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운설’ 청와대와 풍수지리 대해부

“북악산에 살기 감돈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청와대와 풍수지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무산됐다. 공약 파기에 대한 비난이 불거진 가운데 때아닌 풍수지리설이 고개를 들었다. 그간 풍수지리학자들 사이에선 청와대 터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흉지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반박이 치열했다. 양 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에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터는 정말 괜찮은 땅일까?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화문대통령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통 부재가 탄핵 정국을 야기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책자형 선거공보를 통해 “퇴근 후 시장에 들러 넥타이를 풀고 국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누는 소탈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을 꿈꿔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11개월 만에 
없던 일로∼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유홍준 자문위원은 지난 4일, 춘추관 브리핑서 광화문 이전 불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유 위원은 이날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경우 청와대 영빈관과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서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호·의전이라는 게 엄청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도 인지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광화문시대위원회는 그렇게 11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야당의 비판은 거셌다. 야 4당은 이구동성으로 문 대통령의 공약 파기를 문제 삼았다.


자유한국당 이양수 원내대변인은 “집무실 이전 공약의 취지는 국민과의 상시적 소통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의 목소리조차 듣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광화문 이전 공약을 “현실성 없는 거짓 공약”이라며 “국민을 우롱한 문재인정부는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범진보 진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공약을 못 지키게 됐으면 대통령이 우선 국민들께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며 촉구했고,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지난 5일 “국민은 면밀한 검토 없이 제시된 ‘공약(空約)’에 속이 쓰리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강하게 항변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현 상근대변인은 “모든 이슈에 대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야당서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청와대 터를 둘러싼 풍수지리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광화문시대 무산되니 풍수 불쑥
민심 흉흉하니 흉지론까지 부상

논란에 단초가 된 것은 광화문시대위원회 유 위원의 발언이었다. 유 위원은 광화문 이전 공약 철회를 설명하던 중 “현재 대통령 관저가 갖고 있는 사용상의 불편한 점이 있다. 나아가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한다면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 위원은 웃으며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 답했다.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이름을 떨친 유 위원은 풍수에 대해서도 나름의 식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풍수가 등장하면서 여파도 거셌다. 지천타천으로 청와대 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

물론 쟁점은 청와대 부지의 길흉 여부다. ‘청와대 흉지설’을 최초로 제기한 인물은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다. 최 전 교수는 자타공인 풍수지리 전문가로 풍수 관련 서적만 20권 넘게 집필했다. 최 전 교수는 행정수도 계획이 발표될 당시 ‘행정수도 불가론’을 내세우며 아홉 가지 이유를 들어 주목을 받았다.


최 전 교수는 저서 <한국의 풍수지리>를 통해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며 “사람이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으니 나쁠 것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으나 풍수에서는 결코 인사(人事)가 천도(天道)를 넘보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코에 걸면…
귀에 걸면…

김두규 우석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최 전 교수의 불가론에 대해 반박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7년 12월 <월간 조선> 칼럼을 통해 “최 전 교수는 조선총독들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 뒤끝이 안 좋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 풍수술사들까지 덩달아 진지한 성찰 없이 그 내용을 확대시키면서 청와대 흉지설이 굳어졌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신의 거처, 즉 큰 사찰이나 성당이 들어서려면 풍수상 2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터는 흙산이 아닌 돌산이어야 하고, 좌우 산들이 이를 완벽하게 감싸줘야 한다. 김 교수는 두 번째 조건을 지적하며 “내백호와 내청룡의 지맥이 낮고, 서로 교차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터를 둘러싼 길흉 논란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세종 15년의 풍수관리 최양선이 ‘경복궁 이전’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청와대는 경복궁 터의 일부다.

세종은 황희 등을 비롯한 신하들과 풍수가에게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세종이 직접 북악산에 올라 살펴본 뒤 “경복궁은 길지”라고 결론내렸다.

현재 청와대는 풍수지리학서 이상적인 배치로 여겨지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을 시작으로 좌우엔 각각 낙산과 인왕산이, 청와대 앞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청와대 터는 길지 중의 길지라는 해석이다.

청와대가 명당이라는 주장에는 청와대 경내서 발견된 글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 도중 ‘천하제일복지’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발견됐다. 천하제일복지는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을 일컫는 말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은 약 300∼400년 전 쓰인 글로 추정됐다. 

“그걸 믿어?”
이견도 팽팽

청와대서도 현재 위치를 길지로 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로 알려진 곳’으로 ‘890년 전 고려시대에 남경의 이궁이 있던 곳’이다. 남경은 고려 3경(개경·서경·남경) 중 하나를 뜻하고, 이궁은 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이다. 남경 이궁은 고려시대 숙종 때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도 청와대 터는 명당으로 지목됐다. 

반면 청와대 흉지설도 만만치 않다. ‘칠궁’에 대한 주목이 대표적이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 7인의 묘다. 조선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도 여기에 있다. 후궁 7인은 모두 왕을 낳았지만 그들의 위패는 종묘에 모셔지지 못했다. 종묘에 모셔진 건 후궁이 아닌 왕비였다. 


현재 칠궁은 청와대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 연유로 몇몇 풍수학자들은 청와대 터에 ‘한’이 서려 있다고 주장한다. 후궁들은 왕자를 낳고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소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터가 내시와 무수리의 임시 무덤으로 쓰였다는 주장도 있다. 또 일부는 이곳이 무인들의 무예시험장소와 전국 유생들의 과거시험 장소였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북악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점도 흉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악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이다. 풍수학에선 바위가 크고 많은 산을 ‘살기’가 가득한 산으로 본다. 
 

▲ 신년 기자회견 갖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대통령의 말로가 모두 혼탁했던 것 역시 흉지론에 설득력 갖게 한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건축가 승효상씨는 지난 2017년 10월 청와대 내부 강연서 풍수지리를 신봉하지 않는다면서도 역대 대통령들의 후일이 좋지 못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그리 좋은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임기를 순탄하게 끝내지 못했다. 수사와 구속은 물론이고 탄핵까지 그 결과는 암담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청와대에 들어왔다. 당시 청와대의 이름은 경무대였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뒤 6·25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이 끝난 뒤엔 4·19혁명이 있었다.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해 5년 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음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선출됐다. 경무대의 이름이 청와대로 바뀌게 된 때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대통령 자리서 물러났다.

역대 대통령 말로 비참…정말 터 때문?
“기운 탓 아닌 사람 탓” 경계 목소리도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게 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겪었고, 자신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의해 피살당한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1979년 신군부의 12·12사태로 최 전 대통령은 8개월 만에 물러나게 된다. 최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장악했지만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수의에 고무신을 신고 나란히 법정서 재판을 받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지만 IMF 사태가 터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 아들의 비리 연루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끝이…
가시밭길

다만 일각에선 청와대 흉지론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국내 풍수학 박사 1호인 이몽일 박사는 <영남일보> 칼럼을 통해 “새 대통령이 나오면 얼풍수들은 으레 그 사람의 조상 묘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가터를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대명당으로 미화한다”며 “그러다가 퇴임 시 정쟁이나 비리로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되면 그것을 오롯이 ‘청와대의 터’ 탓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사람의 일을 탓하지 않고 땅을 탓할 때 풍수는 미신이 되고 만다”고 일갈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무실 이전 추진 왜?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오랜 기간 단골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화문 정부청사로 집무실을 옮기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청와대 집무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 후보를 제치고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로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경호, 의전, 예산 등을 이유로 집무실 이전은 무산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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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