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바른미래당의 운명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당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당 지도부의 리더십은 추락했다. 의원들 사이서 알게 모르게 그어놓은 선은 선명해지는 형국이다. 브레이크 없는 내홍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이번 사태 이후 당의 모습은 ‘바미하지 않을’ 전망이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창당과 동시에 ‘한 지붕 두 가족’ 꼬리표를 쉽게 떼지 못했다. 애당초 이 같은 표현은 우려 차원서 나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서로 다른 노선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기대감도 있었지만 바미당은 노선갈등으로 꾸준히 파열음을 냈다. 정치권 관계자는 바미당의 현주소에 대해 “언젠가 크게 한 번 터질 일이었다”고 전했다.
분? 합?
앞날은?
바미당 내 갈등의 표면화는 지난 4·3보궐선거를 기점으로 한다. 4월 보궐선거의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해 6·13지방선거서 겪은 참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미당은 원내 3당임에도 불구, 3.57%를 득표해 민중당에게 밀린 4위를 기록했다.
선거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는 분란의 신호탄이었다. 이날 손학규 대표는 선거결과에 대해 “참패로 끝났다”면서도 “불모지인 경남도에 바미당의 위치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고 자평했다. 이어 “당을 흔들려는 일각의 시도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 등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손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최고위원은 “즉시 모든 의원들은 조기 전당대회 준비로 의견을 모아달라”며 “최소한 재신임 투표라도 하자”고 밝혔다.
손 대표의 측근인 이찬열 의원은 강하게 반대했다. 이 의원은 “몇몇 의원들의 내부 총질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깨끗하게 갈라서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속 의원들끼리 한데 모여 충돌한 것이다. 당시 바미당이 분열의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언주 의원은 이날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의원은 지난달 선거를 앞두고 보수성향 인터넷 방송 <고성국 TV>에 출연, 손 대표를 겨냥해 “창원서 숙식하는 것도 제가 보면 정말 찌질하다”며 “아무것도 없이 ‘나 살려주세요’ 이렇게 하면 짜증 난다”고 말했다. 당시 손 대표는 지원유세를 위해 창원성산에 방을 얻은 바 있다.
당원권 정지 1년은 바미당 중앙윤리위원회서 내릴 수 있는 징계 중 ‘제명’ 다음으로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의원의 징계가 확정된 것을 두고 “사실상 이 의원에게 당을 나가라는 이야기”라며 “이 의원의 탈당에 명분을 제공해줬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후폭풍, 갈수록 점입가경
노선갈등·선거참패…곪던 갈등 폭발
바미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로 한 차례 더 부딪혔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당내 이견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바미당은 표결로 패스트트랙 추인을 결정키로 했다.
지난 23일 열린 의원총회서 표결이 이뤄졌다. 표결 결과는 찬성 12표와 반대 11표. 패스트트랙은 우여곡절 끝에 합의됐지만 팽팽한 표차로 당 분열은 가팔라지는 모양새였다.
의총 직후 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당의 의사결정이 이런 식으로 이뤄진 것은 굉장히 심각하다”며 “당의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동지들과 함께 당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은 이 의원은 의총 한 시간여 뒤 바미당을 탈당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 자리서 패스트트랙에 대해 “당 내부에 이견이 있는데도 의총서 상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태”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표결 결과가 단 한 표차이로 갈라졌음을 미뤄볼 때 이 의원이 징계를 받지 않고 의총에 참여했다면 상황은 다소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의원은 선거제 개편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것에 반대한 바 있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이 의원의 한 표가 있었으면 12대 12로 부결”이라며 “왜 그토록 당원권 정지에 목을 맸는지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바미당의 합의안 추인으로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은 동력을 얻는 듯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 위원인 바미당 오신환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오 의원은 패스트트랙 추인 여부를 결정한 의총 이튿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12대 11이란 표결 결과가 말해주듯 합의안 추인 의견은 온전한 ‘당의 입장’이라기보다 ‘절반의 입장’이 됐다”며 “누더기 공수처법안을 위해 당의 분열에 눈감으며 제 소신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12대 11
후폭풍
패스트트랙의 안건은 소관위원회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지정 가능하다. 공수처의 소관위는 사개특위다. 사개특위 위원 수는 총 18명으로 1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사개특위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9명과 한국당 7명, 바미당 1명, 그리고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1명으로 구성돼있다. 공수처 패스트트랙에 찬성한 민주당과 평화당 등 10명은 찬성, 한국당 7명은 반대 입장이다.
캐스팅보트를 바미당이 쥐고 있는 셈이다. 결국 오 의원이 반대하면 이른바 ‘패스트트랙 패키지’ 불발로 이어진다.
오 의원이 공수처 반대 입장을 드러내자 당 지도부는 이날 ‘사보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보임은 사임과 보임을 일컫는다. 사임과 보임은 각각 맡은 자리서 물러나는 것과 어떤 직책에 임명하는 것을 뜻한다. 즉 사보임이란 국회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 등에서 기존 위원을 물러나게 하고 새 위원을 임명하는 것이다.
사보임은 원내대표의 고유권한으로 원내대표는 상임위 등에 소속 의원들을 임명하거나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원내대표는 이를 국회의장에게 신청한 뒤 국회의장의 승인 여부에 따라 사보임이 결정된다. 국회법에 따라 특위 위원은 임시회 회기 중 사보임이 불가능하지만, 부득이할 경우 의장의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다.
지난 24일 공수처 등 패스트트랙을 강하게 반대한 한국당이 의장실을 점거,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오 의원의 사보임 저지를 촉구한 까닭이다.
오 의원의 반대표로 패스트트랙이 무산 위기에 처하자 김관영 원내대표는 사보임을 추진했다. 김 원내대표는 오 의원 대신 채이배 의원을 사개특위에 배치하기로 했고, 오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국회 본청 의사과를 찾아 이를 저지했다. 의사과는 사보임 서류를 접수하는 곳이다.
바른정당계 좌장인 유 전 공동대표는 의사과 앞 복도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이유로든 사보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고,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며 “동료 의원들을 거짓말로 속이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당내 균열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바미당은 다음 날 25일 소속 의원들 간 내분 격화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사보임을 강행했다. 바미당은 오 의원 대신 채 의원을 사개특위 위원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사보임 신청서를 팩스로 의사과에 제출했다.
유 전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유 전 공동대표를 비롯해 오신환·이혜훈·정병국·하태경 의원은 문 의장이 입원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문 의장은 전날 한국당 의원들과의 충돌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러나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병원 관계자의 설명에 문 의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정계 개편?
현상 유지?
유 전 공동대표는 이날 “팩스로 사보임계를 제출했다는 것 자체가 당이 정상이 아니다”며 “의장이 사보임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 의장은 병동서 사보임 신청서를 결재했다.
바미당은 그간 정계개편이라는 키워드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선갈등은 정계개편의 군불을 지폈고, 소속 의원들의 탈당은 기름을 부었다. 저조한 선거 결과도 한몫했다. 다만 가능성만 거론됐을 뿐 당 전체가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월 보궐선거 참패와 패스트트랙 이견 표출로 당은 획기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차기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 점도 배제하기 어렵다. 바미당의 현상 유지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과정서 분당이나 합당이라는 말들이 거리낌 없이 나왔다”며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분당 가능성이 제기됐다. 창당 이후 당의 완전한 통합이 요원했던 터라 이번 시점서 갈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권 안팎의 반응을 종합해볼 때 바미당이 당장 공중분해될 가능성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바른정당계인 이혜훈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통합 당시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가 같이하기로 합의가 됐고 당의 헌법에도 그렇게 규정했다”며 “통합 이후 우리는 진보인데 중도를 빼고 보수와 진보의 결합으로 바꿔달라고 계속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보수와 진보는 서로 각기 다른 방향을 달리는 2개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며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말 두 마리를 동시에 끌고 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국민의당 전체가 아니고 일부”라고 덧붙였다.
정당보조금이 꽤 남아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바미당은 원내 3당임에도 불구, 20석을 넘겨 교섭단체를 형성했다.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보조금 차이는 상당하다. 일각에선 바미당이 내년 총선을 대비해 50억원가량의 자금을 구비 중이라고 전했다.
탈당하고 혈혈단신, 현실적 한계는?
지도부 리더십 타격, 주목받는 유-안
바미당 이상돈 의원은 지난 22일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갈라선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정당법에는 분당이란 개념이 없다. 당의 주류에 불만이 있는 의원들이 그냥 맨몸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바미당이 국가서 보장을 많이 받고, 교섭단체 프리미엄도 있다”며 “바미당서 내분이 있어도 한쪽이나 다른 쪽에서 쉽게 나가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교섭단체기 때문에 계속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 그걸 포기하고 맨몸으로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3지대론 형성’도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패스트트랙 사태가 있기 전 바미당은 평화당과 함께 3지대론으로 이목을 끌었다. 바미당 소속 호남출신 의원들은 평화당 의원들과 접촉한 바 있다. 바미당 박주선·김동철 의원이 대표적이다.
바미당 박주선 의원은 지난 19일 가톨릭평화방송(C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손 대표에게 ‘임기가 있기 때문에 물러나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만 가지고는 안 되고, 지지율이 땅바닥을 치고 있는데 어떻게 다시 지지율을 높여 총선서 승리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손 대표에게 “그 대안으로 바미당이 주도해 제3지대서 빅텐트를 치고, 국민의당에 있었던 평화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를 하겠다고 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바미당의 중심축 중 하나인 유 전 공동대표는 3지대론에 대해 부정적이다.
유 전 공동대표는 지난 18일 의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지역당이 되겠다는 차원서 평화당과 합쳐서 호남 선거만 생각하면 당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바미당 스스로 개혁적 중도보수정당으로 일어서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며 3지대론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3지대론에 바미당과 평화당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본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장 총선을 앞두고 3지대 구축을 언급하는 것은 당 내외적으로 비판이 될 수 있다”면서도 “‘거대 양당체제의 기득권 타파’라는 명분으로 불씨는 언제든지 살릴 수 있다.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바미당의 최대주주인 유 전 공동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복귀를 점친다. 바미당 창당의 두 핵심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은 점도 유효했다.
공통분모
역할론은?
이준석 최고위원은 지난 25일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서 “손 대표의 유일한 대안이 ‘유승민-안철수 역할론’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대안 중에서 유의미하고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대안인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폭주에 대해 유 전 공동대표나 안 전 공동대표와 정치하는 사람들의 공감대가 오랜만에 형성됐다”며 “역할론이 뒤바뀔 때가 됐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