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썬’ 사건과 수사권 조정 삼차방정식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4.01 09:39:00
  • 호수 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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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나 검찰이나 ‘도긴개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경(검찰과 경찰)의 입장이 말이 아니다. 일명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으로 검찰과 경찰 모두 수사 부실·축소·유착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수사기관에 대한 끝없는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대안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설치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한 상황이다. 수사권 조정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 65%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찬성 응답자 10명 중 6명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에 반대했다. 

엎어치나
메치나∼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이 65.2%(매우 찬성 46.1%, 찬성하는 편 19.1%)로 집계됐다. 반면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23.8%(매우 반대 12.9%, 반대하는 편 10.9%)였다. ‘모름·무응답’은 11.0%였다.

공수처 찬성여론이 높아진 것은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서 보인 검찰과 경찰의 행태에 대한 끝없는 불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샅바싸움이 한창이던 검찰과 경찰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성 여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버닝썬 사태’가 경찰관 유착, 마약, 성범죄 등으로 사건이 확대되면서 코너에 몰렸다. 경찰은 이 사건에 명운을 걸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경찰관 유착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경찰은 승리의 카카오톡 대화방서 ‘경찰총장’으로 거론된 윤모 총경을 피의자로 전환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 총경은 지난 2016년 초 사업가인 지인을 통해 유모 대표를 소개받았다고 조사 과정서 진술했다.

합의 앞두고 사건·사고로 얼룩
‘감 놔라 배 놔라’ 처지가 못 되네 

경찰은 이들이 2017∼2018년까지 함께 골프와 식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윤 총경이 청와대서 파견근무를 했던 시기와 겹친다. 이 자리에는 카톡방 내 연예인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관련된 현직 경찰관 3명을 대기발령 조치했으며 이들에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관련된 경찰관 유착 의혹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다.

원 청장은 “서울청 광역수사대, 지수대, 사이버수사대 등 역량을 총집중해서 전방위적인 수사를 하고 있음에도 국민적 불신과 우려가 상당하다는 것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며 “경찰관 유착범죄에 대해 최우선 순위를 두고 수사에 집중해 어떤 직위에 있든지, 어떤 계급이든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이 같은 빠른 조치는 정부가 추진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경찰 조직에 대한 국민 불신이 팽배해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다. 경찰관 유착 의혹에 대한 집중수사를 통해 ‘부패경찰’이란 오명을 씻어내려고 한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검경 수사권 조정에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버닝썬 사태로 급변했다. 경찰에게 수사권을 넘기는 것은 ‘고양이를 생선 가게에 맡기는 꼴’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서 열린 경찰청 업무보고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적극 추진했던 여당 의원들조차 경찰을 질타했다. 이런 상황서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의 발언권은 검찰에 밀릴 수밖에 없다. 

실리·명분 
다 잃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버닝썬 성폭행·마약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경찰 조직이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라며 “경찰 윗선에선 이번 강남 클럽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수사권 조정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검찰은 경찰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이라는 대형 악재가 검찰에게 터졌다. 김 전 차관을  두 차례 ‘무혐의 처분’한 검찰이 당시 사건을 무마, 혹은 축소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조사 중이다. 경찰이 특수강간 등 혐의로 넘긴 김 전 차관에 대해 검찰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했다. 성접대 정황이 담긴 동영상이 나왔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과 상관이 없다고 봤다.
 

▲ 민갑룡 경찰청장

검찰은 사건 수사 당시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출석 불응은 물론 진술까지 거부했고, 검찰은 경찰이 청구한 영장 9번, 출국금지 2번을 모두 반려했다. 피해자의 요구로 검사까지 바꾼 2차 수사에서도 김 전 차관을 소환 한 번 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렇게 묻힐 뻔했던 사건에 대해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과거사위가 사건 재조사를 권고하여 대검 진상조사단의 수사가 재개된 것. 하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과 없이 3월 말 사건의 종료를 앞두고 있던 시점서 검찰수사 시 누락된 동영상과 사진파일 약 3만건이 공개됐다.

이와 함께 민갑룡 경찰청장이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서 감정 의뢰 없이 (김 전 차관과) 동일인이라고 결론을 내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히면서 부실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여기에 피해자의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면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기간도 연장됐다.

유흥업소 유착 
사건 축소 의혹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당시 법무부장관)와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도 직권남용 혐의로 재수사 권고 대상에 올랐다. 김 전 차관은 ‘심야 출국’을 시도했다가 긴급 출국금지를 당했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신속 수사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또 한 번 권력 유착과 비호,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자연스럽게 수사권 조정 국면서 여론의 싸늘한 시선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검찰과 경찰 모두를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렸다. 2009년 장씨 사망 후 검찰은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7명 중 2명만 기소했다. 장씨가 문건서 ‘<조선일보> 방 사장’ 등 유력 인사들을 지목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경찰이 장씨의 휴대전화 3대서 통화내역, 디지털 포렌식 결과물 등을 수사기록서 누락시켰던 사실도 드러났다.


장씨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검경의 수사력 경쟁은 김 전 차관 사건, 버닝썬 사건을 두고 벌어질 듯하다. 이날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검찰과 경찰이 스스로 치부를 얼마나 밝힐지 여론의 불신은 여전하다. 일각에선 검찰이 버닝썬 사건을, 경찰이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수처 신설이 힘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최근 특권층의 불법적 행위와 외압에 의한 부실수사, 권력의 비호, 은폐 의혹 사건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매우 높다. 공수처 설치의 시급성이 다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극에 달한 수사 불신
공수처 설치 65% 찬성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학썬 사건을 통해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이 확인된 만큼 관련 입법이 신속히 처리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 찬성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공수처 논의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공수처가 수사권과 함께 기소권까지 가져야만 검찰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수사기관의 역할을 해, 검찰을 견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경쟁에 따른 ‘메기 효과’다. 
 

하지만 바미당은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하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드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칫 야당 탄압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다.


아직 두 당 간 협상의 문은 열려 있지만 협상의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이는 문 대통령의 공약인 데다 민주당이 애초부터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공수처 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야3당과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세 사건 연루
공수처가 답?

바미당도 물러서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도 애초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설치안을 당에 추인하는 과정서 반발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다시 민주당의 원안을 수용하기가 힘든 상태다. 이미 정치권 일각에선 공수처 설치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시도가 깨졌다고 보는 시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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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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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