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삐뚤어진 아베 집안의 비밀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12 10:11:29
  • 호수 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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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부터 ‘그 나물에 그 밥’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본의 한반도 침탈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이번 한일 경제전쟁도 같은 맥락이다. 갈등을 촉발한 아베 신조에게는 극우와 전범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반도 일제강점기 시절 군국주의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게 아베의 속내다.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서 제외하는 2차 경제보복을 감행하면서 이는 사실상 양국 간의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됐다. 지난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1차 경제보복 조치 이후 한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반발이 심하다. 관망하던 미국까지 나서서 자제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양국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확대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일본 유력 
정치가문 

한국 정부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 등 일본에 대한 총력대응을 공언한 상태인 만큼 한일관계는 현재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 제재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이후 내린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복’이 아니라 ‘안보’를 위한 것인 만큼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도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과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내부서도 ‘국제 정치와 무역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선택한 것은 이익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최근 참의원 선거서 ‘한국 때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아베정권은 공적 연금의 보장성 논란과 소비세 인상 문제 등 불리한 이슈가 묻히는 효과를 봤다. 


아베 총리(이하 아베)는 보수층을 결집시켜 숙원사업이었던 개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일본 임시국회 개원 전날 자민당 중·참의원 의원총회서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정세 안에서 국익을 지켜나가 헌법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몸이 돼 다뤄가고 싶다”고 말한 것은 한일갈등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레임덕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측근들은 자민당 규정을 한 번 더 바꿔 총리 4연임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빠르면 올해 안에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는 만큼 아베 총리의 한국 때리기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제보복…한국 때리기 왜?
과거 극우·군국주의 정치로 회귀 

그가 집권하는 사이 일본 사회의 ‘혐한’은 갈수록 심해졌다. 일본 언론서 혐한 발언을 노골적으로 내보낼 정도다. 한 일본 방송 토론 프로그램서 ‘오사카에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대거 잠복해 있다’ ‘한국서 일본 맥주가 너무 인기 있는 만큼 일본이 맥주 수출을 막으면 폭동이 일어난다’고 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아베가 경제보복을 통해 한국 경제에 불안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아베는 전부터 3연임 달성 시 ‘전쟁 가능 국가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2020년 개헌 동력을 확보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이를 위한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의 구상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 전범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가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의 피에는 극우와 A급 전범의 DNA가 흐르기 때문이다. 

아베는 1954년 9월21일 도쿄서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어머니 요코 사이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베 집안은 계파정치와 세습 출마가 전통인 일본의 대표적 정치 명문가다. 


외할아버지는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는 기시의 친동생이자 7년이 넘는 장기집권에 ‘비핵 3원칙’으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다. 할아버지인 아베 간도 중의원을 지낸 바 있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을 지내다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됐다.

다만 친가와 외가의 정치적 행적은 정반대다. 외할아버지 기시는 1930∼1940년대 만주국서 요직을 지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최전선에 있었다. 반면 할아버지 아베 간은 전쟁 반대를 내걸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설 만큼 군국주의에 비판적이었다. 

A급 전범 
품서 자라 

아베 집안은 메이지유신의 태동지인 조슈번, 현재 혼슈 남단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조슈번은 외지고 작았지만 특유의 공격성으로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지역으로 유신 이후 총리만 무려 8명이나 배출해 하나의 벌(閥)족을 이뤘다. 총리 배출 순위 2위인 도쿄서 배출된 총리가 4명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세력이다.

한국서 대통령 12명 중 5명을 배출하고, 정부 수립 후 70년 가운데 40여년을 집권한 ‘TK’(대구·경북)와 비슷하다. 군벌이 주력이었다는 점도 같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요시다 쇼인으로, 그 역시 조슈번 출신이다. 쇼인은 메이지유신(1868년)을 주도한 조슈 번벌의 거두다. 일본인에게 쇼인은 아시아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게 이끈 근대화의 선각자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정한론(征韓論, 조선정복론)의 원조이자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주의 선동가다. 

아베는 1기 내각 시절인 2006년 의회서 “쇼인 선생은 3년간(감옥 강의 포함) 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작은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가 됐다”고 발언한 바 있다. 

지금은 국가유적지가 된 ‘소나무 아래 마을글방’ 입구에는 ‘明治維新 胎動之地’(명치유신 태동지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큰 돌비석이 있다. 메이지 유신 100주년(1968년) 기념물이다.  전후 최장수(제61·62·63대) 총리인 사토 에이사쿠가 쓴 것이다. 사토는 아베의 정치적 롤모델이자 외할아버지인 기시의 친동생이다(기시가 양자를 가서 형제의 성이 다르다).
 

기시는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서 고위관료로 일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서 전쟁물자를 관장하는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냈다. 기시는 일본이 패망한 뒤 고향 조슈번서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수감됐다. 하지만 1948년 성탄전야에 공직 선출 제한 조건으로 석방된다. 

그는 1952년 공직 진출 제한이 풀리자 ‘자주헌법 제정’ 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일본재건연맹을 설립해 정치를 재개했다. 1955년 11월 자유민주당을 창당해 초대 간사장이 됨으로써 이른바 ‘자민당 55년 체제’를 열었다. 이후 기시는 총리 시절에 줄기차게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의 조부인 아베 간은 기시와는 반대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반골 기질의 ‘비둘기파’ 정치인이었다. 야마구치현 오쓰 출신으로 1937년 총선서 중의원(무소속)에 당선됐다. 1942년 익찬선거(도조 히데키 내각이 전쟁에 비협조적인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했던 선거)서도 도조 내각의 군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아들 신타로가 대학생이었을 때인 1946년, 52세에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아베 신타로는 기시의 딸과 결혼해 아베를 낳았다. 기자였던 신타로는 1956년 장인인 기시가 외무상으로 입각하자 신문사를 그만두고 외무상 비서관이 됐다. 또 기시가 총리가 되자 총리 비서관으로 취임했다. 

그 후 1958년 총선거서 야마구치 1구의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 신타로는 기시파를 계승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파서 활동하면서 내각 관방장관,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지냈다.

아베는 어릴 적부터 외조부 손에서 자랐다. 기시가 특히 예뻐했던 손자가 아베였다. 그는 도쿄를 자주 비웠던 부모 대신 외조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자연스레 전후 체제를 벗어난 보통국가화, 개헌 등 기시 전 총리의 어젠다가 아베의 핵심 어젠다가 됐다. 

정한론 본산
정치적 계승

아베도 책을 통해 기시의 사상이 자신에게 스며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정치에 뜻을 품게 된 계기도 고교 시절 기시가 체결한 신미·일안보조약에 대해 비판적으로 설명한 교사에게 반발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베는 “내용도 모른 채 반권력, 혁신이란 것에 취한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보수주의를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적었다. 


아베는 대학 졸업 후 2년간의 미국 생활과 3년간의 고베제강 근무를 마치고 28세가 된 1982년, 당시 외상이던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부친 사망(1991년) 후 야마구치현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중의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 행보를 걸었다.

아베는 A급 전범이자 노회한 극우 정치인(외조부)의 자산을 세습했다. 기시는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한 첫 총리다. 일본이 독립하려면 자주헌법이 필요하다는 게 기시의 신념이자 정치적 목표였다.

아베 역시 “평화헌법 개정이야말로 독립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아베의 ‘강한 일본 되찾기’와 ‘새로운 나라 만들기’ 구상은 결국 기시가 꿈꿨던 국가를 실현하려는 의도다. 아베가 주변국의 경고와 동맹국(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사를 참배한 이유다.

그는 2013년 4월 의회서 침략과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나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국가 간 관계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침략의 정의가)다르다”고 언급했다. 

매우 평범하고 특별한 점도 없는 아이
국회 입성하면서 ‘우익 괴물’로 변해 

그해 8월 ‘쇼인 신사’를 참배한 아베는 “중의원 입후보의 뜻을 굳혔을 때도 참배했다, (앞으로)올바른 판단을 할 것을 맹세한다”고 했다. 일본 근대화의 선각자이자 군국주의 선동가인 쇼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현직 총리로는 고이즈미 이후 처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8월 이른바 아베 담화를 통해 “지난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해 더 이상 사죄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을 지닌 야스쿠니는 이름과는 상반되게 전쟁의 화신들을 추모하는 곳이 됐다. 

아베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아베의 지인들을 두루 인터뷰한 일본 언론인 아오키에 따르면, 신조는 매우 평범하고 어떤 특별한 점도 없는 좋은 집 아이, 즉 극히 평범한 도련님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주변에 있던 우익 성향 인물들의 영향을 받아 ‘우익의 괴물’로 변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평범한 도련님’이 우익의 괴물로 변신한 배경을 일본 특유의 세습정치서 찾은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일본 극우세력의 본산이자 싱크탱크로 통하는 ‘일본회의’가 꼽힌다.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대표적인 우파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되면서 결성된 조직이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1974년 우파계 종교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됐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정재계, 학계, 종교계 우파가 총결집해 만들었다.

일본회의는 천황제 고수, 강요된 평화헌법 개정,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외국인 지방참정권 반대, 사과외교 중단, 대동아전쟁 긍정론, 자학적 역사 교육 및 지나친 권리 편중 교육 시정 등을 주장한다. 

우경화 최전선
개헌에 집착

지난해 10월 출범한 제4차 아베 내각 20명의 면면을 보면, 아베는 일본회의 산하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특별고문이다. 또 일본 내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법인 ‘신사본청’을 모태로 설립된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신사 역시 민간종교법인인 신사본청의 관할로 그는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다함께)에도 속해 있다.

일본회의에는 아베와 함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 등 15명이, 신도정치연맹과 다함께엔 집권 자민당과 연립한 공명당의 이시이 게이이치 국토교통부장관을 제외한 19명이 모두 속해 있다. 아베의 행태가 세습정치와 극우정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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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