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탐사기획> ‘만들어지는’ 학종의 두 얼굴 ①논란의 불씨

시작은 좋았지만 그 끝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학생부 종합 전형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획일적인 입시제도를 다양화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는 학생부 종합 전형의 취지에는 공감도가 높다. 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를 폐지하거나 운영 방식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요시사>는 학생부 종합 전형의 도입과 현황,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살펴봤다.

직장인의 출근 시간이 늦춰진다. 공공기관과 은행이 업무를 하지 않는다. 비행기는 듣기평가 시간에 이·착륙을 할 수 없다. 수험생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도로에 즐비하다. 수험생을 위한 각종 할인행사가 벌어진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날 풍경이다. 이날만 되면 온 나라가 60만 수험생을 위해 숨죽인다.

변화하는
입시제도

한국서 입시문제는 그 어떤 사안보다 민감하다. 입시와 병역은 한국서 ‘역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 같이 못 먹고 못 살던 때 부모들은 소를 팔아서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소를 팔아 만든 등록금이라고 해서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부르던 때였다. 그때는 ‘개천서 용난다’는 말이 심심찮게 쓰였다.

입시제도는 변화를 거듭했다. 그에 따라 사회 변화도 함께 일어났다. 자식을 명문대로 진학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은 ‘맹모(부)삼천지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교육의 노른자위 땅으로 학부모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올랐다. 복잡한 입시제도에 걸맞은 맞춤형 지도로 명문대 진학을 돕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지난해 11월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입시제도의 면면을 날카롭게 훑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1%로 시작한 시청률은 23%까지 치솟아 비지상파 1위를 차지했다. 자식을 명문대 의대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입시에 매달리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스카이캐슬>서 작가가 비판하고자 했던 입시제도가 바로 학생부 종합 전형(이하 학종)이다. 유현미 작가는 지난 9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아들이 고3이던 2010년 ‘입시 컨설턴트’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유 작가는 아들이 입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어 “입시 컨설턴트 역할이 압도적으로 커진 데다 금수저 전형으로 불릴 만큼 학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면 큰 반향을 일으키리란 생각이 들었다”며 “입시 컨설턴트들이 짜주는 계획에 따라 이미 몇 년 전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해온 학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정보력 없는 엄마 때문에 아이가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만 같아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한국서 대학을 가려면 수시, 정시, 편입의 방법을 거쳐야 한다. 학종은 수시 선발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말 그대로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내신 성적(교과) 외에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 동아리 활동, 자기소개서(비교과) 등 다양한 외부활동을 입시에 활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 추천서도 포함된다.

노정부 도입 MB정부 때 확대
박근혜정부서 ‘학종’으로 교체

학종은 학력고사, 수능 등 정량평가로 학생을 선발하던 것을 다각도서 정성평가로 뽑으려는 취지서 도입됐다. 시험 점수로 줄 세우기보다는 학생의 잠재 능력과 소질, 가능성을 평가하고 판단해 각 대학에 맞는 인재를 뽑는 방식이다.

학종의 전신은 입학사정관제다. 대학이 대입전형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육성하고 채용, 활용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2007년 대학 입시서 처음 도입됐고 2008년부터 이를 활용하는 대학이 늘어났다. 입학사정관제는 노무현정부서 도입하고 이명박정부서 본격화된 정책이다.

이전 정부의 정책은 보통 다음 정부서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입학사정관제는 보기 드물게 계승됐다. 그만큼 도입 당시에는 줄 세우기에만 몰두했던 대학 입시제도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대학에 가려면 오로지 시험을 잘 봐야 했던 수험생은 여러가지 길이 생겼다는 점에서, 점수로만 학생을 평가해야 했던 대학은 다양한 인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학사정관제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정성평가라는 점에서 투명성과 공정성 논란이 도입 초기부터 불거졌다. 특히 외부활동 등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스펙 경쟁이 일어나면서 ‘금수저 전형’ ‘현대판 음서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현재까지 학종에 따라붙는 꼬리표는 입학사정관제 도입부터 문제로 지적됐던 것들이다.

이 과정서 입학사정관제와 학종은 정부 규제로 인해 누더기로 변해갔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초기에는 토익이나 토플 등 공인어학자격증이 기본적인 스펙이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은 고려대에 입학할 때 ‘세계선도인재전형’에 합격했다.

점수보다
창의성에

고려대는 당시 총 정원 3772명 중 23.5%(886명)를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했는데, 그중 200명이 이 전형으로 뽑혔다. 토플·텝스 성적을 제출하거나 AP(해외 대학 학점 선이수제) 3과목의 성적을 제출하거나, 2개 이상 공인 제2외국어 성적을 제출한 학생만 지원할 수 있었다.

대학서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선발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입학사정관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됐다. 봉사활동 기록을 위해 해비타트(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 꽃동네 봉사 등이 이어졌다. 창의력을 증명하려 책을 출간하는 학생도 늘었다.

외부활동을 자유롭게 기재할 수 있었던 입학사정관제는 학부모의 생활수준 등에 따라 점차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부모가 챙길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업체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됐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제도 정비에 나섰다. 논문 등재 이력은 물론 교외 경시대회 수상 실적과 도서 출판 경력까지 학생부에 기록할 수 있었던 2010년 ‘입학사정관제 공통 운영 기준’을 마련하고 교외 수상 경력을 기재하는 것을 금지했다.

2011년에는 공인 어학 성적, 2013년에는 발명 특허 취득 내용을 학생부에 쓸 수 없도록 막았다.

학종이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된 것은 박근혜정부 들어서다. 교육부는 2013년 8월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내놨다. 입학사정관전형을 학종으로 명칭을 바꾸고 학생부에는 교내 활동만 기재하고 외부 실적은 적지 못하도록 했다.

토플 등 공인어학 성적이나 AP 등 학교 외 기관의 시험 결과를 기재하면 서류 점수를 0점 처리하거나 불합격시킨다는 규정도 넣었다. 2015학년도 입시부터는 도서 출간 이력과 논문(학회지) 등재 이력도 금지했다.


외부활동 실적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입시 반영 범위를 교내 활동을 한정하자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됐다. 특히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소논문’이 괜찮은 스펙으로 소문나자 열풍이 불었다.

정부 규제로
누더기 신세

과학고나 영재학교 등에는 교내에 과학 실험과 실습 기자재가 갖춰졌고 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R&E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소논문과 관련된 사교육이 창궐했다. 결국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판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안’을 통해 소논문 기재를 금지하고 교내 수상 경력이나 동아리 활동의 개수도 제한을 두기에 이른다.

대학 입시서 수시의 비율은 점차 커지고 있다. 2015년 7대3이었던 수시와 정시의 비율은 2018년 8대2까지 벌어졌다. 수시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학생부교과전형’이다. 학생부 교과전형은 교과 성적, 즉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는다.

전체 전형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학생부 교과 전형이지만 비율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건 학종이다. 2015년 16.1%였던 학종 비율은 2018년 23.7%까지 늘었다. 게다가 많은 학생들이 진학을 원하는 상위권 대학에선 학생부 교과 전형보다 학종을 훨씬 선호한다.

2020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을 살펴보면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뽑는 비율은 42%. 학종은 24%, 수능 20%이다. 하지만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서울 주요 대학 15곳서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비율은 6%에 불과하다.


과반에 가까운 47%가 학종으로 학생을 뽑는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이른바 스카이로 한정하면 그 비율은 59%까지 늘어난다.

학종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대학서 선호하는 전형이다 보니 과열 경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러 가지 꼼수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스펙 경쟁이 심하게 발생하는 부분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학종의 부작용을 줄여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학종을 폐지하고 정시를 확대하자’ ‘학종의 운영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하자’ 등 학종을 둘러싼 논란에 불이 붙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대학 입학 과정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미 바닥부터 부글부글 끓고 있던 학종에 대한 불만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행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은 지난해 진행한 2022년 대입 개편안에 대한 공론화 과정서 이미 뚜렷하게 드러났다. 공론화위원회는 수시와 정시의 비율, 수능의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수능의 최저 기준 유지 등을 두고 논의했다.

금수저 전형·현대판 음서제 비판
조국 장관 딸 논란으로 다시 부상

이 과정서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게 튀어나왔다. 정시 45% 이상을 주장하는 의제 1안이 52.5%의 지지를 받았다. 그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수시(학종) 확대를 주장하는 의제 2안은 시민참여단의 48.1%가 지지를 표했다.

최근 조사서도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세다. 지난달 5일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시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63.2%로 나타났다. 수시가 더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22.5%에 그쳤다.

‘정시가 더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모든 직업·연령·지역·이념성향·정당 지지층서 높게 나타났다. 특히 학생과 20대서 70%가 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생 73.5%, 20대 72.5%였다.

하지만 교육부는 공론화위원회서 나온 의제1안과 2안의 지지율이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정시 30%로 못 박은 상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시 정시 비율 확대에 대해 선을 그었다.

유 부총리는 지난달 4일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으로는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학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교육부는 학종 선발 비율이 높고 특수목적고(특목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 출신 학생 선발이 두드러진 13개 대학의 실태를 11월 말까지 조사 또는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또 학종 중 자기소개서를 비롯해 수상 실적과 자율 동아리, 봉사활동 등 비교과 영역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지난달 말부터 조사 중인 대학은 건국대·광운대·경희대·고려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포항공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홍익대 등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조사 대상 선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육부
칼 빼드나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교육부서 받은 자료를 인용해 13곳의 대학 중 홍익대는 특목고·자사고 출신 비율이 높지 않고 학종 선발 비율도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교육부서)학종으로 특목고·자사고 출신 학생을 많이 뽑는 대학들을 조사해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취지인데,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 대학이 들어간 셈”이라며 “교육부의 행정 편의주의로 조사 결과의 정확도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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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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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