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데뷔 60주년’ 이미자가 걸어온 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3.04 09:58:28
  • 호수 1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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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고 배고픈 설움 노래로 달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올해로 노래 인생 60년을 맞은 가수 이미자. 인생의 8할을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렸다. 길었던 세월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의 노래 인생을 돌아봤다. 
 

▲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이미자가 지난달 21일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을 발표했다. 1959년 열아홉에 데뷔, 어느덧 가수 생활 ‘환갑’을 맞이하면서 한 데 모은 60곡이다. 이번 기념 앨범은 ‘감사, 공감, 순수’의 타이틀을 붙인 3개의 CD로 나왔다. 이미자의 대표곡과 신곡에 전통가요를 버무렸다.

노래인생 
어느덧 환갑

가장 눈에 띄는 건 1번 CD의 첫 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이다. 이 노래는 60주년을 기념해 새로 만든 곡이다. 60년간의 활동을 지지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50주년 기념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을’, 45주년 기념곡 ‘내 영혼 노래가 되어’ 등이 수록돼있다. 물론 국민적 사랑을 받은 대표곡도 포함돼있다. 

이미자는 “50주년 기념곡이 마지막인 줄로만 알았는데 운 좋게 6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며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처럼 라이브 연주에 맞춰 10여곡을 새로 녹음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성량이 예전만 못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20대부터 70대까지 목소리를 통해 지나온 세월과 변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흑산도 아가씨’를 듣고 눈물 한 번 훔치지 않았던 청춘이 있었을까. 그는 “다 같이 어렵던 시절과 노랫말 및 목소리가 잘 맞아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오늘 여기 온 기자들보다 그 부모님 세대의 사랑이 더 컸기에 이런 뜻깊은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역시 이 같은 감정의 연장선에 있다. 50주년 기념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을’을 만든 김소엽 시인, 장욱조 작곡가와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이미자가 소회를 밝히면 김 시인이 노랫말로 다듬는 식이었다.

59년 19세 데뷔해 무수한 히트곡
2000여곡 부른 ‘엘레지의 여왕’ 

다만 10년 전 노랫말이 설움이 굽이굽이 맺혀있었다면 이번엔 “우리의 눈물은 이슬 되어 꽃밭에 내리고/우리의 아픔은 햇빛 되어 꽃을 피웠네” 등 한결 온화해졌다.   

그 시절 이미자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3대 히트곡이 금지곡으로 묶였을 때를 꼽았다. 각각 ‘왜색이 짙다’, ‘다른 노래와 몇 소절이 같다’, ‘너무 처량해서 비탄조다’ 등의 이유였다.

“1964년 ‘동백 아가씨’가 KBS 음악방송서 35주간 1위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차트서 없어졌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고, 무대서 부를 수도 없었다. 목숨을 끊어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팬들께서 한사코 불러주신 덕분에 큰 힘이 됐다.”   

이미자는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1959년 데뷔, 1973년 베트남 위문 공연, 2002년 평양 단독 공연 등 최초의 순간을 꼽았다. 하지만 이미자 앞에는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아픔이 있다. 이미자는 “가장 기뻐야 했을 때 역시 항상 붙어 다니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이미자의 노래가 ‘천박하다’ ‘술집에서나 부르는 노래다’ 등 세간의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자는 소외감을 느꼈으며, 서구풍 발라드 노래를 불러 볼까도 생각했었다. 이미자는 “당시 참았다. 견뎠다. 60년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절제하면서 잘 지내왔구나 하는 마음에 자부심까지 갖고 있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앨범은 감사·공감·순수를 테마로 3장의 CD에 각 20곡씩 눌러 담은 앨범이다. 그간 발표된 560장의 앨범과 2100여 곡 중에 추리는 것만도 대작업이다. 첫째 둘째 CD가 기념곡과 히트곡 위주라면, 세 번째는 온전히 가요계 선배들을 위한 장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등을 담았다.

가요계 전설
애절한 울림

이미자는 “우리 가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노래를 들으며 나라 잃은 설움, 배고픔의 설움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 시절 고마운 곡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자는 후배들을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가요의 뿌리가 사라져 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사 전달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슬프면 슬픔을 전달해주고, 기쁘면 기쁨을 전달해줄 수 있는 게 가요”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서구풍이 많이 몰려오다 보니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발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도 없다. 그 부분이 제일 안타깝다. 우리 가요의 뿌리가 남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자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국보급 가수’다. 그가 활동한 기간이 고스란히 한국 가요계의 역사와 포개진다. 작은 체구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애절하면서도 고운 음색은 연구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부르는 것 같지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관객의 마음을 울고 웃게 했다. 

이미자는 1941년 10월30일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서 아버지 이점성과 어머니 유상례 사이서 2남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미자가 2살이 되던 1943년에 아버지가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됐다. 
 

1945년에는 힘든 생활고 때문에 어머니 유상례에 의해 외할머니 댁에서 형제들과 떨어져 외롭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던 이미자는 1957년에 방송하던 노래자랑 프로그램 KBS의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해 1위를 차지했다. 1958년 이미자는 HLKZ TV 방송이 개최한 아마추어 노래 콩쿨인 예능 ‘로타리’에 출전해 1등에 선정됐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 나화랑에게 스카우트된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으로 가수로 첫발을 내디뎠다.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주목받았다. 

1960년 어려운 시절에 함께 알고 지내던 연주자 정진흡과 첫 번째 결혼을 했다. 1964년 이미자가 부른 영화 주제가 ‘동백아가씨’가 대히트를 쳤다. 당시 스카라 극장 근처 목욕탕 건물 2층서 방음장치는 물론, 얼음물에 발을 담가가며 임신 9개월인 상태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군정 시절 
금지되기도


국내가요 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 25만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당시 대한민국 음반업계가 불황을 겪던 그 해, ‘동백 아가씨’는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왜색조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령을 선고받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남편 정씨와 이혼하게 된다. 

이미자는 1965년에 평생의 콤비가 된 작곡가 박춘석과 만나게 됐다. 박춘석은 패티 김, 최양숙, 남진 등 당대 스타들을 발굴한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다. 박춘석과 이미자는 KBS 라디오 연속극 <진도아리랑>의 주제가로 첫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뗄 수 없는 콤비로 손을 잡게 만든 노래는 ‘흑산도 아가씨’였다. 박춘석은 이미자의 천재적 가창력에 감탄했다.

이어 1966년 KBS라디오 주제가 ‘섬마을 선생님’도 발표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빅히트를 기록했다. 이미자가 스스로 3대 히트곡으로 꼽는 노래 가운데 ‘기러기 아빠’도 박춘석이 작곡한 노래이다. 한창 전성기를 누비던 1966년 2월5일에 강릉서 공연을 하던 이미자는 자신을 찾아온 생모를 22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하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이미자와 어머니의 몇 시간의 짧은 만남이 끝난 후 어머니는 영주로 이미자는 다음 공연을 위해 묵호로 떠났다. 이것이 이미자와 어머니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박정희정부가 들어서고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이미자의 히트곡 대부분이 금지곡으로 분류됐다. 왜색이나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비탄조의 노래라는 이유에서였다. 히트할 때마다 줄줄이 금지곡 낙인을 받자 그녀는 노래를 그만두려고 했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기념앨범 ‘나의 노래 60곡’
신곡, 히트곡, 애창곡 등
20대부터 70대 목소리 담아  

기회 있을 때마다 해금을 요청했고, 결국 전두환정부인 1987년이 돼서야 금지곡의 족쇄가 풀렸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이미자는 1967년부터 영화 주제가로 발표된 ‘그리움은 가슴마다’ ‘아네모네’ ‘여자의 일생’ 등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며 대한민국의 대표가수의 맥을 이어가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이미자와 함께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하던 패티 김과 함께 196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이미자를 따라다니는 애칭(엘레지(悲歌)의 여왕)은 1967년에 박춘석이 작곡한 이미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 주제가 ‘엘레지의 여왕’을 히트시키면서 얻었다.

1970년에는 TBC 동양방송 드라마의 주제가였던 ‘아씨’가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해 KBS 방송위원이었던 김창수와 결혼했다. 

1979년에는 대한극장서 데뷔 20주년 기념공연을 개최했다. 1985년 (주)민주음악협회의 초청으로 일본 도쿄, 오사카서 공연을 개최, 공연에 앞서 한일(韓日)공동기획으로 ‘한국연가(戀歌)의 계보를 듣는다’는 2장짜리 독집 음반을 출판했다. 1989년에 뉴저지 등에서 미국공연을 가졌다.

가수생활 30년 기념으로 ‘노래는 나의 인생’을 발표,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서 데뷔기념 30주년 공연을 개최했다. 북한의 초청으로 2003년, 평양 동평양대극장서 열린 MBC 평양특별공연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1970년부터 서서히 가요계의 주도권을 후배 가수 남진, 나훈아, 문주란, 하춘화에게 내주게 됐지만 지금껏 취입한 노래는 스스로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1960년대 내내 한해에 음반을 무려 10여장씩 발표, 데뷔 10년 만인 1969년 <1000곡 돌파 기념 리사이틀>을 가졌을 정도다.

1991년 KBS자료실은 그녀가 취입한 노래를 2064곡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국내 가수들 가운데 누구도 견줄 사람이 없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적인 숫자다. 

가요계 주름
여전한 가왕

지난 1995년엔 화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흔히 그녀가 노래하는 장르를 트로트로 분류하고 트로트의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본인은 자신의 노래들이 트로트보다는 전통가요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까지도 뛰어난 가창력과 대중을 사로잡는 무대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4년에는 데뷔 55주년을 맞이해 전국 투어 콘서트, 디너쇼를 열었으며 이듬해에는 가수 장사익과 <이미자-장사익 특집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특집 콘서트는 KBS 1TV서 방영돼 20.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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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