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0만 배우 류승룡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13:35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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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웃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우 류승룡이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부활했다. 4년의 침체기 끝에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더불어 대한민국 첫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 ▲최근 <극한직업>으로 400만 배우 반열에 선 배우 류승용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은 전날 17만1933명을 동원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관객수는 1342만3252명이다. <극한직업>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개봉 15일 만에 1052만9774명을 동원해 1000만 돌파의 쾌거를 이루었다. 

<극한직업> 대흥행 
특별한 이유는?

<극한직업>의 흥행세는 괄목할 만하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역대 1월 개봉영화 최고 오프닝(이상 36만8442명), 역대 1월 영화 최다 일일 관객 수(99만4577명), 역대 설 연휴 최다 관객 수(525만7243명) 등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200만 돌파 속도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2014·15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4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00만 고지를 밟은 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인 <명량>(1761만명)과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명), <국제시장>(2014·1426만명) 세 편뿐이다.

<극한직업>은 여타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대신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호흡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지며 시종 뚝심 있게 ‘웃음’을 던진다.


작품의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서 이 영화가 지닌 경쾌 발랄함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관객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의 마약반 5인방의 활약과 팀플레이도 돋보인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치킨집 위장 창업을 시작한 마약반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200% 살린 배우들의 열연이 흥행에 한몫했다. 

고된 일상 속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웃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낮에는 치킨장사를 하고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장사를 하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들. 특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기발한 설정은 웃음과 동시에 공감을 자아낸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그렇듯, 각자의 극한직업을 견뎌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건드린다.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 
극장가 코믹돌풍…코미디 영화 1위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 류승룡의 역할이 빛났다. 류승룡은 극중 고반장 캐릭터로 열연했다. 마약반 5형사 중 리더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찰진 대사 소화력과 좀비 액션으로 웃음을 이끌었다.


특히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고반장의 대사는 관객들 사이서 회자되며 숱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코미디 영화가 1000만 기록을 낸 건 6년 만이다. 지난 2013년 <7번방의 선물>이 역대 코미디 중 최초로 1000만을 찍었다. 최종 스코어는 1281만명. <7번방의 선물>과 <극한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 류승룡이 주연배우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류승룡은 6년 전 자신이 세웠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다. 최근 흥행 부진을 겪었던 터라 더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류승룡에게 최근 4년은 부진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명량>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품활동을 멈춘 건 아니었다. 천우희, 이성민과 함께한 <손님>(2015), 수지를 전면에 내세운 <도리화가>(2015),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2018), 장동건과 호흡한 <7년의 밤>(2018)까지 매해 한 편 이상의 신작을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작품이 <염력>으로 고작 99만111명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침체기가 계속되자 한 예능프로그램서 시작된 구설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2014년 대학동창인 배우 김원해, 이철민이 “(성공한 후)류승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게 논란이 됐다. 애당초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모든 건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인성 논란’ 꼬리표가 붙은 후였다. 시기가 겹치다 보니 이 해프닝이 류승룡의 호감도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여론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보다 ‘작품’ 문제가 컸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서일까. 류승룡은 이상하리만큼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류승룡은 “그동안 대체로 신선한 걸 선택했다. ‘이걸 보면 깜짝 놀라겠지? 짠하고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한직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인 류승룡은 대한민국 최초로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명량>(1761만명),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명) 등 3편의 1000만 영화에 주연배우로 참여했던 류승룡은 동률을 이루던 송강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를 제치고 1000만 영화 4편을 보유한 유일한 배우가 됐다.

류승룡표 코미디
관객들 사로잡아 

‘명절 불패신화’도 이어갔다. 설 연휴 기간 1000만 고지를 넘은 <극한직업>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은 모두 성수기로 분류되는 명절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작품이었다.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역대 한국 영화는 총 18편. 그중 명절에 맞춰 포문을 연 영화는 류승룡이 출연한 세 편뿐이다. ‘명절 = 류승룡’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탄생한 셈이다.

류승룡은 최근 공개된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서도 호평을 받으며 ‘쌍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한직업>에서는 코믹한 면모를 강조한 반면, <킹덤>에선 서슬 푸른 세도가 조학주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뽑냈다. 

류승룡은 “본의 아니게 출연작 2편이 동시에 공개돼 ‘피로도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두 작품의 결과 제가 맡은 캐릭터가 달라서 다행이었다”며 “사극에 좀비가 가미된 <킹덤>과 신파 없이 코믹 장르에 충실한 <극한직업> 모두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 대중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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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1순위로 류승룡을 원했다고 한다. “캐릭터끼리 화학작용을 빚어내면서도 밸런스를 맞출 줄 아는 배우는 류승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류승룡은 어깨에 힘을 빼고 밸런스를 고려하며 움직일 때 가장 쫄깃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서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왕 대신 저잣거리 천민에게 “왕 노릇을 하라”고 제안하는 신하 허균을 연기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전략가로 나오지만 중간중간 캐릭터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을 웃긴다. “적당한 선에서 유머를 주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서 나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서도 류승룡은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을 애써 웃기려 들지 않는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소젖을 짜는 일명 ‘핑거발레’ 같은 것으로 객석을 뒤집어놓을 뿐이다. 류승룡은 “터지기 직전까지만 갈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꼭짓점에 애써 오르려 하지 않을 때 가장 그다운 웃음과 긴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류승룡은 지난 10일 서울 CGV서 열린 <극한직업> 무대인사를 통해 “오랜 시간 많은 배우, 스태프들이 정성 들여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고 가족이 생겼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룡은 충청남도 서천군서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예전(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으로 같은 과 동기로는 안재욱, 정재영, 황정민, 신동엽, 임원희, 김현철(코미디언), 이철민 등이 있다. 그는 동랑극단을 통해 데뷔한 정통 연극파다. 

한동안 실패
부진 싹 씻어


대중에게 그가 알려진 것은 <난타>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였다. 그는 대학 동기인 김원해와 함께 <난타>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주방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소동을 그린 <난타>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대사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퍼포먼스’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를 넘어 영국, 미국서도 호평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류승룡 역시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난타>로 입지를 다진 류승룡은 2004년 장진 연출, 정재영 주연의 <아는 여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강도 1.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대출을 받는 은행에 침입하는 캐릭터다. 다만 제대로 된 강도가 아니라 단순히 ‘8인조 강도’라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 9명의 회원들이 뭉친 것이다.

분홍색 복면을 쓰고 어설프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를 자아냈다. 그의 첫 영화 캐릭터는 코미디인 셈. 이후로도 류승룡은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 연달아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7급 공무원>의 코믹한 요원, 기이한 사건들로 혼란스러워하는 <불신지옥>의 형사 등 류승룡은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영화 속 이미지 중 하나는 거친 인상의 악역이다. 그 시작점은 2008년 개봉한 느와르 스릴러 <시크릿>. 류승룡이 맡은 역할은 폭력 조직의 보스  '재칼'로 역할의 설정과 이름부터가 ‘나는 악역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인공 성열 형사(차승원)와 대립하는 인물이다. 외관은 물론 표정, 대사 등으로 느와르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캐릭터. 류승룡은 ‘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연기할 때 거의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류승룡은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초창기 장진 감독의 작품 등에서 쌓아올렸던 코미디 감각의 ‘포텐’을 터트렸다.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온몸에 버터를 바른 듯한 느끼함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온갖 오버스러운 표정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인물.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청스러움으로 과장된 연기와 생활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억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연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코미디를 보여줬다. 류승룡 역시 정극뿐 아니라 코미디서의 재능도 여실히 증명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계기로 류승룡에게는 ‘더티 섹시(더럽지만 섹시하다)’가 수식어처럼 붙기도 했다.

<7번방의…> <명량> 이어 세 번째
대한민국 유일의 4000만 배우 등극

같은 해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병헌과 함께 코미디와 진지함의 중도점을 맞추기도 했다. 두 배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함께 연출하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다. 그 결과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7번방의 선물>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룡은 ‘연기력과 티켓파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은 배우가 됐다.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 <명량>을 필두로 작품 속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시대극으로 흥행가도를 달린 김한민 감독은 두 작품서 류승룡을 청나라인, 일본인 악역으로 변신시켰다. 당연히 구사한 언어는 만주어, 일본어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선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해 변발로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는 북한 방언을 통해 고구려인을 표현, <고지전>에선 북한말을 구사하기도 했다. 국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유람한 과거가 있다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역에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아프리카어까지 보여줬다. 외국어, 사투리 대사의 경우 어색한 억양,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일기 쉽지만 류승룡은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으로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병기 활>서 만주어나 다른 작품서 스페인어, 불어, 일어 대사들도 무식하게 외웠다. 하도 많이 해서 매니저들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무식하게 한글로 써서 외웠다. 글씨 크기로 억양을 표현했다. 창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류승룡 하면 역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그는 팔도의 ‘남자라면’ 광고서도 이를 그대로 활용했다. 느끼한 표정으로 마늘을 부수고 도끼로 파를 자르는 등 특유의 코믹 연기를 1분30초 동안 쏟아부었다. 또 하이라이트인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은 “맛의 올가미”까지만 대본이고 뒤는 류승룡의 애드리브라고 한다.

장면·장면마다
독보적인 캐릭터

남자라면을 시작으로 류승룡은 아버지의 이미지, 호쾌한 이미지 등으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계 블루칩 배우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광고다. 그가 출연한 배달의 민족 광고만 해도 무려 7편이 넘는다. 풍속화를 이용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표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광고는 류승룡의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누구?

이병헌 감독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을 각색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냄새는 난다>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9년 제4회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서 최우수 국내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1년 영화 <써니> 스크립터와 각색에 참여했다. 

2013년 이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는 제9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은 스무살 청춘들의 찌질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낸 첫 상업영화 <스물>, 네 남녀의 좌충우돌 불륜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그리고 <극한직업>을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세계’를 구축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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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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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