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공식’ 없는 매력 양준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20.01.13 10:51:57
  • 호수 12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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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천재를 소환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가수 양준일이 데뷔 30년 만에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91년 데뷔한 가수가 2019년 말에 소환돼 2020년형 아티스트로 칭송받고 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인기로 ‘신드롬’을 일으키는 중이다. 

▲ ▲ 가수 양준일 ⓒJTBC

“20대 때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데 50대가 돼서야 K팝 스타가 됐어요. 이건 지금의 제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모든 게 제 계획과 반대로 된 거죠. 인생은 결국 원하는 것을 내려놔야 마무리가 되는 건가 봐요.”

데뷔·복귀
다시 좌절

데뷔 28년 만에 첫 팬미팅을 열게 된 가수 양준일이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 기자간담회서 밝힌 소회다. 취재진 앞에 선 스스로의 모습이 낯선지 그는 연신 “모두 저를 보러 오신 것이 맞느냐”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식당서 서버로 일했는데 믿기지가 않는다”고 언급했다.

지난 4일 양준일은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19년 만에 국내 지상파 음악 방송 무대에 다시 섰다. 30년 만에 인기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양준일은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를 부른 가수다. 

1991년이라는 데뷔 연도는 서태지와아이들, 김건모(이상 1992년)보다 앞선다. 세련된 음악에 자유분방한 안무와 패션, 순수한 노랫말은 요즘 젊은 세대가 듣기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평가다. 비주얼도 요즘 세대 못지않다. 시대를 앞서간 양준일의 무대를 접한 대중은 그의 매력에 하나둘씩 빠져들었다.


1990년대 초 활동하던 그가 2019년에 다시 소환된 것은 유튜브 덕분이었다. 90년대 음악방송을 모아놓은 유튜브 채널 ‘탑골공원’ 등을 통해 양준일의 음악과 무대가 화제를 일으킨 것.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와 빼어난 패션 감각으로 ‘탑골 지디’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대중은 양준일의 어떤 면에 열광하는 걸까?

대중이 양준일에게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이하 슈가맨3)와 <뉴스룸>이다. 음악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넘치지만, 양준일의 진짜 매력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의 인간 됨됨이에 있다. 

“나의 매력을 스스로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감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 매력을 파악하게 되면 내 머릿속에 공식이 생기고, 그러면 공식대로 행동할 것 같아서입니다.”

1991년 데뷔한 재미교포 청년 
대중에 외면 받고 가요계 은퇴

기자간담회서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그의 말처럼 ‘공식 없음’이야말로 매력의 근원이다. 데뷔곡 ‘리베카’는 당시 미국서 인기를 끌던 ‘뉴 잭 스윙’을 가져온 것이었다. 춤 역시 잘 짜여진 안무가 아니라 느낌 가는 대로 춘 것이었다. 그는 카메라 워킹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휘저었다. 이 같은 양준일의 음악과 춤은 당시의 ‘공식’에는 맞지 않았기에 외면 받았다.

하지만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현재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 지나칠 정도로 순수한 그의 성품 또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음악에 열정을 다 바쳤지만 돌아온 건 멸시와 조롱뿐이었던 30년 전의 대한민국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기억해준 사람들에게 해맑은 미소로 감사함을 전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인터뷰 갖고 있는 가수 양준일 ⓒJTBC

양준일은 팬들을 향해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통과하면서 얻은 게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 자신을 외면했는데도 끊임없이 그리워했다는 점도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앞서 JTBC 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표현했던 양준일은 이날도 그런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서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무언가를 한국서 느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한국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극적인 ‘서사’도 대중의 마음을 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미동포 출신으로서 활동 당시 좌절하고 미국서 서빙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극적인 상황, 양준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맞물려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시대·세대 
초월한 신드롬

‘꼰대’로 곧잘 치환되는 50대 남성과는 달리,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도 인기 요인이다. 시대에 물들지 않고 앞서 나가려 한 양준일의 도전정신은 요즘 세대에게 남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주류 음악에 반기를 들었던 양준일의 모습은 ‘꼰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와 일맥상통한다.

고루한 시대가 알아보지 못한 아티스트에 대한 청년층의 공감과 중년층의 죄책감은 그에 대한 호감으로 돌아섰다.

양준일 신드롬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만들어 선보이기 전에, 대중이 먼저 스타를 발굴한 사례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과거 음악방송을 연속 스트리밍하는 유튜브 채널 탑골공원을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양준일의 음악은 1990년대 당시 이질적으로 여겨졌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공명했다.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음악과 춤을 선보였다는 점 등 사실상 당시 양준일이 방송가서 퇴출된 요소들은 오히려 지금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줬다.

급기야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호평을 등에 업고 대세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슈가맨 진행자 중 한 명인 작사가 김이나는 양준일을 만난 뒤 SNS에 ‘시대를 타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시대의 눈치를 보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고 썼다.

더욱이 방송서 전해진 양준일의 안타까운 사연들과 계속된 실패에도 도전을 이어간 그의 열정은 다양한 세대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가히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인기로 작용됐고, 그는 데뷔 30여년 만에 첫 전성기를 맞았다.


양준일은 연예, 광고계를 주름잡는 블루칩으로 우뚝 섰다. 그의 나이 50대, 연예계를 떠난 지 30여년 만에 처음 맞는 ‘늦깎이’ 전성기다. 방송과 광고 등 전방위적으로 러브콜이 쏟아졌다. 양준일 본인도 활동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한국 정착 소망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음원이나 광고, 뮤지컬 등 굉장히 많은 제안이 들어오는 데 다 할 것이냐’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도 “시간이 되면, 여러분들이 저를 원하는 동안은 그걸 다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화제성만큼이나 상당한 규모의 팬덤도 이미 형성됐다. 3600석 규모(2회)의 팬미팅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 팬층도 다양하다.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30∼60대는 물론 ‘뉴트로 열풍’을 타고 유튜브 과거 영상 등으로 그에게 ‘입덕’한 1020 팬들도 많다.

그의 팬 카페 회원 수는 5만5000명을 넘어섰고 아이돌 가수들이 주로 등장하는 옥외 광고까지 내걸렸다.

떠오르는 블루칩
방송·광고 쇄도

1990년대 초반 활동 당시엔 빛을 보지 못한 그가 30년 공백이 무색한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복고 열풍을 넘어 문화적으로도 여러 의미를 짚어낼 수 있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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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양준일은 정작 덤덤하다. 양준일은 기자간담회서 ‘20대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50대에 복귀하게 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현실에 무릎을 꿇으면 오히려 그 일이 마무리 된다”고 답했다.

그는 “대중이 실망하고 필요 없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다. 20대 양준일에게 ‘네가 인생서 원하는 그것을 내려놓으면 마무리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20대도 제 계획대로 안 됐는데, 50대인 지금도 제 계획과 다르게 가고 있다”며 웃었다.

양준일은 책과 음반을 발매하며 한국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현재 책을 집필하는 중”이라며 “많은 분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신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남기면 좋을 것 같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양준일은 1969년생으로 부모를 따라 베트남서 출생하고 홍콩, 일본, 한국서 살다가 9세 때 미국 LA로 이민을 가서 정착한 재미교포 출신이다. 1990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 재학 중 한국 가수로 데뷔했다. 양준일은 당시 재미교포라는 이유로 한국서 가수 활동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10년짜리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6개월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스탬프를 받아야 한국서 활동이 가능했다. 

양준일 본인이 <슈가맨3>서 밝힌 바에 따르면 6개월마다 체류연장 허가 스탬프를 찍어주던 담당자가 갑자기 멋대로 “나는 네가 한국에 있는 게 싫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엔 절대 스탬프를 안 내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결국 부산 공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일의 노래는 한국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노래의 정서 자체는 동시대의 다른 한국 가요에 비해 상당히 미국에 근접해 있어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준일은 음악적으로 미국 팝계의 뉴 잭 스윙, 하우스 등 최신 트렌드를 한국 가요에 이식하려 했다. 뉴 잭 스윙 음악은 1992년 3월 서태지와아이들 1집, 같은 해 8월 현진영 2집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 본격적으로는 1992년 11월에 발매된 양준일 2집 앨범과 1993년 4월 발매된 듀스 1집(이현도) 등을 통해 한국 가요에 접목됐다. 터보나 룰라가 춤의 트렌드를 일부 계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1020세대 유튜브로 재발견 
30여년 만에 전성기 맞아

다만 마른 몸에 큰 키와 긴 머리, 지나친 미국식 퍼포먼스, 노래에 심히 몰입해 정신없어 보이는 춤 등은 1990년대 초반의 코드와 맞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외모는 물론, 의상, 퍼포먼스도 9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탁월했다. 하지만 당시 트렌드에 맞지 않아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서태지와아이들이나 H.O.T 음악의 경우, 순정적인 가사는 물론 당시 한국의 교육 실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등 가사 내용이 당시 10대들에게 공감이 가는 면이 많았다. 하지만 양준일은 재미교포 출신답게 한국 정서와 조금은 동떨어진 노래를 불렀다. 

‘Dance with me 아가씨’ 역시 많은 영어 가사로 한국 가요계에서는 유행하지 않은 작사법이었다. 이런 탓에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았던 단점이 있었다. 양준일의 음악은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더 깊은 공감이나 열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며 마치 팝송을 듣는 듯한 이질감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양준일은 2001년 V2의 정규 1집인 <Fantasy>를 냈다. 타이틀곡인 ‘Fantasy’ 무대는 물론 가사 또한 매우 독특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소속사와 계약 문제로 가수활동을 중단했으며, 결국 은퇴했다. 이후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30년 후, 지난해 빅뱅 지드래곤을 닮은 활동 당시 양준일의 모습이 유튜브에 돌아다니며, 1990∼2000년대생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네티즌 사이에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방송국서도 양준일의 근황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양준일씨를 찾습니다’라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년층은 공감
중년은 죄책감?

2019년 5월 양준일의 근황이 확인됐다. 2015년부터 한국인 부인과 아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 중이며, 한인 레스토랑 서빙 일을 하며 지냈다. 지난달 12월6일 방송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에 출연하면서 3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가맨> 출연 후 선한 성품, 시대를 뛰어넘는 패션센스, 자유로운 댄스 퍼포먼스 등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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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