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뇌부 ‘인질극 양상’ 내막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6.10 10:44:39
  • 호수 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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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수장 겨냥 ‘맞불 수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찰과 경찰이 서로의 전직 수장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마치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법조계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 돌입하면서 사정기관 양대산맥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민갑룡 경찰청장(사진 왼쪽)과 문무일 검찰총장

검경 수사권 조정안 논의 국면서 두 기관이 전·현직 지휘부를 수사대상에 올리는 등 정면충돌 양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검경의 전직 수장을 겨냥한 ‘맞불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달 10일이다. 검찰은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 정보경찰을 활용해 ‘친박’(친 박근혜)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강 전 청장은 결국 구속됐다. 

하필
이 시점에…

지난 3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성훈)는 강 전 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당시 경찰청 차장을 지낸 이철성 전 경찰청장, 김상훈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 박기호 당시 경찰청 정보심의관은 불구속 기소했다. 또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현기환 수석, 박화진 치안비서관, 정창배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이모 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 4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현 전 수석은 2016년 4월 20대 총선 당시 여당과 친박 후보의 승리를 위해 치안비서관을 통해 경찰청 정보국에 정보활동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강 전 경찰청장 등 4명은 정보경찰 조직을 동원해 ‘전국 판세분석 및 선거대책’ ‘지역별 선거동향’ 등 선거에 개입하는 정보활동을 지시했다.

이 같은 정보활동 결과는 취합 후 별보·정책자료 등으로 작성돼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을 거쳐 정무수석에게까지 보고됐다. 검찰은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 전 대통령 등 현 전 수석 윗선의 관여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외에 강 전 경찰청장과 정 전 선임행정관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 중립의무 위반 정보활동을 지시한 혐의도 공소 사실에 들어갔다. 이 전 경찰청장도 2013년 정치 중립의무 위반 정보활동을 지시한 혐의를 추가로 받는다. 또 박 전 정보심의관과 정 전 선임행정관은 2014년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는 정보활동을 한 혐의, 김 전 정보국장과 박 전 정보심의관은 2016년 언론사 노조 동향 파악, 좌파 연예인 동향 파악 등에 대한 정보활동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 구속 기소된 강신명 전 경찰청장

당시 검찰이 전직 경찰 수뇌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자마자, 경찰 내부에선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망신주기’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에 검찰은 하루 뒤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검찰은 관련자들을 상대로 책임의 정도에 대해 보완조사를 하고 신중히 판단한 결과, 기각된 대상자의 윗선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며 “(영장청구 등) 시점을 임의로 조정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선제? 강신명 전 청장 구속
경찰도 김수남 전 총장에 칼 겨눠

특히 검찰이 문제 삼은 부분은 공교롭게도 현재 수사권 조정의 핵심 사안과 일치한다. 검찰은 현재의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대로 처리될 경우 경찰 권한의 비대화를 우려하고 있다. 검찰은 정보경찰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는데, 마침 강 전 청장 등이 연루된 범죄가 바로 정보경찰과 관련된 사항이다. 검찰이 수사를 여론몰이에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검찰의 공세는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함바비리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진정서 접수 사실을 넘어 내사라는 수사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 업계의 거물 브로커 유상봉씨는 진정서를 통해 지난 2009년 서울강동경찰서 서장으로 있던 원 서울청장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 시점서 원 서울청장에 대한 진정서 접수 사실이 알려진 점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원 청장과 관련된 내부감사나 검찰의 무혐의 판단 등을 통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사안인데도, 검찰이 민감한 시기에 고의적인 고위직 흠집내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망신주기
여론전?

앞서 검찰의 함바비리 수사로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 등 고위직들이 무더기로 처벌받으면서, 2011년 논의됐던 검경 수사권 조정의 동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경찰도 가만 있지 않았다. 경찰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황철규 부산고검장을 수사 선상에 올리며 맞불을 놨다. 
 

▲ 김수남 전 검찰총장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 부산고검장, 조기룡 청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했다. 앞서 임은정 충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는 김 전 총장 등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임 부장검사가 문제 삼고 있는 건은 2015년 12월 부산지검에 소속돼있던 윤모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이다. 경찰과 검찰 등에 따르면 윤 검사는 당시 고소인의 고소장을 분실하자 다른 고소장을 복사해 상급자 도장을 찍어 고소장을 위조했다. 이후 윤 검사는 이 사건을 각하 처리했는데 고소인의 항의로 고소장 위조사실이 알려지자 이듬해 6월 사표를 냈다. 

임 부장검사는 당시 대검 감찰1과가 윤 검사의 고소장 위조 등을 인지하고 확인까지 했는데도 감찰 또는 수사를 하지 않은 점, 이를 보고받은 당시 대검 차장과 검찰총장이 그대로 결재한 점, 윤 검사가 속해 있던 부산지검 역시 고소인의 항의 등으로 고소장 위조 등을 인지했는데도 별다른 조치 없이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진흙탕 싸움
대놓고 표출

임 부장검사는 대검에 이 일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경찰에 김 전 검찰총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현재 윤 검사는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비판 여론이 일자 검찰이 지난해 10월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임 부장검사는 경찰에 출석했다. 임 부장검사는 “2015년 부산지검과 대검찰청 감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추가적으로 현직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도 예고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김 전 총장 등이 경찰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강제수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도 밝혔다. 그는 “법적 절차는 공평하게 헌법 정신에 기초해 누구에게든 차별 없이 (적용)해야 하는 것”이라며 “임의적인 방법으로 안 되는 것은 강제수사 절차가 있다.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서지현 검사가 현직 검찰 간부 3명을 직무유기와 명예훼손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은 수사 속도를 낼 예정이다. 서 검사는 권모 당시 법무부 검찰과장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로, 문모 당시 법무부 대변인과 정모 서울지검 부장검사에 대해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14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날선 신경전 미묘한 시기 
수사권조정 맞물려 주목


고소장엔 서 검사의 미투 폭로 당시, 법무부 검찰 과장은 성추행 폭로에 따른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무부 대변인과 중앙지검 부장검사는 각각 언론 대응과 검찰 내부망 글을 통해 명예훼손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고소장 내용을 분석한 뒤 지난달 28일 서 검사 측을 조사했다. 서 검사 측 변호사는 “안태근 전 검사장의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 안 전 검사장이 신청한 증인들이 위증하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 증폭되며 2차 가해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검경수사권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커진 시점에 검찰 간부를 경찰에 고소한 것과 관련해선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과 경찰 두 조직이 상대 수장을 향해 벌이고 있는 수사와는 별개로, 여론전을 위한 수사 역시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인질극의 목적은 서로의 수장을 볼모로 잡아 수사 실력과 조직 내 부패척결 의지를 국민들로부터 확인받는 것이다.

우선은 검찰이 한발 앞서 가는 형국이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밤 법원으로부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자칫 동력을 잃을 뻔했던 수사의 불씨를 살려낸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윤중천을 모른다’던 김 전 차관의 발언과 ‘심야 출국 시도’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군 멍군
양보는 없다

경찰은 ‘버닝썬 수사’에 명운을 걸었지만 승리 구속영장 기각과 추가적인 경찰 유착 비리를 밝혀내지 못하면서 맥이 다소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의 지휘하에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당초 관측보다는 수사 결과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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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