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런’ 윤석열 사단 대해부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29:28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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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의 칼잡이’ 여의도 손보고 대기업 잡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찰인사는 정부의 기조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다. 보수·진보 정권에 따라 검사들은 요직에 배치되거나 옷을 벗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 이후 첫 검찰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서도 검사들은 울고 웃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한 지 하루 만인 지난달 25일, 신임 총장과 호흡을 맞출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진용이 갖춰졌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핵심 요직에 윤 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23기)들과 특수통 출신들이 대거 기용됐다. 향후 검찰을 ‘윤석열 동기’ 기수들의 견제와 협력으로 운영하려는 청와대의 구상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호 
본격 가동

법무부는 대검검사급 검사 39명에 대한 신규 보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신규 보임 18명(고등검사장급 4명·검사장급 14명), 전보 21명이다.

윤 총장의 후임이자 검찰 2인자 자리인 서울중앙지검장에는 배성범(23기) 광주지검장이 임명됐다. 대검찰청 2인자이자 검찰총장을 최측근서 보좌하는 대검 차장에는 강남일(23기)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검찰과 법무부의 가교 역할을 할 법무부 검찰국장엔 이성윤(23기)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각각 낙점됐다.

배 검사장은 윤 총장과 연수원 동기지만 대학은 80학번으로 79학번인 윤 총장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다. 서울중앙지검장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현장서 사정작업을 이끌 최일선 사령탑이다. 배 검사장은 경남 창원 출신으로 마약·조직폭력 등 강력수사 경험이 많은 ‘강력통’이지만 특수·금융수사 경험도 두루 갖췄다.


업무 처리가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찰인사 등을 총괄하는 법무부의 핵심 요직인 검찰국장을 맡은 이 검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다. 그는 차기 법무부장관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검찰 개혁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검 차장에 오른 강 검사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과 서울고검 차장 등을 지냈다. 배 검사장과 강 검사장은 각각 마산고와 진주 대아고를 졸업한 경남(PK) 출신이다.

검찰 고위·중간 간부 새 진용 갖춰
총장 연수원 동기 ‘빅3’ 요직 임명

윤 총장의 연수원 3년 선배인 김오수(20기) 법무부 차관은 유임됐다. 법무부 차관의 연수원 기수가 검찰총장보다 빠른 것도 기수와 서열을 중시하는 기존 검찰인사에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경력이 있는 윤대진(25기) 법무부 검찰국장은 수원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윤’ 윤 총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소윤’으로도 불린 윤 검사장은 애초 서울중앙지검장에 가장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윤 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친형의 뇌물 사건이 집중 거론되면서 검찰 고위직 인사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사진 왼쪽부터)강남일 신임 대검 차장, 배성범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신임 법무부 검찰국장

차기 총선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 못지않게 위상이 높아진 서울남부지검장엔 송삼현(23기) 제주지검장이 발탁됐다. 현재 서울남부지검은 국회의원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고소·고발 사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 사범 수사를 맡을 대검 공안부장에는 박찬호(26기)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임명됐다. 서울고검장엔 김영대(22기) 서울북부지검장이 기용됐다.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25∼27기 특수통 검사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대검의 핵심 보직인 반부패부장과 공안부장에 서울중앙지검 한동훈(27기) 3차장과 박찬호(26기) 2차장이 각각 승진 임명됐고, 이두봉(25기) 1차장은 대검 과학수사부장을 맡는다. 이들은 지난 1∼2년 동안 국정농단 특검과 서울중앙지검서 윤 총장과 함께 ‘적폐 수사’를 주도했다.

기수·서열
탈피 시도

노정연(25기)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는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임명돼 역대 세번째 여성 검사장이 됐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재수사로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을 기소한 양부남(22기) 의정부지검장은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하고 기소한 이원석(27기) 서울고검 검사는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에선 종래 신임 검찰총장 취임 시 연수원 윗기수와 동기 검사장들이 모두 용퇴하던 관행서 벗어났다.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고검장급 및 검사장급에 연수원 윗기수와 동기가 다수 보임된 것.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수와 서열 위주의 검찰인사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인사”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31일 새로 보임받은 검사장급 참모 7명이 대검찰청 청사로 첫 출근해 윤 총장의 보좌 업무를 시작했다. 이날 검찰의 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됐는데, 윤 총장과 과거 호흡을 맞췄던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발탁됐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에는 신자용(28기) 법무부 검찰과장이, 2차장검사에는 신봉수(29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임명됐다.

신 과장은 윤 총장과 함께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 임명됐고 1년여 만인 지난해 법무부 검찰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 부장검사는 특수1부장을 맡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수사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판사들을 재판에 넘겼다. 또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수사하기도 했다. 

윤 총장 취임 이후 고위간부 인사서 기존의 서울중앙지검 1∼3차장이 모두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찰청 참모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모두 교체가 이뤄졌다. 4차장도 새로 임명됐다. 한석리(28기) 강릉지청장이 기용됐고, 이노공(26기) 4차장검사는 성남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3기 전진배치
3년 선배 유임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검사에는 송경호(29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 임명됐다. 송 부장검사는 특수2부장으로 그동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맡아왔다. 3차장이었던 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뒤를 이어 수사를 지휘하게 됐으며, 이는 수사 연속성과 공소 유지 등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 부장검사도 대표적인 특수통이다. 그는 신 부장검사와 함께 다스 관련 뇌물 및 소송비 대납 등 혐의를 수사하며 이 전 대통령을 조사했고, 지난해 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구상엽(30기) 공정거래조사부장이, 특수2부장은 고형곤(31기) 남원지청장이 맡게 됐다. 특수3부장에는 허정(31기) 광주지검 특수부장, 특수4부장은 이복현(32기) 원주지청 형사2부장이 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

신임 법무부 대변인에는 박재억(29기) 부산지검 부부장검사가 임명됐으며, 대검 대변인에는 권순정(29기)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임명됐다. 심재철(27기)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남부지검 1차장검사에, 주영환(27기) 대검 대변인은 인천지검 1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반면 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이 탄생한 가운데, 승진에 실패한 24∼25기 검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던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정수봉(25기) 광주지검 차장검사와 김병현(25기) 서울고검 검사, 서영수(25기) 수원지검 1차장검사가 연이어 검찰 조직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검찰 안팎에선 특히 김광수(25기) 부산지검 1차장검사, 최태원(25기) 서울고검 송무부장의 사표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 차장검사와 최 부장 모두 ‘공안통’으로 분류된다. 


기획·공안통 지고 
특수통 나란히 영전 

김 차장검사는 법무부 공안기획과장과 대변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등을 거쳤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당시 노무현정부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은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을 기소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국가기록원에 이관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다.

최 부장도 공안통으로 꼽힌다. 그는 대전지검·부산지검 공안부장과 법무부 통일법무과장으로 근무했으며, 2013년 4월부터 2015년 2월까지는 수원지검 공안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내란음모·내란선동 사건을 수사했다.

통상 부장검사는 근무 기간이 1년이지만, 이 의원에 대한 재판이 길어지면서 최 부장은 공소유지를 위해 이례적으로 1년 더 근무하게 됐다. 최 부장은 이후 여주지청장과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초대 소장을 지냈다.

이번 인사서 ‘귀족검사’라 불리는 기획통과 과거 주요 보직을 도맡았던 공안통들이 사라졌다. 검찰의 주류 엘리트가 급속도로 교체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귀족검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재경지검→법무부→유학→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등의 코스를 거치면서 수도권서만 근무, 기획통으로 경력을 쌓는 주류 엘리트 검사를 일컫는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냈거나 보직서 물러난 다수의 고검장·검사장이 이런 ‘기획통 검사’들이다. 

새 고검·검사장 
18명 중 공안 ‘0’

검찰 고위간부 중 공안통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고검장·검사장 승진자 18명 중 공안통으로 분류할 만한 검사는 한 명도 없다. 문재인정부서 공안검사의 세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어 기획통과 공안통, 특수통을 세 축으로 균형을 유지해오던 검찰 내 관행이 완전히 깨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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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