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제국’ YG 해체설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6.24 09:48:52
  • 호수 1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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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철옹성이 무너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K팝 제국이 몰락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YG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각종 마약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찰 수사가 임박한 상황이다. ‘약국’이라는 오명을 쓴 YG에 대해 불매운동 조짐이 일고 있다. 추락한 소속사 이미지 때문에 아티스트들의 이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연예계 안팎에서는 YG해체설과 사명 변경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양현석 전 YG 대표

민갑룡 경찰청장이 최근 불거진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그룹 아이콘의 가수 비아이(B.I) 등의 마약 투약 의혹 사건을 “원점서 재수사하겠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이번 마약 투약 의혹은 연습생 출신의 한서희씨가 2016년 8월 자신의 마약 사건 수사 당시 경찰에 비아이가 마약을 구해달라고 했고 같이 투약도 했다고 진술했으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원점 재수사”
경찰청장 의지

양현석 전 YG 대표가 한씨에게 진술 번복을 강요했고, 비아이는 한씨의 진술에도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한씨는 앞서 이런 내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다. 이번 의혹으로 비아이는 그룹을 탈퇴했고, 양 전 대표는 YG의 모든 직책서 물러난 상황이다.

민 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팀을 운영하도록 했다.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서 철저하게 살펴보겠다. 문제가 됐던 사건도 원점서 재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버닝썬 수사 과정서도 많은 교훈을 얻었다. 드러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개연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국민이 제기하는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 가수 비아이 ⓒYG엔터테인먼트

YG에 대한 온갖 구설에 연예계 안팎에선 ‘YG해체설’까지 나오고 있다.

YG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아티스트들의 이탈 조짐이 보인다. 양 대표가 모든 직책서 물러나면서 내부에서는 YG를 해체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며 “YG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사명으로 변경할 계획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 임박한 양현석…구속 위기?
잇단 의혹 속 전담팀까지 구성해 압박

YG는 빅뱅과 2NE1, 블랙핑크 등을 배출한 K팝 기획사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약국이라는 오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소속 연예인과 스태프가 대마초 흡연을 비롯해 향정신성의약품 반입 등 약물 관련 문제를 잇따라 일으킨 데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

약국은 YG의 영어 이니셜과 약물 이슈를 합성해 만든, 비아냥 섞인 조어다. 빅뱅 멤버 지드래곤과 탑을 비롯해 작곡가 쿠시 등이 잇따라 마약 논란에 휘말렸고, 쿠시는 지난달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YG의 자유를 표방한 특유의 ‘방종 문화’가 ‘일’을 키웠다. 힙합 음악이란 특성을 내세워 연예인의 자유만 강조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반사회적 사건에 연루되는 연예인이 속출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선이다.
 

▲ 가수 한서희 ⓒ인스타그램

반복되는 연예인 마약 구설에 이어 YG의 조직적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자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2일 ‘YG의 연예계 활동 정지를 요청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YG 소속 연예인들이 끊임없이 마약 사건에 연루됐고, 모든 게 의혹이라고 하기엔 기획사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여 모든 방송 출연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게 청원의 골자다. 이 청원엔 2만명이 넘는 사람이 동참했다.

버닝썬→YG→양
예상대로 불똥

YG 콘텐츠 소비 거부 움직임도 거세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엠넷 갤러리’ 회원들은 최근 ‘YG 보이콧 성명문’을 냈다. 빅뱅 멤버였던 승리의 ‘버닝썬 사태’ 연루 이후 양 전 대표 등 여러 YG 관계자들이 사회적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데 대한 반발이다. 엠넷 갤러리 회원들은 “YG가 K팝 글로벌 문화를 선도하는 데 있어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기에 YG에서 제작하는 모든 음악을 수용하거나 소비하지 않을 것임을 단호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엠넷 갤러리는 케이블 음악 방송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연습생이나 워너원 등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의 팬이 모인 커뮤니티다. 엠넷 갤러리 회원들은 올 봄 일부 대학에서는 YG 가수가 축제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명지대학교에는 “YG를 소비하는 행위는 악질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간접적인 동조로 비춰질 수 있다”는 내용이 적힌 대자보가 붙었다. 그간 연예계에 많은 사건, 사고들이 벌어졌지만 특정 연예 기획사를 상대로 대중적인 보이콧이 일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YG 소속 아티스트들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래 가수들을 육성하는 매니지먼트사로 시작했던 YG는 지난 2015년부터 안영미, 유병재 등 예능형 스타들을 영입했다. 2016∼2017년께에는 강동원, 이종석, 김희애 등 거물급 배우들과 연이어 전속계약을 체결하며 종합 엔터사로 재도약했다. 

이런 가운데 이종석은 지난해 초 전속계약 만료로 YG를 떠났고 유병재도 지난달 샌드박스네트워크에 새 둥지를 틀었다. 2017년 계약해 약 2년 동안 YG에 몸담았던 오상진은 지난 4월 계약이 만료되자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탈세·성접대 
마약·유착 의혹

계약이 만료된 스타들이 연이어 새 둥지를 찾는다는 건 그 자체로 주목할만하다. 전속계약은 회사와 연예인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체결한다. YG에 몸담고 있는 스타들 가운데 일부는 자체적으로 YG 스태프들과 일을 하지 않고 있거나 계약 파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YG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이들도 다수다.

통상 6∼7년의 계약을 체결하는 신인들과 달리 소속사를 이적하는 기존 스타들의 경우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로 재계약 기간을 잡는다. 6월 현재 YG에는 강동원, 김새론, 이수혁 등 2016∼2017년 사이에 계약을 체결한 이들이 여럿 있다. 일반적인 계약 관행으로 미뤄볼 때 이들의 재계약 시점이 임박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가수 이하이와 악동뮤지션의 경우 각각 4년, 2년여의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전 대표는 자신이 설립한 YG서 23년 만인 지난 14일 불명예 퇴진했다. 양 전 대표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실처럼 이야기되는 지금 상황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며 “더 이상 YG와 소속 연예인들, 그리고 팬들에게 나로 인해 피해가 가는 상황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연예계 안팎 시나리오 솔솔∼
불매·아티스트 이탈 조짐도

양 전 대표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대표적 연예인이다. 1980년대 후반 그는 이태원서 알아주는 춤꾼이었다. 가수 박남정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던 그는 1992년 데뷔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이주노와 함께 댄스를 담당해 ‘회오리춤’ 등을 유행시켰다.

하지만 그룹 시절엔 서태지의 후광에 가려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양 전 대표는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자 그해 힙합 전문 음반기획사 ‘현 기획’을 설립, 독자 활동에 나선다. 하지만 처음 프로듀싱한 그룹 킵식스는 제대로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실패했다.  

기회는 이듬해에 찾아왔다. 그는 힙합과 R&B 기반의 기획자로 차별화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힙합듀오 지누션과 힙합그룹 원타임을 시작으로 렉시, 세븐, 휘성, 거미 등 개성 강한 R&B 가수들과 가창력이 출중한 R&B 그룹 빅마마 등을 배출했다.
 

실력 있는 가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 YG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줬다.


이후 한류를 대표하는 그룹이 된 빅뱅을 시작으로 2NE1, 위너, 아이콘, 블랙핑크 등을 속속 키워내면서 대표적인 한류 기획사가 됐다. 싸이가 YG에 몸담았을 때인 2012년에는 ‘강남스타일’의 글로벌 히트로 시가총액 1조원을 넘겨, 매머드급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했다. YG는 타 기획사가 발굴해 데뷔 20주년을 넘긴 젝스키스를 영입, 가수 라인업의 스펙트럼도 넓혔다. 

한류 이끌다…
스캔들로 추락

YG는 자사의 프로듀서인 테디가 설립한 독립레이블 더블랙레이블 등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선보일 채널도 갖춰나가면서 외형을 확대했다. 강동원, 차승원, 최지우 등 톱배우들도 잇따라 영입하며 배우 매니지먼트사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상 한국 가요계와 K팝을 이끌어온 양 전 대표. 하지만 현재는 소속 연예인들의 방송 활동을 중단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대중의 외면과 지탄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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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