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합집산’ 한국당 친황 세력 대해부

김? 홍? 황? ‘줄을 서시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또 다른 계파의 탄생일까.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한국당 입당으로 이른바 ‘친황(친 황교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친박(친 박근혜)과 비박(비 박근혜)을 넘어선 계파의 등장은 한국당 내 황 전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대변한다. 당 지도부와 황 전 총리는 친황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지천타천으로 친황계가 누구인지를 두고 말들이 많다.
 

▲ 악수 나누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에 입당했다. 이날 황 전 총리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를 공식 제출했다. 황 전 총리는 입당식 모두발언서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며 “누구 하나 살 만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제가 어렵다. 평화가 왔다는데 오히려 안보를 걱정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황교안 입당
통합 강조

황 전 총리는 “지금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이 국민들에게 시원한 답을 드려야 한다”며 “그것은 통합”이라고 밝혔다.

4개 원내 정당은 한 목소리로 그의 입당을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이날 “황 전 총리는 박근혜정부의 법무장관, 박근혜정부의 총리다. 반성과 사죄가 먼저”라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도 “황 전 총리는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국가 혼란을 불러온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일갈했다. 민주평화당 문정선 대변인은 “권한대행이라는 대기 순번표를 들고 호시탐탐 썩은 권력의 주변을 배회하던 좀비”라며 수위를 높였고,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쓸 만한 재원이 없어 ‘정치인 아나바다 운동’을 하는 것은 이해가지만 재활용도 한계가 있다”며 날을 세웠다. 

황 전 총리의 정계진출에 대한 여론조사서도 반대 응답이 더 많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15일 조사해 이튿날 발표한 여론조사 ‘황 전 총리의 정계진출에 대한 국민여론’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0.0%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지지 응답은 37.7%에 그쳤다. 보수 야권에선 80.3%가 지지했고, 16.4%가 반대했다. 반면 범진보 여권에선 반대가 74.7%, 지지는 13.6%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황, 한국당에 둥지…대권 도전 공식화
보수진영 대권주자, 당권 경쟁도 후끈

한국당 내에서도 황 전 총리의 입당을 두고 반응이 엇갈렸다. 친박계 정우택 의원은 “황 전 총리가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이 ‘도로 박근혜당’ 프레임을 씌울 것”이라고 경계했다. 반면 비박계 김무성 의원은 “황 전 총리의 한국당 입당은 아주 잘된 결정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의원은 “전당대회에 차기 대선 주자들이 나설 경우 전당대회가 대선 전초전이 되며 그 결과는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 전 총리의 등장은 다음 달 개최될 한국당 전당대회와 맞닿아 있다. 비박계에선 황 전 총리의 전대 출마가 새로운 계파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한다.
 

▲ 민경욱·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

황 전 총리는 박근혜정부 시절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그리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황 전 총리를 두고 친박계란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태극기 부대의 최대 주주인 점도 그 색채를 더욱 진하게 한다.

친박계는 지난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당시 막강한 세를 과시했다. 당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대의 경우 영향력은 노골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전대 과정서 비박(비 박근혜)계와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란 해석이다. 비박계서 황 전 총리의 전대 출마에 제동을 거는 까닭이다.


그러나 황 전 총리를 완전한 ‘정통 친박’이라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황 전 총리는 탄핵정국 당시 특별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황 전 총리는 한국당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한 적도 없다.

전대 과정서
갈등 불가피

전대 출마를 준비했던 친박계 중진 의원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황 전 총리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입당했다는 말이 오갔다. 황 전 총리는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서 보수진영 후보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전대 출마를 준비했던 친박계 중진 의원들에게 황 전 총리는 강력한 경쟁자로 통한다.

황 전 총리는 지난 15일 입당 기자회견서 “이미 당에도 계파 얘기가 거의 없어졌고, 저도 누가 친박이고 누가 비박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구시대 정치”라고 강조했다.

황 전 총리의 전대 출마 여부에 비박계와 친박계 중진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한쪽에선 그의 등판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친박계 초·재선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행보는 친박과 비박이 아닌 ‘친황’이란 새로운 계파의 등장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지난 1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황 전 총리의 입당식이 있던 날 오전에 한국당 의원 일부가 모임을 가졌다. 모임은 황 전 총리의 당 내 연착륙과 세 확산을 위한 자리로 전해졌다.

친박·비박 이어 ‘친황’
“다시 모여” 세 결집 분주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은 김기선·민경욱·박대출·박완수·엄용수·추경호 의원 등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민경욱·추경호 의원이다. 두 의원 모두 박근혜정부 시절 황 전 총리와 함께 일했다. 민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을, 추 의원은 황 전 총리 재직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민 의원과 추 의원은 황 전 총리의 입당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완수 의원도 조명을 받고 있다. 박 의원이 창원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황 전 총리는 창원지검장으로 근무했다. 추 의원과 함께 박 의원은 황 전 총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민 의원과 박 의원 그리고 추 의원은 원외 인사이자 당내 기반이 없는 황 전 총리를 지원할 공산이 크다.
 

▲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

모임을 가졌던 의원들은 한국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통합과 전진’ 멤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통합과 전진에는 이들을 포함해 재선의 김도읍·박맹우·윤영석·이완영·정용기·홍철호 의원과 초선의 강석진·김정재·송희경·엄용수·이은권 의원 등이 있다. 그 연유로 통합과 전진 멤버가 황 전 총리와 연결고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정부
근무로 인연

통합과 전진은 이를 의식한 듯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 17일 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통합과 전진 17차 모임서 “계파 갈등의 구도에 매몰돼선 안 된다”며 “의원들이 먼저 줄 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황 전 총리와 가까운 민 의원과 박 의원 역시 모임에 계파적 성격이 부여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윤상직·정종섭·유민봉 의원들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모두 박근혜정부서 함께 일했다. 윤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정 의원은 행정자치부장관으로, 그리고 유 의원은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으로 근무했다. 

황 전 총리가 정치 행보를 예고했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의원들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9월 저서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를 통해 정계 진출을 시사했다.

당시 10여명의 한국당 의원들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강효상·김정훈·김진태·송언석·원유철·유기준·윤상직·이채익·정종섭·추경호 의원 등이 모습을 보였다. 한국당 윤상현 의원은 축기를,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은 화환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황 전 총리는 “정치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며 “저와 내각에 있던 분들은 퇴임 이후에도 서로 같이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의원들도 대개 저와 같이 근무했던 분들”이라고 덧붙였다.
 

▲ 입당 기자회견 갖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현역 국회의원 외에도 박근혜정부 내각에 있던 이들도 참석했다. 정홍원 전 총리와 최양희 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홍용표 전 통일부장관, 안양호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등이 자리를 지켰다.

한국당 지도부는 또 다른 계파의 등장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인 한국당은 그간 ‘계파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친박계와 비박계의 대결 구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친황이라는 또 다른 계파의 등장은 한국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계파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며 당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나 원내대표는 황 전 총리가 입당한 다음 날 “오늘 아침 친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더라. 친박·친이를 넘어섰더니 이제 친황을 들고 나온다”며 “새 계파가 아니라 의원님들 각자 존중되는 전당대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튿날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 전 시장은 이날 친황에 대해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며 “새로 정치를 시작하시는 분 주위서 현역 의원 몇 분들이 모여 좋은 충고를 해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계파 맞아”
“계파 아냐”

황 전 총리는 친황 논란에 대해 “나는 친한”이라고 언급했다. 황 전 총리는 친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한국당과 친하고 싶다”며 “지금은 그런 거 따질 때도 아니고, 따져서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홍준표가 보는 ‘친황’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7일 자신의 SNS 페이스북에 황 전 총리와 관련된 글을 게재했다. 홍 전 대표는 “황교안 ‘레밍 신드롬’으로 모처럼 한국당이 활기를 되찾아 반갑다”며 “도로 친박당, 도로 탄핵당, 도로 병역비리당이 되지 않도록 한국당 관계자들과 당원들이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좌파 폭주를 막을 수 있는 한국당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레밍 신드롬은 우두머리나 자신이 속한 무리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집단적 편승효과를 일컫는다. 나그네쥐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레밍은 개체 수가 늘면 다른 땅을 찾아 이동하는데, 우두머리만 보고 직선으로 이동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우두머리가 호수나 바다로 뛰어들면 뒤따르던 이들 역시 떨어져 집단으로 죽기도 한다. 

홍 전 대표는 친황계 형성이 불거지는 상황을 레밍 신드롬에 빗대 이같이 비판했으나 글을 올린 지 한 시간여 만에 레밍 신드롬을 ‘입당’으로 수정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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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