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맥스 황태자의 승계 숙제

아버지 잘 만나…금수저 든 쌍두마차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코스맥스그룹이 2세경영을 시작한다. 창업주의 두 아들이 키를 잡게 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업계 전반이 타격을 입은 상황인 만큼 데뷔전도 만만치 않다. 과연 두 형제는 잘 해낼 수 있을까.
 

▲ 코스맥스

코스맥스그룹은 세계 1위 ODM(화장품 제조업자 개발 생산) 기업이다. 창업주는 이경수 회장. 그는 지난 1992년 회사를 세워 연구개발(R&D)과 해외진출에 방점을 찍었다. 그룹은 2000년대 초반 코스닥에 상장됐고, 성장을 거듭한 끝에 ‘1조 클럽’ 고지를 밟았다.

세계 1위
1조 클럽

최근 코스맥스그룹은 2세경영에 진입했다. 창업주 이 회장은 지난 3월20일, 대표이사직을 내려놨고 경영권은 두 아들에게 넘어갔다. 장남은 이병만 코스맥스 부사장, 차남은 이병주 코스맥스 경영지원본부 부사장이다. 두 형제는 그룹 핵심사 ‘코스맥스’와 지주사 ‘코스맥스비티아이’를 각각 이끌게 됐다.

코스맥스그룹은 지난 2014년 3월 코스맥스비티아이를 분할했다. 신설된 코스맥스는 사업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코스맥스비티아이는 존속법인으로 지주회사가 됐다.

그룹은 두 회사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코스맥스는 14개 법인에, 코스맥스는 12개 법인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형제는 앞으로 이 두 곳을 이끌며 사실상 그룹 전체를 진두지휘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코스맥스와 코스맥스비티아이 대표이사직서 물러났지만 등기임원직은 유지했다. 다각도서 2세경영을 조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장남 이병만 신임 코스맥스 대표이사는 1978년생으로 홍익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5년 코스맥스에 대리로 입사했다. 이 대표는 ‘중국통’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경력 대부분을 중국서 쌓았다. 이 대표 입사 당시 그룹은 중국 진출을 꾀하고 있었다.

그룹은 중국 상해시 정부서 외국인 투자승인을 받아냈다. 공장은 2005년 4월 가동됐는데 국내 ODM 업계 중 최초였다.

이 대표는 회사 태스크포스(TF)서 ‘코스맥스차이나’ 설립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는 코스맥스 중국 법인서 물류·구매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중국 대학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경수 회장 대표이사 물러나
두 아들 지주·핵심사 대표로

이 대표는 2014년 코스맥스 마케팅본부 이사와 코스맥스차이나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 코스맥스 경영지원본부 상무를 지냈고, 이듬해 코스맥스경영지원본부 전무와 코스맥스차이나 전무로 올라섰다.

이 대표는 2016년 코스맥스비티아이 전무에 이어 2018년 코스맥스비티아이 부사장이됐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코스맥스 마케팅본부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차남 이병주 코스맥스비티아이 신임 대표이사는 ‘미국통’으로 여겨진다. 이 대표는 1979년생으로 미국 미시간대학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코스맥스 입사 시기는 지난 2008년이다. 대리로 입사한 이 대표는 그룹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코스맥스엔비티’서 미국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2014년 코스맥스 경영지원본부 이사를 거쳐 2015년 코스맥스 경영지원본부 상무와 코스맥스 미국 상무를 맡았다.
 

▲ 이병만 코스맥스 신임 대표이사와 이병주 신임 대표이사

이 대표는 이듬해 코스맥스 경영지원본부 전무와 코스맥스엔비티 미국 법인장으로 승진했다. 2017년에는 코스맥스 엔비티 전무가, 2018년에는 코스맥스엔비티 미국 대표가 됐다.

지난해 6월 코스맥스엔비티 부사장을 맡다가 그해 10월부터 코스맥스미국 대표와 코스맥스 경영지원본부 부사장에 올랐다.

이 회장은 경영서 한 발짝 물러섰지만 지분 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코스맥스그룹 지주사 코스맥스비티아이 최대주주는 이 회장(23.08%)이다. 부인 서성석 코스맥스비티아이 회장은 2대주주(20.62%)로 있다. 장남 이병만 대표는 3%, 차남 이병주 대표는 2.77%를 지분을 쥐고 있을 뿐이다.

오너 일가를 비롯해 특수관계자 지분을 포함하면 61.04%다. 사실상 회장 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통
미국통

눈길이 가는 건 ‘믹스앤매치’와 ‘레시피’라는 회사다. 믹스앤매치와 레시피는 코스맥스 2세의 개인회사와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믹스앤매치 주주 구성은 단 두 명으로 장남 이병만 대표와 차남 이병주 대표다. 이들은 믹스앤매치 지분을 각각 80%, 20%를 소유하고 있다.

레시피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장남이 20%, 차남이 80% 지분을 가지고 있다. 두 회사는 사실상 ‘형제회사’와 다름없는데 두 회사 사업 영역도 대동소이하다. 믹스앤매치는 ‘화장품 개발, 주문 화장품 생산’을, 레시피는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개발·판매’를 영위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서 확인할 수 있는 믹스앤매치 재무상황은 2013년부터다. 그해부터 2015년까지 믹스앤매치 매출액은 48억원, 50억원, 72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3년간 믹스앤매치는 특수관계자 거래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016년부터 내부거래가 발생했다. 내부거래는 레시피 등 코스맥스그룹 관계기업과 이뤄졌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믹스앤매치 매출은 87억원, 132억원, 168억원, 198억원 등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내부거래 비중은 4.9%를 시작으로 10.8%, 27.7%로 늘었지만, 지난해 21.2%로 감소했다.

레시피서도 내부거래가 이뤄졌다. 거래 기업은 믹스앤매치다. 레시피는 상품 상당량을 믹스앤매치로부터 매입했는데 이는 원가 관리 차원인 것으로 해석된다.


전자공시시스템서 확인할 수 있는 레시피 재무상황은 2015년부터다. 레시피는 그해부터 지난해까지 믹스앤매치로부터 93억원, 124억원, 293억원, 285억원, 226억원어치 상품을 매입했다. 같은 기간 레시피가 판매한 상품 원가서 75.3%, 91.5%, 98.9%, 71.4%, 93% 등을 차지한다.
 

▲ 코스맥스 본사

믹스앤매치와 레시피는 코스맥스그룹 지주사 코스맥스비티아이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믹스앤매치는 기존 1만주를 소유한 상황서 2017년 7월14일 시간외매매를 통해 7만8350주를 취득했다. 이어 그해 11월17일 20만4130주를 매수했다. 2018년 12월27일에는 장외매수로 24만3000주를 매수했다.

레시피는 지난 2017년 7월14일 코스맥스비티아이 주식 7만8350주를 매입했으며 그해 11월17일 20만4130주를 사들였다. 레시피는 2017년 11월29일 24만3000주를 매입했다.

형제회사
몇 군데?

믹스앤매치와 레시피는 각각 코스맥스비티아이 지분 5.58%(53만5480주), 52만5480주(5.47%)를 형성해둔 상태다. 두 형제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회사는 ‘쓰리애플즈코스메틱스’와 ‘코스맥스바이오’다. 두 회사는 코스맥스그룹 계열사다.

쓰리애플즈코스메틱스는 화장품 및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제조하는 업체다. 이들 형제는 쓰리애플즈코스메틱스서 각각 25%, 24%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51%는 코스맥스서 소유한다.


쓰리애플즈코스메틱스는 안정적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다. 코스맥스서 원료를 공급 받아 제품을 만들어 다시 코스맥스에 납품하는 구조다.

형제가 처음부터 지분을 보유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지분 보유 시기는 2013년부터다. 그해부터 2015년까지 쓰리애플즈코스메틱스는 그룹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이어갔다. 다만 규모는 크지 않았고 그마저도 줄어드는 추세였다. 같은 기간 28.7%(63억원/220억원), 21%(71억원/339억원), 11.1%(43억원/394억원) 등이다.

하지만 2016년부터 내부거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해 24.8%(111억원/447억원)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41.9%(191억원/456억원), 46.5%(216억원/465억원), 45.69%(229억원/502억원) 등으로 늘었다. 2013년 63억원에 불과했던 내부거래 매출액은 지난해 229억원으로 뛰었다.
 

▲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두 형제는 코스맥스바이오서 나란히 10.18% 지분을 갖고 있다. 코스맥스바이오는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데 실적 전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5년간 (2015~2019년) 코스맥스바이오 연결 기준 매출액은 648억원, 798억원, 897억원, 1168억원, 1532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2017년까지 51억원, 34억원, 44억원 등의 영업손실을 봤다. 2018년에는 56억원으로 ‘플러스’ 전환됐고, 지난해에는 26억원 이익을 기록했다. 다만 당기순손실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2억원, 36억원, 28억원, 26억원, 42억원이었다.

최근 코스맥스그룹은 코로나19 후폭풍을 맞았다. 마스크 소비가 대폭 늘어난 만큼 화장품 소비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룹 대규모 생산기지가 중국에 있어 화장품 원료 조달에 차질이 발생했다. 공장 가동률도 예전같지 않았다.

2세 경영 시작 지분 승계는 아직
코로나19로 만만치 않은 데뷔전 

다만 그룹은 손 소독제로 빈 구멍을 메우고 있다. 손 소독제 소비가 대폭 늘어난 만큼 이른바 ‘특수’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독제 관련 매출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확산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만큼 국내를 비롯한 해외서도 상당한 수요가 발생하는 추세다. 코스맥스 1분기 손 세정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0배 이상 증가했다. 세정제 매출 규모 역시 코스맥스 국내 전체 매출의 10% 수준까지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맥스는 손 소독제 생산량을 끌어 올릴 것으로 점쳐진다.

코스맥스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코스맥스는 그해 초 손 세정제 시장에 진출했다가 때 아닌 특수를 맞기도 했다.

장남 이병만 대표가 이끌게 될 코스맥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1조3306억원을 달성했다. 직전년도 대비 5.6% 증가한 액수다. 영업이익은 3.1% 증가한 539억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이익은 13% 하락한 183억원을 기록했다.
 

차남 이병주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코스맥스비티아이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4683억원을 기록했다. 6.8% 증가한 수치다. 반면 직전년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모두 손실로 돌아섰다. 코스맥스비티아이는 영업이익 241억원서 ‘-73억원’으로 주저앉았다. 125억원 당기순이익은 ‘-139억원’으로 추락했다.

이 회장은 대표이사직서 물러나기 전 세 가지 중점 추진 사항을 꼽았는데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고객사 글로벌 시장 진출 맞춤 지원’ ‘밸류 체인 구성원과 협력 강화’ ‘R&D·생산·영업 부문의 역량 강화’ 등이었다. 당시 그는 “지난 27년간 코스맥스는 ‘꿈은 오직 최고의 파트너’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객 만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며 “이제 우리가 변화의 중심에 서서 모두가 동조하는 뷰티 생태계를 만들자”고 강조한 바 있다.

코스맥스그룹은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다만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불확실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경영 지휘
과제는?

삼성증권 박은경 애널리스트는 “2020년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이전 추정치 대비 각각 1%, 29% 하향 조정한다”며 “코로나19 영향이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 확산되고, 정점을 1~3월서 4~6월로 가정했을 때 2020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5%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4%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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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