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경(검찰과 경찰)의 입장이 말이 아니다. 일명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으로 검찰과 경찰 모두 수사 부실·축소·유착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수사기관에 대한 끝없는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대안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설치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한 상황이다. 수사권 조정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 65%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찬성 응답자 10명 중 6명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에 반대했다.
엎어치나
메치나∼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이 65.2%(매우 찬성 46.1%, 찬성하는 편 19.1%)로 집계됐다. 반면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23.8%(매우 반대 12.9%, 반대하는 편 10.9%)였다. ‘모름·무응답’은 11.0%였다.
공수처 찬성여론이 높아진 것은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서 보인 검찰과 경찰의 행태에 대한 끝없는 불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샅바싸움이 한창이던 검찰과 경찰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성 여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버닝썬 사태’가 경찰관 유착, 마약, 성범죄 등으로 사건이 확대되면서 코너에 몰렸다. 경찰은 이 사건에 명운을 걸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경찰관 유착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경찰은 승리의 카카오톡 대화방서 ‘경찰총장’으로 거론된 윤모 총경을 피의자로 전환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 총경은 지난 2016년 초 사업가인 지인을 통해 유모 대표를 소개받았다고 조사 과정서 진술했다.
합의 앞두고 사건·사고로 얼룩
‘감 놔라 배 놔라’ 처지가 못 되네
경찰은 이들이 2017∼2018년까지 함께 골프와 식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윤 총경이 청와대서 파견근무를 했던 시기와 겹친다. 이 자리에는 카톡방 내 연예인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관련된 현직 경찰관 3명을 대기발령 조치했으며 이들에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관련된 경찰관 유착 의혹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다.
원 청장은 “서울청 광역수사대, 지수대, 사이버수사대 등 역량을 총집중해서 전방위적인 수사를 하고 있음에도 국민적 불신과 우려가 상당하다는 것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며 “경찰관 유착범죄에 대해 최우선 순위를 두고 수사에 집중해 어떤 직위에 있든지, 어떤 계급이든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이 같은 빠른 조치는 정부가 추진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경찰 조직에 대한 국민 불신이 팽배해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다. 경찰관 유착 의혹에 대한 집중수사를 통해 ‘부패경찰’이란 오명을 씻어내려고 한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검경 수사권 조정에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버닝썬 사태로 급변했다. 경찰에게 수사권을 넘기는 것은 ‘고양이를 생선 가게에 맡기는 꼴’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서 열린 경찰청 업무보고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적극 추진했던 여당 의원들조차 경찰을 질타했다. 이런 상황서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의 발언권은 검찰에 밀릴 수밖에 없다.
실리·명분
다 잃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버닝썬 성폭행·마약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경찰 조직이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라며 “경찰 윗선에선 이번 강남 클럽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수사권 조정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검찰은 경찰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이라는 대형 악재가 검찰에게 터졌다. 김 전 차관을 두 차례 ‘무혐의 처분’한 검찰이 당시 사건을 무마, 혹은 축소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조사 중이다. 경찰이 특수강간 등 혐의로 넘긴 김 전 차관에 대해 검찰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했다. 성접대 정황이 담긴 동영상이 나왔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과 상관이 없다고 봤다.
검찰은 사건 수사 당시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출석 불응은 물론 진술까지 거부했고, 검찰은 경찰이 청구한 영장 9번, 출국금지 2번을 모두 반려했다. 피해자의 요구로 검사까지 바꾼 2차 수사에서도 김 전 차관을 소환 한 번 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렇게 묻힐 뻔했던 사건에 대해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과거사위가 사건 재조사를 권고하여 대검 진상조사단의 수사가 재개된 것. 하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과 없이 3월 말 사건의 종료를 앞두고 있던 시점서 검찰수사 시 누락된 동영상과 사진파일 약 3만건이 공개됐다.
이와 함께 민갑룡 경찰청장이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서 감정 의뢰 없이 (김 전 차관과) 동일인이라고 결론을 내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히면서 부실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여기에 피해자의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면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기간도 연장됐다.
유흥업소 유착
사건 축소 의혹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당시 법무부장관)와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도 직권남용 혐의로 재수사 권고 대상에 올랐다. 김 전 차관은 ‘심야 출국’을 시도했다가 긴급 출국금지를 당했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신속 수사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또 한 번 권력 유착과 비호,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자연스럽게 수사권 조정 국면서 여론의 싸늘한 시선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검찰과 경찰 모두를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렸다. 2009년 장씨 사망 후 검찰은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7명 중 2명만 기소했다. 장씨가 문건서 ‘<조선일보> 방 사장’ 등 유력 인사들을 지목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경찰이 장씨의 휴대전화 3대서 통화내역, 디지털 포렌식 결과물 등을 수사기록서 누락시켰던 사실도 드러났다.
장씨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검경의 수사력 경쟁은 김 전 차관 사건, 버닝썬 사건을 두고 벌어질 듯하다. 이날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검찰과 경찰이 스스로 치부를 얼마나 밝힐지 여론의 불신은 여전하다. 일각에선 검찰이 버닝썬 사건을, 경찰이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수처 신설이 힘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최근 특권층의 불법적 행위와 외압에 의한 부실수사, 권력의 비호, 은폐 의혹 사건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매우 높다. 공수처 설치의 시급성이 다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극에 달한 수사 불신
공수처 설치 65% 찬성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학썬 사건을 통해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이 확인된 만큼 관련 입법이 신속히 처리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 찬성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공수처 논의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공수처가 수사권과 함께 기소권까지 가져야만 검찰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수사기관의 역할을 해, 검찰을 견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경쟁에 따른 ‘메기 효과’다.
하지만 바미당은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하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드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칫 야당 탄압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다.
아직 두 당 간 협상의 문은 열려 있지만 협상의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이는 문 대통령의 공약인 데다 민주당이 애초부터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공수처 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야3당과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세 사건 연루
공수처가 답?
바미당도 물러서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도 애초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설치안을 당에 추인하는 과정서 반발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다시 민주당의 원안을 수용하기가 힘든 상태다. 이미 정치권 일각에선 공수처 설치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시도가 깨졌다고 보는 시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