 이들과도 내부거래를 시작했다. 그 연유로 내부거래 규모는 더 커졌다.

물론 SI 계열사 특성상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 있다. 그룹 계열사들의 전산을 통합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타 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게 부담일 수 있다. 다만 높은 내부거래로 매출이 형성되고, 배당으로 오너 일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칼끝
어디로?

이앤에스글로벌은 분할 이후에도 배당을 계속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회사는 1억원(1.44%·이하 배당성향), 2억원(14.71%), 2억원(8.95%), 2억원(14.07%), 2억원(13.26%), 2억원(13.96%) 등 모두 11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이앤에스글로벌은 상당한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 있기도 하다. 이익잉여금이란 벌어들인 이익 가운데 배당 등을 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된 금액을 말한다. 액수는 매년 증가해 10년 전 4억원에 불과했던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10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똑 닮은’ 세방그룹 내부거래 계열사는?

이앤에스글로벌은 지난 2018년 내부거래 비중이 직전년도 88.75%서 65.48%로 감소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일감 몰아주기 감시 범위를 중견그룹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 연장선서 비롯된 결과라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앤에스글로벌의 내부거래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비중은 65.48%서 92.22%로 크게 뛰었다.

이앤에스글로벌을 포함해 세방그룹 내 몇몇 계열사들은 일감 몰아주기 이슈서 자유롭지 못하다.

눈길이 가는 건 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으로 모두 가족회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앤에스글로벌의 경우, 이 회장이 80%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의 동생 상희씨가 10%, 세방으로부터 10%를 나머지 지분을 보유한다. 사실상 오너 일가 회사다.

부동산임대업체 ‘세방이스테이트’도 마찬가지다. 최대주주 세방(40.2%)에 나머지 지분은 이 명예회장(11.1%)과 장녀 이려몽씨(20.7%), 상희씨(28%)가 소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방이스테이트 역시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하다.

최근 5년간(2015∼2019) 세방이스테이트 매출액은 2억원, 18억원, 27억원, 37억원, 27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세방, 세방전지 등 계열사서 발생한 매출액은 0원, 17억원, 26억원, 36억원, 26억원 등이었다.

비중으로 따져본다면 0%, 93.51%, 96.13%, 96.81%, 94.67% 등으로 매우 높았다.

배당도 2017년부터 실시됐다. 금액은 2억원(25.53%·이하 배당성향), 4억원(49.59%), 4억원(29.91%)로 모두 10억원이 배당됐다. 주주 명부를 살펴보면 회사와 오너 일가 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축전지 부품 계열사 세방산업도 같은 맥락이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주주 구성이 오너 일가다. 심지어 지분율까지 같다. 최대주주 세방전지(40.2%)에 상희씨(28%), 려몽씨(20.7%), 이 명예회장(11.1%) 순이다.

최근 5년간(2015∼2019) 세방산업 매출액은 740억원, 674억원, 505억원, 491억원, 340억원으로 꾸준히 하락세다. 같은 기간 계열사에 비롯된 매출액은 685억원, 589억원, 426억원, 386억원, 183억원 등이었다.

비중은 92.57%, 87.92%, 84.41%, 78.64%, 54.03%로 줄어들고 있다. 다만 지난해까지 절반 넘는 매출이 계열사에서 발생한 점은 간과하기 어렵다.

배당도 이어졌다. 배당액은 세방이스테이트와 비교될 정도다. 같은 기간 21억원(43.43%), 16억8000만원(34.63%), 10억5000만원(40.43%), 6억3000만원(44.28%) 등이었다. 지난해에도 6억3000만원이 배당됐다. 하지만 당시 세방산업은 적자로 전환돼 순손실 4억원이 발생한 때였다.

동기간 세방이스테이트와 세방산업으로부터 오너 일가가 수령한 금액은 전체 70억9000만원 가운데 42억원가량이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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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