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28하노이선언

이번에 톡 까놓고 툭 터놓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두 번째 세기의 만남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장소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변경됐지만 의제는 동일하다. 북미는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두고 다시 한 번 맞붙을 예정이다. 미리 보는 하노이선언.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될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서 오는 27일부터 28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연방의회서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2차 북미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모두 공개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협상 의제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비핵화 조치
제재 완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제1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1차 북미회담 이후 발표된 합의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합의 사항은 선언적 수준에 그쳤고,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양국은 1차 북미회담이 열리기까지 팽팽하게 맞붙었다. 과거부터 지속된 양국 간 불신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앞두고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지만 북미 간 불신은 공동합의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1차 북미회담 이후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됐다. 다만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북미는 ‘선 비핵화 조치’와 ‘선 대북제재 완화’의 순서를 두고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후 약 8개월 만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양국이 정상회담을 개최할 만한 접점을 찾았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관건은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다. 상응조치는 대북 경제제재 해제로 수렴한다. 북미가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라는 큰 그림 속에서 무엇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을지가 이번 2차 북미회담의 의의를 결정짓게 된다.

북미정상 재회…센토사서 하노이로
비핵화-상응조치, 얼마나 주고받나

북미는 두 가지 관건에 도달하기 위해 싱가포르선언 당시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6·25전쟁 전사자 유해송환 등에 공동 합의했다. 북미는 4개 항을 뼈대로 2차 북미회담서 구체적인 내용물을 채운 뒤,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를 향해 한 걸음 진보할 전망이다.

2차 북미회담에 앞서 북미는 실무협상에 나섰다. 1차 실무협상은 지난 6∼8일 평양서 열렸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2박3일간 방북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벌였다. 이날 북한은 비건 특별대표에게 미국의 상응조치로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그리고 종전선언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문희상 의장과 여야 5당 대표단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10여개 이상의 문제를 논의했고, 싱가포르선언 이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가 2차 북미회담서 완전한 비핵화 등 4가지 공동합의사안이 담긴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10개 이상의 문제는 싱가포르선언이라는 뼈대 안에 채워질 구체적인 내용물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튿날 대표단은 워싱턴DC 인근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했다.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은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등 4가지 아니냐고 묻자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4가지 상응조치는 경제발전과 체제안정,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으로 압축된다.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은 경제발전에,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는 체제안정에, 그리고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4가지 사안
비핵 로드맵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은 경제 분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대단한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며 “북한은 다른 종류의 로켓이 될 것-경제로켓!”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 칭했다. 당시 북미는 전쟁설이 거론될 정도로 첨예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경제로켓을 언급한 것은 북미 관계의 변화와 함께 비핵화 조치의 원동력이 경제가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의 우선순위로 거론된다. 김 위원장 역시 개성공단 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신년사에서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 등의 재개를 위한 일련의 비핵화 조치를 내세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경제제재 완화의 가능성이 돋보이는 이유로 회담 장소의 상징성이 지목되기도 한다. 2차 정상회담은 베트남서 열린다. 베트남과 미국은 과거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시작된 양국 간 화해무드는 원조와 관계 정상화, 개혁·개방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이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이 베트남서 열리는 만큼 미국서도 북한 경제와 관련된 사안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다.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은 과거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수전 셔크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와의 인터뷰서 “미국은 몇 년 전,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며 “미국과 북한이 개설에 합의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호 연락사무소는 양국 간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평가된다.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는 대목에 따르면 이번엔 북한이 먼저 북미 상호 연락소를 제안한 셈이다. 공동합의문에 상호 연락소가 담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미 간 종전선언도 조명을 받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불발되면서 이른바 ‘4자(남북미중) 종전선언’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북미회담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위해 베트남행을 계획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북미 간 종전선언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 스티븐 비건 미국 대표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지난 13일 BBS 불교방송 <BBS 뉴스파노라마>에 출연, “북미 간 종전선언을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홍 실장은 “미중 간에도 수교는 했다. 북미 간 종전선언을 하면 매듭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작년에 평양서도 남북군사합의서로 (우리도) 종전선언으로 넘어갔다”며 4자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북미의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입장차는 첨예하다. 북미 종전선언은 북미관계를 넘어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지만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다.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을 위해 UN군사령부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지난 14일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와 감축은 논의하거나 계획된 바 없다”고 밝혔다. 우리 국방부도 전날 주한미군 주둔과 종전선언, 평화협정과 관계가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개성, 금강산
영변 핵시설…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한 4가지 상응조치에 따라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영변 핵시설 폐기 및 검증,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또는 반출,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사찰 등이 언급된다. 북미가 2차 북미회담서 해당 조치에 모두 합의한다면 사실상 비핵화 로드맵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셈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영변 핵시설 폐기서 시작한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시작으로 북한은 기존의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신고하게 된다. 이후 신고내역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증과 사찰이 진행되고, 완전한 핵 폐기로 나아가게 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폐기 등과 풍계리, 동창리에 대한 사찰은 비핵화 로드맵의 과정 중 하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합의 사항이 나온다면 비핵화 로드맵에 시동이 걸리게 될 공산이 크다.

비건 특별대표는 김 특별대표와 함께 이번 주 2차 실무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2차 실무협상에선 하노이선언의 초안을 작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지난 12일 “(비건 특별대표가)다음 실무 협상서 합의문 작성에 들어간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2주밖에 남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차 회담 뼈대…하노이 선언문 작성
촉박한 협상 시간, 회의론도 고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같은 날 “(비건 특별대표가) 2차 북미회담 이후에도 실무 회담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비건 특별대표가 ‘특별대표가 된 이후 6개월 만에 북측을 처음 만났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 말에 따르면 비건 특별대표는 “내용상으로 다룰 시간이 없다. 실무 협상 뒤 2차 북미회담을 진행하고 협상을 더 해나가야 한다”고 털어놨다.

결국 비건 특별대표는 북미 간 의제 협상에 있어 큰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북미는 2차 북미회담 일정이 못 박힌 상황서 물리적인 한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모양새다. 당장 다음주에 2차 북미회담이 열리게 되지만 시간은 촉박하다. 북한이 요구한 4가지 상응조치와 비건 특별대표가 언급한 10여개의 의제는 2차 북미회담서 전부 논의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접점을 찾은 몇몇 의제만이 합의문에 담길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서 이번 2차 북미회담 결과를 싱가포르선언과 대동소이할 것이라 예상하는 까닭이다.

한편 2차 북미회담이 개최될 경우 예상하지 못했던 사안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선언했고 경제발전을 언급하는 등 정상국가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불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정상회담을 거친 두 정상이 이번 2차 북미회담서 돌발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선 2차 북미회담의 불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 개최 과정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북미회담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

담을 수 있는
만큼 담는다

2차 북미회담도 지난번과 같이 갑작스럽게 취소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관건은 이번 주 선언문 초안을 작성할 것으로 예정된 2차 북미 실무협상이 될 공산이 크다. 북미는 각각 상응조치와 비핵화 조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부단계를 하노이선언문에 담을 전망이다. 이후 북미 간 실무협상을 지속하면서 3차, 4차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하노이 산책회동
속 깊은 대화는 걸으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서 산책회동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그간 1차 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서 각국 정상과 산책을 한 바 있다. 1차 남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도보다리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다. 또 김 위원장은 1차 북미회담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벼운 산책을 했다.

김 위원장은 산책회동을 선호하는 모양새다. 정상국가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그간 ‘은둔의 지도자’로 불렸지만 잦은 노출을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은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하노이호텔서 열릴 공산이 크다. 해당 호텔은 여러 호텔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JW메리어트 하노이 호텔은 인공호수가 호텔을 둘러싸고 있어 안보에 있어서도 최적의 장소로 거론된다.

정상국가 이미지 극대화
1차보다 많은 시간 할애

인공호수와 함께 호텔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호수나 공원 주변을 거닐며 비공개 회동을 통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책회동은 지난 1차 북미회담의 산책보다 길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1차 북미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시간은 1차 남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도보다리서 함께한 시간보다 짧았다. 북미 정상은 전례가 없던 만남이었던 만큼 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후 친서를 주고받는 등 서로에 대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표했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양국 정상은 지난 1차 회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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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