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요시사>는 일감 몰아주기 연속기획 5회에서 태광그룹의 내부거래 실태를 지적한 바 있다. 재계순위 43위(공기업 제외)인 태광그룹은 지난달 말 기준 총 44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컴퓨터시스템 계열인 '티시스'와 부동산관리 계열인 '티알엠'에 그룹 일감이 몰리는 것으로 확인했다.
30개 계열사서 지원
티시스·티알엠은 계열사들로부터 지원받은 내부거래율이 90%가 넘었다. 거래 금액은 매년 각각 200억∼1000억원에 이른다. 물론 오너일가가 대주주. 두 회사 모두 이호진 전 회장(51%)과 그의 아들 현준씨(49%)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티시스·티알엠 외에도 내부거래율이 높은 태광그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에스티임'과 '바인하임' '메르뱅'등 3개사다. 사실상 오너일가의 개인회사인 이들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대부분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이는 세 회사가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처음으로 내부거래 내역을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2008년 3월 설립된 에스티임은 실내건축공사와 그래픽디자인을 주로 하는 업체다. 에스티임은 2010년 매출 78억5100만원, 영업이익 4억8900만원, 당기순이익 4억600만원에서 지난해 각각 111억7700만원, 7억2100만원, 5억9100만원으로 1년 사이 30% 넘게 실적이 개선됐다. 몸집도 커졌다. 이 기간 총자산과 총자본은 각각 20억100만원·9억3000만원에서 27억3200만원·15억5100만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에스티임의 자생력은 약하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금감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적지 않은 매출을 계열사에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100억원대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에스티임은 지난해 매출 111억7700만원 가운데 93억200만원(83%)을 계열사들과의 거래로 올렸다. 에스티임에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동림건설(39억6300만원)을 비롯해 흥국생명(16억1200만원), 티브로드홀딩스(7억4500만원), 흥국화재(6억4200만원), 태광산업(4억2300만원), 티캐스트(2억2600만원), 태광관광개발(2억3200만원) 등 무려 29개사에 이른다.
태광그룹 계열사가 모두 44개란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 달라붙어 지원한 셈이다. 이들 회사는 경쟁입찰 또는 수의계약을 통해 디자인, 인테리어, 브랜드관리, 홈페이지 유지보수, 옥외광고, CI 개발, 유니폼제작 등을 에스티임에 맡겼다.
부인·딸 100% 소유…90% 이상 '집안 매출'
설립 시기 비슷하고 사업 영역도 서로 겹쳐
올해 들어서도 내부거래가 계속되고 있다. 에스티임은 지난 3월 이사회에서 티브로드홀딩스(14억원), 흥국생명보험(7억원), 흥국생명(5억원), 흥국화재(3억원) 등 30억원에 이르는 계열회사와의 상품·용역거래를 의결했다. 지난 6월에도 흥국생명(5억원), 흥국화재(3억원), 티브로드홀딩스(2억원), 태광산업(1억원) 등과 10억원 상당의 거래를 승인했다.
바인하임과 메르뱅도 금액은 적지만 내부거래율이 높다. 눈에 띄는 점은 두 회사가 설립 시기와 사업 영역이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2월 설립된 바인하임은 와인 수입 등 주류 도매업체로, 지난해 계열사 매출 비중이 무려 99%에 달했다. 총매출 12억900만원에서 동림관광개발(8억1200만원), 메르뱅(3억6500만원) 등과의 거래액이 11억9200만원이나 됐다. 바인하임은 이들 계열사에 와인을 판매했다.
2008년 7월 설립된 메르뱅도 와인을 수입해 판매하는 주류업체다. 지난해 총매출 7억9000만원에서 '집안 매출'이 6억6400만원(84%)에 이른다. 30개 계열사들이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의 매출을 올려줬다. 거래 품목은 바인하임과 같은 와인이었다.
공교롭게도 업종이 같은 두 회사는 사무실이 서울 중구 장충동 동림38빌딩 지하 1층으로 주소도 동일하다. 동림38빌딩은 이 전 회장이 2009년 8월 본인 명의의 땅에 신축한 지하 3층∼지상 3층에 연면적 1733㎡(약 524평) 규모의 건물이다.
여기엔 바인하임과 메르뱅을 비롯해 동림건설, 동림관광개발 등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에스티임도 이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동림38빌딩에 입주한 계열사들로부터 매월 수백만∼수천만원의 임대료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물에 '다닥다닥'
뿐만 아니다. 에스티임과 바인하임, 메르뱅은 지분 구조도 똑같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모두 '이호진 가족'들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오너일가의 개인회사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티시스·티알엠이 '부자 회사라면 세 업체는 '모녀 회사'다.
에스티임은 이 전 회장의 부인 신유나씨와 딸 현나씨가 각각 51%(2만5500주), 49%(2만4500주)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바인하임과 메르뱅 역시 신씨와 현나씨가 각각 51%(5100주), 49%(4900주)를 보유 중이다.
에스티임 사내이사, 메르뱅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신씨는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셋째동생)의 장녀다. 이 전 회장과 신씨는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를 두고 있다. 남매는 아직 10대로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