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혈액백 스캔들’ 막전막후

목 좋은 자리 딴 나라 주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녹십자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혈액백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제재를 받았지만 효력 정지 가처분이 인용됐다. 다만 처분 취소 소송서 패소한다면 2년간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사업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녹십자 혈액백 사업은 매각될 예정이다. 빈자리는 누가 대신하게 될까.
 

▲ 녹십자`

혈액백은 말 그대로 혈액을 담는 용기다. 둥그스름한 사각형 모양으로 혈액을 저장한다. 혈액사업서 혈액백은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혈액백에 혈액이 저장돼야 비로소 전국 수요처로 이송될 수 있다.

혈액 사업
유통 핵심

혈액백 수요의 대부분은 헌혈기관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다. 특히 적십자사는 국내 혈액공급 90%를 도맡는다. 적십자사는 혈액백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입찰공고를 낸다. 압도적 경쟁력을 보인 곳이 있는데 바로 녹십자그룹이다.

녹십자그룹은 혈액백을 적십자사 등에 사실상 ‘독점 공급’했다. 낙찰점유율은 적십자사 70%, 한마음혈액원 100%에 달한다. 그룹 내 혈액백 담당 계열사는 ‘녹십자엠에스’다. 녹십자엠에스는 국내시장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녹십자엠에스 자체 분석 결과 지난 5년간(2014∼2018) 점유율은 평균 72% 정도다.

같은 기간 혈액백 매출은 172억원, 211억원, 206억원, 204억원, 244억원이었다. 녹십자엠에스 전체 매출서 20%대다. 많게는 30%까지 차지할 때도 있었다.


별 탈 없이 지속되던 녹십자 혈액백 사업은 ‘입찰 단가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녹십자엠에스에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을 단행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녹십자엠에스는 태창산업과 2011년, 2013년, 2015년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서 예정 수량을 7대3으로 나눴다. 투찰 가격도 합의했다. 두 회사는 사전 합의대로 각각 70%, 30% 물량을 투찰했다. 이들은 모두 낙찰자가 됐다. 계약 금액만 모두 443억원이었다. 투찰률은 모두 99% 이상이었다.

공정위는 담합 배경을 ‘낙찰자 선정 방식 변경’으로 봤다. 당시 낙찰자 선정 방식은 ‘최저가 입찰제’서 ‘희망수량 입찰제’로 변경됐다. 최저가 입찰제는 1개 업체 100% 납품이다. 반면 희망수량 입찰제는 최저가 입찰자부터 희망 예정 수량을 공급하고, 후순위자가 나머지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결국 전체 물량을 담당하지 못하더라도 가격을 낮춘다면 원하는 물량을 낙찰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공정위는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이 가격 경쟁을 피하기 위해 담합을 이뤘다고 봤다. 녹십자엠에스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58억200만원을 부과 받았다. 녹십자엠에스와 소속 직원 1명은 검찰에 고발당했다.

녹십자엠에스 담합 의혹 사실로
패소하면 2년 동안 참여 불가

공정위는 이를 ‘악성담합’으로 봤다. 공정위는 “국민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혈액백 구매 입찰에 장기간 진행된 담합 행위를 제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대다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헌혈 과정에 필요한 용기를 통해 취한 부당이익을 환수했다”고 평가했다.


설상가상으로 녹십자엠에스는 적십자사로부터 ‘부정당 업자 제재 처분’을 받았다. 부정당 업자 제재란 입찰담합 등 부정행위가 드러난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다.

제재 결과 적십자사와 거래가 중단됐다. 녹십자엠에스는 그달 10일 ‘거래처와 거래중단’을 고시했다. 제재 기간은 2022년 1월20일까지로 2년 동안 혈액백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됐다. 녹십자엠에스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처분 취소 민사소송’ 카드를 꺼내들었다.

녹십자엠에스는 지난달 13일 공시를 통해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며 민사소송 선고 전까지 입찰 자격을 임시로 부여받았다고 전했다. 승소 시 사업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패소할 경우 2년간 사업이 불가능하다. 공고했던 혈액백 선두주자 자리가 위태로운 모양새다.

같은 날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사업 부문 분할을 예고했다. 사실상 혈액백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해석이다.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부문만 따로 떼서 전문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다. 신설 회사명은 ‘녹십자혈액백’이다.

녹십자엠에스는 이를 전부 매각할 예정이다. 매각이 어려울 경우 신설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할 계획이다. 녹십자엠에스 아래 자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분석된다.

분할 명분은 ‘전문성 제고’와 ‘경영 효율화’다. 실제로 녹십자엠에스는 2018년에 이어 지난해에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녹십자엠에스 매출액과 영업손실, 당기순손실은 차례로 863억원, -59억원, -112억원이었다.

담합 적발
2년 정지

지난해 매출액은 8.99% 상승한 94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24.93% 상승했지만 -44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손실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었다. 무려 45.61% 감소한 -163억원이었다.

혈액백 사업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재무구조 개선 필요성이 부각된 만큼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녹십자엠에스 혈액백 사업 분할 예정일은 오는 5월1일로 해당 안건은 주주총회서 통과 여부가 갈릴 예정이다. 주총은 이번달 24일 열린다.

안건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통과될 전망이다. 녹십자엠에스 최대주주는 ㈜녹십자로 특수관계인과 자기 지분 합은 63.24%다.

녹십자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선고 전까지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 참여 자격이 있다”며 “혈액백 사업부가 녹십자엠에스서 벗어난다면 혈액백 입찰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녹십자엠에스가 사업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녹십자엠에스가 직격탄을 받은 사이 약진이 관측되는 업체가 있다. 독일계 다국적 기업인 ‘프레지니우스카비’로 글로벌 헬스케어 회사 프레지니우스 자회사다. 현재 100여개 나라에 혈액백을 공급한다.
 

▲ 혈액백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혈액백 세계시장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지난해 3분기 녹십자엠에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혈액백 및 관련기기’ 상위 업체 중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이름을 올렸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북미·유럽·아시아 지역서 1위를 기록했다. 매출액만 12억3600만달러. 한화로 1조5000억원에 가깝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국내에 2개 법인을 뒀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와 프레제니우스메디칼케어다. 이 중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가 혈액백 사업을 진행 중이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의료기기와 수액제, 자가수혈 및 임상영양에 전문 치료제를 제공한다. 법인은 지난 2009년 설립됐다.

다국적 기업
시장에 입성?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2017년 말 국내 혈액백 시장 진출을 밝혔다. 당시 박주호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대표는 “국내 제품으로만 공급하던 혈액백 사업에 다국적 기업이 참가해 우수한 품질과 유사 시 안정적 공급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2012년부터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장벽에 가로막혔다. 입찰 조건 때문이었다.

적십자사는 지난 2013년 4월 입찰공고에 ‘국내 직접 제조가 가능한 자’라는 조건을 신설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혈액백을 해외서 제조했다. 2018년 ‘국내 직접 제조’라는 제한이 풀리면서 문이 열렸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그 해 4월, 160억원 규모의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에 도전했다.


하지만 포도량 미달로 고배를 마셨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미 100여개 국가서 자사 혈액백을 사용하고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입찰 최종 낙찰자는 녹십자엠에스였다.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이중·삼중·사중백 5개 품목서 모두 낙찰자로 선정됐다.

시민단체 역시 성명을 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적십자사가 입찰공고와 다르게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 학계와 해외 혈액백 사용국 대부분은 포도당과 분리된 과당 전체량을 합산한다”며 “유독 적십자사는 과당을 불순물로 보고 제외해 전체 포도당 함량이 미달된다며 탈락시켰다”고 강조했다.

약 6개월 뒤 열린 국회 국정감사서도 입찰 관련 지적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적십자사 국감서 “혈액백 입찰을 둘러싼 적십자와 녹십자 관계는 동맹을 넘은 담합관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 박경서 적십자 회장 ⓒ적십자사

신 의원은 “입찰 공고 때마다 입찰 조건이 자꾸 변동된다”며 “결국 녹십자엠에스 등 국내기업만 낙찰됐다”고 밝혔다. 당시 신 의원은 적십자사 감사실이 작성한 ‘혈액관리본부 혈액백 구매계약 관련 민원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지난 2012년 적십자사는 입찰자격에 ‘3년간 연 13만 유니트 이상 납품 실적’ 요건을 추가하려고 했다. 당시 국내 혈액백 대부분이 녹십자엠에스서 비롯된 점을 미뤄봤을 때, 신규업체는 진입하기 어려웠다.

회사는 아예 사업 매각 예정
칠전팔기 해외기업 기회 얻나

다만 적십자사 감사실은 그해 12월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해당 요건은 삭제됐다. ‘국내 제조시설 생산’이라는 요건도 지난 2013년 추가됐는데 결국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국내 혈액백 시장서 철저히 배제된 셈이다.

당시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은 “전혀 죄가 없다고 해도 질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투명성 강화 방안 보고를 요청했고, 박 회장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지난해 5월 혈액백 낙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적십자사는 혈액백 이중·사중백 긴급 공고를 게재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최종 낙찰자가 됐다. 당시 경쟁자는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이었으며 낙찰금액은 45억원가량이었다.

일각에선 녹십자엠에스 혈액백 사업 전망이 흐릿해지면서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측한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측은 <일요시사>에 “올해 계약 일정에 맞춰 입찰을 통한 혈액백 공동구매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앞서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모기업 프레지니우스 슈테판 슈투름 회장은 지난 2018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서 혈액백 사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슈투름 회장은 적십자사 등 혈액백 입찰 참여에 대해 “프레지니우스가 한국 시장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생각한다”며 “프레지니우스 포트폴리오 중 한국서 선보이는 제품 수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제품도 한국서 출시할 예정이다. 한국 소비자를 위해 어떤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적절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프레지니우스 제품은 경쟁품 대비 적절한 가격에 선보일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고, 제품과 서비스는 품질 측면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며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낙찰 경험
언제 시작?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매년 흑자를 내고 있지만 실적은 하락세다. 2016∼2018년 회사 매출은 655억원, 649억원, 640억원 순이다. 영업이익은 59억원, 46억원, 23억원으로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32억원, 18억원, 5억원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9.0%, 7.1%, 3.6% 이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지난해 5월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서 낙찰자로 선정돼 그해 8월부터 혈액백을 공급하고 있다”며 “올해 역시 적십자사 혈액백 수급 계획에 따라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적십자사 회장의 읍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혈액 수급난으로 적십자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4일,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은 호소문을 통해 “전 국민 헌혈과 혈액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적십자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에 대응해 등록헌혈자 헌혈 참여 요청, 약정단체 헌혈 확대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혈액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회장은 “개인 헌혈자 수가 지난해 보다 2만명 이상 감소했고, 2월2일까지 헌혈 예정이었던 145개 단체가 헌혈을 취소했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대한적십자사는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등 직원 개인위생을 강화했고, 헌혈의집과 헌혈버스에 대한 소독 작업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헌혈 동참을 독려했다.

지난 1월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도 비슷한 내용의 헌혈 참여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상황이 당장 급반전을 보일 가능성은 적지만 헌혈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의회 의원과 직원 30여명은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했다. 같은 날 해군작전사령부는 사흘간 헌혈 운동에 동참했다. 장병, 군무원 등 참가 인원만 430명이었다.

같은 달 26일에는 동아오츠카 임직원들이 본사 앞 헌혈버스서 헌혈 릴레이를 이어갔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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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