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조국의 숙제

풀 문제 많은데 난제 수두룩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조국 민정수석은 건재했다. 조 수석은 청와대 특감반 논란과 함께 입지가 흔들리는 듯했지만 청와대 2기 개편서 살아남았다. ‘검찰과 사법부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야당은 연일 조 수석을 향해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조 수석이 공개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호소할 정도다. 조 수석의 어깨가 무겁다.
 

▲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지난 8일, 청와대 2기 참모진 개편이 단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핵심 참모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정무수석과 국민소통수석을 교체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선 데드크로스로 한 해를 매듭지었다. 지지율은 최근까지도 하락 국면이다. 올해는 문재인정부가 ‘3년 차 징크스’를 맞는 해이기도 하다. 험로를 걷고 있는 문 대통령은 청와대 개편을 통해 분위기 쇄신과 함께 국정 동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참모 개편
결국 생존

참모진 개편 과정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논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야당은 조 수석의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상황은 조 수석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으로 치달았다.

조 수석은 지난달 31일 특감반 논란과 관련, 운영위에 출석했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이 해당 상임위에 출석한 건 12년 만이다. 조 수석의 거취는 운영위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관측됐다.

당시 야당은 조 수석의 책임론을 내세우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조 수석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강경한 어조로 야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해를 넘길 때까지 야당은 결정적인 단서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운영위는 조 수석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됐다. 자연스레 조 수석의 유임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그의 유임이 기정사실화된 때는 지난 6일이다. 조 수석은 이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에 검찰 개혁을 촉구했다. 조 수석은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사인사제도의 개혁, 검찰 과거사 청산 등 대통령령과 법무부령 개정으로 가능한 검찰개혁은 대부분 이뤄졌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공수처법 제정, 수사권 조정 등 법률제정·개정이 필요한 검찰 개혁은 행정부와 여당이 협력해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서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국회 의석 구조를 생각할 때 행정부와 여당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조 수석의 검찰개혁 호소는 곧 문 대통령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조 수석은 지난 2017년 취임 기자회견서 “검찰개혁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철학과 구상,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충실히 보좌하겠다”고 밝혔다. 사법 개혁의 아이콘인 조 수석이 검찰 개혁 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은 문 대통령의 조 수석 유임 강행으로 해석됐다.

‘문의 결정’ 국정 동력 약세 속 유임
개혁 드라이브…수사권·공수처 관건

조 수석은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 대통령령과 법무부령 개정으로 가능한 사안에 성과를 냈다. 법무부의 탈검찰화는 지난 2017년 7월부터 시행됐다. 사실상 법무부가 검찰에 의해 지휘된 점에서 비롯됐다.

개혁의 일환으로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검찰국 2개 검사 과장 지위에 비검사 출신들의 보임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무부는 현재까지 4개 실·국장, 9개 국·과장급, 14개 평검사 등 총 27개 직위에 일반직 공무원을 임명했다.

검사인사제도 개혁도 단행됐다. ‘귀족검사’ 양성 차단이 대표적이다. 귀족검사는 검사들의 선호 근무지인 수도권서 장기 근무하는 검사를 뜻한다.


법무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도권 3회 연속 근무 제한’을 엄격히 했다. 기존에도 수도권 근무는 3회로 제한됐다. 그러나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예외였다. 이런 연유로 법무부와 대검을 거쳐 수도권서 오래 머무는 귀족검사들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령과 법무부 예규, 법무부령 등 검사 인사 관계 법령의 제·개정을 통해 수도권과 법무부, 대검서 두 차례 근무한 검사는 예외 없이 지방청으로 인사 발령을 받게 된다.
 

▲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출석한 문무일 검찰총장

이 외에도 부장검사 보임 요건을 강화하고, 법무부와 대검 근무 기준을 높였다. 인사 평가에는 다면평가를 법제화했다. 다면평가란 소위 ‘후배 검사의 선배 검사 평가’를 뜻한다. 일반 검사의 인사시기도 명문화했다.

검찰 과거사 청산도 진행 중이다. 문무일 검찰 총장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 대표적이다. 형제복지원에 이어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지난 9일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다뤘던 MBC <PD수첩>에 대해 ‘검찰이 수사권을 부당하게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사방이 적
산적한 과제

조 수석은 이 외에도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를 호소했다. 해당 사안은 국회 공식 논의 기구인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 산하 검찰·경찰개혁 소위서 논의되고 있다.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가 법률의 제·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수사권 조정은 7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 6월21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 수석,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은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날인했다. 여야도 수사권 조정의 골자인 ‘경찰의 1차 수사권 부여와 검찰의 수사 지휘권 폐지’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사실상 정부안으로 여겨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에 따르면 세부적으로 경찰은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다. 검찰은 기소권과 특정사건 직접 수사권, 송치 후 수사권, 그리고 사법경찰관 수사에 대한 보완수사 및 시정조치 요구권을 확보하게 된다. 

검경소위는 지난달 19일 간담회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했다. 이른바 ‘간담회안’이다. 간담회안은 백 의원의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이다.

수정된 사안은 검찰의 특정사건 직접 수사권이다. 본안에 따르면 검찰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등 중요 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수정안은 ‘중요 범죄’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또한 경찰의 수사권 종결서 ‘경찰이 불송치 사건서 사건기록 등본을 검사에게 송부’하도록 명시돼있는 문구에 ‘검사가 30일 이내에 이를 조사하고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검찰의 보완수사에도 손을 댔다. 기존의 ‘검사가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사법경찰관은 이를 지체 없이 이행’이란 문구 중 ‘지체 없이’를 ‘정당한 이유 없는 한’으로 수정했다. 

마지막으로 검찰의 자치경찰 수사지휘 유지를 ‘자치경찰을 제외한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해서만 수사지휘’로 방향을 틀었다.


검경소위는 지난 8일 간담회 안을 중심으로 합의안을 도출하고자 했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간담회에 불참했던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해당 수정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곽 의원은 이날 “일부가 모여 간담회를 진행한 것을 소위안이라고 해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는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여야 합의가 불발됐다. 여야는 간담회안과 함께 곽 의원이 발의한 ‘수사청법’을 함께 논의해야 했다. 수사청법은 검찰에게 기소권과 영장청구 집행권을 남겨두고, 검·경이 갖게 되는 수사권을 별도의 수사청에 두도록 하는 것이다.

검경소위원장인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오신환 의원은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곽 의원이 낸 수사청법과 형사소송법은 논의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간단한 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합의의 진척을 묻는 질문에 “소위 위원 9명 중 7명이 합의를 했다고 해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답했다.  

개혁 아이콘
그의 앞날은?

그나마 합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수사권 조정과 달리 공수처 설치는 요원한 모양새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를 ‘옥상옥’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감반법과 상설특검법이 제정돼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한국당은 공수처를 설치할 경우 공수처장의 임명권을 요구하고 있다.

사개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국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박 의원은 “특감반은 수사권도 없고 감찰 범위는 대통령의 특수 관계로 제한돼있다”며 “청와대 산하 기구인 점도 문제가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상설 특검에 대해선 “특검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진행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할 수 없다”며 “특검은 사후약방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공수처의 대안으로 상설특검이 아닌 상임특검제를 주장했다. 그는 “상설특검을 하게 되면 특검이 정치적 ‘딜용’으로 쓰인다”며 현행 특검제의 부작용도 꼬집었다.

여야 간 특검 수용에 따른 법안 및 예산안 통과와 같은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 백 의원은 지난달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공수처를 반대하는 한국당을 향해 “공수처 설치는 오늘날과 같은 특감반 사태 등을 객관적으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찰 직접수사의 상당 부분이 공수처로 가기 때문에 편향적 정치수사 논란이 오히려 해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수석이 언급한 사개특위 산하에는 검경소위와 함께 법원·법조개혁소위도 있다. 해당 소위는 법원행정처 개혁을 논의 중이다. 조 수석은 “법원행정처 폐지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조 수석의 개혁 의지는 검찰과 함께 사법부까지 미치고 있다.

검찰부터 사법부까지 임무 막중 
야당 연일 공세…과제 첩첩산중

법원행정처 개혁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 농단 의혹의 연장선에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재판 거래, 판사 사찰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개입 여부가 쟁점이다.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의 ‘행동대장’ 역할을 수행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사법부 개혁을 공표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그 대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입법의견 형태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사개특위에 제출했다.

다만 내부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사법 농단 의혹 추가조사위원회는 당시 김소영 전 법원행정 처장에게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사퇴한 임종헌 전 처장의 PC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 전 처장은 이를 거부했고, 처장 직에서 물러났다. 임명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김 전 처장 이후 임명된 안철상 전 처장은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안 전 처장은 건강문제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김 대법원장과의 갈등설을 피하기 어려웠다.

안 전 처장은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해 김 대법원장과 반대 입장을 보였다. 김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를 ‘불가피한 일’이라고 밝혔지만, 안 전 처장은 지난해 11월 “아무리 환부를 많이 찾는다고 해도 해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대치했다.

안 전 처장은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명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수사권 조정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공수처 설치와 법원행정처 개혁은 다소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조 수석의 운영위 출석과 유임, 그리고 SNS 호소 이후 야당의 공세는 한층 강화됐다. 

한국당은 조 수석을 연일 정조준하고 있다. 청와대 2기 참모진 개편 윤곽이 드러나던 지난 7일 한국당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무소불위의 통제 불능 청와대를 만든 장본인인 조국 민정수석은 유임될 것으로 전해져 국민과 공직사회를 경악시키고 있다”며 “조국 민정수석 등에 대한 경질이 없다면 이 정권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것으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국민 기만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국당과 바미당,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은 조 수석을 둘러싼 청와대 특감반 논란에 대한 특검 도입에 합의했다. 범진보진영 중 하나로 꼽히던 평화당이 특검을 합의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조 수석은 운영위에 출석해 판정승을 거뒀지만 비판은 오히려 거세지는 형국이다.

향후 조 수석의 사법개혁 동력이 힘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까닭이다. 최악의 경우 국회 차원서 사법개혁을 논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조 수석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개혁 논의는 정쟁으로 비화할 공산이 크다.

극복? 무산?
가시밭길

이 경우 지난해 11월 초 출범한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에 해당 안건을 상정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서 “여당서 통과시켰으면 하는 아젠다는 검경수사분리법, 공수처법 등인데 한국당이 받기 어려운 여러 사정들이 있다”며 “야당에서는 김태우 특검·국정조사, 신재민 사건 청문회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1월에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열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에 힘 실어준 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간담회서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개혁 드라이브를 강화하고 조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생활 속 적폐 근절을 이야기하면서 “권력기관 개혁도 이제 제도화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며 “정권의 선의에만 맡기지 않도록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등 입법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입법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촉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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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