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6대 임금인 인조시절의 일이다. 인조반정의 주역인 이괄이 일으킨 반란으로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피신했던 인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당시 좌승지였던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에게 조정이 화합하는 방안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후일 김육과 함께 대동법 시행을 주도해 실학의 선구자 반열에 들어서는 조익이 “이른바 ‘화합’이란 구차히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조정의 처사가 모두 공정(公正)서 나오면 화합을 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화합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공정은 ‘공명정대하다’의 줄임말로 하는 일이나 태도가 사사로움이나 그릇됨 없이 정당하고 떳떳함을 의미하는데 조정의 처사가 공정하면 저절로 화합한다는 조익의 답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진리다.
이제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서 행한 발언을 살펴보자.
그는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말인즉 우리 사회에 공정을 뿌리내리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가 사심을 배제하고 진정한 의미의 공명정대를 이룰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왜냐, 패거리 문화에 물든 권력으로부터 임명받았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지만, 그의 당찬 포부대로 검찰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러대는 조직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역시 최근에 발생한 일을 소개한다. 검찰 직원이 국회가 검찰개혁과 관련,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지 않는 일은 직무유기라며 국회를 고소한 사건이다. 언론에 밝혀진 고소내용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195조, 196조, 243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형사소송법 195조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수사를 해야 한다’, 196조는 ‘경찰이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도록 한다’, 그리고 243조는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할 때 수사관이나 서기관을 참여하도록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법의 문외한인 필자가 살필 때 195조와 243조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 여겨진다. 그런데 경찰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도록 한다는 196조는 뭔가 의심쩍어 보인다. 형소법 196조 중 일부를 인용한다.
『제196조(사법경찰관리) ①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③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사법경찰관은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해야 한다. ⑤경사, 경장, 순경은 사법경찰관리로서 수사의 보조를 해야 한다.』
보통의 상식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필자의 입장서 바라볼 때 한마디로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걸 법이라고 만든 작자들은 뭐하는 인간들인지, 아니 국회를 직무유기로 고소한 검찰 직원의 심정을 인지상정으로 충분이 이해할 만하다.
동 법 조항을 살피면 경찰 조직 전체는 속된 표현으로 검찰의 졸개로 비쳐진다. 군으로 비교하면 준장급에, 일반 공무원으로는 부이사관급에 해당되는 경무관 이하 모두가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대목 때문이다.
각설하고 필자는 검찰과 경찰이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기관인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사법기관인 검찰은 소송에 전념하는 게 공정하다 판단하는데, 이 부분을 먼저 처결하는 게 공명정대하지 않을까.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