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강연계 BTS’ 김창옥의 힐링 메시지

상처 가득한 맨몸을 드러내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김창옥 강사는 현재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이들에게 거의 신격화된 존재다. 유머를 가미해 아픈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그의 강연은 듣는 이에게 위로와 힐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강연을 듣는 순간만은 왠지 모르게 현재의 아픔이 깨끗하게 잊히는 마력이 있다. 그가 ‘강연계의 BTS’라 불리는 이유도 그 힘 덕분이다. 아픔을 보듬어주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김 강사가 용기를 냈다. 강사라는 철갑을 벗고 인간 김창옥이라는 민낯을 보여주는 용기.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에서는 김 강사의 상처 가득한 맨몸이 보인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낸 김 강사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 ‘강연계의 BTS’로 불리는 김창옥 강사

‘소통전문가’라 불리는 김창옥 강사에게도 아픔이 있을까. 강연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못하다고 털어놓기는 하나,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픔이 그리 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스스로 소통전문가라 칭하는 그에게 인간관계서 오는 아픔이 크면 또 얼마나 크겠느냐는 얕은 편견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우울증만 두 번, 몇 년 전에는 정신과 치료도 받은 적이 있는 그였다. 반백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와 교감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그는 꽤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경험을 통해 깨우친 깨달음을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솔직하게 전하는 그의 이면에는 해묵은 숙제가 있었다.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아버지의 귀를 치료하는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아버지의 귀를 치료하는 과정, 이것은 사실 영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 자신이 주위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늘 바쁘게 빨리, 열심히 사는 동안 얻게 되는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영화를 통해 드러난다. 

영화는 그가 내면의 아픔과 불안을 직면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몇 개월을 담고 있다. 


아버지와 가족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조금은 더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는 영화 <들리나요?>의 김 강사를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서 만났다. “영화를 보고 부끄러웠고, 쪽팔렸다”고 말하는 그는 영화 촬영 이후 조금씩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숨겨져있던 속살을 내비친 작품인데. 기자간담회 때도 창피하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아마 그렇게 찍겠다고 했으면 안 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제가 보기엔 제가 너무 ‘돌아이’ 같더라. 내가 화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화가 많더라. 속내를 너무 드러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더 한 게 많았는데, 편집하고 드러낸 게 그 정도였다. 

-그렇게 자신의 민낯을 봤는데, 그 느낌은?

▲제일 먼저 선명했던 감정은 ‘부끄럽다’였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쪽팔린다’에 가깝다. 되게 당황스러웠다. 나조차 한 번도 못 본 내 등을 저 큰 스크린으로 본 것이다. 메이크업을 안 한 내 얼굴을 많은 사람과 함께 본다는 것에 당혹감이 있었다.
 

▲ ▲▲ 김창옥 강사 ⓒ트리플픽쳐스

-평소에 강연할 때 자신이 가면을 쓴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게 민낯을 보여주고 나니 후련하다는 감정은 없었나?

▲사실 가면이 나 자신을 숨긴다는 의미의 가면이 아니라, 영화서 표현하는 캐릭터의 형태로 사용한 가면이었다. 강연할 때 나는 광대처럼 군다. 사실 광대 표정을 안 하고 싶을 때도 많다. 광대 표정을 지어야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 그래야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간다. 


남에게 보이는 나와 실존의 나가 있었는데, 실존의 나를 보여줬다. 시원하긴 하다. 이제 커밍아웃을 했으니. 이런 면은 나 혼자만 죽을 때까지 알고 있을 부분이었는데, 다 깠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나는 남에게 들킬까봐 두려운 마음에 계속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내 모습을 다 알고 있는데, 또 내게 관심조차 없는데 나 혼자만 노심초사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귀를 치유하는 과정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건가?

▲큰딸과는 잘 지냈는데, 쌍둥이 아들들에겐 엄하고 무뚝뚝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서 문제를 일으켜 상담을 받아보니 아빠와 소통이 없어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생각해 보니 제가 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못했다. 그게 제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묵은 숙제를 풀어야겠구나, 아버지와 못했던 소통부터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부끄럽고 쪽팔렸지만 후련하다”
“영화 속 모습 ‘돌아이’ 같았다”

-영화서 보면 비판에 취약한 면이 나온다. 비속어를 강렬하게 쓴다. 그런데 일부 지인 중에 비판적인 요소가 강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괜찮았나.

▲3명 정도는 의절했다. 하하. 나한테 절대 인터뷰를 보여주지 않았다. 나도 시사회 가서 처음 본 것이다. 배우 조달환은 먼저 사과도 했다. 달환이는 ‘영화를 봤는데 내가 뭐라고 말을 저렇게 했는지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서 내가 ‘아니다. 괜찮다. 그러니 이제 그만 보자’라고 했다. 하하. 농담이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 말이 맞다. 하지만 70은 맞아도, 20∼30은 너희 시점으로 본 거다’라는 생각. 내가 저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 방식의 삶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칼로 훅 찌르는 느낌도 있었다. 언어가 좀 강했다.

-여행작가로 나오는 분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김 강사가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올리는 모습을 보고 힘들게 사는 것 같다고 여겼다. 남에게 보이는 나에 집착하는 듯이 말했는데, 실제로 그런가. 

▲사실 그 말은 좀 서운했다. 왜냐면 그건 그의 시선으로 날 바라본 것이기 때문이다. 김미경 강사는 홍보를 정말 잘한다. 100만명의 구독자가 있다. 정말 잘한 거다. 난 스스로 고집이 있어 홍보를 잘 안 했다. 교묘하게 치고 빠지고 사라지는 게 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도 안 했다. 나는 내 개인의 삶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안 했는데, 책을 내든 전국투어 콘서트를 하든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전혀 관리를 안 한 게 됐다.
 

▲ 강연 중인 김창옥 강사 ⓒ트리플픽쳐스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홍보가 잘 안 돼서 서비스를 못 받는 상황이 나왔다. 내 최소한의 양심은 책을 냈으면 적어도 홍보를 해야 하는건데, 그냥 책 소개만 달랑 올리면 인간미가 없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들어서 홍보하려 했던 거고, 숙제하듯이 한 건데, 마치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여겼다. 그 부분은 사실 많이 서운했다.

-그러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는가.

▲강사 김창옥으로서는 의식을 많이 한다. 강사로서 깔끔해 보여야 하는 게 있어 옷을 가린다거나 수염을 기르지 않는 것이 그 예다. 누군가 돈 많이 벌었다고 할까봐 시계도 안 찬다. 어쩌면 이 모습이 나로 못 사는 셈이다. 평소 비속어도 안 쓰고 싶고, 웬만하면 예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긍정적인 방향의 의식적인 행동을 하는 건데, 정반대로 해석을 해버리니까 화도 좀 나고 그러더라.


-아버지의 귀는 좀 어떤가?

▲맨 처음에는 귀 수술을 해드리려고 한 게 아니라 검사만 받으려고 했다. 어차피 안 들릴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소리를 듣게 되시지 않나. 근데 소리가 들리는 거랑 언어가 해석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소리와 언어가 매칭이 돼야 한다. 언어 재활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엄마가 해야 한다. 엄마는 까막눈이다. 엄마가 그걸 하기엔 너무 짜증이 나는 거다. 단순하지가 않다. 

그래서 언어 재활센터에 보냈었다. 버스를 30분 넘게 타고 가야 하기에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갔다 오셔서 2시간을 짜증냈다고 한다. 그래서 택시비를 드리려고 했다. 택시는 너무 비싸서 아깝다고 못 타신다고. 그래서 결국 아버지가 안 한다고 하셨다. 

-너무 희망적이지 않은 결과 아닌가. 

▲정말 희망적이지 않다. 하하. 어디서 얘기하기도 아름답지도 않고.

-자료에 보면 이 영화를 개봉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한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건 많이 떨린다. 강연의 경우에는 사람이 많이 안 와도 돈을 준다. 이건 사람이 오는 대로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더욱 홍보를 열심히 한다. 사실 처음에는 개봉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극장서 엄마와 아빠와 처음 영화를 보는 셈이다. 엄마는 글을 못 읽으셔서 외화를 못 보고, 아버지는 못 들으셔서 한국 영화를 못 본다.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

근데 이 영화는 가능하다. 그것만으로 엎드려서 감사드린다. 그래서 개봉 안 해도 좋다고 했더니, 김봉한 감독이 내 돈은 어떡하냐고 해서, 개봉까지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분이라도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아버지 귀, 희망적이진 않은 결말”
“코로나로 오히려 성숙해지는 단계”

김창옥 강사에게 <들리나요?>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아직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야 알 것 같다. 

-공고를 나와 군대 다녀와서 대학에 갔다. 성악과였다. 전혀 상관없는 강연의 길로 접어들었다. 살아온 굴곡을 보면 여러 시련이 있었다. 어떻게 강연을 선택하게 된 것인가. 

▲강연을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노래를 계속했다. 합창단 단원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할 때 잘한다고 정의를 내린다. 나는 언젠가 남들이 나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이 나에게 잘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안 주면 사실 잘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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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서 ‘기사 좋다’고 하는데, 돈을 안 준다면 그건 취미가 된다. 나의 노래는 페이를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한테 ‘성악을 하면 잘 하겠다. 재능이 있다’고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였다. 내가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을 찾다가 강연을 하게 됐다. 

-영화는 소통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영화를 통해 고백을 많이 했다. 사실 강연을 봐도 다른 거장과의 강연과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김 강사의 가장 큰 무기는 일상의 이야기라고 본다.

▲나는 거장의 학문을 공부하지 않았다. 심리학이나 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현장에서는 학문적인 언어보다는 현장의 언어가 통한다. 사람들이 쓰는 용어로 다가가야 그들도 마음을 연다. 나는 실제로 비속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속어를 좋아해서 그런 표현을 많이 쓴다. 

정형화된 아나운서 톤이 어쩌면 나랑은 더 잘 맞는 용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유통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폭넓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다보니 일상의 언어라는 무기를 갖게 된 것 같다. 

-요즘 SNS가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남과 비교하면서 더욱 박탈감을 느끼는 삶으로 인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SNS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목욕물이 더럽다고 물만 버려야지 그 안에 있는 아이를 버릴 수는 없지 않나. SNS는 많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이 안에 아이는 있다고 생각한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고급 콘텐츠가 늘어난다면 유튜브든 SNS든 얼마든지 깨끗한 채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영상산업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종목은 게임과 포르노다. 유튜브도 어쩌면 시작단계다. 점차 고급 콘텐츠가 나오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연계도 상황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떻게 살고 있나. 

▲영화보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요즘 좀 지쳐있는 것 같다. 강연은 내 인생을 다 먹어버린 철갑이었다. 그 철갑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지키는 무기였다. 지금은 그걸 벗고 싶다.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소명은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의도치 않게 쉬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제주도에 있었는데 유튜브만 봤다. 제주도서 서울서 해도 되는 유튜브만 본 것이다. 살면서 쉼이라는 건 내게 늘 부정적이었다. 

아버지가 석공 일을 하셨는데, 비가 오면 일을 못 했고, 추우면 일을 못 했다. 그러면 불안감이 생긴다.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화투를 치셨다. 그리고 와서 엄마를 때리고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내게 휴식이란 문제만 일으키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여태 일하려고 쉬었다. 쉬려고 일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그냥 몽땅 쉬어버렸다. 처음에는 쉬고 있는 내가 너무 어색했는데, 이제 조금씩 자연스럽게 쉬고 있다. 몸이 많이 지친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몸도 좋아졌다. 강연중독자가 억지로 쉬면서 좋아진 것이다. 

-오랜 굴곡을 지나왔는데, 혹시 스스로 듣고 싶은 말이 있나.

▲애썼다. 혹은 욕봤다. 수고했다와는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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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