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 2팀] 함상범 기자 = 인간의 그릇된 욕망은 파멸을 불러온다. 잘못된 욕심으로 저지른 죄로 인한 죄책감에 짓눌려,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 잘못의 부메랑은 어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영화 <결백>은 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장례식장서 출발한다. 추인회(허준호 분) 대천 시장이 능구렁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장례식장을 찾고, 막걸리를 들이킨다. 죽은 사람을 고이 보내줘야 하는 장례식장서 들리는 이야기는 추인회를 향한 찬양이다. “추 시장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산다고.”
그러다 곧 사람들이 픽픽 쓰러진다. 막걸리를 먹은 사람들이다. 막걸리에는 농약이 들어있었다. 죽은 남편의 부인이자 상주였던 화자(배종옥 분)는 막걸리에 농약을 탄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우연히 이 소식을 알게 된 대형로펌의 변호사 딸 정인(신혜선 분)은 10여년 만에 잊고 지내고 싶었던 대천을 찾아 화자 앞에 선다.
정인은 아버지의 폭력에 못이겨 밤중에 서울로 도망쳤고, 그 이후로는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 오랜 만에 만났지만, 반가울 틈이 없다. 치매에 걸린 화자는 딸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하기 위해 변호를 자처한 정인은 어딘가 이상한 흔적을 찾아낸다. 이상한 남성이 집을 들쑤시는가 하면, 대천의 깡패들은 ‘대천을 떠나라’며 폭력을 한다. 증인으로 나서는 사람들은 물론 엄마의 변호사였던 사람도 행동이 의심스럽다. 정인은 우연히 알게 된 초등학교 동창 양 순경(태항호 분)과 손을 잡고 음모를 파헤친다.
영화는 일직선이다. 큰 사건이 일어났고, 정인이 그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구조다. 커다란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낸다. 개연성도 상당히 높고, 어설픈 구석이 없다. 상당한 몰입감을 유지하면서 진실 앞으로 전진한다.
<사생결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조감독 출신인 박상현 감독은 데뷔작부터 재능을 증명한다. 자칫 하나라도 어설프면 몰입감이 순식간에 깨지는 스릴러 장르인데, <결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하게 이야기를 구성한다.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다.
스릴러 장르 영화의 기본을 지켰을 뿐 아니라 후반부 감정 신에서도 눈물샘을 자극한다. 딱히 특별한 메시지나 주제의식으로 삼을만한 것이 보이지 않으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일부 신파스러운 장면과 오글거리는 대사가 있기는 하나,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결백>의 가장 큰 미덕은 신혜선의 발견이다. 120분 동안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끌고 간다. 정인이 바라보는 것이 곧 관객의 시선인 작품이다. 커다란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것을 보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화자다. 막대한 분량은 물론, 다양한 사건과 새로운 비밀을 파헤치는 부분과 함께 하이라이트 부분서 커다란 감정 표출까지, 정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상당하다.
신혜선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날 선 긴장감이 섞인 모든 장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법정에서의 분노, 수사할 때의 명석함, 엄마 앞에서의 슬픔 등 여러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인의 톤을 유지한다. 드라마서 꾸준히 자신의 입지를 쌓아올린 그의 내공이 <결백>서 온전히 드러난다.
원톱 영화나 다름 없는 <결백>은 신혜선의 필모그라피 중 가장 빛나는 작품으로 보인다. 영화계서 최근 2~30대 여주인공을 할만한 배우들이 많지 않았던 상황에, 신혜선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배종옥은 명품이다. 특수분장으로 인해 표정 연기가 어려운 상황서 눈만으로도 온전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후반부 정인과 화자의 면담 신에서, 배종옥이 보인 퍼포먼스는 엄청나다. 명배우란 어떤 것인지 충분히 보여준다.
국내 영화 매체서 충청도는 전라도나 경상도에 비해 관심이 적은 지역이었다. 경상도나 전라도 캐릭터는 딱 떠오르는 인물이 많지만, 충청도는 특별히 없다. 이번에는 충청도가 배경이다. 추인회 역의 허준호는 충청도 인물의 가이드를 던져준다. 능구렁이 같은 대사를 툭툭 던져내는 의뭉스러운 추인회는, 앞으로 충청도 인물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히 놀랍다.
주요 배우들 뿐 아니라 화자의 아들이자 지적 장애아 정수 역의 홍경, 부장검사 역의 정인겸, 양순경 역의 태항호 등 이야기를 풍성하게 꾸며주는 조연들의 연기도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촘촘하게 짜여진,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명연기, 후반부 터지는 반전과 매끄러운 결말 등 <결백>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위축된 한국 영화계의 희망을 쏠 작품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아 관객이 많이 들지는 의문이나 작품성 면에서, 특히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는 오래도록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