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움직이는 ‘청가회’ 역할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08:24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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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이 복심으로’ 정권 따라 종교도 희로애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청와대 가톨릭 신자회 ‘청가회’가 문재인정부 들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열려있는 만큼 정가에선 ‘청가회 역할론’에 주목하고 있다.
 

▲ (사진 왼쪽부터)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에는 천주교(가톨릭)·기독교·불교 신자들의 친목 모임이 존재한다. 각각의 명칭은 청가회·기독신우회·청불회다. 창립 연도로 보면 기독신우회가 1992년으로 가장 빠르다. 그 뒤를 이어 청불회가 1996년에 창립돼 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청가회는 가장 최근인 2010년 출범했다.

MB가 출범
4대강 살리려…

공식 모임이 아니다보니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 내외 역시 청가회 미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 김정숙 여사는 외부 성당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종교 모임을 단순 친목 모임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청와대 내에서 실세라고 할 만한 참모가 해당 종교 모임의 회장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통상 차관급의 수석비석관이 회장직을 차지한다. 이는 장관급 이상의 의전을 받는 주요 종교계 대표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서도 그렇다. 이들은 청와대와 종교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는 자리다.

청가회는 이명박정부 때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부 핵심사업인 4대강 사업을 천주교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백준 당시 총무기획관을 회장으로 한 청가회를 발족시켰다. 김 기획관은 ‘집사’라 불리며 이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중 실세로 통한 인물이다.


지난 2010년 3월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청가회 출범을 예고하며 “청가회는 청와대가 천주교와 일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이자 통로가 될 것”이라며 “청가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천주교 등 종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정부 정책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 당시 청가회는 70여명 규모였다.

이 전 대통령은 청가회 출범 전부터 천주교에 정성을 보였다. 김 기획관을 천주교 교구장 착좌식에 보내 직접 축하메시지를 전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낸 천주교계에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기 위한 행보였다.

70여명서 최근 100여명으로 늘어
‘MB 집사’ 김백준 초대회장 맡아

박근혜정부 들어 청가회는 위기를 맞이한다. 청가회 회장이던 이남기 홍보수석이 경질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 수석은 2013년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진실공방을 벌였다. 앞서 ‘성추행 의혹’으로 경질된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이 수석이 귀국을 종용했다”고 주장하자, 이 수석은 “그런(귀국을 종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되자 여당이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까지 나서 이 수석의 경질을 촉구했다. 민현주 대변인은 야당이 청와대 참모진 총사퇴와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는 데 대해 “우선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면서도 “여당으로서도 (문제의 청와대 참모진을) 전혀 옹호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차기 원내대표 후보들도 입을 모아 이 수석 경질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경환 후보는 “어쨌든 자기 밑에 사람이 이런 일의 논란이 됐다는 것은 분명히 지휘·감독 체계가 잘못된 것”이라며 “이 수석은 이 자체만으로도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고 퇴진을 요구했다. 이주영 후보도 “이 수석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같은 입장을 내놨다.

이 수석은 미국서 귀국한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표가 접수되고 12일 후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갑작스런 사태로 회장을 잃은 청가회는 이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이렇다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근혜 때
위기 맞아

박근혜정부 들어 주목받은 종교 모임은 청가회가 아닌 청불회(청와대 불자회)였다. 박근혜정부서 청불회는 유민봉(국정기획)·조윤선(정무)·최원영(고용복지)·우병우(민정)·허원제(정무) 당시 수석이 차례로 회장을 역임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청가회는 전성기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문 대통령의 세례명이 티모테오(하느님을 공경하는 자라는 뜻)이며, 김정숙 여사도 골롬바(평화의 상징 비둘기)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운명>을 통해 천주교와의 인연을 자세히 밝혔다. 지난 1963년 부산 영도의 신선성당서 세례를 받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문 대통령은 전후 구호식량을 배급해주는 수녀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세례를 받게 됐다고 회상했다.
 

▲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지난해 11월28일, 체코 성비투스 대성당서 기도를 하고 있다.

자서전서 문 대통령은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 배급날이 되면 학교를 마친 후 양동이를 들고 가 줄서서 기다리다 배급을 받아오곤 했다. 싫은 일이었지만, 그런 게 장남 노릇이었다”며 “꼬마라고 수녀님들이 사탕이나 과일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그때 수녀님들이 수녀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어린 내 눈에 천사 같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 고마움 때문에 어머니가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됐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세를 받았다. 영도에 있는 신선성당이었다. 나는 그 성당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도 문 대통령 내외는 천주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2017년 5월13일 밤 청와대 관저서 천주교 관례에 따른 축복식이 열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 내외가 서울 홍은동 자택서 청와대 관저로 이사한 날이다. 청와대에서는 매달 둘째 주 화요일 날 한 차례씩 미사가 열린다고 한다.

문재인 집권
전성기 맞아

지난해 10월 성베드로 대성당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문 대통령 내외가 참석하는 장면이 공중파로 생중계돼 이슈가 된 바 있다.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집전한 미사라 화제가 됐다. 교황청의 국무총리 격인 파롤린 국무원장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경우는 드문 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미사 직후 연설을 가졌다. 당시 교황청 측은 “한 나라 정상의 바티칸 미사 참석 및 연설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청가회 회원은 현재 80∼100여명으로 청와대 종교 모임 중 최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친가톨릭(천주교)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청와대 참모진 중 천주교 신자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2기 청와대 참모 중 핵심인 강기정(세례명 돈보스코)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2일 3대 청가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앞서 1대는 박수현(안토니오) 전 청와대 대변인, 2대는 윤영찬(스테파노) 전 국민소통수석이었다.

강 수석은 대표적인 ‘호남 친문’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지난 2015년 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이끌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문세력의 ‘친문패권주의’ 공세로 호남서 문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대거 당을 떠났을 때도 문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2017년 대선 당시에는 캠프의 총괄수석부본부장을 맡았다.

강 수석은 청가회 회장으로 당선된 후 “천주교 쪽은 교황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해주시고 있다”며 “우리들의 믿음을 가지고 문재인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정권 때 이남기 경질로 주춤
노영민·강기정 등 실세로 가득

친문 핵심인 노영민(바오로) 대통령비서실장도 천주교 신자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 2017년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 조직본부장으로 활동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더불어민주당 2·8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라디오 토론회서 ‘주요 정치현안을 누구와 상의하느냐’는 질문에 “노영민 의원(현 대통령비서실장)과 상의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핵심 친문이다.

이 외에도 김혜애(율리아나) 기후환경비서관, 양현미(소화데레사) 문화비서관도 청가회 회원으로 전해진다.

1기 청와대 참모진도 천주교 신도가 주류를 이뤘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다.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낸 차영환 국무조정실 2차장,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 등도 청가회 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청와대뿐 아니라 내각도 천주교 신도가 강세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조명균 통일부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 등이 신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전직 국방부장관인 송영무, 중도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역시 천주교 신자다.

오는 27∼28일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이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자리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수락 의사였다.

교황 방북
불씨 당기나

이 시기를 전후로 청가회 참모진의 행보가 주목받을 공산이 크다. 북한과 교황청이 실무를 준비하는 과정서 가교 역할이 필요하다. 북한과 교황청 양 당사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청가회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VOA(미국의소리)는 교황의 방북이 올해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고 점쳤다. 교황청 관계자는 매체를 통해 “2019년에 그 일(교황 방북)이 일어나리라고 보지 않는다”며 “다른 순방 일정이 너무 많다”고 연내 방북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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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