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다가…’ 일동제약에 무슨 일이?

‘별안간’ 시험대 오른 오너 3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일동제약의 성적표가 심상치 않다. 흑자 행진을 달리던 실적은 적자로 반전됐다. 영업이익만 60% 넘게 추락했다. ‘비오비타’와 ‘아로나민 골드’로 친숙한 일동제약. 지난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

일동제약은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제약회사다. 창업주는 고 윤용구 회장. 지난 1941년 극동제약으로 첫발을 뗐다. 일동제약은 장 질환 치료제 개발에 전념했다. 창업주 의지가 강했는데 이는 모친이 장염으로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연에 기인한다. 일동제약은 1959년 국내 최초 유산균제 ‘비오비타’를 출시했다.

80년 역사
중견기업

회사는 다양한 유산균 제품을 선보였다. 일동제약은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분야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2016∼2018년 호실적을 기록하는 등 상승세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 기준 매출액은 매년 증가했다. 2013억원, 4606억원, 5039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궤를 같이했다. 148억원, 254억원, 283억원 순으로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126억원, 198억원, 127억원 등이었다.

지난해 실적은 뒤집혔다. 매출액은 5174억원이었다. 직전년도에 비해 2.8% 소폭 상승했다. 문제는 영업이익인데 무려 68.1% 감소했다. 280억원대서 90억원으로 주저앉았다. 127억원 당기순이익은 ‘-10억원’이 됐다.


지난해 일동제약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측은 주요 원인으로 ‘큐란 판매 중단’과 ‘개발비 증가’를 꼽았다.

‘큐란’은 일동제약 주력제품이다. 위산과다 또는 속쓰림에 효과적인 위장약이다. 큐란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홀로 2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생산중단품목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시장서도 퇴출됐다.

발단은 ‘라니티딘 사태’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해 9월 라니티딘 제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라니티딘은 의약품 성분이다. 위산 과다 등에 쓰인다. 일동제약 큐란에도 해당 성분이 포함돼있었다.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잔탁’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유산균 선두주자 실적 곤두박질
캐시카우 공백 ‘어떻게 메우나’

GSK는 다국적 제약사다. 잔탁은 GSK가 제조한 위장약이다. 잔탁은 라니티딘을 원료로 사용한다. 라니티딘을 원료로 하는 위장약에 NDMA가 발견된 것이다. NDMA는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NDMA를 불순물로 지정한 바 있다.

식약처는 국내서 유통되고 있는 라니티딘 사용 의약품에 빗장을 걸었다. 269개 품목은 제조·수입·판매가 중단됐다. 라니티딘 제제는 국내에서만 144만명이 복용하고 있었다. 국내 위장약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라니티딘 원료 제품을 판매한 제약사들은 후폭풍을 맞았다. 관련주들이 하락하는 등 타격을 받았다. 일동제약 큐란 역시 불똥을 피할 수 없었다.

큐란은 라니티딘 단일제다. 큐란은 단일제 위장약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을 자랑했다. 단일제 시장 점유율도 40%였다. 큐란은 잔탁 복제약이지만 매출은 6배 더 높았다.
 

▲ 일동제약 큐란

일동제약은 탈출구 찾기에 힘썼다. 일례로 동아에스티와 ‘가스터’를 공동 판매했다. 가스터는 소화성궤양 치료제다. 발암우려물질 성분이 없는 파모티딘 계열이다. 하지만 빈자리는 컸다. 대체재로 메꾸기에 한계가 있었다.

큐란 매출액은 2016∼2018년 99억원, 237억원, 222억원이었다. 식약처 처분이 내려지면서 큐란은 일동제약 매출항목에서 제외됐다. 큐란은 지난해 3분기(이하 3분기) 보고서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또 다른 이유는 개발비 증가다. 일동제약은 매출 10%가량을 연구비에 쏟는다. 비용 역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2016∼2018년 연구 개발비는 212억원, 483억원, 547억원 등이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3분기에만 409억원을 썼다. 2017년 한 해 개발비와 맞먹는다. 업계 안팎에선 조만간 11%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일동제약 연구개발팀 규모는 상당하다. 인력만 300명이 넘는다. 모두 23개 팀이다. 세부적으로 중앙연구소 10개 팀, 개발부문 10개 팀, 생산부문 3개 팀이다. 신약·원료·신제품 등을 개발한다.

주력 제품
퇴출 왜?

일동제약은 연구개발로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일동제약 3분기 보고서에서 손상차손이 언급됐다. 개발 프로젝트 중단으로 발생한 손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MR정 외 1건’에 대한 임상대상자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실험 결과도 부진했다. 결국 사업성이 떨어졌다. 일동제약은 관련 금액 54억원을 모두 감액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동제약은 라니티딘 사태를 정면으로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도 “연구개발에 상당한 재원을 쏟는 데 기대를 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큐란을 대신할 새로운 매출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모든 연구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큐란 대체품을 찾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일동제약은 올해에도 연구개발에 힘을 싣는다. 사측은 실적 하락 고시 당일에 주주총회 소집일을 알렸다. 여러 안건 중 ‘사업목적 추가’가 있었다. 일동제약은 ‘연구개발 및 연구개발 용역업’을 새롭게 추가할 예정이다. 주총은 내달 20일 열린다.

그룹 차원서도 연구개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일동제약그룹 지주사 일동홀딩스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신규 후보물질 발굴’을 언급했다. 신약개발 속도를 올리겠다는 의지다. 그룹은 지난해 신약개발 계열사를 설립했다.


주총에선 대표이사 재선임 여부도 결정된다. 당사자는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재선임이 유력하다. 일동제약 실적을 간과하기 어렵다. 다만 사령탑 교체는 큰 충격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영권 다툼 가능성도 적다.

지분 상황은 안정궤도에 있다. 윤 사장은 일동제약그룹 ‘꼭대기 회사’ 최대주주다. 일동홀딩스 특수관계자 지분은 절반이 넘는다. 이미 윤 사장은 4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평가도 나쁘지 않다. 결국 변화보단 안정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
 

윤 사장은 오너 3세다. 일동제약 일가 장남이다. 창업주 윤용구 회장 손자다. 아버지는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이다. 그는 2005년 일동제약 상무로 입사했다. 이전에는 글로벌 회계법인 KPMG 등에서 회계사로 근무했다.

윤 사장은 업무프로세스혁신 팀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그는 2013년 일동제약 대표이사 부사장이 됐다. 이듬해에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일동제약은 각자 대표체제였다. 일동제약은 2016년 8월 지주사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윤 사장은 비로소 단독대표에 오를 수 있었다.

연구개발
투자 지속

그룹 지배력은 확고하다. 윤 사장은 씨엠제이씨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배구조는 ‘윤 사장→씨엠제이씨→일동홀딩스→일동제약’으로 이어진다.


일동홀딩스는 일동제약을 비롯해 8개 계열사 최대주주다. ▲일동에스테틱스 ▲일동생활건강 ▲일동바이오사이언스 ▲일동히알테크 ▲루텍 ▲유니기획 ▲아이디언스 등이다. 일동제약은 일동이커머스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윤 사장은 일동제약·씨엠제이씨 대표이사다. 일동홀딩스·일동바이오사이언스·루텍 등에선 이사로 재직 중이다. 눈길이 가는 계열사는 ‘일동생활건강’과 ‘일동히알테크’다.

일동생활건강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회사는 이온수기 도소매와 건강식품 판매업을 영위한다. 전자공시시스템서 확인할 수 있는 일동생활건강 보고서는 2017년까지다.

일동생활건강은 그해 27억원 매출을 올렸다. 직전년도에 비해 14.2%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25.8% 줄였지만 14억원 적자를 봤다. 당기순손실만 17억원이다. 자본은 같은 기간에 비해 5배 이상 감소, 결국 ‘-21억원’으로 돌아섰다.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회계법인은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많은 대목을 지적했다.

그룹은 일동생활건강 단기차입금에 연대보증을 제공했다. 일동제약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일동생활건강은 한국씨티은행서 30억원을 끌어 썼다. 일동제약과 일동홀딩스, 일동바이오사이언스, 일동히알테크는 30억원에 대해 연대보증을 구축했다.

일동히알테크도 완전자본잠식 기업이다. 회사는 히알루론산(피부에 존재하는 생체 합성 천연 물질)을 전문으로 생산·판매한다.

일동히알테크 매출은 오름세다. 2016∼2018년 5억원, 15억원, 25억원으로 성장했다. 다만 영업손실은 7억원, 19억원, 29억원을 나타냈다. 당기순손실 역시 7억원, 19억원, 45억원으로 부풀었다.

그룹 지배구조 공고히 구축
자본잠식 부실 계열사 눈길

일동히알테크는 2018년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직전년도 1억원 자본은 ‘-44억원’으로 추락했다. 부채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자본이 빠르게 감소했다. 당시 부채는 5.92% 늘어난 반면 자본은 300배 이상 줄었다.

배경은 재고자산과 이연법인세자산이다. 일동히알테크는 재고자산을 폐기해 13억원가량 손실을 봤다. 이연법인세 자산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연법인세 자산 인정 여부는 ‘기업회계로 계산한 법인세’와 ‘세무회계로 계산한 법인세’에 달려 있다. 전자가 더 적을 경우, 그 차액을 납부할 세금서 공제 받을 수 있다. 결국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과세 소득 발생 가능성이 낮다면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적자로 세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공제 받지 못한다. 일동히알테크 감사를 진행한 회계법인은 ‘미래과세소득 불확실’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하지 않았다. 반면 직전년도에는 8억원가량을 인정받았다.

그룹 계열사는 일동히알테크에도 연대보증을 제공했다. 일동제약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일동히알테크는 하나은행서 126억원을 빌렸다. 일동제약과 일동홀딩스, 일동바이오사이언스는 해당 금액에 대해 보증을 섰다.
 

▲ 일동제약 아로나민 골드

내부거래 계열사도 눈에 띈다. 씨엠제이씨는 그룹 핵심사로 실적보다 지배구조서 중요한 회사다. 윤 사장은 씨엠제이씨로 그룹 지배력을 쥐고 있다. 씨엠제이씨 주종목은 ‘도소매’다. 2016∼2018년 매출액은 56억원, 45억원, 45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25.1%, 33.45%, 39.76%에 달하는 ‘알짜회사’다.

씨엠제이씨는 매출 상당액을 그룹서 냈다. 계열사들로부터 상당한 일감을 받았다. 모두 6곳이 일감을 제공했다.

같은 기간 내부거래 비중은 88.42%, 83.09%, 92.68%다. 56억원 중 49억원, 45억원 중 37억원, 45억원 중 41억원 수준이다. 일동제약이 3년 동안 가장 많은 일감을 제공했다. 씨엠제이씨는 일동제약을 통해 83억원을 벌었다. 이 외에도 일동홀딩스와 루텍이 각각 25억원과 11억원 매출을 올려줬다.

부실기업
내부거래

씨엠제이씨는 이전까지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2017년부터 배당이 시작됐다. 그해 배당금액은 5억4250만원이었고 배당성향은 6.23%였다. 이듬해인 2018년에도 배당이 이뤄졌다. 1억5500만원에 배당성향은 14.90%였다. 2년간 배당액은 모두 6억2775만원이다.

씨엠제이씨 최대주주는 윤 사장이다. 보유 지분만 90%다. 씨엠제이씨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배당이 실시된 기간 동안 윤 사장에게 돌아간 금액은 모두 6억2775만원이다.

<일요시사>는 일동제약에 관련 사안에 대해 문의했지만 “담당자에게 전달하겠다”는 관계자의 말을 끝으로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열 정리’ 일동후디스는 지금…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은 일동제약 평사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1960년 일동제약 입사 1년 만에 생산부장을 맡아 ‘아로나민 골드’를 개발했다. 이 회장은 1984년부터 2010년까지 26년간 일동제약 대표를 맡았다. 이 회장은 제약업계서 ‘샐러리맨 신화’로 불린다.

일동제약은 1996년 남양산업을 인수했다. 이후 간판을 일동후디스로 바꿨다. 회사는 일동제약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이 회장은 일동후디스를 직접 맡으며 그룹과 동반성장을 지속했다.

이 회장과 일동제약은 59년 만인 지난해 결별했다. 일동후디스는 일동홀딩스 계열서 분리돼 완전한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계열분리는 주식 교환으로 이뤄졌다. 일동홀딩스는 이 회장에게 일동후디스 주식 35만1000주를 126억원에 처분했다.

동시에 일동홀딩스는 이 회장 측 일동제약 주식 113만3522주를 227억원에 매수했다.

이 회장은 기존 일동후디스 지분 21.48%서 51.39%까지 끌어올리며 최대주주가 됐다. 일동제약 역시 지분을 높이며 그룹 지배력을 한 단계 높였다.

이 회장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서 “분리과정서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며 “지금의 일동을 내가 일궜다는 애착이 있어 일동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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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